[클로즈업 북한] 北, ‘영화 세트장’ 대대적 선전…의도는?

입력 2021.09.11 (08:10) 수정 2021.09.11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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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생전에 영화를 참 좋아했는데요.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에는 북한의 영화산업이 침체일로를 걷고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 관련 유튜브 계정이 최근 야외 영화세트장을 홍보하고 나서면서 그 배경이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이 세트장은 서울 여의도공원 크기의 3배에 달하는 대규모라고 하는데요.

조선 시대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 거리까지 재현해 놨다고 합니다.

북한의 영화산업이 다시 기지개를 켜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데요.

오늘 클로즈업 북한은 북한 영화산업의 현주소를 짚어보겠습니다.

[리포트]

한복을 차려입고, 처마 아래서 풍경을 감상하는 한 여성.

이어 부채를 펼쳐 들고 등장한 남성의 대사에서 이 장면이 춘향전의 한 대목이라는 게 드러난다.

["춘향 네 이X. 아직도 이 변강 사또를 우습게 볼 셈이냐."]

혼신을 다해 춘향 역을 열연하는 여성.

사실 이 여성은 북한을 소개하는 한 유튜브 계정의 리포터다.

연기까지 하며 북한의 야외 영화 세트장을 소개하고 있다.

중국 거리를 재현한 세트장에선 중국 전통 의상까지 착용했다.

[‘NEW DPRK’ 북한 리포터 : "제가 입고 있는 이 옷은 중국 여성들의 민족 옷인 치파오입니다. 이 옷이 저에게 어울립니까?"]

해당 유튜브 계정이 소개한 곳은 평양시 형제산구역에 위치한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야외촬영기지.

1981년 준공된 이곳은 북한의 특정 도시와 민속촌은 물론 중국과 일본 거리, 남한 거리까지 재현해 놨다.

서울 여의도공원 3배 크기의 대형 야외 세트장이다.

["(여기 무슨 철도역이 다 있습니까?) 우리 어버이 수령님께서 영화배우들이 출장을 나갈 때 멀리 역까지 나가지 않고 여기서 그냥 나갈 수 있게..."]

북한은 6.25 전쟁이 끝난 뒤 전후 복구 와중에도 영화산업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사회주의 건설에 있어 영화를 통한 선전 선동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전영선/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 "영화라는 것은 일단 기본적으로 제작하긴 좀 어렵지만 한 번 제작이 되면 복사라든가 이동 상영이 가능하므로 초기부터 영화에 대해 상당한 투자를 했었고요."]

북한은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과도 합작 영화를 만들었다.

러시아혁명 40주년 기념으로 제작된 북-소 합작영화‘형제들’.

무용가로 잘 알려진 최승희가 영화의 모든 안무를 맡는 등 당대 최고의 북한 유명인사들이 총 출연한 영화다.

1958년엔 국교 관계가 없었던 프랑스 예술인들과도 합작영화 제작을 시도했다.

젊은 노동자와 판소리 음악가 딸의 사랑을 그린 영화 ‘모란봉’을 통해 서방세계로의 진출을 모색한 것이다.

[한상언/한상언 영화연구소 대표 : "당시에 이제 동서냉전이 아주 심각할 때잖아요. 그 심각한 상황에서 사회주의권 국가의 속살을 보여준다고 하는 측면에서 되게 의미 있는 그런 작업이었고 그것을 또 북한 당국이 긍정적으로 판단을 했던 거죠."]

1970년대, 영화광으로 잘 알려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선전선동부장에 오르며 북한 영화계는 또 한 번 전환기를 맞이한다.

‘영화예술론’까지 집필했던 김정일 위원장.

대한민국 영화계를 주름잡던 신상옥, 최은희 부부 납치 사건은 김정일 위원장의 영화 집착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납북된 두 사람은 극적으로 8년 만에 탈출해 북한 생활을 다룬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2016년 개봉된 이 영화에는 북한에서 녹음된 김정일 위원장의 육성이 공개됐다.

[김정일/국방위원장/생전 육성/영화 ‘연인과 독재자’ 中 : "두 분을 내가 영화하는 대상으로 집었단 말입니다. 두 분이 꼭 필요하니까 데려와라..."]

[김정일/국방위원장/생전 육성/영화 ‘연인과 독재자’ 中 : "왜 우리 영화는 맨날 나오는 것이 반복하는 게 많고 도식적으로 (만드는가) 영화 이야깃거리가 새것으로 나가자고 하는, 지향하는 것이 전혀 없단 말입니다."]

실제 신상옥 감독은 집단창작을 중시하는 북한에서 예술가 개인의 개성을 강조하는 새로운 방식의 영화를 만들어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영선/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 "신상옥 감독이 보여줬었던 연출, 그다음에 이제 뭐 내용구성이라든가 이런 것들은 기존에 북한 영화가 가지고 있던 문법적인 틀을 많이 깬 영화들이 있었기 때문에 상당히 큰 영향을 줬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1980년대 북한은 영화를 통해서 국제사회와의 교류도 활발하게 진행했다.

1987년, 제1회 평양국제영화축전을 개최했고, 1990년 뉴욕에서 열린 제1회 남북영화제에선 남북 영화인들의 첫 공식 만남이 이루어졌다.

[강대신/당시 한국 영화인 대표단장 : "앞으로 영화를 중심으로 하는 남북 간의 교류는 공평하게 다툼이 없이 평화스럽게 이렇게 진행해 나가자 하는 그런 대전제를 우리가 확인했습니다."]

[엄길선/당시 북한 영화인 대표단장 : "지금까지 얼어붙었던 이 얼음이 봄날의 눈 서리처럼 녹기 시작하지 않았는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북한은 적극적으로 영화 수출이나 합작영화 제작을 추진했다.

북한과 벨기에, 영국 세 나라가 합작해 만든 영화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

2012년 김정은 위원장 집권 첫해 개봉한 이 영화는 체제 선전이라는 전통적 형식을 깼다고 할 수 있다.

탄광 노동자이지만 공중 곡예사의 꿈을 가진 영미.

그러나 꿈을 향한 길은 순탄치 않다.

[영화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 中 : "요 동무, 땅속에서 나 하늘을 날아보겠다고? 공중교예가 그렇게 만만해 보여? 아무나 다 하는 게 교예인 줄 아는가? 탄광 일이나 착실히 할 게지."]

기존의 북한 영화대로라면 자신의 본분을 깨닫고 탄광에 남아야 하지만, 주인공 영미는 노동계급이라는 신분을 극복하고 곡예사의 꿈을 이룬다.

[영화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 中 : "탄광 처녀, 하늘을 날겠다고 했지? (그래요.) 좋아! 날아보자!"]

이 영화는 개인의 꿈과 실현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면서 북한 영화의 해외 시장 진입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뒤이어 개봉한 북-중 합작영화 ‘평양에서의 약속’은 중국 배우가 주인공으로 나와 화제가 됐다.

[영화 ‘평양에서의 약속’ 中 : "이 반지는 제가 베이징에서 가져온 건데 만난 기념으로 받아주세요."]

영화 곳곳에 북한 사회의 평범한 일상과 함께 북한과 중국 무용수의 우정을 주요 내용으로 담았다.

[전영선/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 "북한도 일반적인 다른 나라들과 다르지 않은 보통 국가라는 걸 보여주고자 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협력이라든가 합작이라고 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예전보다는 조금 더 쉬워졌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평양에서의 약속’ 이후 북한은 합작영화를 만들지 않고 있다.

북한 자체적으로 제작한 영화도 2016년 개봉된 ‘우리집 이야기’가 마지막이었다.

북한 영화가 과거만큼 내부결속의 역할을 못 하고, 영화 제작에 필요한 장비와 기술도 노후화돼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한상언/한상언 영화연구소 대표 : "북한의 가장 큰 문제는 북한 전역에 있는 극장이 디지털화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거죠. 지금 이제 전 세계에서 필름을 작업하는 나라가 거의 없잖아요. 그러니까 북한에서 이 전국에 있는 극장을 다 디지털 극장으로 전환을 해야 하는데 그게 불가능한 상황이니까 굳이 영화를 만들 필요가 없는 거죠."]

5년째 영화 제작이 중단된 상황에서도 유튜브 계정을 통해 대대적인 영화세트장 선전에 나선 북한.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통해 낙후된 영화계를 다시 한번 활성화하겠다는 북한의 의지가 엿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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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9-11 08:10:17
    • 수정2021-09-11 08:2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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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생전에 영화를 참 좋아했는데요.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에는 북한의 영화산업이 침체일로를 걷고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 관련 유튜브 계정이 최근 야외 영화세트장을 홍보하고 나서면서 그 배경이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이 세트장은 서울 여의도공원 크기의 3배에 달하는 대규모라고 하는데요.

조선 시대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 거리까지 재현해 놨다고 합니다.

북한의 영화산업이 다시 기지개를 켜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데요.

오늘 클로즈업 북한은 북한 영화산업의 현주소를 짚어보겠습니다.

[리포트]

한복을 차려입고, 처마 아래서 풍경을 감상하는 한 여성.

이어 부채를 펼쳐 들고 등장한 남성의 대사에서 이 장면이 춘향전의 한 대목이라는 게 드러난다.

["춘향 네 이X. 아직도 이 변강 사또를 우습게 볼 셈이냐."]

혼신을 다해 춘향 역을 열연하는 여성.

사실 이 여성은 북한을 소개하는 한 유튜브 계정의 리포터다.

연기까지 하며 북한의 야외 영화 세트장을 소개하고 있다.

중국 거리를 재현한 세트장에선 중국 전통 의상까지 착용했다.

[‘NEW DPRK’ 북한 리포터 : "제가 입고 있는 이 옷은 중국 여성들의 민족 옷인 치파오입니다. 이 옷이 저에게 어울립니까?"]

해당 유튜브 계정이 소개한 곳은 평양시 형제산구역에 위치한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야외촬영기지.

1981년 준공된 이곳은 북한의 특정 도시와 민속촌은 물론 중국과 일본 거리, 남한 거리까지 재현해 놨다.

서울 여의도공원 3배 크기의 대형 야외 세트장이다.

["(여기 무슨 철도역이 다 있습니까?) 우리 어버이 수령님께서 영화배우들이 출장을 나갈 때 멀리 역까지 나가지 않고 여기서 그냥 나갈 수 있게..."]

북한은 6.25 전쟁이 끝난 뒤 전후 복구 와중에도 영화산업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사회주의 건설에 있어 영화를 통한 선전 선동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전영선/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 "영화라는 것은 일단 기본적으로 제작하긴 좀 어렵지만 한 번 제작이 되면 복사라든가 이동 상영이 가능하므로 초기부터 영화에 대해 상당한 투자를 했었고요."]

북한은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과도 합작 영화를 만들었다.

러시아혁명 40주년 기념으로 제작된 북-소 합작영화‘형제들’.

무용가로 잘 알려진 최승희가 영화의 모든 안무를 맡는 등 당대 최고의 북한 유명인사들이 총 출연한 영화다.

1958년엔 국교 관계가 없었던 프랑스 예술인들과도 합작영화 제작을 시도했다.

젊은 노동자와 판소리 음악가 딸의 사랑을 그린 영화 ‘모란봉’을 통해 서방세계로의 진출을 모색한 것이다.

[한상언/한상언 영화연구소 대표 : "당시에 이제 동서냉전이 아주 심각할 때잖아요. 그 심각한 상황에서 사회주의권 국가의 속살을 보여준다고 하는 측면에서 되게 의미 있는 그런 작업이었고 그것을 또 북한 당국이 긍정적으로 판단을 했던 거죠."]

1970년대, 영화광으로 잘 알려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선전선동부장에 오르며 북한 영화계는 또 한 번 전환기를 맞이한다.

‘영화예술론’까지 집필했던 김정일 위원장.

대한민국 영화계를 주름잡던 신상옥, 최은희 부부 납치 사건은 김정일 위원장의 영화 집착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납북된 두 사람은 극적으로 8년 만에 탈출해 북한 생활을 다룬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2016년 개봉된 이 영화에는 북한에서 녹음된 김정일 위원장의 육성이 공개됐다.

[김정일/국방위원장/생전 육성/영화 ‘연인과 독재자’ 中 : "두 분을 내가 영화하는 대상으로 집었단 말입니다. 두 분이 꼭 필요하니까 데려와라..."]

[김정일/국방위원장/생전 육성/영화 ‘연인과 독재자’ 中 : "왜 우리 영화는 맨날 나오는 것이 반복하는 게 많고 도식적으로 (만드는가) 영화 이야깃거리가 새것으로 나가자고 하는, 지향하는 것이 전혀 없단 말입니다."]

실제 신상옥 감독은 집단창작을 중시하는 북한에서 예술가 개인의 개성을 강조하는 새로운 방식의 영화를 만들어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영선/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 "신상옥 감독이 보여줬었던 연출, 그다음에 이제 뭐 내용구성이라든가 이런 것들은 기존에 북한 영화가 가지고 있던 문법적인 틀을 많이 깬 영화들이 있었기 때문에 상당히 큰 영향을 줬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1980년대 북한은 영화를 통해서 국제사회와의 교류도 활발하게 진행했다.

1987년, 제1회 평양국제영화축전을 개최했고, 1990년 뉴욕에서 열린 제1회 남북영화제에선 남북 영화인들의 첫 공식 만남이 이루어졌다.

[강대신/당시 한국 영화인 대표단장 : "앞으로 영화를 중심으로 하는 남북 간의 교류는 공평하게 다툼이 없이 평화스럽게 이렇게 진행해 나가자 하는 그런 대전제를 우리가 확인했습니다."]

[엄길선/당시 북한 영화인 대표단장 : "지금까지 얼어붙었던 이 얼음이 봄날의 눈 서리처럼 녹기 시작하지 않았는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북한은 적극적으로 영화 수출이나 합작영화 제작을 추진했다.

북한과 벨기에, 영국 세 나라가 합작해 만든 영화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

2012년 김정은 위원장 집권 첫해 개봉한 이 영화는 체제 선전이라는 전통적 형식을 깼다고 할 수 있다.

탄광 노동자이지만 공중 곡예사의 꿈을 가진 영미.

그러나 꿈을 향한 길은 순탄치 않다.

[영화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 中 : "요 동무, 땅속에서 나 하늘을 날아보겠다고? 공중교예가 그렇게 만만해 보여? 아무나 다 하는 게 교예인 줄 아는가? 탄광 일이나 착실히 할 게지."]

기존의 북한 영화대로라면 자신의 본분을 깨닫고 탄광에 남아야 하지만, 주인공 영미는 노동계급이라는 신분을 극복하고 곡예사의 꿈을 이룬다.

[영화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 中 : "탄광 처녀, 하늘을 날겠다고 했지? (그래요.) 좋아! 날아보자!"]

이 영화는 개인의 꿈과 실현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면서 북한 영화의 해외 시장 진입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뒤이어 개봉한 북-중 합작영화 ‘평양에서의 약속’은 중국 배우가 주인공으로 나와 화제가 됐다.

[영화 ‘평양에서의 약속’ 中 : "이 반지는 제가 베이징에서 가져온 건데 만난 기념으로 받아주세요."]

영화 곳곳에 북한 사회의 평범한 일상과 함께 북한과 중국 무용수의 우정을 주요 내용으로 담았다.

[전영선/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 "북한도 일반적인 다른 나라들과 다르지 않은 보통 국가라는 걸 보여주고자 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협력이라든가 합작이라고 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예전보다는 조금 더 쉬워졌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평양에서의 약속’ 이후 북한은 합작영화를 만들지 않고 있다.

북한 자체적으로 제작한 영화도 2016년 개봉된 ‘우리집 이야기’가 마지막이었다.

북한 영화가 과거만큼 내부결속의 역할을 못 하고, 영화 제작에 필요한 장비와 기술도 노후화돼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한상언/한상언 영화연구소 대표 : "북한의 가장 큰 문제는 북한 전역에 있는 극장이 디지털화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거죠. 지금 이제 전 세계에서 필름을 작업하는 나라가 거의 없잖아요. 그러니까 북한에서 이 전국에 있는 극장을 다 디지털 극장으로 전환을 해야 하는데 그게 불가능한 상황이니까 굳이 영화를 만들 필요가 없는 거죠."]

5년째 영화 제작이 중단된 상황에서도 유튜브 계정을 통해 대대적인 영화세트장 선전에 나선 북한.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통해 낙후된 영화계를 다시 한번 활성화하겠다는 북한의 의지가 엿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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