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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비극으로 끝난 21살 청년의 ‘공기업 정규직’ 생활
입력 2021.10.22 (08:44) 수정 2021.10.22 (09:42) 취재K

■ 976대 1…‘오징어게임’보다 더한 곳

976대 1. 오징어게임 경쟁률 456대 1의 두 배가 넘는 이 경쟁률은 지난해 최고 경쟁률을 기록한 한 공기업의 신입사원 채용 경쟁률입니다. 다른 공기업들도 수백 대 1에 달하는 경우가 예사였는데, 여전히 취업준비생들이 선호하는 직장 1위가 공기업인 걸 보여줍니다.

보수가 상대적으로 높고 정년이 거의 보장되는 데다, 최근 대기업 공채가 줄면서 이런 경향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취재진이 만난 한 취업 준비생은 공기업 입사 경쟁률을 뚫기 위해 기본적으로 자격증 4개에 고득점 어학 성적, 국가직무능력표준(NCS) 시험 준비까지 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일할 기회라도 주겠다며, 공공기관 인턴을 늘려 지난해에만 2만 1,000명 넘게 뽑았습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80% 이상은 계약 기간이 서너 달에 그치는 단기 체험형 인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채용형 인턴은 20%도 안 됐습니다. '금턴'이라고 불리는 공공기관 인턴이 돼도 정규직이 되는 건 매우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연관 기사] 공공기관 인턴 늘었지만 청년은 ‘울상’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취업 시장에 뛰어든 청년들은 어려움이 더 큽니다. 그래서 정부는 공공기관에 고졸 채용 적합 직무를 적극적으로 발굴하도록 하고, 별도로 일정 비율 이상을 채용하도록 권고하기도 합니다.


■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바늘구멍 통과했는데 …

지난 2016년, 한 공기업에서 이 좁은 취업 문을 통과해 정규직이 된 인턴이 있었습니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청년 인턴으로 선발됐다가 반년 만에 정규직으로 전환된 18살의 신입사원이었습니다.


해당 기업은 기획재정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투자공사입니다. 정부와 한국은행 등으로부터 위탁받은 자산을 운용하는 해외 투자 전문 기관입니다. 공공기관 중에서도 지난해 직원 평균 연봉이 1억 1,000만 원을 넘는 곳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공기업 정규직까지 됐으니, 그만큼 능력도 있고, 포부도 컸을 겁니다. 그런데 어렵게 정규직이 된 이 직원은 입사 3년 만에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 3년 만에 비극으로 끝난 공기업 생활

산업재해를 판단하는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지난해 1월, 이 죽음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습니다. 업무에 대한 극심한 압박감과 스트레스가 있었고 이 압박감과 우울감으로 인해 사망했다고 판단한 겁니다.

3년간 무슨 일을 겪은 걸까요?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을 통해 받은 업무상 질병 판정서를 통해 3년간의 일을 들여다 보겠습니다.


이 직원이 입사 때 맡은 일은 공공기록물관리 '보조' 업무였습니다. 투자공사에서 고졸 채용 적합 직무를 만들어 해당 직원에게 인턴 시절부터 맡겨 온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2년여 만에 상사이자 공공기록물관리 주 담당자가 육아휴직을 가게 되면서 혼자 기록물관리의 ' 주담당자'가 됐습니다.


■ '석사 채용자' 수준 업무 맡긴 투자공사…학력 차별 정황 의심도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78조(기록물관리 전문요원의 자격과 배치)
1. 기록물 관리학 전공으로 석사학위 이상을 취득한 사람
2. …기록관리학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기록물관리 전문요원 시험에 합격한 사람

공공기록물 관리 담당자는 법적으로 석사 이상의 자격이나, 전문교육 이수가 필요한 업무입니다. 시행령에 전문요원을 두라고 자격 요건을 명시할만큼 전문적인 업무입니다.

질병 판정위원회는 해당 직원이 물어볼 사람도 없이 혼자 버티던 이 기간에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자괴감과 주변의 평가에 대한 두려움, 또 회사 일로 인한 번 아웃과 부담을 느낀 것으로 봤습니다.

여기에, 두 달 뒤 사장 지시로 시작하게 되는 새로운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에도 투입되면서 압박감은 더 심해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해당 직원은 고졸 직원 연봉으로 최저임금 수준인 2천만 원정도를 받고 이 일들을 도맡았습니다.

학력 차별 정황도 의심됩니다. 해당 직원이 뽑힌 2016년은 최근 10년간 한국투자공사가 고졸 직원을 뽑았던 거의 유일한 해였습니다. 투자공사는 2015년 6년간 고졸 채용이 없었다는 지적을 국정감사에서 받은 뒤, 이듬해인 2016년 고졸 직원을 채용했습니다. 이후에도 현재까지 고졸 신규채용은 없었습니다.

질병판정위원회는 "학력 및 나이에 의한 차별 가능성과 동료 관계에서의 어려움 등의 확인이 필요하다"고 봤고, "나이가 어려 연배가 있는 직원들과의 업무 조율이 어려웠고, 타부서 직원들이 비협조적이었다"고 언급했습니다.

결국, 상사에게 2차례 정도 업무 압박감을 호소했고, 사망 두 달 전엔 사직서까지 제출할 정도였지만 이는 반려됐고 병가를 낸 뒤 21살의 나이에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 내부 조사는 없었다

하지만 투자공사는 이 직원의 사망 이후 업무 부담이나 또 다른 괴롭힘이 있었는지 여부 등에 대해서 내부 조사도 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했습니다. 외부 감사도 없었습니다. 기타 공공기관으로 분류돼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받지 않아 산재 발생에 대한 책임도 피해갔습니다.

물론, 투자공사 나름의 이유도 있습니다. 투자공사 측은 "대체 인력을 뽑았지만, 한 달 반 만에 나가면서 어쩔 수 없이 해당 직원이 홀로 업무를 맡게 되는 불찰이 있었고, 직원의 고통을 뒤늦게 인지해 별도의 조사를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직원이 업무 부담을 호소한 뒤에는 업무를 줄여줬고, 우울증을 인지하고 나서는 휴가와 휴직을 조언했다고도 밝혔습니다.

하지만 질병판정위원회가 "과도한 업무량으로 힘들어했던 점, 인력 부족으로 인한 업무부담과 압박감을 호소했던 점, 고인의 책임의식이 높았던 점은 업무에 상당한 스트레스로 작용했다"고 밝히고 있는 만큼, 공사가 책임을 완전히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 "송구하다…억울한 점 있는지 살펴볼 것"


어제(2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종합 국정감사에서도 관련 질의가 오고 갔습니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진승호 한국투자공사 사장에게 "고인과 유족에게 위로를 표하고 그런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해 사과할 의향이 있냐"고 묻자, 진 사장은 "고인에 대해선 애도를 표하고 안타까운 일이 발생한 데 대해서 송구하다"고 답변했습니다.

이어, "억울한 부분이 있지 않았는지, 지원할 부분이 없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앞으로 사건들이 재발하지 않도록 심리 상담 프로그램 등 근로자 지원 프로그램을 만들어 개선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지난해 우울증 등 정신질환으로 사망해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사례는 61건.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사망의 원인은 개인이 나약해서가 아닙니다. 과도한 업무부담이나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개인적인 병이 아닌, 직업병이라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공공기관도 일하다 죽지 않게', 구호로만 남아선 안 될 일입니다.

그래픽: 김정민
  • 3년 만에 비극으로 끝난 21살 청년의 ‘공기업 정규직’ 생활
    • 입력 2021-10-22 08:44:11
    • 수정2021-10-22 09:42:04
    취재K

■ 976대 1…‘오징어게임’보다 더한 곳

976대 1. 오징어게임 경쟁률 456대 1의 두 배가 넘는 이 경쟁률은 지난해 최고 경쟁률을 기록한 한 공기업의 신입사원 채용 경쟁률입니다. 다른 공기업들도 수백 대 1에 달하는 경우가 예사였는데, 여전히 취업준비생들이 선호하는 직장 1위가 공기업인 걸 보여줍니다.

보수가 상대적으로 높고 정년이 거의 보장되는 데다, 최근 대기업 공채가 줄면서 이런 경향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취재진이 만난 한 취업 준비생은 공기업 입사 경쟁률을 뚫기 위해 기본적으로 자격증 4개에 고득점 어학 성적, 국가직무능력표준(NCS) 시험 준비까지 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일할 기회라도 주겠다며, 공공기관 인턴을 늘려 지난해에만 2만 1,000명 넘게 뽑았습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80% 이상은 계약 기간이 서너 달에 그치는 단기 체험형 인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채용형 인턴은 20%도 안 됐습니다. '금턴'이라고 불리는 공공기관 인턴이 돼도 정규직이 되는 건 매우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연관 기사] 공공기관 인턴 늘었지만 청년은 ‘울상’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취업 시장에 뛰어든 청년들은 어려움이 더 큽니다. 그래서 정부는 공공기관에 고졸 채용 적합 직무를 적극적으로 발굴하도록 하고, 별도로 일정 비율 이상을 채용하도록 권고하기도 합니다.


■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바늘구멍 통과했는데 …

지난 2016년, 한 공기업에서 이 좁은 취업 문을 통과해 정규직이 된 인턴이 있었습니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청년 인턴으로 선발됐다가 반년 만에 정규직으로 전환된 18살의 신입사원이었습니다.


해당 기업은 기획재정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투자공사입니다. 정부와 한국은행 등으로부터 위탁받은 자산을 운용하는 해외 투자 전문 기관입니다. 공공기관 중에서도 지난해 직원 평균 연봉이 1억 1,000만 원을 넘는 곳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공기업 정규직까지 됐으니, 그만큼 능력도 있고, 포부도 컸을 겁니다. 그런데 어렵게 정규직이 된 이 직원은 입사 3년 만에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 3년 만에 비극으로 끝난 공기업 생활

산업재해를 판단하는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지난해 1월, 이 죽음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습니다. 업무에 대한 극심한 압박감과 스트레스가 있었고 이 압박감과 우울감으로 인해 사망했다고 판단한 겁니다.

3년간 무슨 일을 겪은 걸까요?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을 통해 받은 업무상 질병 판정서를 통해 3년간의 일을 들여다 보겠습니다.


이 직원이 입사 때 맡은 일은 공공기록물관리 '보조' 업무였습니다. 투자공사에서 고졸 채용 적합 직무를 만들어 해당 직원에게 인턴 시절부터 맡겨 온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2년여 만에 상사이자 공공기록물관리 주 담당자가 육아휴직을 가게 되면서 혼자 기록물관리의 ' 주담당자'가 됐습니다.


■ '석사 채용자' 수준 업무 맡긴 투자공사…학력 차별 정황 의심도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78조(기록물관리 전문요원의 자격과 배치)
1. 기록물 관리학 전공으로 석사학위 이상을 취득한 사람
2. …기록관리학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기록물관리 전문요원 시험에 합격한 사람

공공기록물 관리 담당자는 법적으로 석사 이상의 자격이나, 전문교육 이수가 필요한 업무입니다. 시행령에 전문요원을 두라고 자격 요건을 명시할만큼 전문적인 업무입니다.

질병 판정위원회는 해당 직원이 물어볼 사람도 없이 혼자 버티던 이 기간에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자괴감과 주변의 평가에 대한 두려움, 또 회사 일로 인한 번 아웃과 부담을 느낀 것으로 봤습니다.

여기에, 두 달 뒤 사장 지시로 시작하게 되는 새로운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에도 투입되면서 압박감은 더 심해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해당 직원은 고졸 직원 연봉으로 최저임금 수준인 2천만 원정도를 받고 이 일들을 도맡았습니다.

학력 차별 정황도 의심됩니다. 해당 직원이 뽑힌 2016년은 최근 10년간 한국투자공사가 고졸 직원을 뽑았던 거의 유일한 해였습니다. 투자공사는 2015년 6년간 고졸 채용이 없었다는 지적을 국정감사에서 받은 뒤, 이듬해인 2016년 고졸 직원을 채용했습니다. 이후에도 현재까지 고졸 신규채용은 없었습니다.

질병판정위원회는 "학력 및 나이에 의한 차별 가능성과 동료 관계에서의 어려움 등의 확인이 필요하다"고 봤고, "나이가 어려 연배가 있는 직원들과의 업무 조율이 어려웠고, 타부서 직원들이 비협조적이었다"고 언급했습니다.

결국, 상사에게 2차례 정도 업무 압박감을 호소했고, 사망 두 달 전엔 사직서까지 제출할 정도였지만 이는 반려됐고 병가를 낸 뒤 21살의 나이에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 내부 조사는 없었다

하지만 투자공사는 이 직원의 사망 이후 업무 부담이나 또 다른 괴롭힘이 있었는지 여부 등에 대해서 내부 조사도 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했습니다. 외부 감사도 없었습니다. 기타 공공기관으로 분류돼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받지 않아 산재 발생에 대한 책임도 피해갔습니다.

물론, 투자공사 나름의 이유도 있습니다. 투자공사 측은 "대체 인력을 뽑았지만, 한 달 반 만에 나가면서 어쩔 수 없이 해당 직원이 홀로 업무를 맡게 되는 불찰이 있었고, 직원의 고통을 뒤늦게 인지해 별도의 조사를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직원이 업무 부담을 호소한 뒤에는 업무를 줄여줬고, 우울증을 인지하고 나서는 휴가와 휴직을 조언했다고도 밝혔습니다.

하지만 질병판정위원회가 "과도한 업무량으로 힘들어했던 점, 인력 부족으로 인한 업무부담과 압박감을 호소했던 점, 고인의 책임의식이 높았던 점은 업무에 상당한 스트레스로 작용했다"고 밝히고 있는 만큼, 공사가 책임을 완전히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 "송구하다…억울한 점 있는지 살펴볼 것"


어제(2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종합 국정감사에서도 관련 질의가 오고 갔습니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진승호 한국투자공사 사장에게 "고인과 유족에게 위로를 표하고 그런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해 사과할 의향이 있냐"고 묻자, 진 사장은 "고인에 대해선 애도를 표하고 안타까운 일이 발생한 데 대해서 송구하다"고 답변했습니다.

이어, "억울한 부분이 있지 않았는지, 지원할 부분이 없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앞으로 사건들이 재발하지 않도록 심리 상담 프로그램 등 근로자 지원 프로그램을 만들어 개선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지난해 우울증 등 정신질환으로 사망해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사례는 61건.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사망의 원인은 개인이 나약해서가 아닙니다. 과도한 업무부담이나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개인적인 병이 아닌, 직업병이라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공공기관도 일하다 죽지 않게', 구호로만 남아선 안 될 일입니다.

그래픽: 김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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