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다른 관점” “속도감 있어”…한·미 종전선언 협의, 진실은?

입력 2021.10.29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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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미 외교당국이 협의 중인 종전선언을 향한 관심이 연일 뜨겁습니다.

시작점은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이었습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6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에서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종료됐음을 함께 선언하길 제안한다"며 국제 무대에 종전선언 화두를 다시 던졌습니다.

사실 문 대통령은 2018년과 2020년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도 이미 종전선언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그 자체로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라는 겁니다.

바뀐 건 한반도 정세입니다.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대북 대화는 급격히 얼어붙었고 이듬해 북한이 코로나19로 외부와의 접촉 자체를 전면 차단하면서, 북한과의 대화 재개가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고 풀기 어려운 과제가 됐습니다.

결국 북한을 다시 대화로 이끌어내기 위한 방안으로서 종전선언이 재조명되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 외교당국은 북한이 대화 전제 조건으로 한·미에 대북 적대시 정책 철폐를 일관되게 요구하고 있는 만큼, 적대시 정책 철폐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조치가 종전선언이라고 판단하고 미국과 협의에 이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연관 기사] 노규덕 "종전선언, 대북 적대시정책 없음 상징해…대화 재개에 유용"

관련 협의는 긴밀한 모양새입니다.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 이후 2주 뒤 한·미 외교장관 회담(10월 5일)이 열렸고, 일주일 뒤에는 또 한·미 안보실장 협의(10월 12일)가 있었습니다. 실무 대표인 양국 북핵수석대표들도 9월 30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10월 18일 미국 워싱턴, 10월 24일 서울에서 만났습니다.

한·미 각급에서 종전선언을 주요 안건으로 삼아 빈번히 만나는 것 자체가 북한을 향한 메시지라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 美 "다소 다른 관점 있을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같은 입장"…의미는?

그런데 최근 중요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의 안보 분야 최고위 참모인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발언 때문이었습니다.

26일 백악관 브리핑에서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이 종전선언 관련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출처: 백악관 영상 캡처)26일 백악관 브리핑에서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이 종전선언 관련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출처: 백악관 영상 캡처)

설리번 보좌관은 현지시간 26일 백악관 브리핑에서, 한국 기자로부터 종전선언 관련 질문을 받았습니다.

"한반도 이슈에 대해 질문 드리겠습니다. 일주일 전, 성 김 대북 특별대표가 종전선언에 대해 지속적으로 협의할 수 있길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백악관이 대북 정책과 관련해 그것(종전선언)을 얼마나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는지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북한과의 대화를 재개하는 데 그것(종전선언)이 촉매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기자)

이에 대한 설리번 보좌관의 답변은 꽤 길었는데요. 정확한 내용은 브리핑 영상(https://www.youtube.com/watch?v=3EqSJ4NdWLQ) 26분 5초부터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 정부와의 집중적인 논의에 관해서라면 지나치게 많이 공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성 김 대표의 최근 논의는 매우 생산적이고 건설적이었다고만 언급하겠습니다.

우리(한·미)는 각각의 조치를 위한 정확한 순서와 시기, 혹은 조건 등에서 다소 다른 관점을 갖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략적 핵심 구상, 그리고 우리는 외교를 통해서만 진정으로 진전을 효과적으로 만들 수 있고 그 외교는 억지력과 효과적으로 짝을 이루어야만 한다는 신념에 있어서는, 근본적으로 같은 입장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제기한 그 구체적 이슈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다루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는 한국과 집중적인 대화를 지속해 나갈 예정이라고만 언급하겠습니다."
(설리번 보좌관)

내용을 보면, 우선 종전선언에 대한 한미간 협의는 공개적으로 다룰 주제가 아니라는 점을 시작과 끝에 두 번이나 언급하면서 신중한 태도를 확인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미 간 다소 다른 관점"을 분명히 언급했습니다. "종전선언을 얼마나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냐, 대북 대화의 촉매가 될 수 있다고 보냐"라고 물었는데, "순서와 시기, 조건 등에 한미 간 이견이 있다"는, 언뜻 잘 맞지 않아보이는 대답을 한 것입니다. 공개적으로 이 문제를 논하고 싶지 않다면서도 상당히 새로운 내용을 던진 것이기도 했습니다.

바로 이어서는 "그러나 한미는 근본적으로 같은 입장"이라고 말하면서,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에 좀더 무게를 두는 듯한 발언을 했습니다. 또 그동안 한국과 종전선언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했고, 지난 24일 서울에서의 한미 북핵수석 협의가 생산적이고 건설적이었으며, 앞으로도 집중적인 대화를 지속해 나갈 예정이라며 협의에 열려 있는 자세를 강조했습니다.

이같은 메시지 가운데 가장 관심이 쏠린 건 역시 "다소 다른 관점"이라는 부분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든 종전선언 협의 과정에서 한·미 간에 적어도 세 가지 쟁점(순서, 시기, 조건)에서는 이견이 있음을 미 정부 고위 당국자가 확인해준 셈이기 때문입니다.

한미 간 긴밀한 협의를 일관되게 강조해온 한국 정부의 설명과는 분명 온도차가 느껴지는 대목이었습니다. 실제로 미국은 종전선언 문안이 북한에 의해 악용될 가능성을 우려하면서, 국무부 내 변호사들을 투입해 여러 관점에서 예상되는 영향을 분석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韓 "매우 속도감 있고 지속적이며 진지한 협의 중…입장 차 좁혀나가는 과정"

종전선언에 대한 한미의 시각차를 강조하는 보도가 쏟아지자, 외교부는 하루 만에 브리핑을 자처하며 대응에 나섰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어제(28일) 출입 기자들과 만나 "미국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 발언에 대해 언론들이 약간 일부분에 치우친 감이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논조 그리고 방향성에 대해 설명 드리기 위해 이 자리를 요청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이 같은 설명을 내놓았습니다.

"종전선언은 한미 간 각급에서 긴밀한 협의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님께서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종전선언을 재차 제안하신 이후, 파리에서의 한·미 외교장관 회담, 국가안보실장 방미, 한·미 북핵수석협의 등 매우 속도감 있고 지속적이며 진지하게 현재 협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속도감 있고 지속적으로 그리고 진지하게 협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 세 가지를 제가 말씀드립니다."
(외교부 당국자)

그러면서 설리번 보좌관의 브리핑에서 네 개의 요점을 짚을 수 있다며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한미 양국 간 전략적 제안에 대해선 한미가 완전히 지금 일치하고 있다.
▲성 김 대표가 대단히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협의를 가져왔다.
▲오로지 외교를 통해서만 진전을 모색할 수 있다.
▲ 현재 한미가 집중적으로 협의하고 있고, 앞으로 집중적으로 협의를 진행할 것이다.

이 당국자는 이어 "지금 현 단계에서 강조하고 싶은 건 한미 간 협의는 상호 바람직한 방향으로 아주 진지하게 속도감 있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 말씀을 재차 강조드린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 자신도 많은 외교적 교섭을 해봤는데 외교는 양국 간 입장 차이를 좁혀나가고 양국 간 공동인식, 공통점을 확대해나가는 그런 과정"이라며 "한미 간 외교 협의 역시 이런 방향으로 소기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한국 측 북핵 수석대표인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26일 국가안보전략연구소가 주최한 종전선언 관련 세미나에서 기조 발표를 하고 있다.한국 측 북핵 수석대표인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26일 국가안보전략연구소가 주최한 종전선언 관련 세미나에서 기조 발표를 하고 있다.

외교부 부대변인도 어제 정례브리핑에서 설리번 보좌관의 발언 의미를 묻는 질의를 받고, 다음과 같이 답변했습니다.

"해당 발언을 전체적으로 균형 있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해당 발언을 보면 한미 간에는 종전 선언 관련 협의가 매우 생산적이고 건설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앞으로도 집중적인 협의를 계속해 나갈 것이다, 주요 전략적 제안에 대해서는 한미 간 근본적으로 입장이 일치되어 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시각 차에 관한 부분은 외교적 협의를 통해 풀어나갈 수 있는 사안이며, 구체적 사안에 대한 한미 간 협의는 현재 진지하고 심도 있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외교부 부대변인)

결국 설리번 보좌관이 시사한 한·미 간 종전선언 관련 입장 차이가 있음은 인정하면서도, 이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방법론 등에서의 차이는 외교적 협의로 차이가 좁혀질 수 있고, 좁혀지고 있다고 해명한 셈입니다.

또 설리번 보좌관이 언급한 한미 간의 집중적인 논의, 근본적인 부분에서의 일치된 입장에 오히려 방점을 둬야 한다고, 언론의 이해를 구하려 노력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 종전선언 협의, 한·미의 진짜 속내는?

양국 외교당국의 공개된 입장이 아닌 속내를 정확히 파악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이 좀처럼 알려지지 않고 있는데, 이는 일단 종전선언을 제안했을 경우 그 수신처가 될 북한의 반응을 한·미 양국이 매우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보안 문제를 고려해 극소수의 담당자들만 직접 종전선언 문안 협의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국의 경우 의회(특히 공화당), 국방부 등에서 종전선언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이 우세한 점도 이런 신중한 기류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다만 한미 간 관련 협의가 불과 한 달 사이 매우 짧은 간격으로 자주 열리고 있는 점은, 종전선언을 그저 임기 말 문재인 정부의 보여주기식 조치라고 가볍게 치부할 일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한가하지 않은 외교 당국자들이 자주 만나는 것은, 적어도 양쪽이 협의에 필요성과 의미가 있다고 공감했을 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실제 북핵 문제에 정통한 한 외교소식통은 지난 24일 KBS에 "한미 간 종전선언 문안 협의가 상당 수준에 이른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이 소식통은 "북한이 갑작스레 종전선언에 긍정적 반응을 보이기라도 하면 문안을 가지고 바로 협상을 해야하는 것"이라며 이같이 설명했습니다.

설리번 보좌관의 말에서도 볼 수 있듯, 종전선언을 고리로 북한을 대화로 견인하기 위한 한미 간 협의는 앞으로도 활발히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한미 양국은 막바지에 이른 대북 인도주의적 지원 협의를 곧 마무리할 계획인 한편, 몇 가지 또 다른 대북 신뢰구축 조치 구상에 대해서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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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소 다른 관점” “속도감 있어”…한·미 종전선언 협의, 진실은?
    • 입력 2021-10-29 06:02:29
    취재K

최근 한·미 외교당국이 협의 중인 종전선언을 향한 관심이 연일 뜨겁습니다.

시작점은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이었습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6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에서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종료됐음을 함께 선언하길 제안한다"며 국제 무대에 종전선언 화두를 다시 던졌습니다.

사실 문 대통령은 2018년과 2020년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도 이미 종전선언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그 자체로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라는 겁니다.

바뀐 건 한반도 정세입니다.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대북 대화는 급격히 얼어붙었고 이듬해 북한이 코로나19로 외부와의 접촉 자체를 전면 차단하면서, 북한과의 대화 재개가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고 풀기 어려운 과제가 됐습니다.

결국 북한을 다시 대화로 이끌어내기 위한 방안으로서 종전선언이 재조명되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 외교당국은 북한이 대화 전제 조건으로 한·미에 대북 적대시 정책 철폐를 일관되게 요구하고 있는 만큼, 적대시 정책 철폐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조치가 종전선언이라고 판단하고 미국과 협의에 이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연관 기사] 노규덕 "종전선언, 대북 적대시정책 없음 상징해…대화 재개에 유용"

관련 협의는 긴밀한 모양새입니다.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 이후 2주 뒤 한·미 외교장관 회담(10월 5일)이 열렸고, 일주일 뒤에는 또 한·미 안보실장 협의(10월 12일)가 있었습니다. 실무 대표인 양국 북핵수석대표들도 9월 30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10월 18일 미국 워싱턴, 10월 24일 서울에서 만났습니다.

한·미 각급에서 종전선언을 주요 안건으로 삼아 빈번히 만나는 것 자체가 북한을 향한 메시지라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 美 "다소 다른 관점 있을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같은 입장"…의미는?

그런데 최근 중요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의 안보 분야 최고위 참모인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발언 때문이었습니다.

26일 백악관 브리핑에서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이 종전선언 관련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출처: 백악관 영상 캡처)
설리번 보좌관은 현지시간 26일 백악관 브리핑에서, 한국 기자로부터 종전선언 관련 질문을 받았습니다.

"한반도 이슈에 대해 질문 드리겠습니다. 일주일 전, 성 김 대북 특별대표가 종전선언에 대해 지속적으로 협의할 수 있길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백악관이 대북 정책과 관련해 그것(종전선언)을 얼마나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는지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북한과의 대화를 재개하는 데 그것(종전선언)이 촉매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기자)

이에 대한 설리번 보좌관의 답변은 꽤 길었는데요. 정확한 내용은 브리핑 영상(https://www.youtube.com/watch?v=3EqSJ4NdWLQ) 26분 5초부터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 정부와의 집중적인 논의에 관해서라면 지나치게 많이 공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성 김 대표의 최근 논의는 매우 생산적이고 건설적이었다고만 언급하겠습니다.

우리(한·미)는 각각의 조치를 위한 정확한 순서와 시기, 혹은 조건 등에서 다소 다른 관점을 갖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략적 핵심 구상, 그리고 우리는 외교를 통해서만 진정으로 진전을 효과적으로 만들 수 있고 그 외교는 억지력과 효과적으로 짝을 이루어야만 한다는 신념에 있어서는, 근본적으로 같은 입장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제기한 그 구체적 이슈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다루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는 한국과 집중적인 대화를 지속해 나갈 예정이라고만 언급하겠습니다."
(설리번 보좌관)

내용을 보면, 우선 종전선언에 대한 한미간 협의는 공개적으로 다룰 주제가 아니라는 점을 시작과 끝에 두 번이나 언급하면서 신중한 태도를 확인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미 간 다소 다른 관점"을 분명히 언급했습니다. "종전선언을 얼마나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냐, 대북 대화의 촉매가 될 수 있다고 보냐"라고 물었는데, "순서와 시기, 조건 등에 한미 간 이견이 있다"는, 언뜻 잘 맞지 않아보이는 대답을 한 것입니다. 공개적으로 이 문제를 논하고 싶지 않다면서도 상당히 새로운 내용을 던진 것이기도 했습니다.

바로 이어서는 "그러나 한미는 근본적으로 같은 입장"이라고 말하면서,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에 좀더 무게를 두는 듯한 발언을 했습니다. 또 그동안 한국과 종전선언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했고, 지난 24일 서울에서의 한미 북핵수석 협의가 생산적이고 건설적이었으며, 앞으로도 집중적인 대화를 지속해 나갈 예정이라며 협의에 열려 있는 자세를 강조했습니다.

이같은 메시지 가운데 가장 관심이 쏠린 건 역시 "다소 다른 관점"이라는 부분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든 종전선언 협의 과정에서 한·미 간에 적어도 세 가지 쟁점(순서, 시기, 조건)에서는 이견이 있음을 미 정부 고위 당국자가 확인해준 셈이기 때문입니다.

한미 간 긴밀한 협의를 일관되게 강조해온 한국 정부의 설명과는 분명 온도차가 느껴지는 대목이었습니다. 실제로 미국은 종전선언 문안이 북한에 의해 악용될 가능성을 우려하면서, 국무부 내 변호사들을 투입해 여러 관점에서 예상되는 영향을 분석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韓 "매우 속도감 있고 지속적이며 진지한 협의 중…입장 차 좁혀나가는 과정"

종전선언에 대한 한미의 시각차를 강조하는 보도가 쏟아지자, 외교부는 하루 만에 브리핑을 자처하며 대응에 나섰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어제(28일) 출입 기자들과 만나 "미국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 발언에 대해 언론들이 약간 일부분에 치우친 감이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논조 그리고 방향성에 대해 설명 드리기 위해 이 자리를 요청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이 같은 설명을 내놓았습니다.

"종전선언은 한미 간 각급에서 긴밀한 협의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님께서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종전선언을 재차 제안하신 이후, 파리에서의 한·미 외교장관 회담, 국가안보실장 방미, 한·미 북핵수석협의 등 매우 속도감 있고 지속적이며 진지하게 현재 협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속도감 있고 지속적으로 그리고 진지하게 협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 세 가지를 제가 말씀드립니다."
(외교부 당국자)

그러면서 설리번 보좌관의 브리핑에서 네 개의 요점을 짚을 수 있다며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한미 양국 간 전략적 제안에 대해선 한미가 완전히 지금 일치하고 있다.
▲성 김 대표가 대단히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협의를 가져왔다.
▲오로지 외교를 통해서만 진전을 모색할 수 있다.
▲ 현재 한미가 집중적으로 협의하고 있고, 앞으로 집중적으로 협의를 진행할 것이다.

이 당국자는 이어 "지금 현 단계에서 강조하고 싶은 건 한미 간 협의는 상호 바람직한 방향으로 아주 진지하게 속도감 있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 말씀을 재차 강조드린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 자신도 많은 외교적 교섭을 해봤는데 외교는 양국 간 입장 차이를 좁혀나가고 양국 간 공동인식, 공통점을 확대해나가는 그런 과정"이라며 "한미 간 외교 협의 역시 이런 방향으로 소기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한국 측 북핵 수석대표인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26일 국가안보전략연구소가 주최한 종전선언 관련 세미나에서 기조 발표를 하고 있다.
외교부 부대변인도 어제 정례브리핑에서 설리번 보좌관의 발언 의미를 묻는 질의를 받고, 다음과 같이 답변했습니다.

"해당 발언을 전체적으로 균형 있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해당 발언을 보면 한미 간에는 종전 선언 관련 협의가 매우 생산적이고 건설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앞으로도 집중적인 협의를 계속해 나갈 것이다, 주요 전략적 제안에 대해서는 한미 간 근본적으로 입장이 일치되어 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시각 차에 관한 부분은 외교적 협의를 통해 풀어나갈 수 있는 사안이며, 구체적 사안에 대한 한미 간 협의는 현재 진지하고 심도 있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외교부 부대변인)

결국 설리번 보좌관이 시사한 한·미 간 종전선언 관련 입장 차이가 있음은 인정하면서도, 이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방법론 등에서의 차이는 외교적 협의로 차이가 좁혀질 수 있고, 좁혀지고 있다고 해명한 셈입니다.

또 설리번 보좌관이 언급한 한미 간의 집중적인 논의, 근본적인 부분에서의 일치된 입장에 오히려 방점을 둬야 한다고, 언론의 이해를 구하려 노력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 종전선언 협의, 한·미의 진짜 속내는?

양국 외교당국의 공개된 입장이 아닌 속내를 정확히 파악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이 좀처럼 알려지지 않고 있는데, 이는 일단 종전선언을 제안했을 경우 그 수신처가 될 북한의 반응을 한·미 양국이 매우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보안 문제를 고려해 극소수의 담당자들만 직접 종전선언 문안 협의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국의 경우 의회(특히 공화당), 국방부 등에서 종전선언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이 우세한 점도 이런 신중한 기류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다만 한미 간 관련 협의가 불과 한 달 사이 매우 짧은 간격으로 자주 열리고 있는 점은, 종전선언을 그저 임기 말 문재인 정부의 보여주기식 조치라고 가볍게 치부할 일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한가하지 않은 외교 당국자들이 자주 만나는 것은, 적어도 양쪽이 협의에 필요성과 의미가 있다고 공감했을 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실제 북핵 문제에 정통한 한 외교소식통은 지난 24일 KBS에 "한미 간 종전선언 문안 협의가 상당 수준에 이른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이 소식통은 "북한이 갑작스레 종전선언에 긍정적 반응을 보이기라도 하면 문안을 가지고 바로 협상을 해야하는 것"이라며 이같이 설명했습니다.

설리번 보좌관의 말에서도 볼 수 있듯, 종전선언을 고리로 북한을 대화로 견인하기 위한 한미 간 협의는 앞으로도 활발히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한미 양국은 막바지에 이른 대북 인도주의적 지원 협의를 곧 마무리할 계획인 한편, 몇 가지 또 다른 대북 신뢰구축 조치 구상에 대해서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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