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거창사건’ 71년…기약 없는 사과와 배상

입력 2022.02.12 (08:16) 수정 2022.02.12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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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경상남도 거창에는 시신 7백여 구의 원혼이 제대로 잠들지 못하는 마을이 있다고 하는데요.

네. 한국전쟁 도중 거창양민학살사건이 발생한 지 이번 주로 71주기가 됐는데요.

피해자들은 여전히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효은 리포터! 이 사건의 생존자들을 직접 만나고 왔죠?

[답변]

네. 그렇습니다.

거창양민학살사건이 1951년 2월 발생했는데, 그날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우리 국군이 민간인을 희생시킨 사건인데 왜 아직 진상 규명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거죠?

네. 지리산 빨치산 토벌 작전에 투입됐던 국군 11사단 9연대가 무고한 민간인들의 목숨을 앗아갔는데요.

안타깝게도 아직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나 배상은 없다고 합니다.

70년 넘게 한 많은 인생을 살아야 했던 피해자들의 사연.

지금부터 함께 만나보시죠.

[리포트]

경상남도 지리산 자락의 한적한 시골 마을.

여느 동네와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이곳에선 71년 전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올해 88살의 박월수 어르신은 그날의 악몽을 잊을 수 없습니다.

[박월수/거창양민학살사건 생존자/당시 17살 : "517명을 여기다가 몰아넣어 놓고 군대가 전부 사람을 학살한 자리입니다. 실탄도 얼마나 가져와서 쐈는지 탄피가 노랗게 소복하게 깔려가 있었어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2월.

인민군 잔당들이 지리산에 숨어들어 빨치산 활동을 이어갔는데요.

이 빨치산을 토벌하기 위해 국군 11사단 9연대 3대대 병력이 거창군 신원면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적을 겨눠야 할 총부리가 무고한 민간인을 향했습니다.

[박월수/거창양민학살사건 생존자/당시 17살 : "도저히 사람 인력으로는 구덩이를 파 가지고 거기에 사람을 넣어서 다 죽이지 못하니까 총을 쏴서 이 골짜기에다가 집어넣어서 전부 학살을 시켰다 이런 이야기가 들려요. 우리 동네에서 11가구 이상 멸족을 했어요."]

2월 9일부터 사흘 동안 신원면 일대에서 벌어진 거창양민학살사건.

미수복 지역 주민은 전원 총살하라는 명령을 받은 국군이 적과 내통한 혐의를 씌워 신원면 주민들을 학살한 것인데요.

시신들을 훼손하기까지 했습니다.

[정현주/거창양민학살사건 생존자/당시 4살 : "시체 그걸 다 옮겨서 모으라 하더랍니다. 군인들이 시키는 대로 나뭇가지와 기름을 뿌리고 불을 지르고"]

총 719명의 생명을 앗아간 거창 양민학살사건.

희생자의 59퍼센트가 노인과 어린이들이었습니다.

사건이 발생한지 71년이 지났지만 살아남은 자들의 아픔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당시 4살이었던 정현주 할아버지.

대량 학살이 있던 그 날 어머니와 누나, 동생 그리고 삼촌을 잃었습니다.

[정현주/거창양민학살사건 생존자/당시 4살 : "엊그제가 돌아가신 제삿날입니다. 제사를 지내고 저도 참 눈물을 흘리면서 어머니 절하러 왔습니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아이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참 모르겠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4살 짜리 꼬마는 할아버지의 기지로 살아남았지만, 평생 빨갱이 자식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습니다.

[정현주/거창양민학살사건 생존자/당시 4살 : "우리 유족들은 경찰에서 자주 조사를 했습니다. 그때는 사상이 좀 이상한 사람은 항상 조사를 하고 이래서 불안한 세월을 항상 보냈죠."]

거창양민학살사건을 세상에 알린 사람은 지역 국회의원이던 신중목 씨였습니다.

사건 가해자들은 전쟁 도중 재판을 받게됐는데요.

온전한 처벌을 받지 않고, 다시 군에 복직하거나 경찰 간부가 됐습니다.

신원면 주민들은 억울함을 풀기 위해 유족회를 결성했습니다.

[김주희/거창양민학살사건 해설사 : "1960년대 4.19이후에 민주화 바람 불면서 경상남도 도비를 받아서 50만원 돈을 받아서 위령비 제막식을 했어요."]

하지만 5.16군사 쿠데타 이후 박정희 정권은 거창양민학살사건 유족회를 반국가단체로 규정했습니다.

[김주희/거창양민학살사건 해설사 : "유족회 활동하는 이사진 17명 감옥에다 투옥을 시켜요. 유족들을 불러다가 경찰이 여기 와서 총으로 위협을 해서 위령비문을 정으로 다 글을 못 알아보게끔 다 파괴를 한 거예요."]

경찰은 거창양민학살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훼손된 추모비를 땅속에 묻어놨다고 하는데요.

서슬퍼런 세월을 지나 1988년이 돼서야 땅속에 묻혀 있던 위령비를 꺼내 지금의 위치에 둘 수 있었다고 합니다.

유가족들과 피해자들은 매년 추모제를 지내고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고령의 피해자들은 더 늦기 전에 제대로 된 사과와 피해 보상을 받고 싶을 따름입니다.

학살사건 3년이 지나서야 피해자들의 시신이 수습됐는데요.

이미 훼손 정도가 심해 얼굴이나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뼈를 크기대로 분류해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주희/거창양민학살사건 해설사 : "유골 중에 큰 건 남자 중간은 여자 작은 건 소아 해서 여기 앞쪽에 보시면 남자 합동묘, 여자 합동묘, 소아 합동비라 해서 애들은 따로 무덤을 만들지 않고 비석만 세워 놓은겁니다."]

70년이 넘게 흘렀지만, 그날의 원혼은 아직도 거창 일대를 떠돌고 있습니다.

거창양민학살사건 보상과 관련된 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에 있는데요.

주민들은 억울하게 숨져간 가족들의 명예가 회복되길 바랄 뿐입니다.

눈을 감기 전까지 꼭 이뤄내야 할 소원이기도 합니다.

[박월수/거창양민학살사건 생존자/당시 17살 : "동족상잔에 총구멍을 들이대서 민간인 학살을 몇이나 하고 사람이 사람을 죽여 놓고 한 걸 정부에서는 지금 대통령이 열몇이 바뀌어도 거창사건 양민 학살사건 이건 왜 지금 보상도 안 해주고 배상도 안 해주고 묵묵부답 있는지 지금 제일 안타까워요."

이념의 소용돌이 속에 무고하게 희생된 거창양민학살사건 피해자들.

진실을 마주하고 그들의 아픔을 치유해야 할 책임을 우리가 더 이상 외면해선 안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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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로 미래로] ‘거창사건’ 71년…기약 없는 사과와 배상
    • 입력 2022-02-12 08:16:10
    • 수정2022-02-12 10: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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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경상남도 거창에는 시신 7백여 구의 원혼이 제대로 잠들지 못하는 마을이 있다고 하는데요.

네. 한국전쟁 도중 거창양민학살사건이 발생한 지 이번 주로 71주기가 됐는데요.

피해자들은 여전히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효은 리포터! 이 사건의 생존자들을 직접 만나고 왔죠?

[답변]

네. 그렇습니다.

거창양민학살사건이 1951년 2월 발생했는데, 그날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우리 국군이 민간인을 희생시킨 사건인데 왜 아직 진상 규명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거죠?

네. 지리산 빨치산 토벌 작전에 투입됐던 국군 11사단 9연대가 무고한 민간인들의 목숨을 앗아갔는데요.

안타깝게도 아직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나 배상은 없다고 합니다.

70년 넘게 한 많은 인생을 살아야 했던 피해자들의 사연.

지금부터 함께 만나보시죠.

[리포트]

경상남도 지리산 자락의 한적한 시골 마을.

여느 동네와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이곳에선 71년 전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올해 88살의 박월수 어르신은 그날의 악몽을 잊을 수 없습니다.

[박월수/거창양민학살사건 생존자/당시 17살 : "517명을 여기다가 몰아넣어 놓고 군대가 전부 사람을 학살한 자리입니다. 실탄도 얼마나 가져와서 쐈는지 탄피가 노랗게 소복하게 깔려가 있었어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2월.

인민군 잔당들이 지리산에 숨어들어 빨치산 활동을 이어갔는데요.

이 빨치산을 토벌하기 위해 국군 11사단 9연대 3대대 병력이 거창군 신원면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적을 겨눠야 할 총부리가 무고한 민간인을 향했습니다.

[박월수/거창양민학살사건 생존자/당시 17살 : "도저히 사람 인력으로는 구덩이를 파 가지고 거기에 사람을 넣어서 다 죽이지 못하니까 총을 쏴서 이 골짜기에다가 집어넣어서 전부 학살을 시켰다 이런 이야기가 들려요. 우리 동네에서 11가구 이상 멸족을 했어요."]

2월 9일부터 사흘 동안 신원면 일대에서 벌어진 거창양민학살사건.

미수복 지역 주민은 전원 총살하라는 명령을 받은 국군이 적과 내통한 혐의를 씌워 신원면 주민들을 학살한 것인데요.

시신들을 훼손하기까지 했습니다.

[정현주/거창양민학살사건 생존자/당시 4살 : "시체 그걸 다 옮겨서 모으라 하더랍니다. 군인들이 시키는 대로 나뭇가지와 기름을 뿌리고 불을 지르고"]

총 719명의 생명을 앗아간 거창 양민학살사건.

희생자의 59퍼센트가 노인과 어린이들이었습니다.

사건이 발생한지 71년이 지났지만 살아남은 자들의 아픔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당시 4살이었던 정현주 할아버지.

대량 학살이 있던 그 날 어머니와 누나, 동생 그리고 삼촌을 잃었습니다.

[정현주/거창양민학살사건 생존자/당시 4살 : "엊그제가 돌아가신 제삿날입니다. 제사를 지내고 저도 참 눈물을 흘리면서 어머니 절하러 왔습니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아이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참 모르겠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4살 짜리 꼬마는 할아버지의 기지로 살아남았지만, 평생 빨갱이 자식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습니다.

[정현주/거창양민학살사건 생존자/당시 4살 : "우리 유족들은 경찰에서 자주 조사를 했습니다. 그때는 사상이 좀 이상한 사람은 항상 조사를 하고 이래서 불안한 세월을 항상 보냈죠."]

거창양민학살사건을 세상에 알린 사람은 지역 국회의원이던 신중목 씨였습니다.

사건 가해자들은 전쟁 도중 재판을 받게됐는데요.

온전한 처벌을 받지 않고, 다시 군에 복직하거나 경찰 간부가 됐습니다.

신원면 주민들은 억울함을 풀기 위해 유족회를 결성했습니다.

[김주희/거창양민학살사건 해설사 : "1960년대 4.19이후에 민주화 바람 불면서 경상남도 도비를 받아서 50만원 돈을 받아서 위령비 제막식을 했어요."]

하지만 5.16군사 쿠데타 이후 박정희 정권은 거창양민학살사건 유족회를 반국가단체로 규정했습니다.

[김주희/거창양민학살사건 해설사 : "유족회 활동하는 이사진 17명 감옥에다 투옥을 시켜요. 유족들을 불러다가 경찰이 여기 와서 총으로 위협을 해서 위령비문을 정으로 다 글을 못 알아보게끔 다 파괴를 한 거예요."]

경찰은 거창양민학살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훼손된 추모비를 땅속에 묻어놨다고 하는데요.

서슬퍼런 세월을 지나 1988년이 돼서야 땅속에 묻혀 있던 위령비를 꺼내 지금의 위치에 둘 수 있었다고 합니다.

유가족들과 피해자들은 매년 추모제를 지내고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고령의 피해자들은 더 늦기 전에 제대로 된 사과와 피해 보상을 받고 싶을 따름입니다.

학살사건 3년이 지나서야 피해자들의 시신이 수습됐는데요.

이미 훼손 정도가 심해 얼굴이나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뼈를 크기대로 분류해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주희/거창양민학살사건 해설사 : "유골 중에 큰 건 남자 중간은 여자 작은 건 소아 해서 여기 앞쪽에 보시면 남자 합동묘, 여자 합동묘, 소아 합동비라 해서 애들은 따로 무덤을 만들지 않고 비석만 세워 놓은겁니다."]

70년이 넘게 흘렀지만, 그날의 원혼은 아직도 거창 일대를 떠돌고 있습니다.

거창양민학살사건 보상과 관련된 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에 있는데요.

주민들은 억울하게 숨져간 가족들의 명예가 회복되길 바랄 뿐입니다.

눈을 감기 전까지 꼭 이뤄내야 할 소원이기도 합니다.

[박월수/거창양민학살사건 생존자/당시 17살 : "동족상잔에 총구멍을 들이대서 민간인 학살을 몇이나 하고 사람이 사람을 죽여 놓고 한 걸 정부에서는 지금 대통령이 열몇이 바뀌어도 거창사건 양민 학살사건 이건 왜 지금 보상도 안 해주고 배상도 안 해주고 묵묵부답 있는지 지금 제일 안타까워요."

이념의 소용돌이 속에 무고하게 희생된 거창양민학살사건 피해자들.

진실을 마주하고 그들의 아픔을 치유해야 할 책임을 우리가 더 이상 외면해선 안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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