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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조선인 136명 수몰 日 해저탄광…추도비엔 ‘강제연행’ 선명
입력 2022.02.12 (21:27) 수정 2022.02.12 (21:49) 뉴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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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80년 전, 일본 해저탄광에서 강제 노역을 하다 조선인 136명이 수몰 사고로 숨졌습니다.

오늘(12일) 현지에선 이들의 넋을 위로하는 행사가 열렸는데요.

군함도와 사도광산에서의 역사를 지우려는 일본 정부, 하지만 이처럼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은 일본 곳곳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박원기 특파원의 보돕니다.

[리포트]

바다를 향해 백여개 촛불이 놓였습니다.

시민들은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꽃을 바다로 보냅니다.

80년 전 해저탄광에서 노역하다가 수몰 사고로 숨진 백팔십여명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섭니다.

이 가운데 136명은 강제징용 등으로 오게 된 조선인이었습니다.

[이노우에/옛 조선인 편지 낭독/시민단체 대표 : “바다 밑으로 갱도가 뚫렸고 바다 위를 지나는 어선의 통통 거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아주 위험한 장소입니다.”]

앞바다엔 해저탄광의 배수·배기구로 사용된 콘크리트 원기둥 2개만이 이 곳이 비극의 현장임을 말없이 전해주고 있습니다.

탄광 근처로 가봤습니다.

조선인 노동자들이 수용됐던 합숙소가 나옵니다.

관리나 보존의 손길이 끊겨 흉물이 된지 오랩니다.

[서정길/80살/현지 거주 교포 : “(예전에 들어가 보니) 벽에다가 ‘어머니 보고 싶어요’, ‘배가 고파요’라고 (조선인 노동자에 의해) 한글로 써 있었어요.”]

가혹한 노동과 질병으로 많은 노역자들이 숨져가던 그 당시, 바로 그 옆엔 화장터가 있었다는 게 현지 증언입니다.

[서정길 : “화장장? 여기 여기 여기.”]

더 돌아보니 해저탄광에서 캐낸 석탄을 운반하는 시설물 자리, 그리고 탄광 입구로 추정되는 곳도 나옵니다.

그나마 기억을 보존할 수 있었던 건 현지 시민들의 노력 덕이었습니다.

일본 전역의 모금으로 마련된 추도 광장엔 사고 80년을 맞아 유골 수습과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백여 명이 모였습니다.

역사 지우기에 나선 일본 정부와 달리, 추도비엔 ‘강제연행 한국·조선인’이란 글자가 선명합니다.

[시나가와 유리아/17살 : “피해자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저는 이 사건이 자세히,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역사에 있어 빛과 그림자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을 일본정부보다 이들이 먼저 보여주고 있습니다.

야마구치현 우베시에서 KBS 뉴스 박원기입니다.

촬영:안병욱/영상편집:김선영/그래픽:최창준
  • [르포] 조선인 136명 수몰 日 해저탄광…추도비엔 ‘강제연행’ 선명
    • 입력 2022-02-12 21:27:51
    • 수정2022-02-12 21:49:02
    뉴스 9
[앵커]

80년 전, 일본 해저탄광에서 강제 노역을 하다 조선인 136명이 수몰 사고로 숨졌습니다.

오늘(12일) 현지에선 이들의 넋을 위로하는 행사가 열렸는데요.

군함도와 사도광산에서의 역사를 지우려는 일본 정부, 하지만 이처럼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은 일본 곳곳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박원기 특파원의 보돕니다.

[리포트]

바다를 향해 백여개 촛불이 놓였습니다.

시민들은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꽃을 바다로 보냅니다.

80년 전 해저탄광에서 노역하다가 수몰 사고로 숨진 백팔십여명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섭니다.

이 가운데 136명은 강제징용 등으로 오게 된 조선인이었습니다.

[이노우에/옛 조선인 편지 낭독/시민단체 대표 : “바다 밑으로 갱도가 뚫렸고 바다 위를 지나는 어선의 통통 거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아주 위험한 장소입니다.”]

앞바다엔 해저탄광의 배수·배기구로 사용된 콘크리트 원기둥 2개만이 이 곳이 비극의 현장임을 말없이 전해주고 있습니다.

탄광 근처로 가봤습니다.

조선인 노동자들이 수용됐던 합숙소가 나옵니다.

관리나 보존의 손길이 끊겨 흉물이 된지 오랩니다.

[서정길/80살/현지 거주 교포 : “(예전에 들어가 보니) 벽에다가 ‘어머니 보고 싶어요’, ‘배가 고파요’라고 (조선인 노동자에 의해) 한글로 써 있었어요.”]

가혹한 노동과 질병으로 많은 노역자들이 숨져가던 그 당시, 바로 그 옆엔 화장터가 있었다는 게 현지 증언입니다.

[서정길 : “화장장? 여기 여기 여기.”]

더 돌아보니 해저탄광에서 캐낸 석탄을 운반하는 시설물 자리, 그리고 탄광 입구로 추정되는 곳도 나옵니다.

그나마 기억을 보존할 수 있었던 건 현지 시민들의 노력 덕이었습니다.

일본 전역의 모금으로 마련된 추도 광장엔 사고 80년을 맞아 유골 수습과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백여 명이 모였습니다.

역사 지우기에 나선 일본 정부와 달리, 추도비엔 ‘강제연행 한국·조선인’이란 글자가 선명합니다.

[시나가와 유리아/17살 : “피해자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저는 이 사건이 자세히,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역사에 있어 빛과 그림자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을 일본정부보다 이들이 먼저 보여주고 있습니다.

야마구치현 우베시에서 KBS 뉴스 박원기입니다.

촬영:안병욱/영상편집:김선영/그래픽:최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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