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 영국은 뭐가 다른가요? ② 걸렸다? 공개한다

입력 2022.02.24 (06:04)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지난달 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습니다. 법이 만들어진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일터에서의 사망 사고를 줄이자는 것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법 제도 하나만으로 모든 게 바뀌긴 어렵겠죠.

KBS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원조', 산업재해 사망 감축의 선진 사례로 널리 알려진 영국의 상황을 취재했습니다. 뭐가 우리나라 상황과 다를까요? 또 참고할 점은 없을까요? 연속 기사로 소개해드립니다.

여전히 사망 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21일, 강원도 동해시의 쌍용C&E 시멘트 공장에서 50대 노동자가 추락해 숨졌습니다. 그로부터 열흘 전에는 전남 여수산업단지에 있는 여천NCC 공장에서 폭발 사고가 나 4명이 숨졌습니다.

이렇게 이름이 알려진 큰 사업장에서만 노동자들이 사고로 숨지는 건 아닙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작성해 공개하는 '사망사고 속보'를 보면, 이번 달만 해도 노동자가 20명 넘게 숨졌습니다. 그런데 어떤 업체에서, 어떤 잘못을 해서 사고가 났는지는 대부분 알 수 없습니다.

앞서 KBS는 7년 전 역시 사고로 숨진 영국의 마크 시워드 씨 사례를 전해드렸습니다. 사고가 어떻게 났는지(펌프 압력 테스트 중 실린더 폭발로 사망했습니다), 업체 이름(중장비 회사인 'AGD Equipment'였습니다), 재판 결과까지(업체는 벌금 80만 파운드를 선고받았습니다) 전부 살펴봤습니다.

[연관 기사] 중대재해, 영국은 뭐가 다른가요? ① 큰 기업? 큰 처벌 (2022.2.8.)

그런데, 이런 정보는 KBS 취재진만 알 수 있었던 게 아닙니다.

■ 영세 업체도 대기업도…이름까지 모두 공개

마크 씨의 사례는 영국의 산업안전 규제 기관인 보건안전청(HSE) 온라인 홈페이지에 공개됐습니다. 어떤 업체에서 어떤 노동자가 왜 숨졌는지, 그리고 재판 결과는 어땠는지입니다. 재판으로부터 여러 해가 지나 보도자료 형태의 자료는 남아 있지 않지만, 아직 HSE 홈페이지에선 마크 씨 사건의 결과를 검색할 수 있습니다. 마크 씨의 이름이나 사고가 난 업체 이름을 '구글링'하면 HSE가 공개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 자료들도 수십 건 볼 수 있습니다.

마크 씨의 아내 트레이시 씨는 '이렇게 사고 내용과 사업장을 공개하는 게 필요하다고 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트레이시 씨는 "이 회사에서 일하려고 하는 누군가가 회사의 이름을 인터넷에 검색하면 마크의 이름이 나올 것"이라면서 "사람들이 이 회사에서 사고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크에게 일어난 일은 잘못된 것이었으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사례들이 HSE의 홈페이지에 공개돼 있는지, 한 사례를 보겠습니다.


지난해 6월 HSE는 영국항공이 벌금 180만 파운드, 우리나라 돈으로 약 29억 원을 물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2018년 영국 히스로 공항에서 수하물 운반 차량에 치인 노동자가 심각한 부상을 입었는데, 조사해보니 이 노동자는 위험한 통로를 이용했고, 이런 업무 방식이 최소 10년 동안 현장에서 통용됐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회사가 적절하게 지도·관리를 하지 않아서 노동자들이 위험한 방식으로 일하게 했다는 게 처벌의 이유였습니다.

영국항공 같은 크고 유명한 회사가 아니더라도 예외는 없습니다. 아래 사례를 볼까요?


지난 2일 공개된 자료를 보면, 2017년 한 10대 노동자가 다친 재활용 업체가 벌금형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약 2천8백만 원가량입니다. 노동자가 하던 작업에 대한 위험성 평가를 소홀히 해서 추락하게 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업체의 이름은 'PG Skips'였는데, 직원이 100명도 되지 않는 작은 회사입니다.

닉 릭비 HSE 수석 감독관은 이런 행위가 "기업이 위험 관리에 실패했다는 결과를 조명함으로써, 산업재해를 예방한다는 HSE의 기능을 돕는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HSE는 최근 10년 동안 법을 위반해서 기소된 모든 업체에 대한 정보를 공개한다"고 말했습니다.

■ 우리는 산재 정보 어디 있나요?…고용부 "감독 결과 공개하겠다"

우리나라의 경우 앞서 밝힌 것처럼, 한 사고로 노동자가 여러 명 숨지거나 사회적 이목을 받는 사건에 한해서만 정보를 공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회적 관심이 크더라도, 영세한 사업장이라면 굳이 업체의 이름까지는 밝히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래는 지난해 전남 여수에서 현장실습을 하다 숨진 고(故) 홍정운 군의 사업장을 고용노동부가 감독하고 그 결과를 밝힌 내용입니다.

"고용노동부(장관 안경덕)는 지난 10.6.(수) 현장실습생 사망사고가 발생한 사업장(전남 여수시 소재) 대상 재해조사 및 산업안전 감독을 실시(10.7.~10.15.)하고 다수의 산업안전보건법령 위반사항을 적발하여 10.15.(금) 사업주와 대표를 입건하였다고 밝혔다.

재해조사 및 감독결과에 따르면, 우선 사업주는 현장실습생이 잠수 관련 자격이나 면허, 경험 또는 기능을 가지지 아니하였음에도 따개비 제거 작업 시 잠수작업을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 - 지난해 10월 18일, 고용노동부 보도자료

그렇다고 아예 '깜깜이'인 것은 아닙니다. 법률에 따라, 정부는 산업재해가 자주 발생했고, 여기에 대한 확정 판결을 받은 사업장의 이름을 공표합니다.

여기까지는 영국과 비슷한 것 같은데, 문제는 이 정보를 확인하기가 비교적 어렵다는 것입니다. 일반인이 이런 정보를 찾으려면 아래와 같은 경로를 따라야 합니다.

산업재해 발생 정보 확인 방법
고용노동부 홈페이지에 접속 → '정보공개' 탭 클릭 → '사전정보 공표목록' 선택 → '산재예방/산재보상' 선택 → '산업재해 발생건수 등 공표' 선택 → 최신 정보 확인

또 이 공표 목록은 말 그대로 '목록'일 뿐이어서 대부분은 사업장의 이름과 종류, 규모, 사망자나 부상자 수 정도가 적혀 있습니다.

일부 중대산업사고 항목에 대해선 사고 내용을 간략히 밝히고 있긴 하지만, 사업체 차원에서 어떤 관리 소홀이 있었는지 등은 여전히 알 수 없습니다.


최근 산업재해 사망 사고와 관련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우리나라 정부 기관도 감독·수사하는 산재 업체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려는 분위기입니다.

지난 7일 고용노동부는 올해 산업안전감독 계획을 밝히면서 "동종·유사사례 재발을 방지하고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특별‧기획형 감독 중심으로 감독 결과를 언론에 공개한다"고 했습니다.

이게 모든 감독에 대해 업체의 정보를 공개한다는 뜻일까요?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대부분의 특별감독이나 기획감독은 업체명과 위반 내용 등을 밝힐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특별감독은 동시에 노동자가 2명 이상 숨지거나 1년에 3명 이상 숨진 사업장 등에 한해 이뤄집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모든 감독에 대해서 공개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도 덧붙였습니다. 국회 등에서 업체의 이름까지 공개하는 것은 '망신주기 아니냐'라는 지적도 많이 받는다는 것입니다.

법 위반 사항을 자세하게 공개할 경우, 적발된 업체의 항의를 받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런 문제가 영국엔 없는지, 닉 릭비 감독관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릭비 감독관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기소된 기업들은 당연히 홈페이지에 이름이 공개되는 걸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가진 해법은 법을 지켜서 스스로를 그런 상황에 처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인포그래픽: 김현수)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중대재해, 영국은 뭐가 다른가요? ② 걸렸다? 공개한다
    • 입력 2022-02-24 06:04:04
    취재K

지난달 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습니다. 법이 만들어진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일터에서의 사망 사고를 줄이자는 것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법 제도 하나만으로 모든 게 바뀌긴 어렵겠죠.

KBS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원조', 산업재해 사망 감축의 선진 사례로 널리 알려진 영국의 상황을 취재했습니다. 뭐가 우리나라 상황과 다를까요? 또 참고할 점은 없을까요? 연속 기사로 소개해드립니다.

여전히 사망 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21일, 강원도 동해시의 쌍용C&E 시멘트 공장에서 50대 노동자가 추락해 숨졌습니다. 그로부터 열흘 전에는 전남 여수산업단지에 있는 여천NCC 공장에서 폭발 사고가 나 4명이 숨졌습니다.

이렇게 이름이 알려진 큰 사업장에서만 노동자들이 사고로 숨지는 건 아닙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작성해 공개하는 '사망사고 속보'를 보면, 이번 달만 해도 노동자가 20명 넘게 숨졌습니다. 그런데 어떤 업체에서, 어떤 잘못을 해서 사고가 났는지는 대부분 알 수 없습니다.

앞서 KBS는 7년 전 역시 사고로 숨진 영국의 마크 시워드 씨 사례를 전해드렸습니다. 사고가 어떻게 났는지(펌프 압력 테스트 중 실린더 폭발로 사망했습니다), 업체 이름(중장비 회사인 'AGD Equipment'였습니다), 재판 결과까지(업체는 벌금 80만 파운드를 선고받았습니다) 전부 살펴봤습니다.

[연관 기사] 중대재해, 영국은 뭐가 다른가요? ① 큰 기업? 큰 처벌 (2022.2.8.)

그런데, 이런 정보는 KBS 취재진만 알 수 있었던 게 아닙니다.

■ 영세 업체도 대기업도…이름까지 모두 공개

마크 씨의 사례는 영국의 산업안전 규제 기관인 보건안전청(HSE) 온라인 홈페이지에 공개됐습니다. 어떤 업체에서 어떤 노동자가 왜 숨졌는지, 그리고 재판 결과는 어땠는지입니다. 재판으로부터 여러 해가 지나 보도자료 형태의 자료는 남아 있지 않지만, 아직 HSE 홈페이지에선 마크 씨 사건의 결과를 검색할 수 있습니다. 마크 씨의 이름이나 사고가 난 업체 이름을 '구글링'하면 HSE가 공개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 자료들도 수십 건 볼 수 있습니다.

마크 씨의 아내 트레이시 씨는 '이렇게 사고 내용과 사업장을 공개하는 게 필요하다고 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트레이시 씨는 "이 회사에서 일하려고 하는 누군가가 회사의 이름을 인터넷에 검색하면 마크의 이름이 나올 것"이라면서 "사람들이 이 회사에서 사고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크에게 일어난 일은 잘못된 것이었으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사례들이 HSE의 홈페이지에 공개돼 있는지, 한 사례를 보겠습니다.


지난해 6월 HSE는 영국항공이 벌금 180만 파운드, 우리나라 돈으로 약 29억 원을 물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2018년 영국 히스로 공항에서 수하물 운반 차량에 치인 노동자가 심각한 부상을 입었는데, 조사해보니 이 노동자는 위험한 통로를 이용했고, 이런 업무 방식이 최소 10년 동안 현장에서 통용됐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회사가 적절하게 지도·관리를 하지 않아서 노동자들이 위험한 방식으로 일하게 했다는 게 처벌의 이유였습니다.

영국항공 같은 크고 유명한 회사가 아니더라도 예외는 없습니다. 아래 사례를 볼까요?


지난 2일 공개된 자료를 보면, 2017년 한 10대 노동자가 다친 재활용 업체가 벌금형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약 2천8백만 원가량입니다. 노동자가 하던 작업에 대한 위험성 평가를 소홀히 해서 추락하게 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업체의 이름은 'PG Skips'였는데, 직원이 100명도 되지 않는 작은 회사입니다.

닉 릭비 HSE 수석 감독관은 이런 행위가 "기업이 위험 관리에 실패했다는 결과를 조명함으로써, 산업재해를 예방한다는 HSE의 기능을 돕는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HSE는 최근 10년 동안 법을 위반해서 기소된 모든 업체에 대한 정보를 공개한다"고 말했습니다.

■ 우리는 산재 정보 어디 있나요?…고용부 "감독 결과 공개하겠다"

우리나라의 경우 앞서 밝힌 것처럼, 한 사고로 노동자가 여러 명 숨지거나 사회적 이목을 받는 사건에 한해서만 정보를 공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회적 관심이 크더라도, 영세한 사업장이라면 굳이 업체의 이름까지는 밝히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래는 지난해 전남 여수에서 현장실습을 하다 숨진 고(故) 홍정운 군의 사업장을 고용노동부가 감독하고 그 결과를 밝힌 내용입니다.

"고용노동부(장관 안경덕)는 지난 10.6.(수) 현장실습생 사망사고가 발생한 사업장(전남 여수시 소재) 대상 재해조사 및 산업안전 감독을 실시(10.7.~10.15.)하고 다수의 산업안전보건법령 위반사항을 적발하여 10.15.(금) 사업주와 대표를 입건하였다고 밝혔다.

재해조사 및 감독결과에 따르면, 우선 사업주는 현장실습생이 잠수 관련 자격이나 면허, 경험 또는 기능을 가지지 아니하였음에도 따개비 제거 작업 시 잠수작업을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 - 지난해 10월 18일, 고용노동부 보도자료

그렇다고 아예 '깜깜이'인 것은 아닙니다. 법률에 따라, 정부는 산업재해가 자주 발생했고, 여기에 대한 확정 판결을 받은 사업장의 이름을 공표합니다.

여기까지는 영국과 비슷한 것 같은데, 문제는 이 정보를 확인하기가 비교적 어렵다는 것입니다. 일반인이 이런 정보를 찾으려면 아래와 같은 경로를 따라야 합니다.

산업재해 발생 정보 확인 방법
고용노동부 홈페이지에 접속 → '정보공개' 탭 클릭 → '사전정보 공표목록' 선택 → '산재예방/산재보상' 선택 → '산업재해 발생건수 등 공표' 선택 → 최신 정보 확인

또 이 공표 목록은 말 그대로 '목록'일 뿐이어서 대부분은 사업장의 이름과 종류, 규모, 사망자나 부상자 수 정도가 적혀 있습니다.

일부 중대산업사고 항목에 대해선 사고 내용을 간략히 밝히고 있긴 하지만, 사업체 차원에서 어떤 관리 소홀이 있었는지 등은 여전히 알 수 없습니다.


최근 산업재해 사망 사고와 관련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우리나라 정부 기관도 감독·수사하는 산재 업체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려는 분위기입니다.

지난 7일 고용노동부는 올해 산업안전감독 계획을 밝히면서 "동종·유사사례 재발을 방지하고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특별‧기획형 감독 중심으로 감독 결과를 언론에 공개한다"고 했습니다.

이게 모든 감독에 대해 업체의 정보를 공개한다는 뜻일까요?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대부분의 특별감독이나 기획감독은 업체명과 위반 내용 등을 밝힐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특별감독은 동시에 노동자가 2명 이상 숨지거나 1년에 3명 이상 숨진 사업장 등에 한해 이뤄집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모든 감독에 대해서 공개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도 덧붙였습니다. 국회 등에서 업체의 이름까지 공개하는 것은 '망신주기 아니냐'라는 지적도 많이 받는다는 것입니다.

법 위반 사항을 자세하게 공개할 경우, 적발된 업체의 항의를 받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런 문제가 영국엔 없는지, 닉 릭비 감독관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릭비 감독관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기소된 기업들은 당연히 홈페이지에 이름이 공개되는 걸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가진 해법은 법을 지켜서 스스로를 그런 상황에 처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인포그래픽: 김현수)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