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재심 판결문, 명예회복 넘어 진상규명으로

입력 2022.03.30 (19:05) 수정 2022.03.30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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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4·3 당시 억울한 옥살이를 한 희생자들이 최근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으며 명예를 회복하고 있는데요.

이 재심 과정에서 나온 당시 판결문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기존 4·3연구에서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역사적 사실들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인데요.

문준영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일흔을 바라보는 박용현 씨는 최근 4·3 재심으로 한 맺힌 서러움에서 벗어났습니다.

4·3당시 3·1절 기념대회에 참석했다는 이유 등으로 포고령 위반죄로 억울하게 재판을 받은 큰아버지 고 박남섭 씨의 명예를 회복했기 때문입니다.

[박용현/고 박남섭 씨 조카 : "(당시) 판결문을 보면 도민들이 다 알다시피 1947년 3월 1일은 미군정 허가 하에 제주도 북초등학교에서도 행사가 열렸던 거고. 축하행진 하는 거를 시위로 몰아서 벌을 줬다는 것 자체가."]

고 박남섭 씨의 당시 판결문입니다.

1947년 3월 1일 금악리 평대동 리민 100여 명이 집합했고, 한림국민학교까지 23개 마을주민 6천여 명과 합류했다는, 당시 지역 3·1 기념행사 상황을 구체적으로 적시했습니다.

이처럼 재심 과정에서 공개된 당시 판결문은 새로운 사실까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4·3 당시 고 박남섭씨처럼 지역 3·1절 기념행사에 참석했다는 등의 이유로 징역 6월을 선고받은 고 박원길 씨의 판결문입니다.

박 씨가 당시 덕천리민 25명, 김녕리민 100여 명과 합류하고, 김녕국민학교 정문 앞에서 김녕리 금융조합까지 불법 시위를 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당시 김녕국민학교에서도 3·1절 집회가 있었다는 건데, 기존 4·3 연구보고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내용입니다.

[양동윤/4·3 도민연대 대표 : "(당시) 판결문이 이렇게 공개됨으로써 3·1사건. 3·1 기념 집회에 대한 전모를 그나마 파악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라고 얘기할 수 있고, 그런 것들이 지금 발굴되고 있다는 데서 매우 의미가 크죠."]

지금까지 알려진 4·3 당시 일반재판 희생자는 천8백여 명.

4·3재심이 잇따르며 당시 판결문에 주목하자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양정심/제주4·3평화재단 조사연구실장 : "4·3의 어떤 배경 이 부분을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들이 이제 판결문에 있어요. 물론 그 시선은 우리의 시선으로 봐야겠죠. 미군 정의 눈으로, 경찰의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판결문 원본까지도 다 이렇게 한글로 DB화시키면 사실은 이건 굉장히 큰 자료이거든요."]

4·3 추가 진상규명을 위해서라도 당시 희생자들의 판결문에 대한 실태조사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KBS 뉴스 문준영입니다.

촬영기자:신비오/그래픽:조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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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3 재심 판결문, 명예회복 넘어 진상규명으로
    • 입력 2022-03-30 19:05:30
    • 수정2022-03-30 20:39:58
    뉴스7(제주)
[앵커]

4·3 당시 억울한 옥살이를 한 희생자들이 최근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으며 명예를 회복하고 있는데요.

이 재심 과정에서 나온 당시 판결문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기존 4·3연구에서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역사적 사실들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인데요.

문준영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일흔을 바라보는 박용현 씨는 최근 4·3 재심으로 한 맺힌 서러움에서 벗어났습니다.

4·3당시 3·1절 기념대회에 참석했다는 이유 등으로 포고령 위반죄로 억울하게 재판을 받은 큰아버지 고 박남섭 씨의 명예를 회복했기 때문입니다.

[박용현/고 박남섭 씨 조카 : "(당시) 판결문을 보면 도민들이 다 알다시피 1947년 3월 1일은 미군정 허가 하에 제주도 북초등학교에서도 행사가 열렸던 거고. 축하행진 하는 거를 시위로 몰아서 벌을 줬다는 것 자체가."]

고 박남섭 씨의 당시 판결문입니다.

1947년 3월 1일 금악리 평대동 리민 100여 명이 집합했고, 한림국민학교까지 23개 마을주민 6천여 명과 합류했다는, 당시 지역 3·1 기념행사 상황을 구체적으로 적시했습니다.

이처럼 재심 과정에서 공개된 당시 판결문은 새로운 사실까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4·3 당시 고 박남섭씨처럼 지역 3·1절 기념행사에 참석했다는 등의 이유로 징역 6월을 선고받은 고 박원길 씨의 판결문입니다.

박 씨가 당시 덕천리민 25명, 김녕리민 100여 명과 합류하고, 김녕국민학교 정문 앞에서 김녕리 금융조합까지 불법 시위를 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당시 김녕국민학교에서도 3·1절 집회가 있었다는 건데, 기존 4·3 연구보고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내용입니다.

[양동윤/4·3 도민연대 대표 : "(당시) 판결문이 이렇게 공개됨으로써 3·1사건. 3·1 기념 집회에 대한 전모를 그나마 파악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라고 얘기할 수 있고, 그런 것들이 지금 발굴되고 있다는 데서 매우 의미가 크죠."]

지금까지 알려진 4·3 당시 일반재판 희생자는 천8백여 명.

4·3재심이 잇따르며 당시 판결문에 주목하자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양정심/제주4·3평화재단 조사연구실장 : "4·3의 어떤 배경 이 부분을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들이 이제 판결문에 있어요. 물론 그 시선은 우리의 시선으로 봐야겠죠. 미군 정의 눈으로, 경찰의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판결문 원본까지도 다 이렇게 한글로 DB화시키면 사실은 이건 굉장히 큰 자료이거든요."]

4·3 추가 진상규명을 위해서라도 당시 희생자들의 판결문에 대한 실태조사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KBS 뉴스 문준영입니다.

촬영기자:신비오/그래픽:조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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