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탈북 여성 1호 공학박사…“정착 돕고 싶어요!”

입력 2022.04.02 (08:33) 수정 2022.04.02 (09:43)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저희 남북의창에서도 꾸준히 다뤄온 주제입니다만, 혈혈단신의 탈북민들이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란 참 쉽지 않은데요.

네. 그래서일까요?

한국 사회에서 큰 꿈을 펼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는 탈북민들도 많습니다.

오늘 통일로미래로에서는 일과 학업을 병행하고 있는 탈북 여성을 만나봤는데요.

네. 서울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민경숙 씨라고 하는데 지난 2월에 탈북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공학박사 학위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일과 학업을 병행하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탈북민 박사는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지, 지금부터 함께 만나보시죠.

[리포트]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서울 양재동 꽃시장.

그 맞은편 골목길에 재작년 여름 영업을 시작한 작은 식당이 있습니다.

2010년 개성에서 남한으로 온 민경숙 씨가 운영하는 곳인데요.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창업을 하다 보니 우여곡절이 많았는데요.

[민경숙/탈북민 : "저희가 시장 조사나 이런 부분에서 많이 부족하다 보니까 금액 차이나 비용 차이 분석하는 것들이 많이 부족했고 그 다음에는 세금 문제가 많이 부족했던 거 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이 식당을 찾아오는 단골 손님들도 꽤 늘었습니다.

[장현진/손님 : "똑같이 다 살고 있으니까 똑같다고 생각 들어서 큰 차이나 편견이나 이런 거 생기진 않는 거 같아요."]

허물없이 대해주는 손님들이 민경숙 씨한테는 큰 힘이 됐는데요.

하지만 최근엔 북한의 무력시위 관련 뉴스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려옵니다.

[민경숙/탈북민 : "어떤 손님들은 제가 북한이탈주민인지 모르고 나쁜 말씀 하시고 참 한심하다느니 심각한 얘기들 많이 하세요. 그럴 때마다 많이 마음이 아파요."]

한국 사회에 정착 13년 차에 들어선 민경숙 씨.

가게를 운영하며 안정적으로 한국 사회에 정착을 했는데요. 하지만 안정적인 삶을 꾸리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위암에 걸린 어머니 약값을 벌기 위해 중국으로 향했던 민경숙 씨.

중국에서 가정을 꾸렸지만, 언제나 쫓기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민경숙/탈북민 : "중국 정부에서 북한이탈주민들을 다 북송시킨다 하더라고요. 그 때 당시 저도 공안에 잡혀 있다가 북한 돈으로 따지면 만 원씩 한집에서 만 원씩 지불하고 풀어주더라고요."]

그 이후 강제 북송을 피하기 위해 계속 중국을 떠돌아야 했는데요.

북한에 있는 가족들과는 연락이 끊어진 채 살아왔습니다.

안정적인 삶을 찾아 결국 한국땅을 밟았지만, 외로움을 견디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민경숙/탈북민 : "처음에는 많이 울기도 했어요. 명절이나 또 좋은 일 있을 때나 이럴 때는 가족이나 형제들이 생각나서 많이 울고 했는데 그 다음부턴 내가 이렇게 울면서 한탄하면서 지낼 게 아니라 나도 잘 살아야 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북한에 있을 때 컴퓨터에 관심이 많았던 민경숙 씨.

하지만 배울 기회가 없었는데요.

제대로 된 컴퓨터 교육을 받으면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 흥미를 느꼈다고 합니다.

배움에 대한 갈증은 그녀를 대학원으로 이끌었고, 컴퓨터 관련 자격증들을 따게 됐는데요.

올 2월에는 ‘탈북 여성 1호 공학박사’가 됐습니다.

[민경숙/탈북민 : "주제도 여러 가지 생각했었는데 제가 생각하기엔 탈북 청소년들이 대한민국에 잘 적응하자면 우선 컴퓨터를 잘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시작하게 된 거 같아요."]

민경숙 씨의 끊임없는 도전은 단골 손님들한테도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박금천/손님 : "제가 두 달 전인가 컴퓨터 노트북으로 박사 논문 해가지고 너무 이거 하기도 바쁜데 전 교수인 줄 알고 노트북 보면서 열심히 하는 거 보니까 대단하다고 했습니다."]

경숙 씨는 학업과 일을 병행하려고 하다 보니 현실적인 어려움들을 겪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자신의 목표를 쉽게 포기할 순 없었습니다.

민경숙 씨가 논문을 들고 찾아간 곳은 서울 마포구의 한 사무실.

논문 작성에 도움을 준 김병욱 소장을 만나러 왔는데요.

["코로나 19가 또 하나의 역경을 순경으로 넘기고 그런 거구만...10시 이후부터 혼자 앉아서 계속."]

탈북민인 김병욱 소장은 2015년부터 탈북민들의 석박사 학위 논문 작성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김병욱/북한개발연구소장 : "대학원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배우는데 마땅히 개별지도 받을 수 있는 거 없고 책들이 드물어요. 때문에 조금 저희들이 탈북민들 실정에 맞게끔 조언을 할 수 있는 거라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60여 명의 탈북 여성들이 한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는데요.

사회복지학이나 북한학을 전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김병욱/북한개발연구소장 : "민경숙 씨 같은 경우는 컴퓨터 쪽이니까 사실 어려워요. 저도 아무리 북에서 공과 쪽 나와도 어려운데 저분 경우엔 창업 그때 시작했죠. 하면서 박사 논문 동시에 한 분이에요."]

일과 학업을 병행하다 보니 대학원 수료 이후 논문이 통과되는데 2년이란 세월이 걸렸습니다.

민경숙 씨는 자신의 도전이 한국 사회 정착에 힘들어하는 다른 탈북민들한테도 본보기가 되길 바라는데요.

앞으로도 전공을 잘 살려 연구 활동을 계속 이어나갈 계획입니다.

[민경숙/탈북민 : "탈북청소년들과 북한이탈주민들이 IT나 컴퓨터 공학 쪽으로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는지 그 기준점을 먼저 판단해서 봉사하는 마음으로 정보화 교육을 가르치고 이런 교육 사업을 하고 싶어요."]

탈북 여성 1호 공학박사 민경숙 씨.

그녀의 도전처럼 다른 탈북민들도 좀 더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길 바라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통일로 미래로] 탈북 여성 1호 공학박사…“정착 돕고 싶어요!”
    • 입력 2022-04-02 08:33:59
    • 수정2022-04-02 09:43:26
    남북의 창
[앵커]

저희 남북의창에서도 꾸준히 다뤄온 주제입니다만, 혈혈단신의 탈북민들이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란 참 쉽지 않은데요.

네. 그래서일까요?

한국 사회에서 큰 꿈을 펼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는 탈북민들도 많습니다.

오늘 통일로미래로에서는 일과 학업을 병행하고 있는 탈북 여성을 만나봤는데요.

네. 서울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민경숙 씨라고 하는데 지난 2월에 탈북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공학박사 학위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일과 학업을 병행하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탈북민 박사는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지, 지금부터 함께 만나보시죠.

[리포트]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서울 양재동 꽃시장.

그 맞은편 골목길에 재작년 여름 영업을 시작한 작은 식당이 있습니다.

2010년 개성에서 남한으로 온 민경숙 씨가 운영하는 곳인데요.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창업을 하다 보니 우여곡절이 많았는데요.

[민경숙/탈북민 : "저희가 시장 조사나 이런 부분에서 많이 부족하다 보니까 금액 차이나 비용 차이 분석하는 것들이 많이 부족했고 그 다음에는 세금 문제가 많이 부족했던 거 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이 식당을 찾아오는 단골 손님들도 꽤 늘었습니다.

[장현진/손님 : "똑같이 다 살고 있으니까 똑같다고 생각 들어서 큰 차이나 편견이나 이런 거 생기진 않는 거 같아요."]

허물없이 대해주는 손님들이 민경숙 씨한테는 큰 힘이 됐는데요.

하지만 최근엔 북한의 무력시위 관련 뉴스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려옵니다.

[민경숙/탈북민 : "어떤 손님들은 제가 북한이탈주민인지 모르고 나쁜 말씀 하시고 참 한심하다느니 심각한 얘기들 많이 하세요. 그럴 때마다 많이 마음이 아파요."]

한국 사회에 정착 13년 차에 들어선 민경숙 씨.

가게를 운영하며 안정적으로 한국 사회에 정착을 했는데요. 하지만 안정적인 삶을 꾸리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위암에 걸린 어머니 약값을 벌기 위해 중국으로 향했던 민경숙 씨.

중국에서 가정을 꾸렸지만, 언제나 쫓기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민경숙/탈북민 : "중국 정부에서 북한이탈주민들을 다 북송시킨다 하더라고요. 그 때 당시 저도 공안에 잡혀 있다가 북한 돈으로 따지면 만 원씩 한집에서 만 원씩 지불하고 풀어주더라고요."]

그 이후 강제 북송을 피하기 위해 계속 중국을 떠돌아야 했는데요.

북한에 있는 가족들과는 연락이 끊어진 채 살아왔습니다.

안정적인 삶을 찾아 결국 한국땅을 밟았지만, 외로움을 견디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민경숙/탈북민 : "처음에는 많이 울기도 했어요. 명절이나 또 좋은 일 있을 때나 이럴 때는 가족이나 형제들이 생각나서 많이 울고 했는데 그 다음부턴 내가 이렇게 울면서 한탄하면서 지낼 게 아니라 나도 잘 살아야 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북한에 있을 때 컴퓨터에 관심이 많았던 민경숙 씨.

하지만 배울 기회가 없었는데요.

제대로 된 컴퓨터 교육을 받으면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 흥미를 느꼈다고 합니다.

배움에 대한 갈증은 그녀를 대학원으로 이끌었고, 컴퓨터 관련 자격증들을 따게 됐는데요.

올 2월에는 ‘탈북 여성 1호 공학박사’가 됐습니다.

[민경숙/탈북민 : "주제도 여러 가지 생각했었는데 제가 생각하기엔 탈북 청소년들이 대한민국에 잘 적응하자면 우선 컴퓨터를 잘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시작하게 된 거 같아요."]

민경숙 씨의 끊임없는 도전은 단골 손님들한테도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박금천/손님 : "제가 두 달 전인가 컴퓨터 노트북으로 박사 논문 해가지고 너무 이거 하기도 바쁜데 전 교수인 줄 알고 노트북 보면서 열심히 하는 거 보니까 대단하다고 했습니다."]

경숙 씨는 학업과 일을 병행하려고 하다 보니 현실적인 어려움들을 겪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자신의 목표를 쉽게 포기할 순 없었습니다.

민경숙 씨가 논문을 들고 찾아간 곳은 서울 마포구의 한 사무실.

논문 작성에 도움을 준 김병욱 소장을 만나러 왔는데요.

["코로나 19가 또 하나의 역경을 순경으로 넘기고 그런 거구만...10시 이후부터 혼자 앉아서 계속."]

탈북민인 김병욱 소장은 2015년부터 탈북민들의 석박사 학위 논문 작성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김병욱/북한개발연구소장 : "대학원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배우는데 마땅히 개별지도 받을 수 있는 거 없고 책들이 드물어요. 때문에 조금 저희들이 탈북민들 실정에 맞게끔 조언을 할 수 있는 거라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60여 명의 탈북 여성들이 한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는데요.

사회복지학이나 북한학을 전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김병욱/북한개발연구소장 : "민경숙 씨 같은 경우는 컴퓨터 쪽이니까 사실 어려워요. 저도 아무리 북에서 공과 쪽 나와도 어려운데 저분 경우엔 창업 그때 시작했죠. 하면서 박사 논문 동시에 한 분이에요."]

일과 학업을 병행하다 보니 대학원 수료 이후 논문이 통과되는데 2년이란 세월이 걸렸습니다.

민경숙 씨는 자신의 도전이 한국 사회 정착에 힘들어하는 다른 탈북민들한테도 본보기가 되길 바라는데요.

앞으로도 전공을 잘 살려 연구 활동을 계속 이어나갈 계획입니다.

[민경숙/탈북민 : "탈북청소년들과 북한이탈주민들이 IT나 컴퓨터 공학 쪽으로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는지 그 기준점을 먼저 판단해서 봉사하는 마음으로 정보화 교육을 가르치고 이런 교육 사업을 하고 싶어요."]

탈북 여성 1호 공학박사 민경숙 씨.

그녀의 도전처럼 다른 탈북민들도 좀 더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길 바라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