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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속으로] 임진왜란 무패신화…정기룡 장군을 아시나요?
입력 2022.04.04 (19:43) 수정 2022.04.04 (19:58) 뉴스7(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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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하동에서 태어나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육전의 명장' 정기룡 장군이 순국 400주년을 맞았습니다.

장군이 임진왜란 당시 실제 사용했던 진검을 봉헌하고 정신을 기리는 뜻깊은 행사가 고향에서 열렸습니다.

[리포트]

임진왜란 당시 60여 회의 전투에서 단 한 번도 패한 적 없는 ‘육전의 명장’ 충의공 정기룡 장군.

정기룡 장군 순국 400주년을 맞아 장군의 나라 사랑 정신을 마음에 새기는 추모행사 현장으로 안내합니다.

지난 달 30일, 정기룡 장군 유허지 경충사에서 특별한 행사가 진행됐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바다에는 이순신, 육지에는 정기룡이라 불릴 만큼 정기룡 장군은 전쟁에서 승리하며 혁혁한 공을 세웠는데요.

장군의 순국 400주년을 기념해 진검 봉헌식을 거행했습니다.

[문찬인/(사)정기룡장군 기념사업회장 : "정기룡 장군만한 인물이 하동에 배출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국민의 어떤 표상으로 또는 정신적인 지주로 그렇게 모셔서 국민을 단합시키고, 하동을 발전시켜 나가는데 하나의 표상적 존재가 (될 것입니다.)"]

장군의 진검은 후손들에게 전해져오다 이십여 년 전 분실돼 행방이 묘연했는데요.

이에 하동향교 전교가 검을 추적하고, 소장한 이를 설득했습니다.

진검은 장군이 임진왜란 전투에서 실제 사용했던 검으로 역사적 의미와 가치가 매우 높은데요.

사비를 들여 검을 회수해 보관하다 세상에 공개했습니다.

[백승렬/하동군 문화체육과 문화재담당 : "정한효 하동향교 전교가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그걸(검을) 찾으셨습니다. 찾아 가지고 분실 위험이 있어 금고에 보관해 오다 유족들이 ‘이제는 세상에 내놓아야 한다.’고 해서 오늘 처음으로 세상 밖으로 공개가 되는 날이고, 장군께 직접 봉헌하는 날입니다."]

하동군 금남면에서 태어난 정기룡 장군은 25세 되던 해 무과에 급제한 후, 무관의 길로 들어섰는데요.

임진왜란 7년 동안 60여 회 육지 전투에서 왜적을 물리치며 전투마다 한 번도 다치지 않고 전승을 거두는 불패 신화를 기록했습니다.

30대 초반의 나이로 수많은 공을 세웠지만, 아쉽게도 장군에 대한 자료가 부족해 그의 공적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는데요.

하동의 향토사연구원은 장군의 업적을 알리기 위해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장군의 전적을 조사하며 일대기를 담은 책을 출간했습니다.

[김회룡/정기룡 장군 일대기 '신매헌실기' 저자 : "한미한 집안에서 태어나 조선 수군의 최고 지위인 삼도수군통제사를 두 번이나 오를 때까지 가장 평범하면서 청렴하고, 전장에서는 적을 공포에 떨게 했던 명장으로서 백성들의 굶주림까지 돌보게 했던 목민관이었습니다."]

취타대가 풍악을 울리고, 행진을 시작하는데요.

최대한 예를 갖추며 장군의 위패가 모셔진 사당으로 향합니다.

봉헌식 후 하동문화예술회관에서 두달 간 공개 한 뒤 진주국립박물관으로 옮겨 일반에 전시될 예정입니다.

장군은 정유재란 때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울산 왜성에 주둔하며 한양 진격을 노리던 왜군을 저지해 전쟁을 끝냈는데요.

정기룡 장군 기념사업회는 추모행사를 진행하며 잊혀진 장군의 업적을 바로 세우고, 장군의 정신을 기릴 예정입니다.

[문찬인/(사)정기룡장군기념사업회장 : "장군을 아는 분들은 ‘기룡이 없었으면 영남이 없었고, 영남이 없었으면 조선이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정기룡 장군에 대한 이해와 정기룡 장군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 국민에게 있었으면 합니다."]

누구보다 적군과 아군을 이해하고, 상황에 맞는 최적의 전술을 찾아낸 그의 노력이 있었기에 임진왜란 불패 신화는 가능했는데요.

순국 400주년을 맞아 지덕을 겸비한 뛰어난 무장, 정기룡 장군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길 바라봅니다.
  • [현장속으로] 임진왜란 무패신화…정기룡 장군을 아시나요?
    • 입력 2022-04-04 19:43:00
    • 수정2022-04-04 19:58:29
    뉴스7(창원)
[앵커]

하동에서 태어나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육전의 명장' 정기룡 장군이 순국 400주년을 맞았습니다.

장군이 임진왜란 당시 실제 사용했던 진검을 봉헌하고 정신을 기리는 뜻깊은 행사가 고향에서 열렸습니다.

[리포트]

임진왜란 당시 60여 회의 전투에서 단 한 번도 패한 적 없는 ‘육전의 명장’ 충의공 정기룡 장군.

정기룡 장군 순국 400주년을 맞아 장군의 나라 사랑 정신을 마음에 새기는 추모행사 현장으로 안내합니다.

지난 달 30일, 정기룡 장군 유허지 경충사에서 특별한 행사가 진행됐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바다에는 이순신, 육지에는 정기룡이라 불릴 만큼 정기룡 장군은 전쟁에서 승리하며 혁혁한 공을 세웠는데요.

장군의 순국 400주년을 기념해 진검 봉헌식을 거행했습니다.

[문찬인/(사)정기룡장군 기념사업회장 : "정기룡 장군만한 인물이 하동에 배출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국민의 어떤 표상으로 또는 정신적인 지주로 그렇게 모셔서 국민을 단합시키고, 하동을 발전시켜 나가는데 하나의 표상적 존재가 (될 것입니다.)"]

장군의 진검은 후손들에게 전해져오다 이십여 년 전 분실돼 행방이 묘연했는데요.

이에 하동향교 전교가 검을 추적하고, 소장한 이를 설득했습니다.

진검은 장군이 임진왜란 전투에서 실제 사용했던 검으로 역사적 의미와 가치가 매우 높은데요.

사비를 들여 검을 회수해 보관하다 세상에 공개했습니다.

[백승렬/하동군 문화체육과 문화재담당 : "정한효 하동향교 전교가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그걸(검을) 찾으셨습니다. 찾아 가지고 분실 위험이 있어 금고에 보관해 오다 유족들이 ‘이제는 세상에 내놓아야 한다.’고 해서 오늘 처음으로 세상 밖으로 공개가 되는 날이고, 장군께 직접 봉헌하는 날입니다."]

하동군 금남면에서 태어난 정기룡 장군은 25세 되던 해 무과에 급제한 후, 무관의 길로 들어섰는데요.

임진왜란 7년 동안 60여 회 육지 전투에서 왜적을 물리치며 전투마다 한 번도 다치지 않고 전승을 거두는 불패 신화를 기록했습니다.

30대 초반의 나이로 수많은 공을 세웠지만, 아쉽게도 장군에 대한 자료가 부족해 그의 공적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는데요.

하동의 향토사연구원은 장군의 업적을 알리기 위해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장군의 전적을 조사하며 일대기를 담은 책을 출간했습니다.

[김회룡/정기룡 장군 일대기 '신매헌실기' 저자 : "한미한 집안에서 태어나 조선 수군의 최고 지위인 삼도수군통제사를 두 번이나 오를 때까지 가장 평범하면서 청렴하고, 전장에서는 적을 공포에 떨게 했던 명장으로서 백성들의 굶주림까지 돌보게 했던 목민관이었습니다."]

취타대가 풍악을 울리고, 행진을 시작하는데요.

최대한 예를 갖추며 장군의 위패가 모셔진 사당으로 향합니다.

봉헌식 후 하동문화예술회관에서 두달 간 공개 한 뒤 진주국립박물관으로 옮겨 일반에 전시될 예정입니다.

장군은 정유재란 때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울산 왜성에 주둔하며 한양 진격을 노리던 왜군을 저지해 전쟁을 끝냈는데요.

정기룡 장군 기념사업회는 추모행사를 진행하며 잊혀진 장군의 업적을 바로 세우고, 장군의 정신을 기릴 예정입니다.

[문찬인/(사)정기룡장군기념사업회장 : "장군을 아는 분들은 ‘기룡이 없었으면 영남이 없었고, 영남이 없었으면 조선이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정기룡 장군에 대한 이해와 정기룡 장군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 국민에게 있었으면 합니다."]

누구보다 적군과 아군을 이해하고, 상황에 맞는 최적의 전술을 찾아낸 그의 노력이 있었기에 임진왜란 불패 신화는 가능했는데요.

순국 400주년을 맞아 지덕을 겸비한 뛰어난 무장, 정기룡 장군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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