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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진정한 봄으로]① “본 적도 없는 아버지를 증명하라뇨”
입력 2022.04.04 (21:47) 수정 2022.04.05 (10:40) 뉴스9(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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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제주 4·3이 74주년을 맞은 올해에야 희생자에 대한 피해 보상의 기반이 마련됐죠,

KBS는 앞으로 보상 과정에서 보완해야 할 과제를 3차례에 걸쳐 심층 기획으로 짚어봅니다.

첫번 째 순서로 꼬일대로 꼬여버린 가족 관계를 어떻게 풀 수 있는지 안서연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딸 죽기 전에 아버지 호적에만 놓게 만들어주세요. 아버지, 소원이에요."]

올해 74살이 된 이순열 할머니는 아버지 얼굴을 본 적 없습니다.

4·3의 광풍이 몰아치던 1948년 이 할머니가 태어나던 날, 아버지가 총살당했기 때문입니다.

5살 무렵 작은 아버지 호적에 오른 뒤, 고아처럼 살아온 일평생.

이제라도 바로잡고 싶어 아버지 무덤 속 유해로 유전자 대조까지 했지만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이순열/4·3 희생자 유족 : "20가지에서 4가지가 틀렸대요. 그래서 (또) 하라고 해도 또 그걸(무덤을) 팔 수가 없어 가지고."]

4·3 희생자들에게 보상이 이뤄지게 됐지만,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한 이들에겐 남의 일입니다.

가족관계를 바로잡기 위해선 DNA 검사를 통해 친자 관계를 증명하는 '인지청구 소송'을 거쳐야 하는데, 유해 부식이 심해 분석이 쉽지 않고, 부모가 행방불명돼 시신이 없으면 시도조차 해볼 수 없습니다.

증언에 의한 입증, '인우보증'을 간절히 바라는 이윱니다.

인우보증이란, 이웃과 친구가 특정 사실에 대해 신원 보증을 서준다는 뜻입니다.

반세기도 넘어 과학적 증거 제출이 어렵다보니 관련자 진술만으로도 친자관계를 인정해달라는 겁니다.

[강병삼/변호사 : "실제로는 사촌이지만 현재 가족관계등록부에는 형제로 기재돼 있는, 그런 분들이 증언을 해주거나 확인서면을 써주거나."]

4·3처럼 국가 폭력의 아픔을 겪은 광주에서는 인우보증이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1980년, 11살 때 집에 쳐들어온 군인들의 폭행으로 후유증에 시달려온 박순범 씨.

30여 년이 지나서야 뇌혈관 문제를 알게 돼 보상을 신청했지만, 5·18 피해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탈락했습니다.

하지만 초등학교 은사 증언을 추가로 제출하면서 결과가 뒤집혔습니다.

[박순범/광주 5·18 민주화운동 유공자 : "(은사님을) 통화해서 만나 뵀었죠. '너 맞네, 맞아 너 아팠어' 자 이게 답입니다."]

심사 과정에서 관련자 진술이 얼마나 주효한 지 알 수 있는 대목인데 진술의 신빙성을 따지기 위해선 당시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는 심사위원 역할이 중요합니다.

[민병로/전 광주 5·18 민주화운동 보상심의위원회 위원 : "객관적인 증거로써의 능력을 인정할 것이냐 이 부분에 대해서는 위원회에서 나름대로 여러 자료를 보고 판정을 해야."]

광주 5·18처럼 제주 4·3도 중앙위원회에 보상분과위원회가 꾸려졌습니다.

위원회는 보상금 지급 결정뿐 아니라, 4·3 피해로 인해 사실과 다르게 기록된 가족관계등록부를 정정할 수 있습니다.

4·3 당시 호적이 불탔을 경우에만 정정할 수 있도록 한 기존 법에서 나아가, 전체 피해로 정정 대상을 넓힌 겁니다.

얼핏 보면 위원회 결정으로 꼬여버린 가족관계를 풀 수 있어 보이지만, 정정 대상을 희생자로 한정한다는 대법원 규칙부터 바꿔야 합니다.

[김종민/국무총리 소속 4·3중앙위원회 위원 : "대법원 규칙을 고치지 않는다면 위원회가, 아무리 4·3위원회가 힘을 쓰려고 해도 이건 불가능하다."]

국가가 74년 만에야 피해 회복에 나섰지만, 진정한 봄이 오기까지는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KBS 뉴스 안서연입니다.

촬영기자:고성호/그래픽:김민수·서경환
  • [회복-진정한 봄으로]① “본 적도 없는 아버지를 증명하라뇨”
    • 입력 2022-04-04 21:47:01
    • 수정2022-04-05 10:40:16
    뉴스9(제주)
[앵커]

제주 4·3이 74주년을 맞은 올해에야 희생자에 대한 피해 보상의 기반이 마련됐죠,

KBS는 앞으로 보상 과정에서 보완해야 할 과제를 3차례에 걸쳐 심층 기획으로 짚어봅니다.

첫번 째 순서로 꼬일대로 꼬여버린 가족 관계를 어떻게 풀 수 있는지 안서연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딸 죽기 전에 아버지 호적에만 놓게 만들어주세요. 아버지, 소원이에요."]

올해 74살이 된 이순열 할머니는 아버지 얼굴을 본 적 없습니다.

4·3의 광풍이 몰아치던 1948년 이 할머니가 태어나던 날, 아버지가 총살당했기 때문입니다.

5살 무렵 작은 아버지 호적에 오른 뒤, 고아처럼 살아온 일평생.

이제라도 바로잡고 싶어 아버지 무덤 속 유해로 유전자 대조까지 했지만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이순열/4·3 희생자 유족 : "20가지에서 4가지가 틀렸대요. 그래서 (또) 하라고 해도 또 그걸(무덤을) 팔 수가 없어 가지고."]

4·3 희생자들에게 보상이 이뤄지게 됐지만,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한 이들에겐 남의 일입니다.

가족관계를 바로잡기 위해선 DNA 검사를 통해 친자 관계를 증명하는 '인지청구 소송'을 거쳐야 하는데, 유해 부식이 심해 분석이 쉽지 않고, 부모가 행방불명돼 시신이 없으면 시도조차 해볼 수 없습니다.

증언에 의한 입증, '인우보증'을 간절히 바라는 이윱니다.

인우보증이란, 이웃과 친구가 특정 사실에 대해 신원 보증을 서준다는 뜻입니다.

반세기도 넘어 과학적 증거 제출이 어렵다보니 관련자 진술만으로도 친자관계를 인정해달라는 겁니다.

[강병삼/변호사 : "실제로는 사촌이지만 현재 가족관계등록부에는 형제로 기재돼 있는, 그런 분들이 증언을 해주거나 확인서면을 써주거나."]

4·3처럼 국가 폭력의 아픔을 겪은 광주에서는 인우보증이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1980년, 11살 때 집에 쳐들어온 군인들의 폭행으로 후유증에 시달려온 박순범 씨.

30여 년이 지나서야 뇌혈관 문제를 알게 돼 보상을 신청했지만, 5·18 피해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탈락했습니다.

하지만 초등학교 은사 증언을 추가로 제출하면서 결과가 뒤집혔습니다.

[박순범/광주 5·18 민주화운동 유공자 : "(은사님을) 통화해서 만나 뵀었죠. '너 맞네, 맞아 너 아팠어' 자 이게 답입니다."]

심사 과정에서 관련자 진술이 얼마나 주효한 지 알 수 있는 대목인데 진술의 신빙성을 따지기 위해선 당시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는 심사위원 역할이 중요합니다.

[민병로/전 광주 5·18 민주화운동 보상심의위원회 위원 : "객관적인 증거로써의 능력을 인정할 것이냐 이 부분에 대해서는 위원회에서 나름대로 여러 자료를 보고 판정을 해야."]

광주 5·18처럼 제주 4·3도 중앙위원회에 보상분과위원회가 꾸려졌습니다.

위원회는 보상금 지급 결정뿐 아니라, 4·3 피해로 인해 사실과 다르게 기록된 가족관계등록부를 정정할 수 있습니다.

4·3 당시 호적이 불탔을 경우에만 정정할 수 있도록 한 기존 법에서 나아가, 전체 피해로 정정 대상을 넓힌 겁니다.

얼핏 보면 위원회 결정으로 꼬여버린 가족관계를 풀 수 있어 보이지만, 정정 대상을 희생자로 한정한다는 대법원 규칙부터 바꿔야 합니다.

[김종민/국무총리 소속 4·3중앙위원회 위원 : "대법원 규칙을 고치지 않는다면 위원회가, 아무리 4·3위원회가 힘을 쓰려고 해도 이건 불가능하다."]

국가가 74년 만에야 피해 회복에 나섰지만, 진정한 봄이 오기까지는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KBS 뉴스 안서연입니다.

촬영기자:고성호/그래픽:김민수·서경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