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어리·절름발이’…장애인 혐오표현 “처벌은 쉽지 않아”

입력 2022.04.25 (17:03) 수정 2022.04.25 (17:04)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최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시위 등을 계기로 '장애인 혐오표현' 논란이 적지 않습니다.

한 장애인 유튜버는 구독자 10만 명이 넘는 인기 채널이지만 장애를 비하하는 도 넘는 악성 댓글에 결국 고소까지 결심했습니다. 자신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전장연 시위가 비난의 화살로 돌아온 겁니다.

'장애인 혐오표현'의 현실을 짚어봤습니다.

■ 장애인 유튜버 향한 악성 댓글에…"결국 고소"

뇌병변 장애를 앓고 있는 유튜버 곽경민 씨는 2019년 1월부터 유튜브를 통해 노래와 일상을 공유하며 사람들과 소통해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전장연 시위로 인한 장애인 비난 여파가 그에게까지 확산했습니다. 부모님을 성희롱하는 내용은 물론 살해 협박까지 이어져 일상 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결국, 지난 14일 곽경민 씨는 고소장을 접수했습니다. 곽 씨는 “사실 좀 마음이 무겁다. 자신이 내뱉은 말에는 책임을 져야 하지만 저 또한 누군가의 인생을 흔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다만 기사를 통해 널리 알려져서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 같은 결정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 '무심코' 쓰는 장애인 혐오표현도 있다

꿀 먹은 벙어리, 외눈박이, 절름발이, 정신분열...

무심코 사용하는 이 말들은 모두 장애인을 비하하는 표현입니다. 이 같은 표현은 장애를 가진 당사자에게는 상처가 되지만 일반 시민들은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기도 합니다.

재판부는 지난 15일 이 말들을 장애인 혐오표현으로 인정했습니다.

전·현직 국회의원들은 2020년 6월부터 2021년 3월까지 SNS와 기자회견, 상임위원회 발언, 논평 등에서 "꿀 먹은 벙어리", "외눈박이 대통령", "정책 수단이 절름발이가 된다", "외교 문제에서 우리 정부는 정신분열적" 등의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이에 장애인들이 지난해 장애인의날(4월 20일)에 장애인 비하 발언을 한 의원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겁니다. 법원은 장애 특성을 비하의 목적으로 사용한 국회의원들의 발언은 혐오표현에 해당하지만, 손해배상을 물어야 할 정도의 책임은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최근 KBS는 〈농담이었다고요?…이런 게 ‘혐오표현’입니다〉 기사를 통해 우리 생활에서 오가는 혐오표현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이 중 "장애인은 착해", "불쌍한 장애인분들 도와드려야죠"처럼 좋은 의도를 갖고 한 말도 장애인을 혐오하는 표현이 될 수 있었습니다.


<홍성수 /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

혐오와 차별을 하지 않는다는 건 말 그대로 '동등하게 대한다는 것'이거든요. 모욕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건 당연히 문제가 되지만, 불필요하게 보호나 동정의 대상으로 보는 것도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는 게 아닐 수 있고요. 실제로 보호와 동정의 대상으로만 본다면 무기력하고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이미지가 고착화 돼서 평등한 주체로 인정받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홍 교수는 장애인 혐오표현이 단순히 말로만 그치는 것이 아닌 실제로 사회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장애인 혐오표현은 장애인 차별 금지에 대한 정당성을 훼손하거나 장애인을 차별 혹은 혐오해도 되는 분위기로 이어진다는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이로 인해 다른 사람들도 장애인 차별에 동참하거나 무감각해지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홍 교수는 설명했습니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장애인이 온라인에서 장애인 혐오표현을 경험했다고 답한 비율이 68.9%로 나타났습니다. 10명 중 7명의 장애인이 온라인에서 혐오 표현을 경험한 겁니다.

■ 장애인 혐오표현 넘쳐나지만…"처벌은 쉽지 않아"

이처럼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표현이 늘고 있지만, 처벌은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법원은 지난 15일 '꿀 먹은 벙어리, 절름발이, 외눈박이'와 같은 표현들이 장애 특성을 비하의 목적으로 사용한 국회의원들의 발언은 혐오표현에 해당하지만, 손해배상을 물어야 할 정도의 책임은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이러한 표현은 매우 부적절하다"며 "다만 장애인들을 상대로 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당시 상황과 경위를 고려하면 장애인 비하 표현이 곧바로 장애인들에 대한 기존 사회적 평가를 근본적으로 변동시킬 것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했습니다.

홍 교수는 장애인 혐오표현을 근절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으로 "혐오표현이 사회에서 설 자리를 없게 만드는 것, 즉 자연스럽게 퇴출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어서 적극적인 조치도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현행 장애인차별금지법상으로는 '악의성'이 인정돼야 처벌할 수 있지만 이를 입증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장애인 혐오 발언 처벌 요건인 장애인차별금지법 1~4호를 골고루 갖추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9조(차별행위)
①이 법에서 금지한 차별행위를 행하고 그 행위가 악의적인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 법원은 차별을 한 자에 대하여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②제1항에서 악의적이라 함은 다음 각 호의 사항을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개정 2017. 12. 19.>
1. 차별의 고의성
2. 차별의 지속성 및 반복성
3. 차별 피해자에 대한 보복성
4. 차별 피해의 내용 및 규모

이를 위해 장애인권법센터 김예원 변호사는 "실질적인 처벌이 이뤄지기 위해선 강화된 처벌 요건들이 완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가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와 동일하게 처벌되는 데에 그치지 않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벙어리·절름발이’…장애인 혐오표현 “처벌은 쉽지 않아”
    • 입력 2022-04-25 17:03:47
    • 수정2022-04-25 17:04:13
    취재K

최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시위 등을 계기로 '장애인 혐오표현' 논란이 적지 않습니다.

한 장애인 유튜버는 구독자 10만 명이 넘는 인기 채널이지만 장애를 비하하는 도 넘는 악성 댓글에 결국 고소까지 결심했습니다. 자신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전장연 시위가 비난의 화살로 돌아온 겁니다.

'장애인 혐오표현'의 현실을 짚어봤습니다.

■ 장애인 유튜버 향한 악성 댓글에…"결국 고소"

뇌병변 장애를 앓고 있는 유튜버 곽경민 씨는 2019년 1월부터 유튜브를 통해 노래와 일상을 공유하며 사람들과 소통해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전장연 시위로 인한 장애인 비난 여파가 그에게까지 확산했습니다. 부모님을 성희롱하는 내용은 물론 살해 협박까지 이어져 일상 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결국, 지난 14일 곽경민 씨는 고소장을 접수했습니다. 곽 씨는 “사실 좀 마음이 무겁다. 자신이 내뱉은 말에는 책임을 져야 하지만 저 또한 누군가의 인생을 흔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다만 기사를 통해 널리 알려져서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 같은 결정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 '무심코' 쓰는 장애인 혐오표현도 있다

꿀 먹은 벙어리, 외눈박이, 절름발이, 정신분열...

무심코 사용하는 이 말들은 모두 장애인을 비하하는 표현입니다. 이 같은 표현은 장애를 가진 당사자에게는 상처가 되지만 일반 시민들은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기도 합니다.

재판부는 지난 15일 이 말들을 장애인 혐오표현으로 인정했습니다.

전·현직 국회의원들은 2020년 6월부터 2021년 3월까지 SNS와 기자회견, 상임위원회 발언, 논평 등에서 "꿀 먹은 벙어리", "외눈박이 대통령", "정책 수단이 절름발이가 된다", "외교 문제에서 우리 정부는 정신분열적" 등의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이에 장애인들이 지난해 장애인의날(4월 20일)에 장애인 비하 발언을 한 의원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겁니다. 법원은 장애 특성을 비하의 목적으로 사용한 국회의원들의 발언은 혐오표현에 해당하지만, 손해배상을 물어야 할 정도의 책임은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최근 KBS는 〈농담이었다고요?…이런 게 ‘혐오표현’입니다〉 기사를 통해 우리 생활에서 오가는 혐오표현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이 중 "장애인은 착해", "불쌍한 장애인분들 도와드려야죠"처럼 좋은 의도를 갖고 한 말도 장애인을 혐오하는 표현이 될 수 있었습니다.


<홍성수 /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

혐오와 차별을 하지 않는다는 건 말 그대로 '동등하게 대한다는 것'이거든요. 모욕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건 당연히 문제가 되지만, 불필요하게 보호나 동정의 대상으로 보는 것도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는 게 아닐 수 있고요. 실제로 보호와 동정의 대상으로만 본다면 무기력하고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이미지가 고착화 돼서 평등한 주체로 인정받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홍 교수는 장애인 혐오표현이 단순히 말로만 그치는 것이 아닌 실제로 사회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장애인 혐오표현은 장애인 차별 금지에 대한 정당성을 훼손하거나 장애인을 차별 혹은 혐오해도 되는 분위기로 이어진다는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이로 인해 다른 사람들도 장애인 차별에 동참하거나 무감각해지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홍 교수는 설명했습니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장애인이 온라인에서 장애인 혐오표현을 경험했다고 답한 비율이 68.9%로 나타났습니다. 10명 중 7명의 장애인이 온라인에서 혐오 표현을 경험한 겁니다.

■ 장애인 혐오표현 넘쳐나지만…"처벌은 쉽지 않아"

이처럼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표현이 늘고 있지만, 처벌은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법원은 지난 15일 '꿀 먹은 벙어리, 절름발이, 외눈박이'와 같은 표현들이 장애 특성을 비하의 목적으로 사용한 국회의원들의 발언은 혐오표현에 해당하지만, 손해배상을 물어야 할 정도의 책임은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이러한 표현은 매우 부적절하다"며 "다만 장애인들을 상대로 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당시 상황과 경위를 고려하면 장애인 비하 표현이 곧바로 장애인들에 대한 기존 사회적 평가를 근본적으로 변동시킬 것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했습니다.

홍 교수는 장애인 혐오표현을 근절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으로 "혐오표현이 사회에서 설 자리를 없게 만드는 것, 즉 자연스럽게 퇴출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어서 적극적인 조치도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현행 장애인차별금지법상으로는 '악의성'이 인정돼야 처벌할 수 있지만 이를 입증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장애인 혐오 발언 처벌 요건인 장애인차별금지법 1~4호를 골고루 갖추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9조(차별행위)
①이 법에서 금지한 차별행위를 행하고 그 행위가 악의적인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 법원은 차별을 한 자에 대하여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②제1항에서 악의적이라 함은 다음 각 호의 사항을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개정 2017. 12. 19.>
1. 차별의 고의성
2. 차별의 지속성 및 반복성
3. 차별 피해자에 대한 보복성
4. 차별 피해의 내용 및 규모

이를 위해 장애인권법센터 김예원 변호사는 "실질적인 처벌이 이뤄지기 위해선 강화된 처벌 요건들이 완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가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와 동일하게 처벌되는 데에 그치지 않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