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빈도 폭우 내리는데…하수도 배수량은 10년 빈도

입력 2022.08.10 (14:11) 수정 2022.08.10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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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서울 강남구 대치사거리의 배수구가 역류한 뒤, 뚜껑이 유실된 모습.9일 서울 강남구 대치사거리의 배수구가 역류한 뒤, 뚜껑이 유실된 모습.

수도권을 중심으로 중부지방에 내린 집중호우는 큰 피해를 남겼습니다. 특히 건물이 밀집하고 도로가 포장된 서울 강남에서 인명피해와 재산 피해가 집중됐습니다.
빗물이 빠져야할 하수도가 도리어 역류하면서 도로가 물에 잠겼고 운행하던 차들은 침수됐습니다. 빗물이 도로 위를 강처럼 흘러내리면서 저지대 주거지와 지하상가가 침수돼 인명피해도 발생했습니다.

배수 시설이 기록적인 폭우를 감당하지 못하면서 침수 피해가 발생하는 도시 홍수가 벌어진 겁니다.

8일 서울 송파구청사거리 인근 도로의 하수도가 역류해 물이 솟구치는 모습8일 서울 송파구청사거리 인근 도로의 하수도가 역류해 물이 솟구치는 모습

■ 서울시 "150년 빈도 강우는 천재지변"

서울시는 이번 수해가 천재지변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8일 서울의 강수량이 시간당 116mm로, 150년 빈도에 해당하는 기록적 폭우라고 설명했습니다. 동작구에는 시간당 141.5mm의 비가 내려 500년 이상 빈도의 강우로 기록되기도 했습니다.

서울시는 행정력으로 대비할 수 있는 규모를 넘어선 강수량으로 인해 불가피한 수해가 발생했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면서 강남역 일대는 하수 처리 용량을 지난 10년간 높여 시간당 85mm, 20년 빈도의 강우를 감당할 수 있도록 증설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30년 빈도 강우에 해당하는 시간당 95mm를 처리할 수 있는 수준으로 증설을 추진중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강남역은 주변보다 낮은 저지대로 상습 침수지역이어서, 서울시가 집중 관리하는 침수취약지역 34곳 중 하나입니다.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다른 지역들은 전국에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중앙정부의 기준을 따르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같은 시설 규모 기준은 기후 변화를 체감하는 현실과 거리가 있습니다.

8일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하수도가 역류해 도로가 물에 잠긴 모습8일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하수도가 역류해 도로가 물에 잠긴 모습

■ 10년 빈도 강우에 맞춘 하수도…폭우마다 '역류'

하수도 역류로 인한 도시 홍수를 예방하기 위한 시설 기준은 과거에 관측된 강우량을 빈도로 해석한 설계 빈도로 정해져 있습니다.

환경부의 '하수도 설계기준'을 보면, 지선관로는 10년 빈도의 강우를 견딜 수 있으면 되고, 간선관로와 빗물펌프장은 30년 빈도의 강우를 처리하도록 최소한의 기준을 두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강우특성의 변화 추세, 방재상 필요성, 지역의 특성을 반영해 지선관로는 30년, 간선관로와 빗물펌프장은 50년 이상 빈도의 강우를 처리할 수 있도록 올해 기준이 개정됐지만, 강행 규정의 기준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임의 규정을 덧붙이는데 그쳤습니다.

하수도의 설계빈도는 다른 홍수 예방시설의 기준과 비교하면 더욱 취약해 보입니다. 2020년 섬진강 유역에 500년 빈도의 집중호우가 내려 침수 피해가 발생하자, 정부는 하천의 설계빈도를 높이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국가하천의 설계빈도를 200~500년으로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을 뿐, 도시 지역의 소하천이나 하수도는 기준 강화 대상에서 빠졌습니다.


전문가들은 과거의 강우량을 기준으로 한 설계 빈도로는 도시 홍수 예방이 어렵다고 지적합니다. 서울시립대 환경공학부 김현욱 교수는 기존에 매립된 하수도를 30년 빈도 강우량 이상으로 확장하는 장기 계획을 세우되, 최신의 강우 빈도를 수시로 반영해 계획을 수정해나가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또, 하수도 교체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만큼 기존 하수도의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서울의 하수도는 대부분 60년대 설치돼 상당히 무질서하게 분포하는데다, 하수와 우수가 합류하는 방식이어서 내부 상태가 좋지 못하다는 겁니다.

■ 서울 절반은 불투수면…배수 용량보다 적은 비에도 침수 위험↑

용량이 부족한 배수 시설에 더해, 불투수 면적의 증가도 서울에서 도시홍수의 위험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땅으로 흡수되지 못한 빗물은 저지대로 흘러들어 침수 피해를 유발합니다. 불투수 면적의 비율이 높을수록 빗물이 배수되는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는데, 이런 경우 하수도의 설계빈도보다 적은 량의 비가 내려도 침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전국에서 불투수면적이 가장 높은 곳은 서울입니다. 도시 면적의 절반 이상이 빗물을 흡수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서울에서도 불투수 면적이 가장 넓은 자치구는 강남구로, 전체 면적 39.5 ㎢ 가운데 22.45 ㎢가 불투수면적입니다. 침수된 지하상가와 하수구 등에서 4명이 실종된 서초구는 불투수 면적이 18㎢로 서울에서 4번째로 넓습니다.

이 같은 수해의 특성은 이번 집중호우뿐만이 아닙니다. 서울시 산하 연구기관인 서울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2010년 이후 발생한 서울의 수해는 모두 배수 불량에 따른 침수로 파악됐습니다. 하천의 범람으로 피해가 발생한 적은 없습니다. 피해액 역시 서초구, 관악구, 양천구 등 한강 이남 지역에서 컸습니다.

반복되는 침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장기 계획과 지속적인 예산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김현욱 교수는 "하수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시설이기 때문에 민원성 사업 등에 비해 예산의 우선순위가 밀리곤 한다"면서, "장기 계획에 따라 배정된 예산은 나중에 삭감하지 않도록 하고, 처음부터 물가 상승 등을 이유로 공사가 지연되지 않도록 예산을 배정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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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년 빈도 폭우 내리는데…하수도 배수량은 10년 빈도
    • 입력 2022-08-10 14:11:29
    • 수정2022-08-10 14:54:26
    취재K
9일 서울 강남구 대치사거리의 배수구가 역류한 뒤, 뚜껑이 유실된 모습.
수도권을 중심으로 중부지방에 내린 집중호우는 큰 피해를 남겼습니다. 특히 건물이 밀집하고 도로가 포장된 서울 강남에서 인명피해와 재산 피해가 집중됐습니다.
빗물이 빠져야할 하수도가 도리어 역류하면서 도로가 물에 잠겼고 운행하던 차들은 침수됐습니다. 빗물이 도로 위를 강처럼 흘러내리면서 저지대 주거지와 지하상가가 침수돼 인명피해도 발생했습니다.

배수 시설이 기록적인 폭우를 감당하지 못하면서 침수 피해가 발생하는 도시 홍수가 벌어진 겁니다.

8일 서울 송파구청사거리 인근 도로의 하수도가 역류해 물이 솟구치는 모습
■ 서울시 "150년 빈도 강우는 천재지변"

서울시는 이번 수해가 천재지변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8일 서울의 강수량이 시간당 116mm로, 150년 빈도에 해당하는 기록적 폭우라고 설명했습니다. 동작구에는 시간당 141.5mm의 비가 내려 500년 이상 빈도의 강우로 기록되기도 했습니다.

서울시는 행정력으로 대비할 수 있는 규모를 넘어선 강수량으로 인해 불가피한 수해가 발생했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면서 강남역 일대는 하수 처리 용량을 지난 10년간 높여 시간당 85mm, 20년 빈도의 강우를 감당할 수 있도록 증설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30년 빈도 강우에 해당하는 시간당 95mm를 처리할 수 있는 수준으로 증설을 추진중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강남역은 주변보다 낮은 저지대로 상습 침수지역이어서, 서울시가 집중 관리하는 침수취약지역 34곳 중 하나입니다.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다른 지역들은 전국에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중앙정부의 기준을 따르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같은 시설 규모 기준은 기후 변화를 체감하는 현실과 거리가 있습니다.

8일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하수도가 역류해 도로가 물에 잠긴 모습
■ 10년 빈도 강우에 맞춘 하수도…폭우마다 '역류'

하수도 역류로 인한 도시 홍수를 예방하기 위한 시설 기준은 과거에 관측된 강우량을 빈도로 해석한 설계 빈도로 정해져 있습니다.

환경부의 '하수도 설계기준'을 보면, 지선관로는 10년 빈도의 강우를 견딜 수 있으면 되고, 간선관로와 빗물펌프장은 30년 빈도의 강우를 처리하도록 최소한의 기준을 두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강우특성의 변화 추세, 방재상 필요성, 지역의 특성을 반영해 지선관로는 30년, 간선관로와 빗물펌프장은 50년 이상 빈도의 강우를 처리할 수 있도록 올해 기준이 개정됐지만, 강행 규정의 기준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임의 규정을 덧붙이는데 그쳤습니다.

하수도의 설계빈도는 다른 홍수 예방시설의 기준과 비교하면 더욱 취약해 보입니다. 2020년 섬진강 유역에 500년 빈도의 집중호우가 내려 침수 피해가 발생하자, 정부는 하천의 설계빈도를 높이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국가하천의 설계빈도를 200~500년으로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을 뿐, 도시 지역의 소하천이나 하수도는 기준 강화 대상에서 빠졌습니다.


전문가들은 과거의 강우량을 기준으로 한 설계 빈도로는 도시 홍수 예방이 어렵다고 지적합니다. 서울시립대 환경공학부 김현욱 교수는 기존에 매립된 하수도를 30년 빈도 강우량 이상으로 확장하는 장기 계획을 세우되, 최신의 강우 빈도를 수시로 반영해 계획을 수정해나가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또, 하수도 교체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만큼 기존 하수도의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서울의 하수도는 대부분 60년대 설치돼 상당히 무질서하게 분포하는데다, 하수와 우수가 합류하는 방식이어서 내부 상태가 좋지 못하다는 겁니다.

■ 서울 절반은 불투수면…배수 용량보다 적은 비에도 침수 위험↑

용량이 부족한 배수 시설에 더해, 불투수 면적의 증가도 서울에서 도시홍수의 위험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땅으로 흡수되지 못한 빗물은 저지대로 흘러들어 침수 피해를 유발합니다. 불투수 면적의 비율이 높을수록 빗물이 배수되는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는데, 이런 경우 하수도의 설계빈도보다 적은 량의 비가 내려도 침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전국에서 불투수면적이 가장 높은 곳은 서울입니다. 도시 면적의 절반 이상이 빗물을 흡수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서울에서도 불투수 면적이 가장 넓은 자치구는 강남구로, 전체 면적 39.5 ㎢ 가운데 22.45 ㎢가 불투수면적입니다. 침수된 지하상가와 하수구 등에서 4명이 실종된 서초구는 불투수 면적이 18㎢로 서울에서 4번째로 넓습니다.

이 같은 수해의 특성은 이번 집중호우뿐만이 아닙니다. 서울시 산하 연구기관인 서울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2010년 이후 발생한 서울의 수해는 모두 배수 불량에 따른 침수로 파악됐습니다. 하천의 범람으로 피해가 발생한 적은 없습니다. 피해액 역시 서초구, 관악구, 양천구 등 한강 이남 지역에서 컸습니다.

반복되는 침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장기 계획과 지속적인 예산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김현욱 교수는 "하수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시설이기 때문에 민원성 사업 등에 비해 예산의 우선순위가 밀리곤 한다"면서, "장기 계획에 따라 배정된 예산은 나중에 삭감하지 않도록 하고, 처음부터 물가 상승 등을 이유로 공사가 지연되지 않도록 예산을 배정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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