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마가 할퀸 ‘반지하’의 비극

입력 2022.08.10 (21:15) 수정 2022.08.10 (21:25)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빽빽한 초고층 아파트 사이로 고개를 숙이면 바닥과 맞닿은 곳에 창문이 뚫린 '반지하’주택이 눈에 들어옵니다.

영화 <기생충>에서 주인공 가족이 사는 곳으로, 외신들은 우리발음 그대로 이 곳을 표현했습니다.

영화엔 비가 많이 와 집에 물이 들어차면서 주인공 가족이 물을 퍼내는 장면도 나오는데,

"영화보다 현실은 더 비극이었다"

엊그제(8일) 폭우로 서울 신림동 반지하주택에서 일어난 비극적 결말을 영국 BBC는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반지하에서 한꺼번에 참변을 당한 일가족의 가슴아픈 사연을 황현규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천장까지 물이 들어찼던 반지하 집에는 아직도 처참한 흔적들이 남아있습니다.

탈출하지 못한 일가족 세 명이 방안에서 숨진 채 발견된 곳입니다.

기록적인 폭우에 반지하는 순식간에 잠겼고, 대피 기회는 일찌감치 차단됐습니다.

차오르는 물속에서 문은 바깥으로 열리지 않았고, 창살을 뜯어내려던 이웃들의 노력도 힘에 부쳤습니다.

[1층 주민/음성변조 : "이미 동네 전체가 거의 허리 밑까지 (비가) 다 차 있는 상태여서 지하 일 층에서 이렇게 나올 수 있는 게 방법이 없어요."]

삼대가 살던 집이었습니다.

외출 중이던 70대 할머니를 제외하고, 40대 자매와, 13살 초등학생이 변을 당했습니다.

119는 연결이 되지 않았고, 급한 대로 직장 동료에게 전화로 구조를 요청했습니다.

[김성원/직장동료 : "(동료가 도착했을 때) 그 중(방범창)의 한 곳이 뜯어졌고, 거기에 손을 집어넣을 때 그 시점에 이미 천장까지 물이 차올라 있었던 (상황이었어요.)"]

자매 중 동생이 생계를 책임지는 집이었습니다.

직장에 다니며 어머니를 모시고, 발달장애가 있는 언니와 초등학생 딸까지 돌봤던 가장이었습니다.

이 집에는 7년 전 입주했는데, 20년 넘게 모은 월급을 털었습니다.

직장과는 1시간 거리였는데도, 이 집을 택한 건, 장애가 있는 언니가 다니던 시설과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최자현/직장 동료 : "이사를 못 간 건 언니의 생활 반경이 거기에 다 잡혀 있었기 때문이에요. 가장으로서 본인이 항상 책임을 져야 했기 때문에..."]

수해가 발생할 때마다 이런 반지하 주택들이 먼저 화를 입습니다.

자연재난의 불가항력성도 있지만, '시설'의 열악함 또한, 원인이 됩니다.

[김진유/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 : "반지하는 기본적으로 통풍, 환기, 침수나 화재에 굉장히 취약한 구조기 때문에 정부나 시나 보조금을 줘서 차수문(홍수 시 물 막는 문)을 설치하게 하는 게..."]

전국의 지하·반지하 가구는 32만 호.

정부는, 영화 '기생충'이 한창 화제일 때 일제 점검을 약속한 바 있지만, 시간이 지나고, 없던 일처럼 됐습니다.

KBS 뉴스 황현규입니다.

촬영기자:김경민/영상편집:서정혁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수마가 할퀸 ‘반지하’의 비극
    • 입력 2022-08-10 21:15:01
    • 수정2022-08-10 21:25:29
    뉴스 9
[앵커]

빽빽한 초고층 아파트 사이로 고개를 숙이면 바닥과 맞닿은 곳에 창문이 뚫린 '반지하’주택이 눈에 들어옵니다.

영화 <기생충>에서 주인공 가족이 사는 곳으로, 외신들은 우리발음 그대로 이 곳을 표현했습니다.

영화엔 비가 많이 와 집에 물이 들어차면서 주인공 가족이 물을 퍼내는 장면도 나오는데,

"영화보다 현실은 더 비극이었다"

엊그제(8일) 폭우로 서울 신림동 반지하주택에서 일어난 비극적 결말을 영국 BBC는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반지하에서 한꺼번에 참변을 당한 일가족의 가슴아픈 사연을 황현규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천장까지 물이 들어찼던 반지하 집에는 아직도 처참한 흔적들이 남아있습니다.

탈출하지 못한 일가족 세 명이 방안에서 숨진 채 발견된 곳입니다.

기록적인 폭우에 반지하는 순식간에 잠겼고, 대피 기회는 일찌감치 차단됐습니다.

차오르는 물속에서 문은 바깥으로 열리지 않았고, 창살을 뜯어내려던 이웃들의 노력도 힘에 부쳤습니다.

[1층 주민/음성변조 : "이미 동네 전체가 거의 허리 밑까지 (비가) 다 차 있는 상태여서 지하 일 층에서 이렇게 나올 수 있는 게 방법이 없어요."]

삼대가 살던 집이었습니다.

외출 중이던 70대 할머니를 제외하고, 40대 자매와, 13살 초등학생이 변을 당했습니다.

119는 연결이 되지 않았고, 급한 대로 직장 동료에게 전화로 구조를 요청했습니다.

[김성원/직장동료 : "(동료가 도착했을 때) 그 중(방범창)의 한 곳이 뜯어졌고, 거기에 손을 집어넣을 때 그 시점에 이미 천장까지 물이 차올라 있었던 (상황이었어요.)"]

자매 중 동생이 생계를 책임지는 집이었습니다.

직장에 다니며 어머니를 모시고, 발달장애가 있는 언니와 초등학생 딸까지 돌봤던 가장이었습니다.

이 집에는 7년 전 입주했는데, 20년 넘게 모은 월급을 털었습니다.

직장과는 1시간 거리였는데도, 이 집을 택한 건, 장애가 있는 언니가 다니던 시설과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최자현/직장 동료 : "이사를 못 간 건 언니의 생활 반경이 거기에 다 잡혀 있었기 때문이에요. 가장으로서 본인이 항상 책임을 져야 했기 때문에..."]

수해가 발생할 때마다 이런 반지하 주택들이 먼저 화를 입습니다.

자연재난의 불가항력성도 있지만, '시설'의 열악함 또한, 원인이 됩니다.

[김진유/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 : "반지하는 기본적으로 통풍, 환기, 침수나 화재에 굉장히 취약한 구조기 때문에 정부나 시나 보조금을 줘서 차수문(홍수 시 물 막는 문)을 설치하게 하는 게..."]

전국의 지하·반지하 가구는 32만 호.

정부는, 영화 '기생충'이 한창 화제일 때 일제 점검을 약속한 바 있지만, 시간이 지나고, 없던 일처럼 됐습니다.

KBS 뉴스 황현규입니다.

촬영기자:김경민/영상편집:서정혁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