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건’이 소환한 21년 전, ‘그날의 기억’

입력 2022.08.30 (19:11) 수정 2022.08.30 (19:51)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2001년 12월 21일, 경찰이 ‘국민은행 강도살인 사건’ 현장에서 수사를 벌이는 모습.2001년 12월 21일, 경찰이 ‘국민은행 강도살인 사건’ 현장에서 수사를 벌이는 모습.

■ 21년 전 그날, 도심에 벌어진 충격의 '은행 강도살인 사건'

2001년 12월 21일 오전 10시쯤, 대전시 서구의 국민은행 둔산지점 지하 1층 주차장에서 현금 수송차가 습격당하는 은행 강도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복면을 쓴 2인조 강도는 현금을 옮기던 국민은행 현금 수납과장 46살 김 모 씨를 총으로 쏜 뒤, 차량에 있던 영업자금 6억 원 중 현금 3억 원이 든 가방 1개를 빼앗아 달아났습니다.

가슴과 다리 등에 총을 맞은 김 과장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총격 한 시간 만에 숨졌습니다.

함께 있던 청원경찰은 지하 주차장에 도착해 현금 가방을 내리는 순간 강도가 나타나 총기를 들이대고 위협하면서, 김 과장이 반항하자 실탄 3발을 쐈다고 말했습니다.

강도에 사용된 총은 같은 해 10월 15일 새벽, 대전시 송촌동(현 비래동) 골목길에서 동부경찰서 소속 경찰이 빼앗긴 38구경 권총으로 추정됐습니다.

이들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에서 훔쳐온 검은색 차량을 몰아 곧장 달아났고, 경찰이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지만, 범인을 잡지 못하면서, 이 사건은 대전 지역의 대표 미제사건으로 남아있었습니다.

■ 21년 전 현장 취재기자의 '그날의 기억'

충격적 은행 강도살인 사건은 당시 취재에 나섰던 기자에게도 사진처럼 선명히 남아있었습니다.
사건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했던 KBS 서영준 기자에게 '그날의 기억'을 들어봤습니다.

KBS서영준 기자(당시 현장 취재기자)
"그날 시청에 있었는데, 믿을 수 없는 말을 들었어요. 은행 현금 수송차가 털리고,총격으로 사람이 죽는 건 그때도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거든요.
현장에 가니까 바닥에 핏자국이 널려있고, 경찰은 경찰 통제선도 못 칠 정도로 정신이 없었고, 범행에 사용된 차를 못 찾은 데다 주변에 CCTV가 잘 없을 때니까….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고, 현금 수송차 동선이나 현금 내리는 시간 같은걸
정확히 알고 있어서 내부자 소행이나 공모가 아니겠냐는 얘기가 나왔어요.
금액으로 봐도 당시 3억 원이면 (현재 시세가 15억 원인) 크로바 아파트를 2채 살 수 있는 돈이었으니까 엄청 큰 사건이었고.

경찰은 대대적으로 수사하고도 범인은커녕 범행에 사용된 총도 못 찾아서
굉장히 굴욕적인 사건으로 인식했었고…
경찰도 그렇게 큰 사건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았을까….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지금 잡았다고 하니까 깜짝 놀랐죠, 어떻게 잡았나.
당시 증거를 전혀 안 남겼는데, 놀라운 거지. 이건 과학수사의 승리다…."

■ 21년 전 발견된 '손수건'…과학수사 발전에 '핵심증거'로

당시 기자의 기억과 수사 환경을 돌아보면, 범인을 잡기가 매우 까다로웠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범인을 특정할 아무런 증거도 남지 않았고, CCTV 등 마땅한 단서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건이 벌어진 이듬해 8월, 경찰이 20대 남성 등 용의자 3명을 체포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권총 등의 직접 증거가 없는 데다 진술이 번복되면서 '증거불충분'으로 모두 풀려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이번에 잡힌 사람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과하세요!)

그러나 과학의 발전은 의미 없어 보이던 유류품을 '결정적 증거'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수사팀은 날로 발전하는 유전자 증폭 기술에 일말의 기대를 걸고 당시 차량 내부에서 발견된 '손수건'을 분석했고, 인적사항을 알 수 없는 남성의 유전자를 검출했습니다.

여기서 검출된 유전자를 다른 범죄 현장에서 확보한 유전자들과 대조하기 시작했고, 해당 유전자가 2015년 충북 불법게임장 현장에서 검출된 유전자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추적 끝에 이 유전자가 피의자 중 1명인 이정학의 것임을 밝혀냈고, 이정학의 진술을 통해 공범 이승만을 함께 검거할 수 있었습니다. 사건 발생일로부터 21년, 7천553일 만의 쾌거였습니다.

왼쪽이 52살 이승만,  오른쪽이 51살 이정학/대전경찰청은 검거된 이들의 신상공개를 결정했다.왼쪽이 52살 이승만, 오른쪽이 51살 이정학/대전경찰청은 검거된 이들의 신상공개를 결정했다.

■ 21년 전 그날 이후 유행처럼 번진 '현금수송차' 강도…실마리 찾나?

대대적인 수사에도 범인 검거에 실패한 뒤, 대전·충남에서는 2년도 안 되는 사이 5건의 현금수송차 강·절도 범행이 잇따랐습니다.

그중 범인이 검거된 사건은 2002년 3월, 충남 서산에서 40대와 20대 남성이 공기총으로 농협 현금수송 직원을 위협해 7억 3천만 원을 빼앗아 달아났던 사건이 유일합니다.

같은 해 5월에는 경부고속도로 천안휴게소 주차장에서 범인들이 현금수송차의 운전석 유리창을 깨고. 뒷자석에 있던 1억 1천여 만원을 훔쳐갔지만, 이들을 잡을 수는 없었습니다.

대전에서도 관련 범죄가 이어졌습니다.
2003년 1월에는 대전시 은행동의 한 쇼핑몰 지하주차장에서 4억 7천만 원이 실려있던 현금수송차가 통째로 사라졌고, 같은 해 9월에는 대전시 태평동 하나은행 현금인출기 앞에서 7억여 원을 실은 현금수송차가 없어졌습니다.

이 사건들의 공소시효는 2013년을 기준으로 모두 끝났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이번에 검거한 피의자들이 이 사건들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다고 보고, 수사의 끈을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연관 기사]
‘대전 국민은행 강도 살인’ 용의자 2명 21년 만에 붙잡혀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43096
범행 차량에서 나온 손수건…미제사건 해결 결정적 역할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44541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손수건’이 소환한 21년 전, ‘그날의 기억’
    • 입력 2022-08-30 19:11:08
    • 수정2022-08-30 19:51:48
    취재K
2001년 12월 21일, 경찰이 ‘국민은행 강도살인 사건’ 현장에서 수사를 벌이는 모습.
■ 21년 전 그날, 도심에 벌어진 충격의 '은행 강도살인 사건'

2001년 12월 21일 오전 10시쯤, 대전시 서구의 국민은행 둔산지점 지하 1층 주차장에서 현금 수송차가 습격당하는 은행 강도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복면을 쓴 2인조 강도는 현금을 옮기던 국민은행 현금 수납과장 46살 김 모 씨를 총으로 쏜 뒤, 차량에 있던 영업자금 6억 원 중 현금 3억 원이 든 가방 1개를 빼앗아 달아났습니다.

가슴과 다리 등에 총을 맞은 김 과장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총격 한 시간 만에 숨졌습니다.

함께 있던 청원경찰은 지하 주차장에 도착해 현금 가방을 내리는 순간 강도가 나타나 총기를 들이대고 위협하면서, 김 과장이 반항하자 실탄 3발을 쐈다고 말했습니다.

강도에 사용된 총은 같은 해 10월 15일 새벽, 대전시 송촌동(현 비래동) 골목길에서 동부경찰서 소속 경찰이 빼앗긴 38구경 권총으로 추정됐습니다.

이들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에서 훔쳐온 검은색 차량을 몰아 곧장 달아났고, 경찰이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지만, 범인을 잡지 못하면서, 이 사건은 대전 지역의 대표 미제사건으로 남아있었습니다.

■ 21년 전 현장 취재기자의 '그날의 기억'

충격적 은행 강도살인 사건은 당시 취재에 나섰던 기자에게도 사진처럼 선명히 남아있었습니다.
사건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했던 KBS 서영준 기자에게 '그날의 기억'을 들어봤습니다.

KBS서영준 기자(당시 현장 취재기자)
"그날 시청에 있었는데, 믿을 수 없는 말을 들었어요. 은행 현금 수송차가 털리고,총격으로 사람이 죽는 건 그때도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거든요.
현장에 가니까 바닥에 핏자국이 널려있고, 경찰은 경찰 통제선도 못 칠 정도로 정신이 없었고, 범행에 사용된 차를 못 찾은 데다 주변에 CCTV가 잘 없을 때니까….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고, 현금 수송차 동선이나 현금 내리는 시간 같은걸
정확히 알고 있어서 내부자 소행이나 공모가 아니겠냐는 얘기가 나왔어요.
금액으로 봐도 당시 3억 원이면 (현재 시세가 15억 원인) 크로바 아파트를 2채 살 수 있는 돈이었으니까 엄청 큰 사건이었고.

경찰은 대대적으로 수사하고도 범인은커녕 범행에 사용된 총도 못 찾아서
굉장히 굴욕적인 사건으로 인식했었고…
경찰도 그렇게 큰 사건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았을까….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지금 잡았다고 하니까 깜짝 놀랐죠, 어떻게 잡았나.
당시 증거를 전혀 안 남겼는데, 놀라운 거지. 이건 과학수사의 승리다…."

■ 21년 전 발견된 '손수건'…과학수사 발전에 '핵심증거'로

당시 기자의 기억과 수사 환경을 돌아보면, 범인을 잡기가 매우 까다로웠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범인을 특정할 아무런 증거도 남지 않았고, CCTV 등 마땅한 단서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건이 벌어진 이듬해 8월, 경찰이 20대 남성 등 용의자 3명을 체포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권총 등의 직접 증거가 없는 데다 진술이 번복되면서 '증거불충분'으로 모두 풀려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이번에 잡힌 사람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과하세요!)

그러나 과학의 발전은 의미 없어 보이던 유류품을 '결정적 증거'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수사팀은 날로 발전하는 유전자 증폭 기술에 일말의 기대를 걸고 당시 차량 내부에서 발견된 '손수건'을 분석했고, 인적사항을 알 수 없는 남성의 유전자를 검출했습니다.

여기서 검출된 유전자를 다른 범죄 현장에서 확보한 유전자들과 대조하기 시작했고, 해당 유전자가 2015년 충북 불법게임장 현장에서 검출된 유전자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추적 끝에 이 유전자가 피의자 중 1명인 이정학의 것임을 밝혀냈고, 이정학의 진술을 통해 공범 이승만을 함께 검거할 수 있었습니다. 사건 발생일로부터 21년, 7천553일 만의 쾌거였습니다.

왼쪽이 52살 이승만,  오른쪽이 51살 이정학/대전경찰청은 검거된 이들의 신상공개를 결정했다.
■ 21년 전 그날 이후 유행처럼 번진 '현금수송차' 강도…실마리 찾나?

대대적인 수사에도 범인 검거에 실패한 뒤, 대전·충남에서는 2년도 안 되는 사이 5건의 현금수송차 강·절도 범행이 잇따랐습니다.

그중 범인이 검거된 사건은 2002년 3월, 충남 서산에서 40대와 20대 남성이 공기총으로 농협 현금수송 직원을 위협해 7억 3천만 원을 빼앗아 달아났던 사건이 유일합니다.

같은 해 5월에는 경부고속도로 천안휴게소 주차장에서 범인들이 현금수송차의 운전석 유리창을 깨고. 뒷자석에 있던 1억 1천여 만원을 훔쳐갔지만, 이들을 잡을 수는 없었습니다.

대전에서도 관련 범죄가 이어졌습니다.
2003년 1월에는 대전시 은행동의 한 쇼핑몰 지하주차장에서 4억 7천만 원이 실려있던 현금수송차가 통째로 사라졌고, 같은 해 9월에는 대전시 태평동 하나은행 현금인출기 앞에서 7억여 원을 실은 현금수송차가 없어졌습니다.

이 사건들의 공소시효는 2013년을 기준으로 모두 끝났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이번에 검거한 피의자들이 이 사건들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다고 보고, 수사의 끈을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연관 기사]
‘대전 국민은행 강도 살인’ 용의자 2명 21년 만에 붙잡혀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43096
범행 차량에서 나온 손수건…미제사건 해결 결정적 역할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44541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