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1장’에서 시작…“수사 요청해도 소용 없었다”

입력 2022.08.30 (21:08) 수정 2022.08.30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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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보신 것처럼 무심코 인터넷에 올린 사진 딱 한 장이 비극의 시작이 됐습니다.

꼭 성착취 대화방이나 음란사이트가 아니어도 남의 사생활 정보를 가져다 성적으로 도가 넘는 장난을 치거나 겁주고 협박하는 일이 온라인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처벌은 더 어렵습니다.

이어서 김혜주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아온 20대 김 모 씨.

고민이 커질 때면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습니다.

[김OO/음성변조 : "우울함은 있는데, 그걸 친구들한테 갑자기 얘기할 수는 없잖아요. 우울할 때마다 거기에서 글을 썼던 것 같아요."]

그러다 몇몇과 친해졌고, 더 속 깊은 대화를 나누려고 별도의 SNS 계정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전투기'라는 별명의 이용자가 김 씨 얼굴 사진을 무단으로 가져가 익명의 단체 대화방에 올렸고, 그 아래 성희롱성 글, 이른바 '능욕 글'이 도배돼 있단 걸 알게 됐습니다.

[김OO/음성변조 : "마치 'n번방' 텔레그램처럼. 여자애들 얼굴 사진을 올려놓고 능욕하는 글을 쓰는 그게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피해자는 김 씨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인터넷에 평범한 사진을 올렸던 여성들, 미성년자도 당했습니다.

[김OO/음성변조 : "성적인 말을 엄청 쓰는데, 거기(대화방)에 미성년자도 있었고. 미성년자한테 고소를 권했어요. 근데 부모님이 아시는 게 너무 무섭다고 했고..."]

김 씨 등 피해자 3명은 가해자인 '전투기'를 고소했는데, 괴롭힘은 오히려 더 심해졌습니다.

[김OO/음성변조 : "본보기로 이제 제 전화번호 알아내가지고 퍼뜨리고. 계속 모르는 사람한테 연락 오고, 카톡 친구에 모르는 사람들이 뜨니까 그 자체가 공포였어요."]

단체 대화방 등 '사이버 공간에서 이뤄지는 성적 괴롭힘'.

성폭력 피해 지원 단체의 상담 통계를 살펴봤더니 전체의 17%나 됐습니다.

불법 촬영(22%)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습니다.

'괴롭힘'은 언제든 더 큰 '불법'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공정식/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 교수 : "상대를 괴롭힐 목적으로 유포하는 행위들도 역시 단계별로 보면 성착취나 성노예와 같은 단계로 올라가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고, 또는 그러한 일종의 초기 단계에 해당한다고…."]

가해자들은 주로 해외에 서버를 둔 보안 SNS를 쓰거나, 우회 사이트를 경유하며 IP 추적을 피합니다.

김 씨 등이 고소한 사건도, '피의자를 특정할 단서를 못 찾았다'는 이유로, 두 달 만에 수사 중단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가해자들은 더 의기양양했습니다.

[김OO/음성변조 : "집요하고, 조주빈('박사방' 주범)스럽게, 자기가 법 위에 있다고 군림하고, 절대 못 잡아 이런 식으로…."]

수사 기관조차 지켜주지 못하는 사이, 선량한 사람들을 희롱하고 능욕하는 자료들은, 익명의 SNS 공간을 떠돌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에게는 이 고통이,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처럼 느껴집니다.

[김OO/음성변조 : "이걸 잡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또 다른 피해자들은 계속해서 양산될텐데. 그러다가 또 사람 죽으면, 또 'n번방'처럼 난리가 나면 그때 가서 또…. 사람이 죽어도 안 바뀔 거 같아요."]

KBS 뉴스 김혜주입니다.

촬영기자:오광택 최재혁/영상편집:김은주/그래픽:이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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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1장’에서 시작…“수사 요청해도 소용 없었다”
    • 입력 2022-08-30 21:08:43
    • 수정2022-08-30 22:10:40
    뉴스 9
[앵커]

보신 것처럼 무심코 인터넷에 올린 사진 딱 한 장이 비극의 시작이 됐습니다.

꼭 성착취 대화방이나 음란사이트가 아니어도 남의 사생활 정보를 가져다 성적으로 도가 넘는 장난을 치거나 겁주고 협박하는 일이 온라인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처벌은 더 어렵습니다.

이어서 김혜주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아온 20대 김 모 씨.

고민이 커질 때면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습니다.

[김OO/음성변조 : "우울함은 있는데, 그걸 친구들한테 갑자기 얘기할 수는 없잖아요. 우울할 때마다 거기에서 글을 썼던 것 같아요."]

그러다 몇몇과 친해졌고, 더 속 깊은 대화를 나누려고 별도의 SNS 계정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전투기'라는 별명의 이용자가 김 씨 얼굴 사진을 무단으로 가져가 익명의 단체 대화방에 올렸고, 그 아래 성희롱성 글, 이른바 '능욕 글'이 도배돼 있단 걸 알게 됐습니다.

[김OO/음성변조 : "마치 'n번방' 텔레그램처럼. 여자애들 얼굴 사진을 올려놓고 능욕하는 글을 쓰는 그게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피해자는 김 씨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인터넷에 평범한 사진을 올렸던 여성들, 미성년자도 당했습니다.

[김OO/음성변조 : "성적인 말을 엄청 쓰는데, 거기(대화방)에 미성년자도 있었고. 미성년자한테 고소를 권했어요. 근데 부모님이 아시는 게 너무 무섭다고 했고..."]

김 씨 등 피해자 3명은 가해자인 '전투기'를 고소했는데, 괴롭힘은 오히려 더 심해졌습니다.

[김OO/음성변조 : "본보기로 이제 제 전화번호 알아내가지고 퍼뜨리고. 계속 모르는 사람한테 연락 오고, 카톡 친구에 모르는 사람들이 뜨니까 그 자체가 공포였어요."]

단체 대화방 등 '사이버 공간에서 이뤄지는 성적 괴롭힘'.

성폭력 피해 지원 단체의 상담 통계를 살펴봤더니 전체의 17%나 됐습니다.

불법 촬영(22%)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습니다.

'괴롭힘'은 언제든 더 큰 '불법'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공정식/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 교수 : "상대를 괴롭힐 목적으로 유포하는 행위들도 역시 단계별로 보면 성착취나 성노예와 같은 단계로 올라가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고, 또는 그러한 일종의 초기 단계에 해당한다고…."]

가해자들은 주로 해외에 서버를 둔 보안 SNS를 쓰거나, 우회 사이트를 경유하며 IP 추적을 피합니다.

김 씨 등이 고소한 사건도, '피의자를 특정할 단서를 못 찾았다'는 이유로, 두 달 만에 수사 중단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가해자들은 더 의기양양했습니다.

[김OO/음성변조 : "집요하고, 조주빈('박사방' 주범)스럽게, 자기가 법 위에 있다고 군림하고, 절대 못 잡아 이런 식으로…."]

수사 기관조차 지켜주지 못하는 사이, 선량한 사람들을 희롱하고 능욕하는 자료들은, 익명의 SNS 공간을 떠돌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에게는 이 고통이,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처럼 느껴집니다.

[김OO/음성변조 : "이걸 잡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또 다른 피해자들은 계속해서 양산될텐데. 그러다가 또 사람 죽으면, 또 'n번방'처럼 난리가 나면 그때 가서 또…. 사람이 죽어도 안 바뀔 거 같아요."]

KBS 뉴스 김혜주입니다.

촬영기자:오광택 최재혁/영상편집:김은주/그래픽:이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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