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클래식 기타는 내 운명”…탈북 연주자의 꿈

입력 2022.09.03 (08:18) 수정 2022.09.03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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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앞서 북한 클래식의 변천사와 국제적으로도 유명한 연주자들을 살펴봤는데요.

이어서 이번 <통일로 미래로>에서는 탈북민 클래식 기타리스트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네, 11년 전에 한국에 와서 지금은 한국예술종합학교 4학년에 재학중인 기타리스트 유은지 씨입니다.

이하영 리포터, 유은지씨가 하는 버스킹, 길거리 공연에 다녀오셨죠?

[답변]

네, 추석 명절을 앞두고 은지씨가 파주 임진각에서 공연을 했는데요.

멋진 연주를 듣는 것 자체는 즐거웠는데, 고향 땅을 지척에 두고 하는 연주라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했습니다.

[앵커]

그랬겠네요, 그런데 유은지씨가 북한에서 어떻게 클래식 기타를 배우게 됐는지, 그런 것도 궁금해요.

[답변]

네, 아버지 영향으로 처음 기타를 접하게 됐다는데요.

탈북을 결심하고 실행하고, 한예종에 입학하고, 또 미래를 꿈꾸는 이 모든 것의 근간은 바로 기타라고 합니다.

탈북 기타리스트, 유은지 씨 이야기, 지금 함께 만나 보실까요?

[리포트]

군사분계선에서 7킬로미터 남쪽에 위치한 임진각.

관객의 귀를 사로잡는 아름다운 기타 선율이 울려 퍼집니다.

추석을 앞두고 탈북민 기타리스트, 유은지 씨의 버스킹 공연이 열린 건데요.

["(안녕하세요, 여기서 뭐 하고 계신 거예요?) 추석도 다가오고 그래서 북한이랑 좀 가까운 곳에 와서 연주를 하고 싶어서 여기에 와서 연주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서른다섯.

북녘 땅을 떠나 한국에 정착한지 벌써 11년이 지났지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여전합니다.

[오상식/39세/부산광역시 강서구 : "고향에서 다 헤어져서 이렇게 혼자 남한에서 산다는 게 힘들고 어려울 텐데, 그래도 이렇게 꿋꿋하게 생활하시는 거 보면 참 대단하고 많이 고향 땅도 그리울 거고 부모님도 참 보고 싶을 텐데 참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금방이라도 고향에 닿을 것 같은 아쉬움과 소망이 교차하는 이곳에서 망원경으로 본 북한은 금단의 땅인데요.

["(저기로 쭉 가면 북한 땅인가 봐요.) 그러게요. 뛰어가고 싶네요."]

고향을 떠나온 지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곳에 남아있는 가족을 생각하면 애틋하고 그리운데요.

특히 명절을 앞두고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커진다고 합니다.

임진각에서 홀로 연주하던 은지 씨에겐 과연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요?

은지 씨의 고향은 함경남도 함흥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의 권유로 기타를 처음 배우게 됐습니다.

기차역에서 여군의 기타 연주에 감명을 받은 아버지는, 어린 은지 씨를 자전거 뒷좌석에 싣고 매일같이 기타 선생님에게 데려갔다는데요.

[유은지/탈북 기타리스트 : "뭐라도 해야 한다. 재능이 있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가전제품 다 팔아가면서. 저희 집에는 그 흔한 TV도 없었어요, 당시에. 그 돈이 다 레슨비로 들어갔었으니까."]

부유하진 않았지만, 인맥을 통해 꽤 높은 수준의 음악 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유은지/탈북 기타리스트 : "아버지 친구 분의 친구 분이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클래식 기타를 전공하고 오신 선생님이 계셨어요. 중학교 내내 배웠었으니까 6년 이상, 6~7년 정도 배웠던 것 같아요. (그분에게) 네."]

해외 유학을 한 스승 덕분에 클래식 기타의 세계에 눈을 떴지만, 한편으론 체제 선전 위주의 북한 음악에 한계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한국 드라마를 좋아했던 아버지가 보위부의 감시에 걸려 끌려가면서 집안은 위기에 처했습니다.

[유은지/탈북 기타리스트 : "그 이후에 저희 집안이 아주 이제 내리막길을, 풍비박산이 나고 엄청난 벌금형이 내려지고 그래서 좀 힘들어졌었어요, 저희 집안이."]

아버지를 통해 한국 드라마를 접하고 한국 음악을 동경했던 은지 씨는 가족과 상의 끝에 탈북을 결심했는데요.

[유은지/탈북 기타리스트 : "제가 즐겨 봤던 게 천국의 계단, 가을동화, 유리 구두 이런 거였던 것 같아요. OST나 이런 거 나오면 정말, 또 음악 하는 사람이어서 와, 어떻게 이런 곡을 쓸 수가 있지 이런 생각도 하고."]

이후, 홀로 남한 땅을 밟은 은지 씨는 전문예술인을 키우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입학을 최우선 목표로 세웠습니다.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모아 레슨비를 충당하고, 실패에 실패를 거듭한 뒤 3번 만에 합격의 기쁨을 누렸는데요.

[유은지/탈북 기타리스트 : "죽을 뻔 했죠. 역류성 식도염이라든지, 알 수 없는 두통, 그리고 허리 저희는 장시간 이렇게 앉아서 한 자리에서 연습하다보면 되게 신체적인 어떤 통증들이 많아요."]

실력 있는 기타리스트로 인정받으며 조금씩 인지도를 높여가는 은지 씨, 지금은 후배의 좋은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이호진/한예종 기악과 3학년 : "원래 음악 하는 게 되게 힘들잖아요. 돈도 많이 들고. 근데 언니가 혼자 와서 이렇게 한다는 것 자체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었어요."]

어느덧 4학년 2학기, 졸업 연주만 남겨두고 있다는 은지 씨.

그녀에게 클래식 기타는 평생을 함께해왔고 삶을 지탱해주는 운명과도 같습니다.

추석을 앞둔 공연에선 이 노래가 빠질 수 없는데요.

멜로디만 들어도 어린 시절의 추억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고향의 봄’.

북녘땅 가까운 곳에서 탈북 기타리스트의 연주로 들으니, 관객들은 감회가 새롭습니다.

[안토니오/이탈리아 : "그녀의 기타 연주는 슬프게 들리고, 매우 느린 박자와 뭉클함이 인상적입니다."]

[서혜성/70대/경기도 고양시 : "저는 바라만 봐도, 부모가 저쪽에 있는 건 아니지만 마음이 슬프고 아픈데 저런 젊은이가 그 부모를 떠나서 온 것이 그 음악을 통해서 너무 애절하게 생각이 들고."]

고향을 먼발치에서 바라만 봐야 하는 은지 씨, 명절이 아프진 않을까요?

[유은지/탈북 기타리스트 : "추석이나 설날에 특히 가족들이 많이 보고 싶은 생각이 더 들기 때문에 일부러 아닌 척, 그냥 아무렇지 않은 척, 그렇게 친구들 만나면서 그렇게 보내고 있어요."]

은지 씨는 그리움이 사무칠수록 클래식 기타 연주에 더욱 매진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고 싶고, 특히 통일이 되면 북녘 사람들이 못 듣던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는 꿈을 오늘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해 보는데요.

[유은지/탈북 기타리스트 : "굉장히 힘든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또 이겨내면서 이렇게 연주자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특히 더 그런 힘드신 분들이나 이런 분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연주자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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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로 미래로] “클래식 기타는 내 운명”…탈북 연주자의 꿈
    • 입력 2022-09-03 08:18:22
    • 수정2022-09-03 09:4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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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앞서 북한 클래식의 변천사와 국제적으로도 유명한 연주자들을 살펴봤는데요.

이어서 이번 <통일로 미래로>에서는 탈북민 클래식 기타리스트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네, 11년 전에 한국에 와서 지금은 한국예술종합학교 4학년에 재학중인 기타리스트 유은지 씨입니다.

이하영 리포터, 유은지씨가 하는 버스킹, 길거리 공연에 다녀오셨죠?

[답변]

네, 추석 명절을 앞두고 은지씨가 파주 임진각에서 공연을 했는데요.

멋진 연주를 듣는 것 자체는 즐거웠는데, 고향 땅을 지척에 두고 하는 연주라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했습니다.

[앵커]

그랬겠네요, 그런데 유은지씨가 북한에서 어떻게 클래식 기타를 배우게 됐는지, 그런 것도 궁금해요.

[답변]

네, 아버지 영향으로 처음 기타를 접하게 됐다는데요.

탈북을 결심하고 실행하고, 한예종에 입학하고, 또 미래를 꿈꾸는 이 모든 것의 근간은 바로 기타라고 합니다.

탈북 기타리스트, 유은지 씨 이야기, 지금 함께 만나 보실까요?

[리포트]

군사분계선에서 7킬로미터 남쪽에 위치한 임진각.

관객의 귀를 사로잡는 아름다운 기타 선율이 울려 퍼집니다.

추석을 앞두고 탈북민 기타리스트, 유은지 씨의 버스킹 공연이 열린 건데요.

["(안녕하세요, 여기서 뭐 하고 계신 거예요?) 추석도 다가오고 그래서 북한이랑 좀 가까운 곳에 와서 연주를 하고 싶어서 여기에 와서 연주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서른다섯.

북녘 땅을 떠나 한국에 정착한지 벌써 11년이 지났지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여전합니다.

[오상식/39세/부산광역시 강서구 : "고향에서 다 헤어져서 이렇게 혼자 남한에서 산다는 게 힘들고 어려울 텐데, 그래도 이렇게 꿋꿋하게 생활하시는 거 보면 참 대단하고 많이 고향 땅도 그리울 거고 부모님도 참 보고 싶을 텐데 참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금방이라도 고향에 닿을 것 같은 아쉬움과 소망이 교차하는 이곳에서 망원경으로 본 북한은 금단의 땅인데요.

["(저기로 쭉 가면 북한 땅인가 봐요.) 그러게요. 뛰어가고 싶네요."]

고향을 떠나온 지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곳에 남아있는 가족을 생각하면 애틋하고 그리운데요.

특히 명절을 앞두고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커진다고 합니다.

임진각에서 홀로 연주하던 은지 씨에겐 과연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요?

은지 씨의 고향은 함경남도 함흥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의 권유로 기타를 처음 배우게 됐습니다.

기차역에서 여군의 기타 연주에 감명을 받은 아버지는, 어린 은지 씨를 자전거 뒷좌석에 싣고 매일같이 기타 선생님에게 데려갔다는데요.

[유은지/탈북 기타리스트 : "뭐라도 해야 한다. 재능이 있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가전제품 다 팔아가면서. 저희 집에는 그 흔한 TV도 없었어요, 당시에. 그 돈이 다 레슨비로 들어갔었으니까."]

부유하진 않았지만, 인맥을 통해 꽤 높은 수준의 음악 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유은지/탈북 기타리스트 : "아버지 친구 분의 친구 분이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클래식 기타를 전공하고 오신 선생님이 계셨어요. 중학교 내내 배웠었으니까 6년 이상, 6~7년 정도 배웠던 것 같아요. (그분에게) 네."]

해외 유학을 한 스승 덕분에 클래식 기타의 세계에 눈을 떴지만, 한편으론 체제 선전 위주의 북한 음악에 한계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한국 드라마를 좋아했던 아버지가 보위부의 감시에 걸려 끌려가면서 집안은 위기에 처했습니다.

[유은지/탈북 기타리스트 : "그 이후에 저희 집안이 아주 이제 내리막길을, 풍비박산이 나고 엄청난 벌금형이 내려지고 그래서 좀 힘들어졌었어요, 저희 집안이."]

아버지를 통해 한국 드라마를 접하고 한국 음악을 동경했던 은지 씨는 가족과 상의 끝에 탈북을 결심했는데요.

[유은지/탈북 기타리스트 : "제가 즐겨 봤던 게 천국의 계단, 가을동화, 유리 구두 이런 거였던 것 같아요. OST나 이런 거 나오면 정말, 또 음악 하는 사람이어서 와, 어떻게 이런 곡을 쓸 수가 있지 이런 생각도 하고."]

이후, 홀로 남한 땅을 밟은 은지 씨는 전문예술인을 키우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입학을 최우선 목표로 세웠습니다.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모아 레슨비를 충당하고, 실패에 실패를 거듭한 뒤 3번 만에 합격의 기쁨을 누렸는데요.

[유은지/탈북 기타리스트 : "죽을 뻔 했죠. 역류성 식도염이라든지, 알 수 없는 두통, 그리고 허리 저희는 장시간 이렇게 앉아서 한 자리에서 연습하다보면 되게 신체적인 어떤 통증들이 많아요."]

실력 있는 기타리스트로 인정받으며 조금씩 인지도를 높여가는 은지 씨, 지금은 후배의 좋은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이호진/한예종 기악과 3학년 : "원래 음악 하는 게 되게 힘들잖아요. 돈도 많이 들고. 근데 언니가 혼자 와서 이렇게 한다는 것 자체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었어요."]

어느덧 4학년 2학기, 졸업 연주만 남겨두고 있다는 은지 씨.

그녀에게 클래식 기타는 평생을 함께해왔고 삶을 지탱해주는 운명과도 같습니다.

추석을 앞둔 공연에선 이 노래가 빠질 수 없는데요.

멜로디만 들어도 어린 시절의 추억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고향의 봄’.

북녘땅 가까운 곳에서 탈북 기타리스트의 연주로 들으니, 관객들은 감회가 새롭습니다.

[안토니오/이탈리아 : "그녀의 기타 연주는 슬프게 들리고, 매우 느린 박자와 뭉클함이 인상적입니다."]

[서혜성/70대/경기도 고양시 : "저는 바라만 봐도, 부모가 저쪽에 있는 건 아니지만 마음이 슬프고 아픈데 저런 젊은이가 그 부모를 떠나서 온 것이 그 음악을 통해서 너무 애절하게 생각이 들고."]

고향을 먼발치에서 바라만 봐야 하는 은지 씨, 명절이 아프진 않을까요?

[유은지/탈북 기타리스트 : "추석이나 설날에 특히 가족들이 많이 보고 싶은 생각이 더 들기 때문에 일부러 아닌 척, 그냥 아무렇지 않은 척, 그렇게 친구들 만나면서 그렇게 보내고 있어요."]

은지 씨는 그리움이 사무칠수록 클래식 기타 연주에 더욱 매진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고 싶고, 특히 통일이 되면 북녘 사람들이 못 듣던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는 꿈을 오늘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해 보는데요.

[유은지/탈북 기타리스트 : "굉장히 힘든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또 이겨내면서 이렇게 연주자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특히 더 그런 힘드신 분들이나 이런 분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연주자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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