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찾아가는 긴급복지’ 대상, 올해만 11명이 고독사

입력 2022.10.13 (21:22) 수정 2022.10.13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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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그냥 가려 했는데 한 자 적는다" 수원에 살던 세 모녀.

암에 걸린 어머니와 지병을 앓아온 두 딸은 그간의 고된 삶을 글로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건강보험료가 1년 반 가까이 밀렸지만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8년 전, 송파구에서 마지막 집세를 남기고 세 모녀가 떠난 뒤에도 비슷한 비극이 되풀이되는 겁니다.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는 정부 지시도 또 나왔습니다만, 우리사회는 위기 신호를 들을 준비가 돼있을까요?

KBS 취재 결과, 수원 세 모녀 말고도 복지 사각지대에서 숨진 사람이 올해 상반기에만 열한 명 더 있었습니다.

정부의 돌봄도 이웃의 추모도 없이 '조용히' 숨지고, 잊혀졌습니다.

먼저, 그 현장 이지은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주인 떠난 집은 아직도 비어 있습니다.

여기서 홀로 살던 김 모 씨가 숨진 채 발견된 건 지난 1월.

며칠 동안 집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의아하게 여긴 이웃이 신고했습니다.

[이웃 주민/음성변조 : "내가 12월 한 중순쯤 됐을 때 올라가서 문을 두드렸는데 소식이 없어요. '어디 여행을 갔나보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을 했거든요."]

집안에 남겨진 각종 고지서들이, 숨지기 전까지의 생활고를 짐작게 합니다.

이곳에는, 그동안 김 씨가 각종 공과금과 카드빚 독촉을 받아온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전기까지 끊기고 건강보험료도 아홉 달 밀렸을 때, 정부는 김 씨를 긴급복지 대상으로 포착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어서, 김 씨가 마흔 셋의 나이로 세상을 뜨고 난 뒤였습니다.

[주민센터/음성변조 : "알아보던 중에 그분이 돌아가신 걸 알게 된거죠. 이 분이 어떻게 보면 좀 늦게 발굴된 거죠. 위기가구였는데."]

이 원룸에 살던 67살 김 모 씨는 만성질환에 치매까지 있었지만 돌봐줄 사람이 없어 혼자 지냈습니다.

월세가 밀려 보증금에서 깎여 나갔고, 급기야 보증금 잔액이 '0원'이 되자, 그제서야 복지 시스템은 작동했습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사망한 뒤였습니다.

[주민센터/음성변조 : "보증금이 너무 적으니까 혹시나 취약 환경에 사시나 (해서 확인했죠.) 이 분은 저희가 처리를 할 때 이미 사망을 하셔가지고 비대상 처리한 것 같아요."]

올해 정부가 발굴한 '위기가구' 대상은 52만 여 명.

그 가운데 11명이 실질적인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숨진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이 보냈던 '위기 신호'는 이미 '위기'의 단계를 넘어선 마지막 '구조' 신호였던 셈입니다.

정부는, 여러 종류의 위기 신호가 오랫동안 이어져야만 비로소 지원 대상으로 포착하는데, 거기까지 갔을 땐 벌써 늦은 경우가 많습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음성변조 : "체납 정보는 3개월 이상입니다. 1개월, 2개월이면 단순히 (납부기한을) 놓칠 수도 있고 (수원 세 모녀도) 일단 입수 기준에는 충족하지 않아서 일단 안 들어온 사례거든요."]

정부는 틈만 나면 '선제적' 대응을 강조합니다.

수원 세 모녀는 건보료가 16개월이나 밀리는 동안 위기가구로 분류되지도 않았습니다.

모든 조건이 충족될 때까지 움직이지 않는 정부와, 그 사이에 이미 죽음으로 내몰리는 사람들.

좁혀지지 않는 그 시간차가 곧, '복지 공백' 입니다.

KBS 뉴스 이지은입니다.

촬영기자:서다은/영상편집:여동용/그래픽:김현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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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찾아가는 긴급복지’ 대상, 올해만 11명이 고독사
    • 입력 2022-10-13 21:22:40
    • 수정2022-10-13 22: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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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그냥 가려 했는데 한 자 적는다" 수원에 살던 세 모녀.

암에 걸린 어머니와 지병을 앓아온 두 딸은 그간의 고된 삶을 글로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건강보험료가 1년 반 가까이 밀렸지만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8년 전, 송파구에서 마지막 집세를 남기고 세 모녀가 떠난 뒤에도 비슷한 비극이 되풀이되는 겁니다.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는 정부 지시도 또 나왔습니다만, 우리사회는 위기 신호를 들을 준비가 돼있을까요?

KBS 취재 결과, 수원 세 모녀 말고도 복지 사각지대에서 숨진 사람이 올해 상반기에만 열한 명 더 있었습니다.

정부의 돌봄도 이웃의 추모도 없이 '조용히' 숨지고, 잊혀졌습니다.

먼저, 그 현장 이지은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주인 떠난 집은 아직도 비어 있습니다.

여기서 홀로 살던 김 모 씨가 숨진 채 발견된 건 지난 1월.

며칠 동안 집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의아하게 여긴 이웃이 신고했습니다.

[이웃 주민/음성변조 : "내가 12월 한 중순쯤 됐을 때 올라가서 문을 두드렸는데 소식이 없어요. '어디 여행을 갔나보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을 했거든요."]

집안에 남겨진 각종 고지서들이, 숨지기 전까지의 생활고를 짐작게 합니다.

이곳에는, 그동안 김 씨가 각종 공과금과 카드빚 독촉을 받아온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전기까지 끊기고 건강보험료도 아홉 달 밀렸을 때, 정부는 김 씨를 긴급복지 대상으로 포착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어서, 김 씨가 마흔 셋의 나이로 세상을 뜨고 난 뒤였습니다.

[주민센터/음성변조 : "알아보던 중에 그분이 돌아가신 걸 알게 된거죠. 이 분이 어떻게 보면 좀 늦게 발굴된 거죠. 위기가구였는데."]

이 원룸에 살던 67살 김 모 씨는 만성질환에 치매까지 있었지만 돌봐줄 사람이 없어 혼자 지냈습니다.

월세가 밀려 보증금에서 깎여 나갔고, 급기야 보증금 잔액이 '0원'이 되자, 그제서야 복지 시스템은 작동했습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사망한 뒤였습니다.

[주민센터/음성변조 : "보증금이 너무 적으니까 혹시나 취약 환경에 사시나 (해서 확인했죠.) 이 분은 저희가 처리를 할 때 이미 사망을 하셔가지고 비대상 처리한 것 같아요."]

올해 정부가 발굴한 '위기가구' 대상은 52만 여 명.

그 가운데 11명이 실질적인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숨진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이 보냈던 '위기 신호'는 이미 '위기'의 단계를 넘어선 마지막 '구조' 신호였던 셈입니다.

정부는, 여러 종류의 위기 신호가 오랫동안 이어져야만 비로소 지원 대상으로 포착하는데, 거기까지 갔을 땐 벌써 늦은 경우가 많습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음성변조 : "체납 정보는 3개월 이상입니다. 1개월, 2개월이면 단순히 (납부기한을) 놓칠 수도 있고 (수원 세 모녀도) 일단 입수 기준에는 충족하지 않아서 일단 안 들어온 사례거든요."]

정부는 틈만 나면 '선제적' 대응을 강조합니다.

수원 세 모녀는 건보료가 16개월이나 밀리는 동안 위기가구로 분류되지도 않았습니다.

모든 조건이 충족될 때까지 움직이지 않는 정부와, 그 사이에 이미 죽음으로 내몰리는 사람들.

좁혀지지 않는 그 시간차가 곧, '복지 공백' 입니다.

KBS 뉴스 이지은입니다.

촬영기자:서다은/영상편집:여동용/그래픽:김현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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