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의 명암]① 태양광에 사라진 염전과 논…갈 곳 없는 임차농들

입력 2022.10.29 (08:00) 수정 2022.11.01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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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화석 연료 대신 태양광과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를 쓰자는 '에너지 전환'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그러나 태양광과 풍력발전소가 농어촌 지역에 집중되면서 여러 모순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KBS는 최근 전남지역 농어촌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에너지 전환의 모순과 피해를 살펴보고,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과제를 짚어보는 기획보도를 마련했습니다.

재생에너지의 명암① 태양광에 사라진 염전과 논…갈 곳 없는 임차농들
재생에너지의 명암② 마을을 가른 해상풍력…"인사도 안 한다"
재생에너지의 명암③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반복되는 '밀양 송전탑'
재생에너지의 명암④ 갈등 중재 기관 둔 독일…정의로운 에너지 전환 위해선?

전남 영광군 염산면. 염전이 사라진 자리에 태양광 발전소가 들어서고 있다.전남 영광군 염산면. 염전이 사라진 자리에 태양광 발전소가 들어서고 있다.

■ 염전의 무덤에 자라난 태양광 발전소

폐허는 공터보다 더 비참하다. 무엇인가 존재했다 사라진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빈터에서는 때로 희망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잔해가 나뒹구는 폐허에는 소멸의 냄새만 물씬 풍긴다. 부서지고 찢긴 잔해에서 찬란했던 과거가 떠오르는 건 잠시뿐이다. 곧이어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다는 무상감이 느껴진다.

지난 5월 찾은 전남 영광의 염전도 그랬다. 바닷물이 출렁거려야 할 염전 판을 마른 흙덩이가 채우고 있었다. 소금 수레는 텅 비어 있었다. 소금 창고에는 한때 들뜬 열기와 짠내가 가득했을 것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건 바닥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소금 찌꺼기들뿐이었다. 삽이며 밀대 같은 연장들이 걸려 있는 작업용 가건물은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안에는 달력이 걸려 있었다. 날짜는 2021년 9월. 더는 달력이 넘어가지 않았다.

천일염을 만드는 염전은 대개 햇빛이 잘 드는 곳에 있다. 천일(天日), 즉 햇빛과 바람으로 바닷물을 말려 소금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염전이 고스란히 머금었던 햇빛과 바람 자리를 대신 차지한 건 태양광 발전소였다. 드론 카메라를 띄워 시선을 하늘로 옮겨 봤다. 소금밭이 사라진 자리에 새까만 태양광 패널이 무수히 놓인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염전의 무덤에 태양광 발전소가 자라나는 것처럼 보이는 이곳에서 장화를 신은 한 남성을 만났다. 그을린 얼굴에 체구가 단단했다. 염전을 빌려 소금을 만드는 생산자였다. 날이 막 더워질 무렵인데도 움직임이 바빴다. 자세히 보니 그는 바닷물을 염전 판으로 끌어오는 관을 해체하고 있었다. 더 이상 소금을 만들지 않게 됐으니 고철이라도 팔려고 시설을 뜯어내는 것이었다.

"이 주변이 완전히 태양광 패널로 뒤덮였네요?" 말문을 열자 투박한 답변이 돌아왔다. "보시다시피."

폐염전의 소금 창고. 마른 소금 찌꺼기만 창고 구석구석에 붙어 있다.폐염전의 소금 창고. 마른 소금 찌꺼기만 창고 구석구석에 붙어 있다.

■ 전화 한 통에 접은 40년 천직

그가 조금씩 얘기를 털어놨다. 소금을 만들어 온 세월이 벌써 40년이었다. 많은 염전 생산자들이 그렇듯이 땅 주인은 따로 있었고 그는 땅을 빌려 염전을 일궜다. 그래도 천직이라 믿었다. 자비를 들여 염전 시설을 하나둘씩 늘리며 무던히 애를 썼다. 그야말로 일생을 바친 업이었다. 7~8년 전부터 생업에 균열이 감지됐다. 소금밭이 점점 줄었다. 시간이 갈수록 없어지는 속도가 빨라졌다. 빈자리에는 태양광 패널이 들어섰다.

그도 지난해 땅 주인에게 전화를 받았다. 주인은 염전에 태양광 발전소를 세우려고 하니 소금을 그만 만들라고 했다. 주변 염전 상당수는 이미 문을 닫았다. 다른 생산자 상당수도 일을 멈췄다. 거센 흐름에 저항하긴 어려웠다. 그렇게 전화 한 통으로 그는 염전 일을 접게 됐다.

땅 주인들은 염전의 임대료 대신 발전 수익을 올리거나 아예 땅을 팔아서 이득을 거둘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절대다수가 임차인이자 염전 마을의 주민이기도 한 생산자들은 사정이 다르다. 발전소의 수익이 마을에 일부 공유되기는 하지만 소금 생산 소득과는 비교가 안 된다. 생산자는 "발전소와 가까운 지역에는 약간의 혜택이 돌아가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염전을 운영하는 것에 비해 수익은 10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여유만 있으면 좀 더 염전 일을 하고 싶으신 분들도 있을 거 아니에요?" 조심스럽게 던진 질문, 돌아온 답은 쓸쓸했다. "아마 다 하고는 싶죠. 그런데 여기 염전 하시는 분들이 거의 99.9%가 다른 기술이 전혀 없는 분들이죠. 어쩔 수 없이 생업이 없으니까 떠났고…."

■ 염전 사라진 염전 마을…'지방 소멸' 위기감

영광보다 소금이 더 유명한 곳이 바로 전남 신안이다. 신안군 최북단의 임자도 신명리는 '염전 마을'이었다. 피란민들이 정착해 염전을 일구기 시작한 역사가 70년이다. 한때 대형 염전이 25판, 넓이가 100만㎡ 가까이에 이르렀다.

여기도 지난해부터 100MW급 태양광 시설 공사가 시작됐다. 염전은 사각형으로 잘 구획돼 있어 태양광 패널이 차곡차곡 들어서기 좋은 조건이었다. 영광과 마찬가지로 임차 형태로 일하는 염전 생산자들은 무더기로 일자리를 잃었다.

이제 남은 염전은 4판뿐. 아직 염전을 지키고 있는 이들은 변화를 실감한다. 만드는 염전의 질부터 달라졌다. 태양광 시설이 들어서면서 바람길이 막히는 등 주변 환경이 변화했고, 이 때문에 소금 결정 크기마저 줄었다고 이들은 말한다.

몇 남지 않은 신안군 임자도의 염전. 바로 옆으로 태양광 발전소와 공사 현장이 보인다.몇 남지 않은 신안군 임자도의 염전. 바로 옆으로 태양광 발전소와 공사 현장이 보인다.

이렇게 최근 5년 동안 사라진 영광과 신안에서 사라진 염전은 758만㎡, 축구장 1,000개가 넘는 규모다. 폐전(廢田)의 목적은 절대다수가 태양광 사업을 위해서였다. '염전'이 사라진 염전 마을, '마을'이라고 무사할까? 삶의 터전이 없어지자 마을마저 소멸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깊이 감돈다.

임자도에서 소금을 만들어 온 최경천 씨는 "땅 주인들은 솔직히 임대료라도 받는데 생산자들은 여기서 다 떠나가야 할 그런 형편에 처해 있다"며 "실제로 많이 떠나갔고, 다른 곳에 일자리를 찾아서 갔고, 농사도 짓고 한다"고 말했다.

강명서 영광 천일염생산자연합회장은 "생산자 수가 30% 정도 줄었고, (기존 염전의) 35% 정도가 태양광 부지로 들어가 있다"고 설명했다. 강 회장은 "건물에 임차인 보호법이 있는 것과 달리 염전은 땅 주인이 그만두라고 하면 그걸로 그만이다"며 "4~50년을 염전만 한 사람들이, 이제 고령화까지 됐는데 어디 공사 현장에 가서 일도 못 한다"고 하소연했다.

■ 명품 논이 '염해지'로…간척지 논에도 태양광 우후죽순

태양광 발전소를 만들 좋은 장소로 지목되는 또 다른 곳은 간척지 논이다. 오랜 기간 명품 쌀을 생산하던 논들에도 발전소가 우후죽순 들어서고 있다. 2019년 개정된 농지법은 이런 흐름에 날개를 달아줬다. 땅에 남은 소금기로 피해를 본 '염해지'로 분류되면, 토지 전용이 금지돼있는 '절대 농지'에도 태양광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제도가 마련된 것이다.

염해지 측정은 벼의 뿌리가 있는 ‘표토’보다 더 깊은 ‘심토’를 기준으로 이뤄진다. 이 때문에 농민들은 염해지 판정과 벼 재배 사이에는 관계가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염해지 측정은 벼의 뿌리가 있는 ‘표토’보다 더 깊은 ‘심토’를 기준으로 이뤄진다. 이 때문에 농민들은 염해지 판정과 벼 재배 사이에는 관계가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농민들은 멀쩡한 논이 염해를 입었다고 인정되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간 문제없이 쌀을 재배해 온 데다 15~20㎝에 불과한 벼 뿌리보다 더 깊은 30~60㎝ 지점에서 염도 측정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농도(農道)인 전라남도를 비롯해 전북, 충남 등 전국 각지에서 염해지 태양광 사업이 추진되면서 갈등이 불거지는 상황이다.

전남 완도군 약산면에서 마을 앞 간척지를 빌려 논농사를 짓는 귀농 3년 차 농부인 임효상 씨도 이런 연유로 고민이 깊다. 간척지에 태양광 사업이 추진되면서 올봄부터 2개 필지는 모심기도 못 했다. 임 씨는 "청년 창업농 정책에 따라 지원받고 마을에 정착했는데, 청년 창업농 정책과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전혀 상반되게 가는 셈이다"며 "지원을 하면서도 살 수 없는 환경으로 다시 밀어내는 상황이며, 다음 세대에는 영원히 기회가 없는 땅으로 변해가는 상황이다"고 했다.

■ 식량 안보 우려도…에너지 전환 비용, 누가 감당하나?

재생에너지 사업에 밀려 염전과 농지가 사라지는 현상은 단순히 임차농들의 피해만 초래하는 것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식량 안보'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한다. 갈수록 경지 면적이 줄고 소비자 식습관이 바뀌면서 식량 자급률이 떨어지는 추세인데 농어촌을 중심으로 추진되는 태양광 발전 사업 등이 더 악재가 될 것이라는 우려다.

간척지 논에 태양광 발전소가 잇따라 들어선 전남 완도군 약산면. 농부의 화물차에 ‘결사반대’라는 깃발이 매달려 있다.간척지 논에 태양광 발전소가 잇따라 들어선 전남 완도군 약산면. 농부의 화물차에 ‘결사반대’라는 깃발이 매달려 있다.

김연중·서대석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등도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에서 "농촌은 식량 안보와 공익적 가치 등이 중요하게 강조되는 곳이나, 농지를 이용한 태양광 사업 추진과 관련해서는 충분히 고려되지 못했다"며 "농촌 태양광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농촌의 공익적 가치와 장기적인 식량 안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에너지 전환’은 후손들에게 깨끗한 지구를 물려 주기 위해 너나 할 것 없이 노력해야 하는 목표로 여겨진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급격한 에너지 전환의 비용을 누가 치르고 있는지는 간과한다. 염전과 농지에 기대어 살아가는 농민들은 재생에너지 사업의 후폭풍을 온몸으로 감당하고 있다. 영광에서 만난 폐염전의 생산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업이 들어오면 지역 주민들에게 어떤 도움이 돼야 하는데, 주민들은 그냥 이렇게 쫓겨나고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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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생에너지의 명암]① 태양광에 사라진 염전과 논…갈 곳 없는 임차농들
    • 입력 2022-10-29 08:00:16
    • 수정2022-11-01 14:52:41
    취재K
<strong>화석 연료 대신 태양광과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를 쓰자는 '에너지 전환'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그러나 태양광과 풍력발전소가 농어촌 지역에 집중되면서 여러 모순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KBS는 최근 전남지역 농어촌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에너지 전환의 모순과 피해를 살펴보고,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과제를 짚어보는 기획보도를 마련했습니다.</strong><br /><br /><strong>재생에너지의 명암① 태양광에 사라진 염전과 논…갈 곳 없는 임차농들</strong><br />재생에너지의 명암② 마을을 가른 해상풍력…"인사도 안 한다"<br />재생에너지의 명암③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반복되는 '밀양 송전탑'<br />재생에너지의 명암④ 갈등 중재 기관 둔 독일…정의로운 에너지 전환 위해선?<br />
전남 영광군 염산면. 염전이 사라진 자리에 태양광 발전소가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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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는 공터보다 더 비참하다. 무엇인가 존재했다 사라진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빈터에서는 때로 희망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잔해가 나뒹구는 폐허에는 소멸의 냄새만 물씬 풍긴다. 부서지고 찢긴 잔해에서 찬란했던 과거가 떠오르는 건 잠시뿐이다. 곧이어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다는 무상감이 느껴진다.

지난 5월 찾은 전남 영광의 염전도 그랬다. 바닷물이 출렁거려야 할 염전 판을 마른 흙덩이가 채우고 있었다. 소금 수레는 텅 비어 있었다. 소금 창고에는 한때 들뜬 열기와 짠내가 가득했을 것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건 바닥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소금 찌꺼기들뿐이었다. 삽이며 밀대 같은 연장들이 걸려 있는 작업용 가건물은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안에는 달력이 걸려 있었다. 날짜는 2021년 9월. 더는 달력이 넘어가지 않았다.

천일염을 만드는 염전은 대개 햇빛이 잘 드는 곳에 있다. 천일(天日), 즉 햇빛과 바람으로 바닷물을 말려 소금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염전이 고스란히 머금었던 햇빛과 바람 자리를 대신 차지한 건 태양광 발전소였다. 드론 카메라를 띄워 시선을 하늘로 옮겨 봤다. 소금밭이 사라진 자리에 새까만 태양광 패널이 무수히 놓인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염전의 무덤에 태양광 발전소가 자라나는 것처럼 보이는 이곳에서 장화를 신은 한 남성을 만났다. 그을린 얼굴에 체구가 단단했다. 염전을 빌려 소금을 만드는 생산자였다. 날이 막 더워질 무렵인데도 움직임이 바빴다. 자세히 보니 그는 바닷물을 염전 판으로 끌어오는 관을 해체하고 있었다. 더 이상 소금을 만들지 않게 됐으니 고철이라도 팔려고 시설을 뜯어내는 것이었다.

"이 주변이 완전히 태양광 패널로 뒤덮였네요?" 말문을 열자 투박한 답변이 돌아왔다. "보시다시피."

폐염전의 소금 창고. 마른 소금 찌꺼기만 창고 구석구석에 붙어 있다.
■ 전화 한 통에 접은 40년 천직

그가 조금씩 얘기를 털어놨다. 소금을 만들어 온 세월이 벌써 40년이었다. 많은 염전 생산자들이 그렇듯이 땅 주인은 따로 있었고 그는 땅을 빌려 염전을 일궜다. 그래도 천직이라 믿었다. 자비를 들여 염전 시설을 하나둘씩 늘리며 무던히 애를 썼다. 그야말로 일생을 바친 업이었다. 7~8년 전부터 생업에 균열이 감지됐다. 소금밭이 점점 줄었다. 시간이 갈수록 없어지는 속도가 빨라졌다. 빈자리에는 태양광 패널이 들어섰다.

그도 지난해 땅 주인에게 전화를 받았다. 주인은 염전에 태양광 발전소를 세우려고 하니 소금을 그만 만들라고 했다. 주변 염전 상당수는 이미 문을 닫았다. 다른 생산자 상당수도 일을 멈췄다. 거센 흐름에 저항하긴 어려웠다. 그렇게 전화 한 통으로 그는 염전 일을 접게 됐다.

땅 주인들은 염전의 임대료 대신 발전 수익을 올리거나 아예 땅을 팔아서 이득을 거둘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절대다수가 임차인이자 염전 마을의 주민이기도 한 생산자들은 사정이 다르다. 발전소의 수익이 마을에 일부 공유되기는 하지만 소금 생산 소득과는 비교가 안 된다. 생산자는 "발전소와 가까운 지역에는 약간의 혜택이 돌아가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염전을 운영하는 것에 비해 수익은 10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여유만 있으면 좀 더 염전 일을 하고 싶으신 분들도 있을 거 아니에요?" 조심스럽게 던진 질문, 돌아온 답은 쓸쓸했다. "아마 다 하고는 싶죠. 그런데 여기 염전 하시는 분들이 거의 99.9%가 다른 기술이 전혀 없는 분들이죠. 어쩔 수 없이 생업이 없으니까 떠났고…."

■ 염전 사라진 염전 마을…'지방 소멸' 위기감

영광보다 소금이 더 유명한 곳이 바로 전남 신안이다. 신안군 최북단의 임자도 신명리는 '염전 마을'이었다. 피란민들이 정착해 염전을 일구기 시작한 역사가 70년이다. 한때 대형 염전이 25판, 넓이가 100만㎡ 가까이에 이르렀다.

여기도 지난해부터 100MW급 태양광 시설 공사가 시작됐다. 염전은 사각형으로 잘 구획돼 있어 태양광 패널이 차곡차곡 들어서기 좋은 조건이었다. 영광과 마찬가지로 임차 형태로 일하는 염전 생산자들은 무더기로 일자리를 잃었다.

이제 남은 염전은 4판뿐. 아직 염전을 지키고 있는 이들은 변화를 실감한다. 만드는 염전의 질부터 달라졌다. 태양광 시설이 들어서면서 바람길이 막히는 등 주변 환경이 변화했고, 이 때문에 소금 결정 크기마저 줄었다고 이들은 말한다.

몇 남지 않은 신안군 임자도의 염전. 바로 옆으로 태양광 발전소와 공사 현장이 보인다.
이렇게 최근 5년 동안 사라진 영광과 신안에서 사라진 염전은 758만㎡, 축구장 1,000개가 넘는 규모다. 폐전(廢田)의 목적은 절대다수가 태양광 사업을 위해서였다. '염전'이 사라진 염전 마을, '마을'이라고 무사할까? 삶의 터전이 없어지자 마을마저 소멸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깊이 감돈다.

임자도에서 소금을 만들어 온 최경천 씨는 "땅 주인들은 솔직히 임대료라도 받는데 생산자들은 여기서 다 떠나가야 할 그런 형편에 처해 있다"며 "실제로 많이 떠나갔고, 다른 곳에 일자리를 찾아서 갔고, 농사도 짓고 한다"고 말했다.

강명서 영광 천일염생산자연합회장은 "생산자 수가 30% 정도 줄었고, (기존 염전의) 35% 정도가 태양광 부지로 들어가 있다"고 설명했다. 강 회장은 "건물에 임차인 보호법이 있는 것과 달리 염전은 땅 주인이 그만두라고 하면 그걸로 그만이다"며 "4~50년을 염전만 한 사람들이, 이제 고령화까지 됐는데 어디 공사 현장에 가서 일도 못 한다"고 하소연했다.

■ 명품 논이 '염해지'로…간척지 논에도 태양광 우후죽순

태양광 발전소를 만들 좋은 장소로 지목되는 또 다른 곳은 간척지 논이다. 오랜 기간 명품 쌀을 생산하던 논들에도 발전소가 우후죽순 들어서고 있다. 2019년 개정된 농지법은 이런 흐름에 날개를 달아줬다. 땅에 남은 소금기로 피해를 본 '염해지'로 분류되면, 토지 전용이 금지돼있는 '절대 농지'에도 태양광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제도가 마련된 것이다.

염해지 측정은 벼의 뿌리가 있는 ‘표토’보다 더 깊은 ‘심토’를 기준으로 이뤄진다. 이 때문에 농민들은 염해지 판정과 벼 재배 사이에는 관계가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농민들은 멀쩡한 논이 염해를 입었다고 인정되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간 문제없이 쌀을 재배해 온 데다 15~20㎝에 불과한 벼 뿌리보다 더 깊은 30~60㎝ 지점에서 염도 측정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농도(農道)인 전라남도를 비롯해 전북, 충남 등 전국 각지에서 염해지 태양광 사업이 추진되면서 갈등이 불거지는 상황이다.

전남 완도군 약산면에서 마을 앞 간척지를 빌려 논농사를 짓는 귀농 3년 차 농부인 임효상 씨도 이런 연유로 고민이 깊다. 간척지에 태양광 사업이 추진되면서 올봄부터 2개 필지는 모심기도 못 했다. 임 씨는 "청년 창업농 정책에 따라 지원받고 마을에 정착했는데, 청년 창업농 정책과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전혀 상반되게 가는 셈이다"며 "지원을 하면서도 살 수 없는 환경으로 다시 밀어내는 상황이며, 다음 세대에는 영원히 기회가 없는 땅으로 변해가는 상황이다"고 했다.

■ 식량 안보 우려도…에너지 전환 비용, 누가 감당하나?

재생에너지 사업에 밀려 염전과 농지가 사라지는 현상은 단순히 임차농들의 피해만 초래하는 것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식량 안보'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한다. 갈수록 경지 면적이 줄고 소비자 식습관이 바뀌면서 식량 자급률이 떨어지는 추세인데 농어촌을 중심으로 추진되는 태양광 발전 사업 등이 더 악재가 될 것이라는 우려다.

간척지 논에 태양광 발전소가 잇따라 들어선 전남 완도군 약산면. 농부의 화물차에 ‘결사반대’라는 깃발이 매달려 있다.
김연중·서대석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등도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에서 "농촌은 식량 안보와 공익적 가치 등이 중요하게 강조되는 곳이나, 농지를 이용한 태양광 사업 추진과 관련해서는 충분히 고려되지 못했다"며 "농촌 태양광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농촌의 공익적 가치와 장기적인 식량 안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에너지 전환’은 후손들에게 깨끗한 지구를 물려 주기 위해 너나 할 것 없이 노력해야 하는 목표로 여겨진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급격한 에너지 전환의 비용을 누가 치르고 있는지는 간과한다. 염전과 농지에 기대어 살아가는 농민들은 재생에너지 사업의 후폭풍을 온몸으로 감당하고 있다. 영광에서 만난 폐염전의 생산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업이 들어오면 지역 주민들에게 어떤 도움이 돼야 하는데, 주민들은 그냥 이렇게 쫓겨나고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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