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의 명암]② 마을 갈라놓은 해상풍력…“인사도 안 한다”

입력 2022.10.30 (08:04) 수정 2022.11.01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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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화석 연료 대신 태양광과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를 쓰자는 '에너지 전환'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그러나 태양광과 풍력발전소가 농어촌 지역에 집중되면서 여러 모순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KBS는 최근 전남지역 농어촌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에너지 전환의 모순과 피해를 살펴보고,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과제를 짚어보는 기획보도를 마련했습니다.

재생에너지의 명암① 태양광에 사라진 염전과 논…갈 곳 없는 임차농들
재생에너지의 명암② 마을을 가른 해상풍력…"인사도 안 한다"
재생에너지의 명암③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반복되는 '밀양 송전탑'
재생에너지의 명암④ 갈등 중재 기관 둔 독일…정의로운 에너지 전환 위해선?

국내 최초의 상업 해상풍력 발전소인 ‘탐라 해상풍력’.국내 최초의 상업 해상풍력 발전소인 ‘탐라 해상풍력’.

■해상풍력 발전 '전도유망'…제주 곳곳에서 추진

한적한 어촌 마을이 자리한 제주 한경면 앞바다. 여기에 특이한 풍경이 보인다. 드넓은 바다에 90미터 높이의 풍력발전기 열 개가 우뚝 솟아 있다. 국내 최초의 상업 해상풍력 발전소인 '탐라 해상풍력 발전단지'다. 세 개의 날개는 멀리서 보면 천천히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사실 고속 열차와 맞먹는 평균 시속 300㎞의 속도로 회전하며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탐라 해상풍력도 2017년부터 해마다 제주도민 2만 5천 가구가 쓸 전력을 생산한다.

해상풍력 발전은 전도유망한 분야로 꼽힌다. 무엇보다 주변에 민가가 없으니, 육상 풍력보다 입지가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소음 민원을 벗어날 수 있어서 발전기를 더 크게 만드는 게 가능하다.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의미다. 바다와 어우러져 관광 자원화도 가능하다. 유럽 등 해외에서 시장 규모가 점차 커지는 이유다.

바람이 많기로 유명한 제주도에서는 이런 해상풍력 단지가 여럿 추진되고 있다. 탐라 해상풍력 단지에서 멀지 않은 제주 한림 앞바다에는 '한림 해상풍력 단지'가 지난 4월부터 공사 중이다. 5.56MW급 풍력발전기 18기를 설치할 계획인데, 설비 용량이 100MW로 국내 최대 규모다.

■어민 목소리 반영 안돼…"물고기가 사라질 거다"

촘촘한 그물로 물고기를 잡는, '자망' 어민인 윤희돈 씨의 어장은 이 한림 앞바다에 있다. 지난 7월, 공사 현장 바로 앞 바다에서 조업하는 윤 씨를 만났다. 어선을 함께 타고 조업 현장을 지켜봤다. 미리 쳐둔 그물을 끌어 올리니 물고기가 줄줄이 딸려 나왔다. 제주도 제사상에서 빠지지 않는다는 특산 어종 '벤자리'였다.

해상풍력 공사 현장 인근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는 어민의 모습.해상풍력 공사 현장 인근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는 어민의 모습.

마치 연어처럼 자기가 난 자리로 돌아온다는 이 물고기를 더 이상 못 잡게 되지는 않을까, 윤 씨는 걱정하고 있었다. 바다 밑바닥에 발전기의 하부 구조물을 세우고 나면, 해양 생태계가 바뀌면서 '벤자리' 같은 물고기들이 사라질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실제 풍력발전소가 들어선 인근 바다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어업 피해 보상이 전혀 없던 건 아니다. 지역 선주 협회에 등록된 어선을 대상으로 125억 원 규모의 보상이 이뤄졌다. 그러나 누가 피해를 보는지 정확히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보상이 진행됐다는 것이 윤 씨를 비롯한 연안 자망 어민들의 주장이다. 해당 해역에서 조업하지 않는 어선들까지 보상 대상에 포함되면서, 실제 피해 당사자들의 의견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윤 씨는 "15㎞ 떨어져 있는 전혀 피해 없는 지역까지 보상해 준다고 하니 선주들이 덜컥 동의했다"라며 "어업권 피해를 일괄적으로, 투명성 있게 조사하고 보상해야 하는데, 연안 자망 어민들의 목소리는 전혀 반영이 안 됐다"라고 주장했다.

■발전 사업이 무너뜨린 '괸당 문화'

불똥은 바닷가 마을에도 튀었다. 발전소 공사 현장과 인접한 행정구역은 한림읍 '수원리'와 '한수리'다. 오랫동안 한 마을이었다가 둘로 나뉜 탓에, 해녀들은 '수원리'에 있는 공동 어장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해저 케이블 설치를 위한 발파 작업이 진행되다 보니, 올봄부터 공동 어장 입어(入漁)가 금지됐다. 문제는 행정구역상 발전소가 들어서는 '수원리'에만 피해 보상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보상을 못 받은 한수리 해녀들은 수원리의 공동 어장에서 조업을 계속하려 했다. 이들을 가로막은 건 수원리 해녀들이었다.

해상풍력 사업이 추진된 뒤 갈등이 격화된 ‘한수리’와 ‘수원리’.해상풍력 사업이 추진된 뒤 갈등이 격화된 ‘한수리’와 ‘수원리’.

한 주민은 "지금까지 수십 년 그렇게 공동 어장에서 조업해 오다, 풍력발전소가 딱 들어서면서 싸움이 시작됐다"라며 "양쪽 마을이 굉장히 감정이 격화됐다. 이권이 개입된 사업이 들어오면서 '괸당 문화'(제주 특유의 공동체 문화)가 훼손됐다"라고 말했다.

■사업자에 따라 갈라진 여수 외딴섬

해상풍력 발전소를 준비하는 단계에서부터 난맥상을 보이며 마을이 갈라진 곳도 있다. 전남 여수 초도와 손죽도, 광도 같은 외딴섬들이다. 육지에서 한두 시간은 배를 타야 갈 수 있는 이런 외딴섬 주변에 풍력발전 단지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여수 섬 지역에서만 풍력발전소 건설의 사전 단계인 '풍황 계측기' 허가를 받은 지점이 25군데에 이른다. 8곳은 전기사업 허가가 났고 7곳은 심의 중이다.

문제는 여러 사업자가 동시에 사업을 추진하면서 벌어졌다. 경쟁 관계에 있는 사업자들은, 주민 동의를 얻어내는 절차를 따로 밟기 시작했다. 어떤 사업자와 접촉했느냐에 따라 주민들의 이해관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편이 갈렸고 다툼이 잦아졌다. 인구 백여 명에 불과한 작은 섬 손죽도는 극심한 갈등에 휩싸였다. 손죽도 주민 박기혁 씨는 "풍력 때문에 윗사람과 아랫사람, 조카와 삼촌들이 남이 되어 버리고 원수지간으로 서로 봐도 인사도 안 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해상 풍력 발전단지로 몸살을 앓고 있는 여수 손죽도. 상주 인구는 100명이 채 안 된다.해상 풍력 발전단지로 몸살을 앓고 있는 여수 손죽도. 상주 인구는 100명이 채 안 된다.

책임은 허가를 무분별하게 내준 여수시에도 있다. 민간 사업자의 신청이 들어오는 대로 허가를 내줬다. 그러다 보니 서로 다른 업체끼리 발전 사업 권역이 겹치는 어처구니없는 경우도 생겼다. 사업 권역이 중복된 지점만 5곳에 이를 정도다. 해상풍력 단지를 어디에, 어떻게 조성할 것인지 밑그림이 전혀 없었던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송하진 여수시의원은 "로드맵 없이 행정을 진행하다 보니 업체가 난립하며 분쟁이 벌어졌고, 섬 주민들의 의견도 수렴되지 않는 결과가 발생했다"라고 꼬집었다.

■신안 해상풍력 단지도 어민 반발에 '곤혹'

전남 신안 앞바다에도 8.2 GW, 세계적 규모의 해상풍력 단지 조성 계획이 세워졌다. 아직은 잔잔한 바다에 계측기 몇 개만 있는 상태인데, 청사진대로라면 풍력발전기가 천 개 넘게 들어서게 된다. 신안군은 바람이 잘 부는 천혜의 입지 조건으로 대기업들이 먼저 사업 추진을 희망하고 있는 만큼, 사업성이 충분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신안 해상풍력 단지 예정지에 설치돼 있는 풍황계측기. 해당 구역의 풍향과 풍속 등을 측정하는 기계다.신안 해상풍력 단지 예정지에 설치돼 있는 풍황계측기. 해당 구역의 풍향과 풍속 등을 측정하는 기계다.

여수와 제주의 사례 등을 참고해 시행착오를 줄이려 지난해에는 어민들과 상생 협약까지 맺었는데, 여기서 균열이 생기고 있다. 사업의 성격과 보상 규모 등을 놓고 논란이 일면서 올해 초 어민들이 협약을 파기한 것이다. 장근배 새어민회 회장은 "풍력발전 단지가 들어서면 해당 지역을 주요 어장으로 삼고 있는 어민들은 사실상 일을 그만둬야 한다"라며 "해상풍력 발전은 기본적으로 민간사업인데, 공익사업 성격이 있다며 보상 규모를 축소하려는 의도가 보여 협약서대로 진행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라고 밝혔다.

제주와 전남뿐 아니라 인천, 울산, 전북 등 한반도 삼면 바다 곳곳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농촌에 들어서는 태양광 발전소가 염전과 농지를 잠식한다면, 해상풍력 발전소는 지역 공동체의 분열을 가속화하고 있는 셈이다.

김동주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은 "재생 가능 에너지로의 전환은 단순히 에너지원을 화석 연료에서 풍력과 태양광으로 바꾸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기존의 개발주의적, 자본 중심적인 개발로는 또 다른 갈등과 모순을 낳을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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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생에너지의 명암]② 마을 갈라놓은 해상풍력…“인사도 안 한다”
    • 입력 2022-10-30 08:04:38
    • 수정2022-11-01 14:52:41
    취재K
<strong>화석 연료 대신 태양광과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를 쓰자는 '에너지 전환'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그러나 태양광과 풍력발전소가 농어촌 지역에 집중되면서 여러 모순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KBS는 최근 전남지역 농어촌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에너지 전환의 모순과 피해를 살펴보고,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과제를 짚어보는 기획보도를 마련했습니다.</strong><br /><br />재생에너지의 명암① 태양광에 사라진 염전과 논…갈 곳 없는 임차농들<br /><strong>재생에너지의 명암② 마을을 가른 해상풍력…"인사도 안 한다"</strong><br />재생에너지의 명암③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반복되는 '밀양 송전탑'<br />재생에너지의 명암④ 갈등 중재 기관 둔 독일…정의로운 에너지 전환 위해선?<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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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어촌 마을이 자리한 제주 한경면 앞바다. 여기에 특이한 풍경이 보인다. 드넓은 바다에 90미터 높이의 풍력발전기 열 개가 우뚝 솟아 있다. 국내 최초의 상업 해상풍력 발전소인 '탐라 해상풍력 발전단지'다. 세 개의 날개는 멀리서 보면 천천히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사실 고속 열차와 맞먹는 평균 시속 300㎞의 속도로 회전하며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탐라 해상풍력도 2017년부터 해마다 제주도민 2만 5천 가구가 쓸 전력을 생산한다.

해상풍력 발전은 전도유망한 분야로 꼽힌다. 무엇보다 주변에 민가가 없으니, 육상 풍력보다 입지가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소음 민원을 벗어날 수 있어서 발전기를 더 크게 만드는 게 가능하다.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의미다. 바다와 어우러져 관광 자원화도 가능하다. 유럽 등 해외에서 시장 규모가 점차 커지는 이유다.

바람이 많기로 유명한 제주도에서는 이런 해상풍력 단지가 여럿 추진되고 있다. 탐라 해상풍력 단지에서 멀지 않은 제주 한림 앞바다에는 '한림 해상풍력 단지'가 지난 4월부터 공사 중이다. 5.56MW급 풍력발전기 18기를 설치할 계획인데, 설비 용량이 100MW로 국내 최대 규모다.

■어민 목소리 반영 안돼…"물고기가 사라질 거다"

촘촘한 그물로 물고기를 잡는, '자망' 어민인 윤희돈 씨의 어장은 이 한림 앞바다에 있다. 지난 7월, 공사 현장 바로 앞 바다에서 조업하는 윤 씨를 만났다. 어선을 함께 타고 조업 현장을 지켜봤다. 미리 쳐둔 그물을 끌어 올리니 물고기가 줄줄이 딸려 나왔다. 제주도 제사상에서 빠지지 않는다는 특산 어종 '벤자리'였다.

해상풍력 공사 현장 인근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는 어민의 모습.
마치 연어처럼 자기가 난 자리로 돌아온다는 이 물고기를 더 이상 못 잡게 되지는 않을까, 윤 씨는 걱정하고 있었다. 바다 밑바닥에 발전기의 하부 구조물을 세우고 나면, 해양 생태계가 바뀌면서 '벤자리' 같은 물고기들이 사라질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실제 풍력발전소가 들어선 인근 바다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어업 피해 보상이 전혀 없던 건 아니다. 지역 선주 협회에 등록된 어선을 대상으로 125억 원 규모의 보상이 이뤄졌다. 그러나 누가 피해를 보는지 정확히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보상이 진행됐다는 것이 윤 씨를 비롯한 연안 자망 어민들의 주장이다. 해당 해역에서 조업하지 않는 어선들까지 보상 대상에 포함되면서, 실제 피해 당사자들의 의견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윤 씨는 "15㎞ 떨어져 있는 전혀 피해 없는 지역까지 보상해 준다고 하니 선주들이 덜컥 동의했다"라며 "어업권 피해를 일괄적으로, 투명성 있게 조사하고 보상해야 하는데, 연안 자망 어민들의 목소리는 전혀 반영이 안 됐다"라고 주장했다.

■발전 사업이 무너뜨린 '괸당 문화'

불똥은 바닷가 마을에도 튀었다. 발전소 공사 현장과 인접한 행정구역은 한림읍 '수원리'와 '한수리'다. 오랫동안 한 마을이었다가 둘로 나뉜 탓에, 해녀들은 '수원리'에 있는 공동 어장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해저 케이블 설치를 위한 발파 작업이 진행되다 보니, 올봄부터 공동 어장 입어(入漁)가 금지됐다. 문제는 행정구역상 발전소가 들어서는 '수원리'에만 피해 보상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보상을 못 받은 한수리 해녀들은 수원리의 공동 어장에서 조업을 계속하려 했다. 이들을 가로막은 건 수원리 해녀들이었다.

해상풍력 사업이 추진된 뒤 갈등이 격화된 ‘한수리’와 ‘수원리’.
한 주민은 "지금까지 수십 년 그렇게 공동 어장에서 조업해 오다, 풍력발전소가 딱 들어서면서 싸움이 시작됐다"라며 "양쪽 마을이 굉장히 감정이 격화됐다. 이권이 개입된 사업이 들어오면서 '괸당 문화'(제주 특유의 공동체 문화)가 훼손됐다"라고 말했다.

■사업자에 따라 갈라진 여수 외딴섬

해상풍력 발전소를 준비하는 단계에서부터 난맥상을 보이며 마을이 갈라진 곳도 있다. 전남 여수 초도와 손죽도, 광도 같은 외딴섬들이다. 육지에서 한두 시간은 배를 타야 갈 수 있는 이런 외딴섬 주변에 풍력발전 단지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여수 섬 지역에서만 풍력발전소 건설의 사전 단계인 '풍황 계측기' 허가를 받은 지점이 25군데에 이른다. 8곳은 전기사업 허가가 났고 7곳은 심의 중이다.

문제는 여러 사업자가 동시에 사업을 추진하면서 벌어졌다. 경쟁 관계에 있는 사업자들은, 주민 동의를 얻어내는 절차를 따로 밟기 시작했다. 어떤 사업자와 접촉했느냐에 따라 주민들의 이해관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편이 갈렸고 다툼이 잦아졌다. 인구 백여 명에 불과한 작은 섬 손죽도는 극심한 갈등에 휩싸였다. 손죽도 주민 박기혁 씨는 "풍력 때문에 윗사람과 아랫사람, 조카와 삼촌들이 남이 되어 버리고 원수지간으로 서로 봐도 인사도 안 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해상 풍력 발전단지로 몸살을 앓고 있는 여수 손죽도. 상주 인구는 100명이 채 안 된다.
책임은 허가를 무분별하게 내준 여수시에도 있다. 민간 사업자의 신청이 들어오는 대로 허가를 내줬다. 그러다 보니 서로 다른 업체끼리 발전 사업 권역이 겹치는 어처구니없는 경우도 생겼다. 사업 권역이 중복된 지점만 5곳에 이를 정도다. 해상풍력 단지를 어디에, 어떻게 조성할 것인지 밑그림이 전혀 없었던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송하진 여수시의원은 "로드맵 없이 행정을 진행하다 보니 업체가 난립하며 분쟁이 벌어졌고, 섬 주민들의 의견도 수렴되지 않는 결과가 발생했다"라고 꼬집었다.

■신안 해상풍력 단지도 어민 반발에 '곤혹'

전남 신안 앞바다에도 8.2 GW, 세계적 규모의 해상풍력 단지 조성 계획이 세워졌다. 아직은 잔잔한 바다에 계측기 몇 개만 있는 상태인데, 청사진대로라면 풍력발전기가 천 개 넘게 들어서게 된다. 신안군은 바람이 잘 부는 천혜의 입지 조건으로 대기업들이 먼저 사업 추진을 희망하고 있는 만큼, 사업성이 충분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신안 해상풍력 단지 예정지에 설치돼 있는 풍황계측기. 해당 구역의 풍향과 풍속 등을 측정하는 기계다.
여수와 제주의 사례 등을 참고해 시행착오를 줄이려 지난해에는 어민들과 상생 협약까지 맺었는데, 여기서 균열이 생기고 있다. 사업의 성격과 보상 규모 등을 놓고 논란이 일면서 올해 초 어민들이 협약을 파기한 것이다. 장근배 새어민회 회장은 "풍력발전 단지가 들어서면 해당 지역을 주요 어장으로 삼고 있는 어민들은 사실상 일을 그만둬야 한다"라며 "해상풍력 발전은 기본적으로 민간사업인데, 공익사업 성격이 있다며 보상 규모를 축소하려는 의도가 보여 협약서대로 진행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라고 밝혔다.

제주와 전남뿐 아니라 인천, 울산, 전북 등 한반도 삼면 바다 곳곳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농촌에 들어서는 태양광 발전소가 염전과 농지를 잠식한다면, 해상풍력 발전소는 지역 공동체의 분열을 가속화하고 있는 셈이다.

김동주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은 "재생 가능 에너지로의 전환은 단순히 에너지원을 화석 연료에서 풍력과 태양광으로 바꾸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기존의 개발주의적, 자본 중심적인 개발로는 또 다른 갈등과 모순을 낳을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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