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울분이 되지 않게”…트라우마와 절규

입력 2022.11.07 (13:54) 수정 2022.11.07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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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의 절규뭉크의 절규

노르웨이 출신 화가 뭉크의 대표작 '절규' . 무언가에 놀라 귀를 막고 있는 사람의 표정에서 공포가 느껴집니다. 뭉크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와 누이 등 가족의 잇따른 병환과 죽음을 목격했고, 이 때문에 평생 우울증과 트라우마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절규' 연작을 내놓기 전 어느 날 저녁 '자연을 뚫고 나오는 절규를 느꼈다'고 주변에 말한 것으로 전해져, 당시 자신이 느낀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트라우마와 절규. 최근 이태원 참사를 직접 겪은 당사자나 목격자, 유족뿐 아니라 당시 현장에서 구조 활동에 나선 경찰과 소방인력, 언론인, 더 나아가서는 뉴스를 통해 참사를 접한 일반 국민까지 트라우마가 우려되는 시점에서, 뭉크의 '절규'가 남다르게 다가오는 이유입니다.

■ 트라우마와 스트레스 어떻게 다른가?

이번 참사뿐 아니라 과거 세월호 침몰,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 지하철 화재 등 수많은 대형 참사를 우리는 기억합니다. 더는 이런 참사가 반복되진 않아야겠지만 앞으로 혹시 모를 참사, 또 이로 인한 트라우마를 예방하기 위해, 한국언론진흥재단과 국립정신건강센터는 오늘(7일) '트라우마 예방을 위한 재난 보도 가이드라인'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가이드라인은 우선 트라우마에 대한 정의부터 설명하는데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정찬승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사회공헌위원장은 트라우마의 심리적 반응으로 크게 4가지를 듭니다.

트라우마의 심리적 반응

• 재경험: 사건에 대한 반복적 회상이나 악몽, 사건 관련 자극에 노출될 때 심한 심리적·신체적 고통과 같은 재경험 반응
• 과각성: 과도한 놀람 반응, 과민성·공격성 증가와 같은 과각성 반응
• 회피: 사건과 관련된 장소나 사람, 생각에 대한 회피 반응
• 부정적 감정과 인지: 타인, 세상에 대한 불신, 과도한 죄책감이나 수치심과 같은 부정적 감정과 인지 반응, 해리 증상

이 중에 '해리 증상'은 내가 경험한 것과 내가 느끼는 감정 사이의 해리, 또 나의 기억과 또 다른 기억 간의 해리를 의미하는데요. 정찬승 위원장은 일시적인 기억 마비 증상으로, 부분 기억 상실이 되거나 나의 껍데기만 움직이고, 감정은 아주 먼 곳으로 사라져버린 것처럼 살다가, 나중에 조용한 시간이 되면 그 감정이 확 되살아나 올라오는 현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구분하지 못해 적절한 대응이 늦어지면 상황이 악화할 수도 있는데요.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는 이처럼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자료 제공:  정찬승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사회공헌위원장자료 제공: 정찬승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사회공헌위원장

■ "주변의 부정적 반응이 미치는 영향 가장 커"

국가트라우마센터는 이태원 참사 발생 전, 어떤 요인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나 우울증 불안 증상 등을 악화시키는지 알아보기 위해 코로나19 확진자를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는데요. 그 결과 재감염에 대한 걱정과 경제적 손실 등이 주요 요인으로 거론됐는데, 그 중에서도 주변의 부정적 반응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우울증, 불안 등 모든 증상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심민영 국가트라우마센터장은 "다양한 스트레스 요인 중에서도 주변의 부정적인 반응이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만큼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사람들은 "나를 적극적으로 지지해주는 가족이나 친구, 지인들과 연결을 유지할 것"을 심 센터장은 당부했습니다. 또 현장에서 구조에 나섰거나 취재 중이었던 언론인 등 2차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경우엔 "현장에서 당사자들을 돕고 싶었던 마음, 또 가슴 아픈 마음이 이제 들겠지만 내가 가진 한계가 있다는 것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아울러 누군가가 쉽게 던진 한마디와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이 받는 고통의 체감 온도가 차이가 큰 만큼, 혐오나 조롱, 비난 등의 표현은 삼가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강조합니다.

■ "재난 상황 취재 언론인, 공감하는 태도 유지해야"

오늘 가이드라인 발표회에서는 재난 현장과 국민 사이에서 매개체 역할을 하는 언론이 어떻게 취재에 임하고 보도해야 할지 구체적인 지침을 마련해 공개했습니다.

트라우마 예방 재난보도 지침

I. 준비단계
1. 언론사는 재난 보도로 인한 트라우마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연간 1회 이상 교육을 시행합니다.
2. 기자는 재난현장에 대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수집하고 언론사는 기자가 취재에 적합한 건강상태인지 점검합니다.

II. 취재단계
1. 재난 당사자의 신체와 심리상태를 확인한 후 취재를 시작합니다.
2. 재난 당사자의 자발적 의사를 바탕으로 취재를 진행합니다.
3. 재난 당사자의 특수한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태도를 유지합니다.
4. 언론사는 기자의 신체적·심리적 안정에 주의를 기울이고 트라우마 예방과 대응을 위한 조치를 취합니다.

III. 보도단계
1. 재난 당사자 및 가족의 사생활과 인격을 존중합니다.
2. 재난 당사자에게 낙인이나 부정적 인상을 남길 수 있는 보도를 지양합니다.
3. 보도 시 심리적 고통을 가중할 수 있는 표현이나 자료가 포함되지 않도록 주의합니다.
4. 재난 당사자와 재난업무 종사자, 지역공동체의 복구·회복 활동에 대한 보도는 사회 통합과 공동체의 성장을 촉진할 수 있습니다.
5. 재난 보도 시 재난 심리지원 등 사회지원서비스 정보나 콘텐츠를 함께 안내합니다.

전문가들이 트라우마를 예방하고 극복하기 위해 일반 국민뿐 아니라 언론인에게 가장 강조하는 점도 바로 '공감'입니다.

너무나 안타깝게도 많은 이들이 희생된 이번 참사를 계기로, 언론이 누군가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고, 한 번 더 반성하는 기회가 돼야 할 겁니다. (물론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도 마찬가지고요.) "슬픔이 울분이 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정찬승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사회공헌위원장의 당부대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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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픔이 울분이 되지 않게”…트라우마와 절규
    • 입력 2022-11-07 13:54:25
    • 수정2022-11-07 19:35:31
    취재K
뭉크의 절규
노르웨이 출신 화가 뭉크의 대표작 '절규' . 무언가에 놀라 귀를 막고 있는 사람의 표정에서 공포가 느껴집니다. 뭉크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와 누이 등 가족의 잇따른 병환과 죽음을 목격했고, 이 때문에 평생 우울증과 트라우마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절규' 연작을 내놓기 전 어느 날 저녁 '자연을 뚫고 나오는 절규를 느꼈다'고 주변에 말한 것으로 전해져, 당시 자신이 느낀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트라우마와 절규. 최근 이태원 참사를 직접 겪은 당사자나 목격자, 유족뿐 아니라 당시 현장에서 구조 활동에 나선 경찰과 소방인력, 언론인, 더 나아가서는 뉴스를 통해 참사를 접한 일반 국민까지 트라우마가 우려되는 시점에서, 뭉크의 '절규'가 남다르게 다가오는 이유입니다.

■ 트라우마와 스트레스 어떻게 다른가?

이번 참사뿐 아니라 과거 세월호 침몰,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 지하철 화재 등 수많은 대형 참사를 우리는 기억합니다. 더는 이런 참사가 반복되진 않아야겠지만 앞으로 혹시 모를 참사, 또 이로 인한 트라우마를 예방하기 위해, 한국언론진흥재단과 국립정신건강센터는 오늘(7일) '트라우마 예방을 위한 재난 보도 가이드라인'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가이드라인은 우선 트라우마에 대한 정의부터 설명하는데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정찬승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사회공헌위원장은 트라우마의 심리적 반응으로 크게 4가지를 듭니다.

트라우마의 심리적 반응

• 재경험: 사건에 대한 반복적 회상이나 악몽, 사건 관련 자극에 노출될 때 심한 심리적·신체적 고통과 같은 재경험 반응
• 과각성: 과도한 놀람 반응, 과민성·공격성 증가와 같은 과각성 반응
• 회피: 사건과 관련된 장소나 사람, 생각에 대한 회피 반응
• 부정적 감정과 인지: 타인, 세상에 대한 불신, 과도한 죄책감이나 수치심과 같은 부정적 감정과 인지 반응, 해리 증상

이 중에 '해리 증상'은 내가 경험한 것과 내가 느끼는 감정 사이의 해리, 또 나의 기억과 또 다른 기억 간의 해리를 의미하는데요. 정찬승 위원장은 일시적인 기억 마비 증상으로, 부분 기억 상실이 되거나 나의 껍데기만 움직이고, 감정은 아주 먼 곳으로 사라져버린 것처럼 살다가, 나중에 조용한 시간이 되면 그 감정이 확 되살아나 올라오는 현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구분하지 못해 적절한 대응이 늦어지면 상황이 악화할 수도 있는데요.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는 이처럼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자료 제공:  정찬승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사회공헌위원장
■ "주변의 부정적 반응이 미치는 영향 가장 커"

국가트라우마센터는 이태원 참사 발생 전, 어떤 요인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나 우울증 불안 증상 등을 악화시키는지 알아보기 위해 코로나19 확진자를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는데요. 그 결과 재감염에 대한 걱정과 경제적 손실 등이 주요 요인으로 거론됐는데, 그 중에서도 주변의 부정적 반응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우울증, 불안 등 모든 증상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심민영 국가트라우마센터장은 "다양한 스트레스 요인 중에서도 주변의 부정적인 반응이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만큼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사람들은 "나를 적극적으로 지지해주는 가족이나 친구, 지인들과 연결을 유지할 것"을 심 센터장은 당부했습니다. 또 현장에서 구조에 나섰거나 취재 중이었던 언론인 등 2차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경우엔 "현장에서 당사자들을 돕고 싶었던 마음, 또 가슴 아픈 마음이 이제 들겠지만 내가 가진 한계가 있다는 것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아울러 누군가가 쉽게 던진 한마디와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이 받는 고통의 체감 온도가 차이가 큰 만큼, 혐오나 조롱, 비난 등의 표현은 삼가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강조합니다.

■ "재난 상황 취재 언론인, 공감하는 태도 유지해야"

오늘 가이드라인 발표회에서는 재난 현장과 국민 사이에서 매개체 역할을 하는 언론이 어떻게 취재에 임하고 보도해야 할지 구체적인 지침을 마련해 공개했습니다.

트라우마 예방 재난보도 지침

I. 준비단계
1. 언론사는 재난 보도로 인한 트라우마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연간 1회 이상 교육을 시행합니다.
2. 기자는 재난현장에 대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수집하고 언론사는 기자가 취재에 적합한 건강상태인지 점검합니다.

II. 취재단계
1. 재난 당사자의 신체와 심리상태를 확인한 후 취재를 시작합니다.
2. 재난 당사자의 자발적 의사를 바탕으로 취재를 진행합니다.
3. 재난 당사자의 특수한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태도를 유지합니다.
4. 언론사는 기자의 신체적·심리적 안정에 주의를 기울이고 트라우마 예방과 대응을 위한 조치를 취합니다.

III. 보도단계
1. 재난 당사자 및 가족의 사생활과 인격을 존중합니다.
2. 재난 당사자에게 낙인이나 부정적 인상을 남길 수 있는 보도를 지양합니다.
3. 보도 시 심리적 고통을 가중할 수 있는 표현이나 자료가 포함되지 않도록 주의합니다.
4. 재난 당사자와 재난업무 종사자, 지역공동체의 복구·회복 활동에 대한 보도는 사회 통합과 공동체의 성장을 촉진할 수 있습니다.
5. 재난 보도 시 재난 심리지원 등 사회지원서비스 정보나 콘텐츠를 함께 안내합니다.

전문가들이 트라우마를 예방하고 극복하기 위해 일반 국민뿐 아니라 언론인에게 가장 강조하는 점도 바로 '공감'입니다.

너무나 안타깝게도 많은 이들이 희생된 이번 참사를 계기로, 언론이 누군가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고, 한 번 더 반성하는 기회가 돼야 할 겁니다. (물론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도 마찬가지고요.) "슬픔이 울분이 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정찬승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사회공헌위원장의 당부대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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