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체크K] ‘이태원 참사’…국가배상책임 성립의 조건 따져보니

입력 2022.11.07 (14:49) 수정 2022.11.07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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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가 경찰, 용산구청 등 국가 행정기관의 부실한 대응에서 비롯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유가족 등 피해자들이 향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는지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국가배상은 공무원이 불법을 저질렀을 때 국가가 피해자에게 그 손해를 배상하는 제도입니다.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국가에 물을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려면 비슷한 사건을 다룬 과거 판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법원은 지금까지 주로 어떤 상황에서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해왔을까요?

■ '이태원 참사'에 적용될 수 있는 국가배상책임의 법적 근거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국가배상법입니다. 해당 법 조항에 따르면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배상책임을 집니다.


이태원 참사의 경우는 국가배상법에 더해 경찰관의 직무 수행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 '경찰관 직무집행법'이 또 다른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해당 법 2조(직무의 범위)에 따르면 경찰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해야 합니다. 같은 법 제5조는 경찰관이 극도의 혼잡 등 위험한 사태가 있을 때 그에 상응한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했습니다.


종합하면, 공무원인 경찰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해야 하는 본연의 역할을 부주의나 태만 등으로 제대로 하지 못해 누군가에게 손해를 입혔다면 국가가 손해배상의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위 두 법령을 근거로 국가의 배상책임이 인정된 과거 사례들이 있습니다.

■ 과거 판례 보니…직무위반이 참사로 이어진 경우 배상책임

2012년 길 가던 여성을 집안으로 끌고 들어가 잔인하게 살해한 오원춘 사건은 이번 이태원 참사 때와 마찬가지로 112신고를 받은 경찰의 미흡한 대처가 공분을 일으켰습니다. 범행 당시 오원춘이 잠시 화장실을 간 사이 피해자가 112에 전화를 걸어 대략적인 위치까지 알려줬지만, 112신고센터 담당자의 안이한 태도와 현장 경찰의 늑장 대응 등이 겹쳐 결국 피해자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대법원은 피해자 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국가가 범행을 막지 못한 책임이 있다"면서 유족에게 9,000여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재판부는 "경찰관들의 직무상 위반행위가 없었다면 피해자가 생존할 가능성이 매우 컸을 것"이라며 "직무상 의무 위반 행위와 피해자 사망 사이에 상당한 인과 관계가 인정된다"고 봤습니다.

오원춘오원춘

2011년 서울 우면산 산사태로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는 법원이 지자체의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당시 급류에 떠밀려 사망한 A씨 유족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서울고등법원은 "집중호우에 따른 지반 약화가 산사태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면서도 "재난관리 책임기관인 서초구가 산사태 경보를 제때 발령하지 않았고 가능한 방법을 모두 동원해 주민을 대피시키지 않았다"며 서초구청에 대해 4억 7,000여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재판부는 특히 국가배상법 제2조 1항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에 대해서 형식적 의미의 법령 근거가 없더라도 공무원이 마땅히 해야 할 행위를 하지 않았다면 국가배상 책임이 인정된다고 봤습니다. 이는 정부의 책임을 폭넓게 인정한 것으로, 대법원이 서초구청의 상고를 기각하면서 판결이 확정됐습니다.

우면산 산사태우면산 산사태

2002년 전북 군산의 한 윤락업소에서 불이 나 업소에 감금돼 있던 여성 11명이 숨진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업주뿐 아니라 전라북도에도 배상 책임이 있다며 1인당 2,1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바 있습니다. 당시 유족들이 전라북도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재판부는 뇌물을 받고 윤락업소 단속을 눈감아 준 경찰과 윤락업소에 설치된 잠금장치가 화재 시 피난에 장애가 된다는 점을 사전에 확인해 조치할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소방공무원의 책임까지 함께 물었습니다.

2002년 군산 윤락업소 화재 현장 (KBS 보도 화면)2002년 군산 윤락업소 화재 현장 (KBS 보도 화면)

1993년 전북 김제에서 발생한 '쌀시장 개방 반대 농민 시위' 사건에서도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됐습니다. 당시 농민 300여 명이 트랙터를 앞세워 1차선 도로점거 시위를 벌였는데, 시위 후 놓고 간 트랙터를 경찰이 알고도 방치해 야간에 교통사고가 난 사건입니다. 대법원은 사고 운전자 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경찰관이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5조에 규정된 위험 발생 방지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는 특별법이 제정되고 꾸려진 배·보상 심의위원회 결정에 따라 국가가 피해자에게 배상금을 지급했습니다. 당시 배상금 수령을 거부하고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유족들이 2018년 1심 재판에서 승소한 바가 있지만, 현재 2심 재판이 진행 중으로 아직 최종 결론이 나오진 않았습니다.

1심 재판부는 2018년 당시 "목포해경 123정 정장이 현장지휘관으로서 적절한 구조지휘나 승객 퇴선 유도조치를 하지 않은 건 해양경찰관의 직무상 의무를 위반한 위법행위"라며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과 희생자들 사망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어 국가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세월호세월호

이들 판결 모두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5조 1항(위험 발생의 방지 조치 등)이 '각호의 조치를 할 수 있다'라고 돼 있어 명시적인 '의무' 규정은 아니지만, 필요한 조처를 하지 않아 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끼친 경우 경찰이 직무상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봤습니다. 또 공무원의 직무상 의무 위반이 참사로 이어졌다고 볼만한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됐다고 판단했습니다.


■ '직무상 위법→참사' 인과관계 입증이 쉽지는 않아

하지만 법원으로부터 그 인과관계를 인정받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위 사례들만 봐도 그렇습니다.

오원춘 사건에서 국가의 배상책임이 바로 인정된 건 아닙니다. 1심에서 인정됐던 국가의 책임이 2심에서는 인정되지 않았다가 3심에서 다시 뒤집어지는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2심 재판부가 다른 판단을 했던 건 의무를 위반한 경찰관들의 위법행위가 피해자의 사망으로 이어졌는지를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경찰관들의 위법행위가 없었다면 H(피해자)가 사망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부족하고, 달리 기록을 잘 살펴보아도 이를 인정할 만한 충분한 증거를 발견할 수 없다."
-2014년 10월. 서울고등법원 판결 내용

누가 봐도 납득할 정도로 인과관계가 입증돼야 하는데 2심 재판부는 부족했다고 본 겁니다. 하지만 이후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2심 판결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인과관계가 충분히 인정된다고 봤습니다. 다만 국가의 배상책임은 손해액의 30%만 인정됐습니다. 오원춘의 범행이 직접적인 사망 원인이었고 국가는 그 범행을 막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일부 책임만 진 것입니다. 어렵게 국가배상 책임이 인정된다고 해도 인과관계가 명확히 인정된 부분만 책임을 집니다.

다른 사건들도 인과관계 입증이 핵심 쟁점이었습니다. 군산 윤락업소 화재 참사는 당초 1심에선 업주의 배상 책임만 물었고 국가의 배상책임은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이후 2심과 3심을 거치면서 경찰과 소방공무원의 책임이 인정돼 최종적으로 국가의 배상책임이 인정됐습니다.

2011년 7월 발생한 우면산 산사태에 따른 손해배상청구 소송은 2019년 5월까지 이어졌습니다. 지자체 공무원의 직무 위반이 참사로 이어졌다는 인과관계가 충분히 입증되기까지 8년 가까운 세월이 걸린 것입니다.

■ 이태원 참사는 국가배상책임 인정될까

그렇다면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도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될 수 있을까요?

참사 당일 112신고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국가의 배상 책임을 피하기 어려워졌다는 전문가들 의견이 많습니다. 다만 그런 의견도 국가기관과 공무원이 사고를 미리 예견할 수 있었는데도 필요한 조치를 충분히 다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충분히 입증됐을 때를 전제로 합니다.

반면 '적절한 조치'나 현저한 잘못'이라는 개념이 워낙 포괄적이고 마땅히 해야 하는 공무원의 직무 범위에 대한 판단이 갈릴 수 있어 국가배상책임이 쉽게 인정되지는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습니다.

재판연구원 출신 변호사 A씨는 공무원의 직무상 위법행위와 참사 간 인과관계 입증은 물론, 그에 앞서 공무원의 행위가 위법으로 인정되는 것부터 쉽지 않다고 말합니다.

"심정적으로는 법원이 당연히 인과관계를 인정해줘야 할 것 같지만 공무원의 고의·과실에 의한 위법행위를 아주 구체적으로 따져봅니다. 관련 판례에도 나와 있듯이 위법행위가 '객관적 정당성이 상실될 정도로 현저하게 불합리한 것인지'를 구체적 사정 하나하나까지 다 따져서 살펴보거든요. 그래서 국가배상책임 인정 여부에 대해 함부로 단정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 재판연구원 출신 변호사 A씨

그럼에도 향후 수사를 통해 국가의 책임 소지가 드러날 경우, 관련 소송에서 인과 관계 입증 과정이 한층 복잡하고 첨예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이태원 참사의 원인이 좀 더 명확히 밝혀져야 국가배상책임 인정 여부에 대한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을 겁니다.

※ 취재지원: 강혜림 SNU팩트체크센터 인턴기자 (kangnews.hi@gmail.com)
인포그래픽: 김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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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슈체크K] ‘이태원 참사’…국가배상책임 성립의 조건 따져보니
    • 입력 2022-11-07 14:49:29
    • 수정2022-11-07 15:03:18
    팩트체크K

'이태원 참사'가 경찰, 용산구청 등 국가 행정기관의 부실한 대응에서 비롯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유가족 등 피해자들이 향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는지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국가배상은 공무원이 불법을 저질렀을 때 국가가 피해자에게 그 손해를 배상하는 제도입니다.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국가에 물을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려면 비슷한 사건을 다룬 과거 판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법원은 지금까지 주로 어떤 상황에서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해왔을까요?

■ '이태원 참사'에 적용될 수 있는 국가배상책임의 법적 근거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국가배상법입니다. 해당 법 조항에 따르면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배상책임을 집니다.


이태원 참사의 경우는 국가배상법에 더해 경찰관의 직무 수행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 '경찰관 직무집행법'이 또 다른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해당 법 2조(직무의 범위)에 따르면 경찰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해야 합니다. 같은 법 제5조는 경찰관이 극도의 혼잡 등 위험한 사태가 있을 때 그에 상응한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했습니다.


종합하면, 공무원인 경찰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해야 하는 본연의 역할을 부주의나 태만 등으로 제대로 하지 못해 누군가에게 손해를 입혔다면 국가가 손해배상의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위 두 법령을 근거로 국가의 배상책임이 인정된 과거 사례들이 있습니다.

■ 과거 판례 보니…직무위반이 참사로 이어진 경우 배상책임

2012년 길 가던 여성을 집안으로 끌고 들어가 잔인하게 살해한 오원춘 사건은 이번 이태원 참사 때와 마찬가지로 112신고를 받은 경찰의 미흡한 대처가 공분을 일으켰습니다. 범행 당시 오원춘이 잠시 화장실을 간 사이 피해자가 112에 전화를 걸어 대략적인 위치까지 알려줬지만, 112신고센터 담당자의 안이한 태도와 현장 경찰의 늑장 대응 등이 겹쳐 결국 피해자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대법원은 피해자 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국가가 범행을 막지 못한 책임이 있다"면서 유족에게 9,000여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재판부는 "경찰관들의 직무상 위반행위가 없었다면 피해자가 생존할 가능성이 매우 컸을 것"이라며 "직무상 의무 위반 행위와 피해자 사망 사이에 상당한 인과 관계가 인정된다"고 봤습니다.

오원춘
2011년 서울 우면산 산사태로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는 법원이 지자체의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당시 급류에 떠밀려 사망한 A씨 유족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서울고등법원은 "집중호우에 따른 지반 약화가 산사태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면서도 "재난관리 책임기관인 서초구가 산사태 경보를 제때 발령하지 않았고 가능한 방법을 모두 동원해 주민을 대피시키지 않았다"며 서초구청에 대해 4억 7,000여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재판부는 특히 국가배상법 제2조 1항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에 대해서 형식적 의미의 법령 근거가 없더라도 공무원이 마땅히 해야 할 행위를 하지 않았다면 국가배상 책임이 인정된다고 봤습니다. 이는 정부의 책임을 폭넓게 인정한 것으로, 대법원이 서초구청의 상고를 기각하면서 판결이 확정됐습니다.

우면산 산사태
2002년 전북 군산의 한 윤락업소에서 불이 나 업소에 감금돼 있던 여성 11명이 숨진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업주뿐 아니라 전라북도에도 배상 책임이 있다며 1인당 2,1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바 있습니다. 당시 유족들이 전라북도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재판부는 뇌물을 받고 윤락업소 단속을 눈감아 준 경찰과 윤락업소에 설치된 잠금장치가 화재 시 피난에 장애가 된다는 점을 사전에 확인해 조치할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소방공무원의 책임까지 함께 물었습니다.

2002년 군산 윤락업소 화재 현장 (KBS 보도 화면)
1993년 전북 김제에서 발생한 '쌀시장 개방 반대 농민 시위' 사건에서도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됐습니다. 당시 농민 300여 명이 트랙터를 앞세워 1차선 도로점거 시위를 벌였는데, 시위 후 놓고 간 트랙터를 경찰이 알고도 방치해 야간에 교통사고가 난 사건입니다. 대법원은 사고 운전자 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경찰관이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5조에 규정된 위험 발생 방지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는 특별법이 제정되고 꾸려진 배·보상 심의위원회 결정에 따라 국가가 피해자에게 배상금을 지급했습니다. 당시 배상금 수령을 거부하고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유족들이 2018년 1심 재판에서 승소한 바가 있지만, 현재 2심 재판이 진행 중으로 아직 최종 결론이 나오진 않았습니다.

1심 재판부는 2018년 당시 "목포해경 123정 정장이 현장지휘관으로서 적절한 구조지휘나 승객 퇴선 유도조치를 하지 않은 건 해양경찰관의 직무상 의무를 위반한 위법행위"라며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과 희생자들 사망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어 국가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세월호
이들 판결 모두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5조 1항(위험 발생의 방지 조치 등)이 '각호의 조치를 할 수 있다'라고 돼 있어 명시적인 '의무' 규정은 아니지만, 필요한 조처를 하지 않아 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끼친 경우 경찰이 직무상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봤습니다. 또 공무원의 직무상 의무 위반이 참사로 이어졌다고 볼만한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됐다고 판단했습니다.


■ '직무상 위법→참사' 인과관계 입증이 쉽지는 않아

하지만 법원으로부터 그 인과관계를 인정받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위 사례들만 봐도 그렇습니다.

오원춘 사건에서 국가의 배상책임이 바로 인정된 건 아닙니다. 1심에서 인정됐던 국가의 책임이 2심에서는 인정되지 않았다가 3심에서 다시 뒤집어지는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2심 재판부가 다른 판단을 했던 건 의무를 위반한 경찰관들의 위법행위가 피해자의 사망으로 이어졌는지를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경찰관들의 위법행위가 없었다면 H(피해자)가 사망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부족하고, 달리 기록을 잘 살펴보아도 이를 인정할 만한 충분한 증거를 발견할 수 없다."
-2014년 10월. 서울고등법원 판결 내용

누가 봐도 납득할 정도로 인과관계가 입증돼야 하는데 2심 재판부는 부족했다고 본 겁니다. 하지만 이후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2심 판결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인과관계가 충분히 인정된다고 봤습니다. 다만 국가의 배상책임은 손해액의 30%만 인정됐습니다. 오원춘의 범행이 직접적인 사망 원인이었고 국가는 그 범행을 막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일부 책임만 진 것입니다. 어렵게 국가배상 책임이 인정된다고 해도 인과관계가 명확히 인정된 부분만 책임을 집니다.

다른 사건들도 인과관계 입증이 핵심 쟁점이었습니다. 군산 윤락업소 화재 참사는 당초 1심에선 업주의 배상 책임만 물었고 국가의 배상책임은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이후 2심과 3심을 거치면서 경찰과 소방공무원의 책임이 인정돼 최종적으로 국가의 배상책임이 인정됐습니다.

2011년 7월 발생한 우면산 산사태에 따른 손해배상청구 소송은 2019년 5월까지 이어졌습니다. 지자체 공무원의 직무 위반이 참사로 이어졌다는 인과관계가 충분히 입증되기까지 8년 가까운 세월이 걸린 것입니다.

■ 이태원 참사는 국가배상책임 인정될까

그렇다면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도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될 수 있을까요?

참사 당일 112신고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국가의 배상 책임을 피하기 어려워졌다는 전문가들 의견이 많습니다. 다만 그런 의견도 국가기관과 공무원이 사고를 미리 예견할 수 있었는데도 필요한 조치를 충분히 다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충분히 입증됐을 때를 전제로 합니다.

반면 '적절한 조치'나 현저한 잘못'이라는 개념이 워낙 포괄적이고 마땅히 해야 하는 공무원의 직무 범위에 대한 판단이 갈릴 수 있어 국가배상책임이 쉽게 인정되지는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습니다.

재판연구원 출신 변호사 A씨는 공무원의 직무상 위법행위와 참사 간 인과관계 입증은 물론, 그에 앞서 공무원의 행위가 위법으로 인정되는 것부터 쉽지 않다고 말합니다.

"심정적으로는 법원이 당연히 인과관계를 인정해줘야 할 것 같지만 공무원의 고의·과실에 의한 위법행위를 아주 구체적으로 따져봅니다. 관련 판례에도 나와 있듯이 위법행위가 '객관적 정당성이 상실될 정도로 현저하게 불합리한 것인지'를 구체적 사정 하나하나까지 다 따져서 살펴보거든요. 그래서 국가배상책임 인정 여부에 대해 함부로 단정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 재판연구원 출신 변호사 A씨

그럼에도 향후 수사를 통해 국가의 책임 소지가 드러날 경우, 관련 소송에서 인과 관계 입증 과정이 한층 복잡하고 첨예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이태원 참사의 원인이 좀 더 명확히 밝혀져야 국가배상책임 인정 여부에 대한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을 겁니다.

※ 취재지원: 강혜림 SNU팩트체크센터 인턴기자 (kangnews.h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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