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 없는 명단 공개…유족들만 속앓이

입력 2022.11.15 (16:22) 수정 2022.11.15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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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온라인 매체에서 유족 동의 없이 공개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실명 명단을 두고 파장이 커지고 있습니다.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를 두고 논쟁하는 와중에, 철저하게 배제된 유족들만 속앓이를 하고 있습니다.

시민언론을 표방한 '민들레' 측은 어제(14일) "유족들께 동의를 구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깊이 양해를 구한다"며 이태원 참사 희생자 155명의 실명을 공개했습니다.

이들은 "희생자들을 기리는 데 호명할 이름조차 없이 단지 '158'이라는 숫자만 존재한다는 것은 추모 대상이 완전히 추상화된다는 의미"라며, " 이는 사실상 무명(無名)이고 실명(失名)"이라며 명단 공개의 명분을 내세웠습니다.

같은 날 저녁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도 추모 미사에서 "정부와 언론은 애도를 말하면서 오히려 시민들을 강제된 침묵 속으로 가둬 두려고만 한다"며 희생자 한명 한명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김영식 대표신부는 오늘 한 라디오에서 "하느님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라고 한분 한분 이름을 정성껏 불렀다"며,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하는 것이 패륜이라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패륜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 "유족에 대한 테러"… 고발 이어져

명단 공개 하루 만에 '고발 난타전'과 정쟁이 이어졌습니다.

국민의힘 이종배 서울 시의원은 "희생자 실명을 유족 동의 없이 무단으로 공개한 것은 유족에 대한 끔찍한 테러"라며, 김건희 여사 팬카페 '건사랑' 측도 "명백한 2차 가해"라며, 민들레를 각각 서울경찰청과 서울 서초경찰서에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습니다.

또 시민단체 사법시험준비생모임도 민들레 측에 명단을 유출한 공무원을 공무상비밀누설죄로 대검찰청에 고발했습니다.

여기에 여당은 희생자 명단 공개에 '민주당 배후설'을 제기하고, 민주당에서는 명단 공개에 '선을 그어야 한다'는 입장과 '실명으로 온라인 추모 공간을 만들겠다'는 입장이 엇갈려 나오는 등, 명단 공개를 두고 저마다의 주장을 펼쳤습니다.

■ 유족들만 속앓이

이틀간 벌어진 이 모든 논란에서, 당사자인 유족들이 목소리를 낼 곳은 없었습니다.

KBS와 연락이 닿은 유족들은 대부분 민들레 측 연락을 따로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한 유족은 KBS 취재진에 "공개할 생각이 없었는데, 그렇게 공개를 해버리니까 당황스럽다"는 뜻을 전해왔습니다.

또 다른 30대 희생자의 유족은 연로하신 할머니가 충격을 받을까 봐 모두 비밀로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름이 밝혀져서 매우 당황스럽다며, 지금이라도 내릴 방법이 없냐고 취재진에 되묻기도 했습니다.

명단 공개를 받아들인 또 다른 유족 역시, 이름 정도는 괜찮지만 추후에 사진이나 나이 등이 함께 공개되면 특정될 가능성이 있어 꺼려진다고 말했습니다.

이 유족은 "당일 사망자·부상자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제공되지 않아 병원 일곱 군데에 전화를 하며 애태웠다"며, 정작 필요할 때는 명단이 제공되지 않다가 뒤늦게 명단 공개를 두고 논쟁하는 상황을 안타까워했습니다.

■ 민들레 "명단 내리는 상황까진 안 갈 것"

민들레 측은 오늘에서야 뒤늦게 희생자 10여 명의 이름을 내렸습니다. 유족들이 직접 민들레 측에 연락했던 건데, 이미 SNS 등에선 그 전체 희생자 명단이 공유되는 상황입니다.

민들레 측은 KBS와의 통화에서 "지금의 애도가 전개되는 방식은 일방적이고 정부에 의해서 매우 왜곡된 방식으로 강요되고 통제된 방식"이라며, "고인들을 최소한 이름으로 불러주자는 것이 고인들을 잊지 않을 수 있는 출발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지금이라도 명단 전체를 비공개로 전환할 계획은 없느냐는 질문에는, "명단을 내리는 상황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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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의 없는 명단 공개…유족들만 속앓이
    • 입력 2022-11-15 16:22:49
    • 수정2022-11-15 16:23:09
    취재K

한 온라인 매체에서 유족 동의 없이 공개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실명 명단을 두고 파장이 커지고 있습니다.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를 두고 논쟁하는 와중에, 철저하게 배제된 유족들만 속앓이를 하고 있습니다.

시민언론을 표방한 '민들레' 측은 어제(14일) "유족들께 동의를 구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깊이 양해를 구한다"며 이태원 참사 희생자 155명의 실명을 공개했습니다.

이들은 "희생자들을 기리는 데 호명할 이름조차 없이 단지 '158'이라는 숫자만 존재한다는 것은 추모 대상이 완전히 추상화된다는 의미"라며, " 이는 사실상 무명(無名)이고 실명(失名)"이라며 명단 공개의 명분을 내세웠습니다.

같은 날 저녁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도 추모 미사에서 "정부와 언론은 애도를 말하면서 오히려 시민들을 강제된 침묵 속으로 가둬 두려고만 한다"며 희생자 한명 한명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김영식 대표신부는 오늘 한 라디오에서 "하느님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라고 한분 한분 이름을 정성껏 불렀다"며,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하는 것이 패륜이라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패륜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 "유족에 대한 테러"… 고발 이어져

명단 공개 하루 만에 '고발 난타전'과 정쟁이 이어졌습니다.

국민의힘 이종배 서울 시의원은 "희생자 실명을 유족 동의 없이 무단으로 공개한 것은 유족에 대한 끔찍한 테러"라며, 김건희 여사 팬카페 '건사랑' 측도 "명백한 2차 가해"라며, 민들레를 각각 서울경찰청과 서울 서초경찰서에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습니다.

또 시민단체 사법시험준비생모임도 민들레 측에 명단을 유출한 공무원을 공무상비밀누설죄로 대검찰청에 고발했습니다.

여기에 여당은 희생자 명단 공개에 '민주당 배후설'을 제기하고, 민주당에서는 명단 공개에 '선을 그어야 한다'는 입장과 '실명으로 온라인 추모 공간을 만들겠다'는 입장이 엇갈려 나오는 등, 명단 공개를 두고 저마다의 주장을 펼쳤습니다.

■ 유족들만 속앓이

이틀간 벌어진 이 모든 논란에서, 당사자인 유족들이 목소리를 낼 곳은 없었습니다.

KBS와 연락이 닿은 유족들은 대부분 민들레 측 연락을 따로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한 유족은 KBS 취재진에 "공개할 생각이 없었는데, 그렇게 공개를 해버리니까 당황스럽다"는 뜻을 전해왔습니다.

또 다른 30대 희생자의 유족은 연로하신 할머니가 충격을 받을까 봐 모두 비밀로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름이 밝혀져서 매우 당황스럽다며, 지금이라도 내릴 방법이 없냐고 취재진에 되묻기도 했습니다.

명단 공개를 받아들인 또 다른 유족 역시, 이름 정도는 괜찮지만 추후에 사진이나 나이 등이 함께 공개되면 특정될 가능성이 있어 꺼려진다고 말했습니다.

이 유족은 "당일 사망자·부상자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제공되지 않아 병원 일곱 군데에 전화를 하며 애태웠다"며, 정작 필요할 때는 명단이 제공되지 않다가 뒤늦게 명단 공개를 두고 논쟁하는 상황을 안타까워했습니다.

■ 민들레 "명단 내리는 상황까진 안 갈 것"

민들레 측은 오늘에서야 뒤늦게 희생자 10여 명의 이름을 내렸습니다. 유족들이 직접 민들레 측에 연락했던 건데, 이미 SNS 등에선 그 전체 희생자 명단이 공유되는 상황입니다.

민들레 측은 KBS와의 통화에서 "지금의 애도가 전개되는 방식은 일방적이고 정부에 의해서 매우 왜곡된 방식으로 강요되고 통제된 방식"이라며, "고인들을 최소한 이름으로 불러주자는 것이 고인들을 잊지 않을 수 있는 출발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지금이라도 명단 전체를 비공개로 전환할 계획은 없느냐는 질문에는, "명단을 내리는 상황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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