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초대석] ‘오빠부대 원조’ 남진
입력 2022.11.19 (00:07)
수정 2022.11.19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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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오늘 라인 초대석에선 우리나라 오빠부대의 원조 격이죠.
데뷔 58년차, 현재도 현역으로 꾸준히 활동하고 계신 가수 남진 씨 모시고 이야기 나눠 봅니다.
안녕하세요.
먼저 새 소식부터 짚어보겠습니다.
다음 주 주말 콘서트 시작.
한창 준비 중이실텐데 이번 공연만의 특별한 점이 있다면?
[답변]
예, 이달 26일 날 경희대학교 예술회관에서 오랜만에 콘서트를 갖습니다.
해년마다 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 코로나 때문에 한 3년 동안 팬들하고 가까이 하지 못해서 조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오랜만에 공연을 갖게 돼서 굉장히 기다려집니다.
그러니까 오랜만에 팬들을 만나니까.
[앵커]
58년 차 베테랑.
더 이상 연습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오히려 노래 연습을 더 많이 한다면서요.
아직도 갈고 닦을 게 남아있습니까?
[답변]
베테랑은 아니고 그냥 이제 원로가수예요.
아무래도 이제 모를 때가 편하고 쉬운데 이것저것 알면은 힘들잖아요.
노래도 제가 뭐 50년 전에 불렀던 예를 들자면 가슴아프게라는 노래가 그 때 부를 때 그 멜로디 가사의 느낌이 20년, 30년 50년 지나면 또 다르잖아요.
그 감정을 조금 더 좋게, 정말 진정스럽게 잘 좀 표현하고 싶다 보면은 연습밖에 없어요.
그 감성은.
그러니까 연습을 안 할 수가 없어요.
[앵커]
우리 가요계에서 오빠부대를 처음으로 몰고 다니셨잖아요.
연세가 70대 후반이신데 지금도 꾸준히 활동하고 계시고 '영원한 오빠' 로 불리시는데 그런 말을 들으면 어떠십니까?
[답변]
전 가요계에서 가장 자랑스럽고 보람을 느끼는 게 이제 우리 가요계에 뭐라고 그럴까요.
오빠의 원조.
그 말이 굉장히 저한테는 참 보람을 느껴요.
그런데 어디 이제 공연을 가더라도 이제 사회자가 가수를 소개할 때 다음은 무슨 뭐 가왕, 가요계 황제 이런 소리를 하면은 기분이 조금 멈칫해요.
왜냐면 진정성이 떨어지니까.
근데 이제 제가 부릅니다.
사회자한테.
야, 나 소개할 때 그냥 가요계의 원조, 아니면 영원한 오빠 이렇게 소개하면 안 되겠냐고.
나는 그게 더 마음에 와닿는다고 그렇게 이야기를 해요.
그러니까 가요계 오빠의 원조라는 그 말에 굉장히 보람과 행복이 있죠.
[앵커]
과거 이야기도 해 보죠.
몇 번의 슬럼프가 있었습니다.
먼저 군대 얘기를 안 할 수 없네요, 1966년 '가슴 아프게‘로 한창 사랑받던 중 해병대에 입대했다가 나중에 월남전까지 가셨죠?
[답변]
그렇죠.
68년도에 입대해서 69년도에는 파월 장병으로 청룡 해병으로 호이안에서 나머지 2년을 근무하고 그러고 돌아왔습니다.
[앵커]
그래도 '호사다마'라고 제대 후 72년 ‘님과 함께’로 스타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처음 곡을 받았을때 어땠습니까?
느낌이 왔습니까?
[답변]
노래 한 번 들어보라고 해서 딱 듣는데, 순간에 딱 오는 거예요.
그 때 당시 그 노래가 우리 가요계에서 가장 빠른 템포였어요.
그게 고고리듬인데 쿵쿵따따 저 푸른 이렇게 나오는데 너무 가슴에 와닿았어요.
[앵커]
이후 두 번의 슬럼프를 더 겪었습니다.
결혼 이후 외국에서 떠돌던 시절, 그리고 5공 때 낙향해 칩거했던 시절입니다.
다시 가수를 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할 정도였다면서요.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답변]
고향에 낙향해서 고향에 가서 일 좀 하다가 관둘까 하는 생각도 가졌어요.
그런데 이제 다시 노래를 할 수 있는 큰 힘이 되는 노래를 받게 됐죠.
운이라는 게 필요한 거예요.
(그 노래가 뭡니까?)
그게 바로 제 마음을 그 힘들었던 마음을 채워줬던 빈잔.
(빈잔)
우리 박춘석 선생님 작곡, 조운파 선생님 작가.
이 노래는 나와서 가수가 자기 노래를 하려면 PR이 좀 되어야 하는데 PR을 전혀 할 수 없는 상황이잖아요, 제가 입장이.
세상도 바뀌고 주위도 바뀌고 저에게 제재가 들어오고 그러니까 그 노래만 그냥 노래가 좋으니까, 이 노래가 구전 구전을 통해서 자연히 히트가 된 노래는 이 노래가 제일 대표곡이에요.
이 곡은 저의 행운이, 좋은 멜로디와 좋은 가사가 붙어서 저에게 다시 팬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곡이 나온 덕이죠.
[앵커]
앨범만 20여 개, 히트곡은 수없이 많습니다.
원로인 설운도 씨도, 신예 정동원 씨도 존경하는 선배로 남진 씨를 꼽습니다.
정동원 씨, 한창 어린 후배죠.
롤모델이다 라는 말 들으면 어떠십니까.
[답변]
우리 후배님들이 저를 롤 모델로 생각해준다면 선배로서 그 이상 큰 영광이 없죠.
과분하죠.
우리 정동원 씨 같은 귀여운 친구가 또 가요계에 천재적인 소년이 나와서 굉장히 기대가 되고 또 특히 우리 저 설운도 씨를 선생님께서 원로라고 얘기를 하니까 아, 가슴이...
왜냐면 우리 운도 씨가 고등학교 때 제가 처음 봤거든요.
그래서 굉장히 그 때도 무명 시절인데 굉장히 노래를 잘해서 분명히 큰 가수가 될 거라고 했는데 어느날 정말 큰 가수가 되어서 우리 가요계에 이제 거목이 됐는데 우리 운도 씨를, 운도 씨를 원로라고 하니까 저는 그럼 뭐가 되나...
(대 원로시네요.)
너무 좀 아쉽네요.
[앵커]
라이벌 나훈아씨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두 분의 관계를 아직도 여전히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스타일도 다르고, 창법도 다르고...
두 분은 언제 처음 만나셨습니까?
[답변]
아, 처음 만났을 때?
이런 얘기 방송에는 처음 해보는데요.
기억이 진짜 잊히질 않아요.
68년도에 제가 처음 해병대 입대했을 때 첫 휴가를 나왔어요.
그 이제 KBS에 무슨 일이 있어서 갔는데 거기에 아주 막 나온 친구를 만났어요.
그 친구가 저랑 같이 노래를 했던 우리 동료, 동료 친구인데 거기서 만나서 ‘이야 오랜만이다, 야 요즘 뭐 노래 안 하냐’ 했더니 자기는 노래를 안 하고 작품을 쓰고 작곡가로서 하고 싶다고.
너는 인마 네가 있으니까 내가 노래를 안 할거야 그러더라고.
그러면서 작곡가로서 활동하면서 많은 후배들을 제자들을 키우고 있다고 그러면서 한 친구를 불러요, 이렇게.
아주 딱 보는데 첫 인상이 매력 있고 개성이 있는 친구더라고요.
내 제자니까 잘 부탁한다고 소개를 하는데 나중에 그 친구가 보니까 예 나훈아 씨였어요.
그래서 잊어버리지 않아요.
68년도에.
[앵커]
남진 씨 인생에 나훈아 씨는 어떤 존재였습니까?
[답변]
가수로서의 지금의 이 자리가 있을 수 있는 것은 그런 멋진 라이벌을 만날 수 있었던 게 큰 행운이죠.
제 인생에 가수로서 가장 동반자고 또 파트너고 또 멋진 라이벌이 나훈아 씨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앵커]
58년동안 열심히 달려오셨습니다.
가수로서 오랫동안 축복을 받았다면서 잘 마무리하는게 이제 '남은 꿈'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좋은 마무리란 어떤 겁니까?
[답변]
정말 잘 마무리하고 싶죠.
오늘의 오랜 세월 그렇게 정말 축복받은 가수로서의 자리를 만들어주신 팬들에게 어떻게 잘 보답하고 떠나야 하는데 아무튼 좋은 모습으로, 또 좋은 노래로 정말 팬들에게 감사의 모든 걸 다 드리고 조용히 좋게, 좋은 모습으로 좋은 곡을 남기고 떠나고 싶습니다.
[앵커]
오늘 라인 초대석, '영원한 오빠' 가수 남진 씨와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오늘 라인 초대석에선 우리나라 오빠부대의 원조 격이죠.
데뷔 58년차, 현재도 현역으로 꾸준히 활동하고 계신 가수 남진 씨 모시고 이야기 나눠 봅니다.
안녕하세요.
먼저 새 소식부터 짚어보겠습니다.
다음 주 주말 콘서트 시작.
한창 준비 중이실텐데 이번 공연만의 특별한 점이 있다면?
[답변]
예, 이달 26일 날 경희대학교 예술회관에서 오랜만에 콘서트를 갖습니다.
해년마다 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 코로나 때문에 한 3년 동안 팬들하고 가까이 하지 못해서 조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오랜만에 공연을 갖게 돼서 굉장히 기다려집니다.
그러니까 오랜만에 팬들을 만나니까.
[앵커]
58년 차 베테랑.
더 이상 연습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오히려 노래 연습을 더 많이 한다면서요.
아직도 갈고 닦을 게 남아있습니까?
[답변]
베테랑은 아니고 그냥 이제 원로가수예요.
아무래도 이제 모를 때가 편하고 쉬운데 이것저것 알면은 힘들잖아요.
노래도 제가 뭐 50년 전에 불렀던 예를 들자면 가슴아프게라는 노래가 그 때 부를 때 그 멜로디 가사의 느낌이 20년, 30년 50년 지나면 또 다르잖아요.
그 감정을 조금 더 좋게, 정말 진정스럽게 잘 좀 표현하고 싶다 보면은 연습밖에 없어요.
그 감성은.
그러니까 연습을 안 할 수가 없어요.
[앵커]
우리 가요계에서 오빠부대를 처음으로 몰고 다니셨잖아요.
연세가 70대 후반이신데 지금도 꾸준히 활동하고 계시고 '영원한 오빠' 로 불리시는데 그런 말을 들으면 어떠십니까?
[답변]
전 가요계에서 가장 자랑스럽고 보람을 느끼는 게 이제 우리 가요계에 뭐라고 그럴까요.
오빠의 원조.
그 말이 굉장히 저한테는 참 보람을 느껴요.
그런데 어디 이제 공연을 가더라도 이제 사회자가 가수를 소개할 때 다음은 무슨 뭐 가왕, 가요계 황제 이런 소리를 하면은 기분이 조금 멈칫해요.
왜냐면 진정성이 떨어지니까.
근데 이제 제가 부릅니다.
사회자한테.
야, 나 소개할 때 그냥 가요계의 원조, 아니면 영원한 오빠 이렇게 소개하면 안 되겠냐고.
나는 그게 더 마음에 와닿는다고 그렇게 이야기를 해요.
그러니까 가요계 오빠의 원조라는 그 말에 굉장히 보람과 행복이 있죠.
[앵커]
과거 이야기도 해 보죠.
몇 번의 슬럼프가 있었습니다.
먼저 군대 얘기를 안 할 수 없네요, 1966년 '가슴 아프게‘로 한창 사랑받던 중 해병대에 입대했다가 나중에 월남전까지 가셨죠?
[답변]
그렇죠.
68년도에 입대해서 69년도에는 파월 장병으로 청룡 해병으로 호이안에서 나머지 2년을 근무하고 그러고 돌아왔습니다.
[앵커]
그래도 '호사다마'라고 제대 후 72년 ‘님과 함께’로 스타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처음 곡을 받았을때 어땠습니까?
느낌이 왔습니까?
[답변]
노래 한 번 들어보라고 해서 딱 듣는데, 순간에 딱 오는 거예요.
그 때 당시 그 노래가 우리 가요계에서 가장 빠른 템포였어요.
그게 고고리듬인데 쿵쿵따따 저 푸른 이렇게 나오는데 너무 가슴에 와닿았어요.
[앵커]
이후 두 번의 슬럼프를 더 겪었습니다.
결혼 이후 외국에서 떠돌던 시절, 그리고 5공 때 낙향해 칩거했던 시절입니다.
다시 가수를 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할 정도였다면서요.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답변]
고향에 낙향해서 고향에 가서 일 좀 하다가 관둘까 하는 생각도 가졌어요.
그런데 이제 다시 노래를 할 수 있는 큰 힘이 되는 노래를 받게 됐죠.
운이라는 게 필요한 거예요.
(그 노래가 뭡니까?)
그게 바로 제 마음을 그 힘들었던 마음을 채워줬던 빈잔.
(빈잔)
우리 박춘석 선생님 작곡, 조운파 선생님 작가.
이 노래는 나와서 가수가 자기 노래를 하려면 PR이 좀 되어야 하는데 PR을 전혀 할 수 없는 상황이잖아요, 제가 입장이.
세상도 바뀌고 주위도 바뀌고 저에게 제재가 들어오고 그러니까 그 노래만 그냥 노래가 좋으니까, 이 노래가 구전 구전을 통해서 자연히 히트가 된 노래는 이 노래가 제일 대표곡이에요.
이 곡은 저의 행운이, 좋은 멜로디와 좋은 가사가 붙어서 저에게 다시 팬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곡이 나온 덕이죠.
[앵커]
앨범만 20여 개, 히트곡은 수없이 많습니다.
원로인 설운도 씨도, 신예 정동원 씨도 존경하는 선배로 남진 씨를 꼽습니다.
정동원 씨, 한창 어린 후배죠.
롤모델이다 라는 말 들으면 어떠십니까.
[답변]
우리 후배님들이 저를 롤 모델로 생각해준다면 선배로서 그 이상 큰 영광이 없죠.
과분하죠.
우리 정동원 씨 같은 귀여운 친구가 또 가요계에 천재적인 소년이 나와서 굉장히 기대가 되고 또 특히 우리 저 설운도 씨를 선생님께서 원로라고 얘기를 하니까 아, 가슴이...
왜냐면 우리 운도 씨가 고등학교 때 제가 처음 봤거든요.
그래서 굉장히 그 때도 무명 시절인데 굉장히 노래를 잘해서 분명히 큰 가수가 될 거라고 했는데 어느날 정말 큰 가수가 되어서 우리 가요계에 이제 거목이 됐는데 우리 운도 씨를, 운도 씨를 원로라고 하니까 저는 그럼 뭐가 되나...
(대 원로시네요.)
너무 좀 아쉽네요.
[앵커]
라이벌 나훈아씨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두 분의 관계를 아직도 여전히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스타일도 다르고, 창법도 다르고...
두 분은 언제 처음 만나셨습니까?
[답변]
아, 처음 만났을 때?
이런 얘기 방송에는 처음 해보는데요.
기억이 진짜 잊히질 않아요.
68년도에 제가 처음 해병대 입대했을 때 첫 휴가를 나왔어요.
그 이제 KBS에 무슨 일이 있어서 갔는데 거기에 아주 막 나온 친구를 만났어요.
그 친구가 저랑 같이 노래를 했던 우리 동료, 동료 친구인데 거기서 만나서 ‘이야 오랜만이다, 야 요즘 뭐 노래 안 하냐’ 했더니 자기는 노래를 안 하고 작품을 쓰고 작곡가로서 하고 싶다고.
너는 인마 네가 있으니까 내가 노래를 안 할거야 그러더라고.
그러면서 작곡가로서 활동하면서 많은 후배들을 제자들을 키우고 있다고 그러면서 한 친구를 불러요, 이렇게.
아주 딱 보는데 첫 인상이 매력 있고 개성이 있는 친구더라고요.
내 제자니까 잘 부탁한다고 소개를 하는데 나중에 그 친구가 보니까 예 나훈아 씨였어요.
그래서 잊어버리지 않아요.
68년도에.
[앵커]
남진 씨 인생에 나훈아 씨는 어떤 존재였습니까?
[답변]
가수로서의 지금의 이 자리가 있을 수 있는 것은 그런 멋진 라이벌을 만날 수 있었던 게 큰 행운이죠.
제 인생에 가수로서 가장 동반자고 또 파트너고 또 멋진 라이벌이 나훈아 씨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앵커]
58년동안 열심히 달려오셨습니다.
가수로서 오랫동안 축복을 받았다면서 잘 마무리하는게 이제 '남은 꿈'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좋은 마무리란 어떤 겁니까?
[답변]
정말 잘 마무리하고 싶죠.
오늘의 오랜 세월 그렇게 정말 축복받은 가수로서의 자리를 만들어주신 팬들에게 어떻게 잘 보답하고 떠나야 하는데 아무튼 좋은 모습으로, 또 좋은 노래로 정말 팬들에게 감사의 모든 걸 다 드리고 조용히 좋게, 좋은 모습으로 좋은 곡을 남기고 떠나고 싶습니다.
[앵커]
오늘 라인 초대석, '영원한 오빠' 가수 남진 씨와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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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인 초대석] ‘오빠부대 원조’ 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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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2-11-19 00:07:51
- 수정2022-11-19 00:18:18

[앵커]
오늘 라인 초대석에선 우리나라 오빠부대의 원조 격이죠.
데뷔 58년차, 현재도 현역으로 꾸준히 활동하고 계신 가수 남진 씨 모시고 이야기 나눠 봅니다.
안녕하세요.
먼저 새 소식부터 짚어보겠습니다.
다음 주 주말 콘서트 시작.
한창 준비 중이실텐데 이번 공연만의 특별한 점이 있다면?
[답변]
예, 이달 26일 날 경희대학교 예술회관에서 오랜만에 콘서트를 갖습니다.
해년마다 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 코로나 때문에 한 3년 동안 팬들하고 가까이 하지 못해서 조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오랜만에 공연을 갖게 돼서 굉장히 기다려집니다.
그러니까 오랜만에 팬들을 만나니까.
[앵커]
58년 차 베테랑.
더 이상 연습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오히려 노래 연습을 더 많이 한다면서요.
아직도 갈고 닦을 게 남아있습니까?
[답변]
베테랑은 아니고 그냥 이제 원로가수예요.
아무래도 이제 모를 때가 편하고 쉬운데 이것저것 알면은 힘들잖아요.
노래도 제가 뭐 50년 전에 불렀던 예를 들자면 가슴아프게라는 노래가 그 때 부를 때 그 멜로디 가사의 느낌이 20년, 30년 50년 지나면 또 다르잖아요.
그 감정을 조금 더 좋게, 정말 진정스럽게 잘 좀 표현하고 싶다 보면은 연습밖에 없어요.
그 감성은.
그러니까 연습을 안 할 수가 없어요.
[앵커]
우리 가요계에서 오빠부대를 처음으로 몰고 다니셨잖아요.
연세가 70대 후반이신데 지금도 꾸준히 활동하고 계시고 '영원한 오빠' 로 불리시는데 그런 말을 들으면 어떠십니까?
[답변]
전 가요계에서 가장 자랑스럽고 보람을 느끼는 게 이제 우리 가요계에 뭐라고 그럴까요.
오빠의 원조.
그 말이 굉장히 저한테는 참 보람을 느껴요.
그런데 어디 이제 공연을 가더라도 이제 사회자가 가수를 소개할 때 다음은 무슨 뭐 가왕, 가요계 황제 이런 소리를 하면은 기분이 조금 멈칫해요.
왜냐면 진정성이 떨어지니까.
근데 이제 제가 부릅니다.
사회자한테.
야, 나 소개할 때 그냥 가요계의 원조, 아니면 영원한 오빠 이렇게 소개하면 안 되겠냐고.
나는 그게 더 마음에 와닿는다고 그렇게 이야기를 해요.
그러니까 가요계 오빠의 원조라는 그 말에 굉장히 보람과 행복이 있죠.
[앵커]
과거 이야기도 해 보죠.
몇 번의 슬럼프가 있었습니다.
먼저 군대 얘기를 안 할 수 없네요, 1966년 '가슴 아프게‘로 한창 사랑받던 중 해병대에 입대했다가 나중에 월남전까지 가셨죠?
[답변]
그렇죠.
68년도에 입대해서 69년도에는 파월 장병으로 청룡 해병으로 호이안에서 나머지 2년을 근무하고 그러고 돌아왔습니다.
[앵커]
그래도 '호사다마'라고 제대 후 72년 ‘님과 함께’로 스타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처음 곡을 받았을때 어땠습니까?
느낌이 왔습니까?
[답변]
노래 한 번 들어보라고 해서 딱 듣는데, 순간에 딱 오는 거예요.
그 때 당시 그 노래가 우리 가요계에서 가장 빠른 템포였어요.
그게 고고리듬인데 쿵쿵따따 저 푸른 이렇게 나오는데 너무 가슴에 와닿았어요.
[앵커]
이후 두 번의 슬럼프를 더 겪었습니다.
결혼 이후 외국에서 떠돌던 시절, 그리고 5공 때 낙향해 칩거했던 시절입니다.
다시 가수를 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할 정도였다면서요.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답변]
고향에 낙향해서 고향에 가서 일 좀 하다가 관둘까 하는 생각도 가졌어요.
그런데 이제 다시 노래를 할 수 있는 큰 힘이 되는 노래를 받게 됐죠.
운이라는 게 필요한 거예요.
(그 노래가 뭡니까?)
그게 바로 제 마음을 그 힘들었던 마음을 채워줬던 빈잔.
(빈잔)
우리 박춘석 선생님 작곡, 조운파 선생님 작가.
이 노래는 나와서 가수가 자기 노래를 하려면 PR이 좀 되어야 하는데 PR을 전혀 할 수 없는 상황이잖아요, 제가 입장이.
세상도 바뀌고 주위도 바뀌고 저에게 제재가 들어오고 그러니까 그 노래만 그냥 노래가 좋으니까, 이 노래가 구전 구전을 통해서 자연히 히트가 된 노래는 이 노래가 제일 대표곡이에요.
이 곡은 저의 행운이, 좋은 멜로디와 좋은 가사가 붙어서 저에게 다시 팬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곡이 나온 덕이죠.
[앵커]
앨범만 20여 개, 히트곡은 수없이 많습니다.
원로인 설운도 씨도, 신예 정동원 씨도 존경하는 선배로 남진 씨를 꼽습니다.
정동원 씨, 한창 어린 후배죠.
롤모델이다 라는 말 들으면 어떠십니까.
[답변]
우리 후배님들이 저를 롤 모델로 생각해준다면 선배로서 그 이상 큰 영광이 없죠.
과분하죠.
우리 정동원 씨 같은 귀여운 친구가 또 가요계에 천재적인 소년이 나와서 굉장히 기대가 되고 또 특히 우리 저 설운도 씨를 선생님께서 원로라고 얘기를 하니까 아, 가슴이...
왜냐면 우리 운도 씨가 고등학교 때 제가 처음 봤거든요.
그래서 굉장히 그 때도 무명 시절인데 굉장히 노래를 잘해서 분명히 큰 가수가 될 거라고 했는데 어느날 정말 큰 가수가 되어서 우리 가요계에 이제 거목이 됐는데 우리 운도 씨를, 운도 씨를 원로라고 하니까 저는 그럼 뭐가 되나...
(대 원로시네요.)
너무 좀 아쉽네요.
[앵커]
라이벌 나훈아씨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두 분의 관계를 아직도 여전히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스타일도 다르고, 창법도 다르고...
두 분은 언제 처음 만나셨습니까?
[답변]
아, 처음 만났을 때?
이런 얘기 방송에는 처음 해보는데요.
기억이 진짜 잊히질 않아요.
68년도에 제가 처음 해병대 입대했을 때 첫 휴가를 나왔어요.
그 이제 KBS에 무슨 일이 있어서 갔는데 거기에 아주 막 나온 친구를 만났어요.
그 친구가 저랑 같이 노래를 했던 우리 동료, 동료 친구인데 거기서 만나서 ‘이야 오랜만이다, 야 요즘 뭐 노래 안 하냐’ 했더니 자기는 노래를 안 하고 작품을 쓰고 작곡가로서 하고 싶다고.
너는 인마 네가 있으니까 내가 노래를 안 할거야 그러더라고.
그러면서 작곡가로서 활동하면서 많은 후배들을 제자들을 키우고 있다고 그러면서 한 친구를 불러요, 이렇게.
아주 딱 보는데 첫 인상이 매력 있고 개성이 있는 친구더라고요.
내 제자니까 잘 부탁한다고 소개를 하는데 나중에 그 친구가 보니까 예 나훈아 씨였어요.
그래서 잊어버리지 않아요.
68년도에.
[앵커]
남진 씨 인생에 나훈아 씨는 어떤 존재였습니까?
[답변]
가수로서의 지금의 이 자리가 있을 수 있는 것은 그런 멋진 라이벌을 만날 수 있었던 게 큰 행운이죠.
제 인생에 가수로서 가장 동반자고 또 파트너고 또 멋진 라이벌이 나훈아 씨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앵커]
58년동안 열심히 달려오셨습니다.
가수로서 오랫동안 축복을 받았다면서 잘 마무리하는게 이제 '남은 꿈'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좋은 마무리란 어떤 겁니까?
[답변]
정말 잘 마무리하고 싶죠.
오늘의 오랜 세월 그렇게 정말 축복받은 가수로서의 자리를 만들어주신 팬들에게 어떻게 잘 보답하고 떠나야 하는데 아무튼 좋은 모습으로, 또 좋은 노래로 정말 팬들에게 감사의 모든 걸 다 드리고 조용히 좋게, 좋은 모습으로 좋은 곡을 남기고 떠나고 싶습니다.
[앵커]
오늘 라인 초대석, '영원한 오빠' 가수 남진 씨와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오늘 라인 초대석에선 우리나라 오빠부대의 원조 격이죠.
데뷔 58년차, 현재도 현역으로 꾸준히 활동하고 계신 가수 남진 씨 모시고 이야기 나눠 봅니다.
안녕하세요.
먼저 새 소식부터 짚어보겠습니다.
다음 주 주말 콘서트 시작.
한창 준비 중이실텐데 이번 공연만의 특별한 점이 있다면?
[답변]
예, 이달 26일 날 경희대학교 예술회관에서 오랜만에 콘서트를 갖습니다.
해년마다 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 코로나 때문에 한 3년 동안 팬들하고 가까이 하지 못해서 조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오랜만에 공연을 갖게 돼서 굉장히 기다려집니다.
그러니까 오랜만에 팬들을 만나니까.
[앵커]
58년 차 베테랑.
더 이상 연습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오히려 노래 연습을 더 많이 한다면서요.
아직도 갈고 닦을 게 남아있습니까?
[답변]
베테랑은 아니고 그냥 이제 원로가수예요.
아무래도 이제 모를 때가 편하고 쉬운데 이것저것 알면은 힘들잖아요.
노래도 제가 뭐 50년 전에 불렀던 예를 들자면 가슴아프게라는 노래가 그 때 부를 때 그 멜로디 가사의 느낌이 20년, 30년 50년 지나면 또 다르잖아요.
그 감정을 조금 더 좋게, 정말 진정스럽게 잘 좀 표현하고 싶다 보면은 연습밖에 없어요.
그 감성은.
그러니까 연습을 안 할 수가 없어요.
[앵커]
우리 가요계에서 오빠부대를 처음으로 몰고 다니셨잖아요.
연세가 70대 후반이신데 지금도 꾸준히 활동하고 계시고 '영원한 오빠' 로 불리시는데 그런 말을 들으면 어떠십니까?
[답변]
전 가요계에서 가장 자랑스럽고 보람을 느끼는 게 이제 우리 가요계에 뭐라고 그럴까요.
오빠의 원조.
그 말이 굉장히 저한테는 참 보람을 느껴요.
그런데 어디 이제 공연을 가더라도 이제 사회자가 가수를 소개할 때 다음은 무슨 뭐 가왕, 가요계 황제 이런 소리를 하면은 기분이 조금 멈칫해요.
왜냐면 진정성이 떨어지니까.
근데 이제 제가 부릅니다.
사회자한테.
야, 나 소개할 때 그냥 가요계의 원조, 아니면 영원한 오빠 이렇게 소개하면 안 되겠냐고.
나는 그게 더 마음에 와닿는다고 그렇게 이야기를 해요.
그러니까 가요계 오빠의 원조라는 그 말에 굉장히 보람과 행복이 있죠.
[앵커]
과거 이야기도 해 보죠.
몇 번의 슬럼프가 있었습니다.
먼저 군대 얘기를 안 할 수 없네요, 1966년 '가슴 아프게‘로 한창 사랑받던 중 해병대에 입대했다가 나중에 월남전까지 가셨죠?
[답변]
그렇죠.
68년도에 입대해서 69년도에는 파월 장병으로 청룡 해병으로 호이안에서 나머지 2년을 근무하고 그러고 돌아왔습니다.
[앵커]
그래도 '호사다마'라고 제대 후 72년 ‘님과 함께’로 스타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처음 곡을 받았을때 어땠습니까?
느낌이 왔습니까?
[답변]
노래 한 번 들어보라고 해서 딱 듣는데, 순간에 딱 오는 거예요.
그 때 당시 그 노래가 우리 가요계에서 가장 빠른 템포였어요.
그게 고고리듬인데 쿵쿵따따 저 푸른 이렇게 나오는데 너무 가슴에 와닿았어요.
[앵커]
이후 두 번의 슬럼프를 더 겪었습니다.
결혼 이후 외국에서 떠돌던 시절, 그리고 5공 때 낙향해 칩거했던 시절입니다.
다시 가수를 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할 정도였다면서요.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답변]
고향에 낙향해서 고향에 가서 일 좀 하다가 관둘까 하는 생각도 가졌어요.
그런데 이제 다시 노래를 할 수 있는 큰 힘이 되는 노래를 받게 됐죠.
운이라는 게 필요한 거예요.
(그 노래가 뭡니까?)
그게 바로 제 마음을 그 힘들었던 마음을 채워줬던 빈잔.
(빈잔)
우리 박춘석 선생님 작곡, 조운파 선생님 작가.
이 노래는 나와서 가수가 자기 노래를 하려면 PR이 좀 되어야 하는데 PR을 전혀 할 수 없는 상황이잖아요, 제가 입장이.
세상도 바뀌고 주위도 바뀌고 저에게 제재가 들어오고 그러니까 그 노래만 그냥 노래가 좋으니까, 이 노래가 구전 구전을 통해서 자연히 히트가 된 노래는 이 노래가 제일 대표곡이에요.
이 곡은 저의 행운이, 좋은 멜로디와 좋은 가사가 붙어서 저에게 다시 팬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곡이 나온 덕이죠.
[앵커]
앨범만 20여 개, 히트곡은 수없이 많습니다.
원로인 설운도 씨도, 신예 정동원 씨도 존경하는 선배로 남진 씨를 꼽습니다.
정동원 씨, 한창 어린 후배죠.
롤모델이다 라는 말 들으면 어떠십니까.
[답변]
우리 후배님들이 저를 롤 모델로 생각해준다면 선배로서 그 이상 큰 영광이 없죠.
과분하죠.
우리 정동원 씨 같은 귀여운 친구가 또 가요계에 천재적인 소년이 나와서 굉장히 기대가 되고 또 특히 우리 저 설운도 씨를 선생님께서 원로라고 얘기를 하니까 아, 가슴이...
왜냐면 우리 운도 씨가 고등학교 때 제가 처음 봤거든요.
그래서 굉장히 그 때도 무명 시절인데 굉장히 노래를 잘해서 분명히 큰 가수가 될 거라고 했는데 어느날 정말 큰 가수가 되어서 우리 가요계에 이제 거목이 됐는데 우리 운도 씨를, 운도 씨를 원로라고 하니까 저는 그럼 뭐가 되나...
(대 원로시네요.)
너무 좀 아쉽네요.
[앵커]
라이벌 나훈아씨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두 분의 관계를 아직도 여전히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스타일도 다르고, 창법도 다르고...
두 분은 언제 처음 만나셨습니까?
[답변]
아, 처음 만났을 때?
이런 얘기 방송에는 처음 해보는데요.
기억이 진짜 잊히질 않아요.
68년도에 제가 처음 해병대 입대했을 때 첫 휴가를 나왔어요.
그 이제 KBS에 무슨 일이 있어서 갔는데 거기에 아주 막 나온 친구를 만났어요.
그 친구가 저랑 같이 노래를 했던 우리 동료, 동료 친구인데 거기서 만나서 ‘이야 오랜만이다, 야 요즘 뭐 노래 안 하냐’ 했더니 자기는 노래를 안 하고 작품을 쓰고 작곡가로서 하고 싶다고.
너는 인마 네가 있으니까 내가 노래를 안 할거야 그러더라고.
그러면서 작곡가로서 활동하면서 많은 후배들을 제자들을 키우고 있다고 그러면서 한 친구를 불러요, 이렇게.
아주 딱 보는데 첫 인상이 매력 있고 개성이 있는 친구더라고요.
내 제자니까 잘 부탁한다고 소개를 하는데 나중에 그 친구가 보니까 예 나훈아 씨였어요.
그래서 잊어버리지 않아요.
68년도에.
[앵커]
남진 씨 인생에 나훈아 씨는 어떤 존재였습니까?
[답변]
가수로서의 지금의 이 자리가 있을 수 있는 것은 그런 멋진 라이벌을 만날 수 있었던 게 큰 행운이죠.
제 인생에 가수로서 가장 동반자고 또 파트너고 또 멋진 라이벌이 나훈아 씨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앵커]
58년동안 열심히 달려오셨습니다.
가수로서 오랫동안 축복을 받았다면서 잘 마무리하는게 이제 '남은 꿈'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좋은 마무리란 어떤 겁니까?
[답변]
정말 잘 마무리하고 싶죠.
오늘의 오랜 세월 그렇게 정말 축복받은 가수로서의 자리를 만들어주신 팬들에게 어떻게 잘 보답하고 떠나야 하는데 아무튼 좋은 모습으로, 또 좋은 노래로 정말 팬들에게 감사의 모든 걸 다 드리고 조용히 좋게, 좋은 모습으로 좋은 곡을 남기고 떠나고 싶습니다.
[앵커]
오늘 라인 초대석, '영원한 오빠' 가수 남진 씨와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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