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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로 미래로] 꽃길 뒤로 한 탈북 피아니스트의 한국살이
입력 2022.11.19 (08:17) 수정 2022.11.19 (09:33) 남북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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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통일로 미래로>, 이 시간을 통해 저희가 적잖은 탈북민들을 만나왔는데요.

대다수가 자유를 찾아오거나 생존을 위해, 또는 더 나은 삶을 위해 목숨을 걸고 탈북을 했던 분들이었습니다.

네, 그런데 오늘은 좀 다른 사연, 예기치 못한 상황 때문에 우리에게로 오게 됐다는 탈북민 한 분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바로 피아니스트 황상혁 씨 인데요.

이하영 리포터가 직접 만나고 오셨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황상혁 씨는 북한 최고위층 집안에서 나고 자라면서 엘리트 음악 교육을 받았다는데요.

이후 20여 년간 북한의 명문 음악대학, 예술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는 등 나름 인생의 꽃길을 걸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안정적 삶을 뒤로 하고 탈북을 한 거죠?

네, 전문가 대표단 자격으로 중국에 파견됐다가 사정이 생겨서 북한에 돌아가지 못했다고 하는데요.

자세한 사연, 많이 궁금하실 텐데요.

먼저, 한국 땅에서 새로운 음악인생을 살고 있는 탈북 피아니스트, 황상혁 씨의 요즘 활동부터 만나보실까요?

[리포트]

건반 위의 손이 분주히 움직이자 가야금 소리가 뒤따라 들려옵니다.

다른 느낌의 동서양 악기가 만나 경쾌한 음악을 만들어 내는데요.

이어서 남과 북이 공유하는 민족 음악, ‘아리랑’을 새 편곡으로 함께 연주합니다.

탈북민 피아니스트 황상혁 씨가 나선 곳은 ‘이웃 사랑 나눔 콘서트’로, 음악을 통해 2020년부터 다양한 무대를 선보여 왔고, 올해도 관객을 찾았습니다.

서로 다른 장르의 연주가가 음악으로 하나 된 ‘네 개의 하트’. 이 나눔 콘서트에선 우리 전통 음악도 만나볼 수 있었는데요. 탈북민으론 최초로 피아니스트 황상혁 씨가 참여 했습니다.

황상혁 씨는 세 번째 순서인 ‘공감을 통한 나눔’에서 연주했는데요.

남한의 가야금 연주자 이준 씨와 함께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멋진 무대를 위해 한 달가량 연습을 같이 했는데, 실은 우여곡절이 적잖았다고 합니다.

[이준/가야금 연주자 : "처음에는 말이 잘 통하지 않아서 선생님 뭐라고 말씀하셨죠? 다시 한 번 되묻거나 제가 말씀드렸을 때 선생님도 무슨 뜻이에요? 물어보시기도 하셨지만."]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더 가까워졌고, 서로를 잘 알게 됐다는데요.

[황상혁/탈북 피아니스트 : "처음에는 거리감도 좀 있고 한국 음악가랑 처음 연주해보니까 많이 경계하기도 했는데 실제 연습할 때 음악으로 소통하니까 거리감이 다 없어지고 오히려 지금 이전보다 더 그 누구보다 가까워졌습니다."]

더 나아가 연주를 통해 화합의 메시지까지 전하게 된 겁니다.

[이준/가야금 연주자 : "우리가 분단돼있는 지금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저희가 연주를 한마음 한뜻으로 했듯이 이 음악을 듣고 차별을 넘어 희망으로, 희망을 소망하는 그런 마음을 담아 연주 했습니다."]

관객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이주영/서울 강남구 : "아리랑은 저희도 평소에 잘 알지만 북한에서도 잘 아는 곡이라고 생각을 하고 남북이 떨어져 있긴 하지만 노래로 음악으로 하나 되는 좋은 계기였던 거 같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점차 활동을 넓혀 가고 있는 황상혁 씨. 어떤 사연을 가진 음악인인지 궁금하실 텐데요.

북한에선 최고급 엘리트 영재 교육을 받은 유명 피아니스트입니다.

김일성 주석의 측근 집안에서 태어난 황상혁 씨는 유복한 가정환경 속에서 아홉 살 때, 어머니의 권유로 피아노를 처음 배웠는데요.

명문 평양예술전문학교와 김원균명칭 음악종합대학을 졸업한 뒤 교수의 길을 걸었고, 그야말로 탄탄대로의 삶이었습니다.

[황상혁/탈북 피아니스트 : "지금 생각해 놓고 보면 제가 북에서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는 걸 느끼게 되거든요. 제가 살던 아파트에서 사람들이 다 우리 집을 부러워했거든요."]

꽃길만 걷던 황상혁 씨, 그러나 예술 교육 전문가 대표단으로 2011년 중국에 갔다가 인생이 바뀝니다.

당국의 지시를 어기고 한국 사람과 만났고, 그 접촉을 이어갔던 겁니다.

[황상혁/탈북 피아니스트 : "좀 구속당하고 그러니까 스트레스 쌓이고 하지 말라는 데서 자꾸만 하게 되고 그런 호기심도 그런 것도 있고 제가 그때는 사람들한테 숨기고 한국 사람 접촉한 걸 저 혼자만 알고 있었는데 겁이 나더라고요."]

이를 눈치 챈 보위원이 그를 감시했고, 귀국하면 처벌받을 것을 두려워하다 가족을 평양에 두고 2014년 탈북해, 제3국으로 가려고 시도했지만 결국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하지만 이곳의 삶은, 피아노에만 몰두해도 걱정 없던 지난날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황상혁/탈북 피아니스트 : "한국에 와서 아는 사람도 없고 친척도 없고 그야말로 고아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앞이 안 보이고 특히 음악가로서의 차라리 모르고 음악을 안 배웠으면 모르겠는데 음악을 이때까지 배웠으니까 버릴 수도 없고 너무 암담했어요."]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돼 큰 교통사고를 당하는 등 정착은 순탄하지 못했고, 음악대학원에 진학했지만, 어학 문제로 졸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어려워진 형편은 타향살이의 또 다른 걸림돌이었습니다.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이 눈에 밟히고 혹시라도 자신으로 인해 다칠 것을 염려해 자제했던 활동을 이제는 열심히 하겠다고 마음먹게 됐다는데요,

그래설까요, 황상혁 씨는 얼마 전부터 방송 출연 등 여러 일들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황상혁/탈북 피아니스트 : "kbs에서 저한테 요청이 들어왔으니까 너무 감사하고 제가 이걸 알려야 되겠다 해서 이웃 나눔 콘서트라고 말씀하셔서."]

이런 가운데도 매주 목요일이면 사회복지관을 찾아 어르신들에게 합창과 피아노 연주를 가르치는 등 꾸준히 나눔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황상혁/탈북 피아니스트 : "나눔 하다 보니까 감정도 통하고 가족 같은 분위기도 되면서 많이 제가 의지도 되고 애로사항이나 고민 하는 중에 어르신들하고 얘기 하면서 상담도 하면서 많이 정착 생활하는데서 큰 도움이 되고. 제가 도와드리는 게 아니라 제가 지금 받는 거 같은 느낌이에요."]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온 황상혁 씬데요.

음악으로 아픈 이들을 위로하는 제2의 음악 인생을 바라고 있습니다.

[황상혁/탈북 피아니스트 : "음악은 사람들의 맘을 풀어주고 회복시켜주고 그런 역할을 하는 거 같아요. 그래서 제가 그 역할을 지금 많은 나눔으로 하는데 최근에 이태원에 일어나지 말아야 될 사고고 있어서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 [통일로 미래로] 꽃길 뒤로 한 탈북 피아니스트의 한국살이
    • 입력 2022-11-19 08:17:55
    • 수정2022-11-19 09:33:28
    남북의 창
[앵커]

<통일로 미래로>, 이 시간을 통해 저희가 적잖은 탈북민들을 만나왔는데요.

대다수가 자유를 찾아오거나 생존을 위해, 또는 더 나은 삶을 위해 목숨을 걸고 탈북을 했던 분들이었습니다.

네, 그런데 오늘은 좀 다른 사연, 예기치 못한 상황 때문에 우리에게로 오게 됐다는 탈북민 한 분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바로 피아니스트 황상혁 씨 인데요.

이하영 리포터가 직접 만나고 오셨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황상혁 씨는 북한 최고위층 집안에서 나고 자라면서 엘리트 음악 교육을 받았다는데요.

이후 20여 년간 북한의 명문 음악대학, 예술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는 등 나름 인생의 꽃길을 걸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안정적 삶을 뒤로 하고 탈북을 한 거죠?

네, 전문가 대표단 자격으로 중국에 파견됐다가 사정이 생겨서 북한에 돌아가지 못했다고 하는데요.

자세한 사연, 많이 궁금하실 텐데요.

먼저, 한국 땅에서 새로운 음악인생을 살고 있는 탈북 피아니스트, 황상혁 씨의 요즘 활동부터 만나보실까요?

[리포트]

건반 위의 손이 분주히 움직이자 가야금 소리가 뒤따라 들려옵니다.

다른 느낌의 동서양 악기가 만나 경쾌한 음악을 만들어 내는데요.

이어서 남과 북이 공유하는 민족 음악, ‘아리랑’을 새 편곡으로 함께 연주합니다.

탈북민 피아니스트 황상혁 씨가 나선 곳은 ‘이웃 사랑 나눔 콘서트’로, 음악을 통해 2020년부터 다양한 무대를 선보여 왔고, 올해도 관객을 찾았습니다.

서로 다른 장르의 연주가가 음악으로 하나 된 ‘네 개의 하트’. 이 나눔 콘서트에선 우리 전통 음악도 만나볼 수 있었는데요. 탈북민으론 최초로 피아니스트 황상혁 씨가 참여 했습니다.

황상혁 씨는 세 번째 순서인 ‘공감을 통한 나눔’에서 연주했는데요.

남한의 가야금 연주자 이준 씨와 함께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멋진 무대를 위해 한 달가량 연습을 같이 했는데, 실은 우여곡절이 적잖았다고 합니다.

[이준/가야금 연주자 : "처음에는 말이 잘 통하지 않아서 선생님 뭐라고 말씀하셨죠? 다시 한 번 되묻거나 제가 말씀드렸을 때 선생님도 무슨 뜻이에요? 물어보시기도 하셨지만."]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더 가까워졌고, 서로를 잘 알게 됐다는데요.

[황상혁/탈북 피아니스트 : "처음에는 거리감도 좀 있고 한국 음악가랑 처음 연주해보니까 많이 경계하기도 했는데 실제 연습할 때 음악으로 소통하니까 거리감이 다 없어지고 오히려 지금 이전보다 더 그 누구보다 가까워졌습니다."]

더 나아가 연주를 통해 화합의 메시지까지 전하게 된 겁니다.

[이준/가야금 연주자 : "우리가 분단돼있는 지금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저희가 연주를 한마음 한뜻으로 했듯이 이 음악을 듣고 차별을 넘어 희망으로, 희망을 소망하는 그런 마음을 담아 연주 했습니다."]

관객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이주영/서울 강남구 : "아리랑은 저희도 평소에 잘 알지만 북한에서도 잘 아는 곡이라고 생각을 하고 남북이 떨어져 있긴 하지만 노래로 음악으로 하나 되는 좋은 계기였던 거 같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점차 활동을 넓혀 가고 있는 황상혁 씨. 어떤 사연을 가진 음악인인지 궁금하실 텐데요.

북한에선 최고급 엘리트 영재 교육을 받은 유명 피아니스트입니다.

김일성 주석의 측근 집안에서 태어난 황상혁 씨는 유복한 가정환경 속에서 아홉 살 때, 어머니의 권유로 피아노를 처음 배웠는데요.

명문 평양예술전문학교와 김원균명칭 음악종합대학을 졸업한 뒤 교수의 길을 걸었고, 그야말로 탄탄대로의 삶이었습니다.

[황상혁/탈북 피아니스트 : "지금 생각해 놓고 보면 제가 북에서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는 걸 느끼게 되거든요. 제가 살던 아파트에서 사람들이 다 우리 집을 부러워했거든요."]

꽃길만 걷던 황상혁 씨, 그러나 예술 교육 전문가 대표단으로 2011년 중국에 갔다가 인생이 바뀝니다.

당국의 지시를 어기고 한국 사람과 만났고, 그 접촉을 이어갔던 겁니다.

[황상혁/탈북 피아니스트 : "좀 구속당하고 그러니까 스트레스 쌓이고 하지 말라는 데서 자꾸만 하게 되고 그런 호기심도 그런 것도 있고 제가 그때는 사람들한테 숨기고 한국 사람 접촉한 걸 저 혼자만 알고 있었는데 겁이 나더라고요."]

이를 눈치 챈 보위원이 그를 감시했고, 귀국하면 처벌받을 것을 두려워하다 가족을 평양에 두고 2014년 탈북해, 제3국으로 가려고 시도했지만 결국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하지만 이곳의 삶은, 피아노에만 몰두해도 걱정 없던 지난날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황상혁/탈북 피아니스트 : "한국에 와서 아는 사람도 없고 친척도 없고 그야말로 고아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앞이 안 보이고 특히 음악가로서의 차라리 모르고 음악을 안 배웠으면 모르겠는데 음악을 이때까지 배웠으니까 버릴 수도 없고 너무 암담했어요."]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돼 큰 교통사고를 당하는 등 정착은 순탄하지 못했고, 음악대학원에 진학했지만, 어학 문제로 졸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어려워진 형편은 타향살이의 또 다른 걸림돌이었습니다.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이 눈에 밟히고 혹시라도 자신으로 인해 다칠 것을 염려해 자제했던 활동을 이제는 열심히 하겠다고 마음먹게 됐다는데요,

그래설까요, 황상혁 씨는 얼마 전부터 방송 출연 등 여러 일들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황상혁/탈북 피아니스트 : "kbs에서 저한테 요청이 들어왔으니까 너무 감사하고 제가 이걸 알려야 되겠다 해서 이웃 나눔 콘서트라고 말씀하셔서."]

이런 가운데도 매주 목요일이면 사회복지관을 찾아 어르신들에게 합창과 피아노 연주를 가르치는 등 꾸준히 나눔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황상혁/탈북 피아니스트 : "나눔 하다 보니까 감정도 통하고 가족 같은 분위기도 되면서 많이 제가 의지도 되고 애로사항이나 고민 하는 중에 어르신들하고 얘기 하면서 상담도 하면서 많이 정착 생활하는데서 큰 도움이 되고. 제가 도와드리는 게 아니라 제가 지금 받는 거 같은 느낌이에요."]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온 황상혁 씬데요.

음악으로 아픈 이들을 위로하는 제2의 음악 인생을 바라고 있습니다.

[황상혁/탈북 피아니스트 : "음악은 사람들의 맘을 풀어주고 회복시켜주고 그런 역할을 하는 거 같아요. 그래서 제가 그 역할을 지금 많은 나눔으로 하는데 최근에 이태원에 일어나지 말아야 될 사고고 있어서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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