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촉즉발’ 화재 외면한 간부급 경찰들…소화기 든 버스 기사

입력 2022.11.23 (16:24) 수정 2022.11.23 (16:3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버스 블랙박스 화면] 지난 19일 낮,  충북 보은군 보은읍 '당진영덕고속도로' 화재 현장을 그냥 지나치는 ‘암행순찰차’[버스 블랙박스 화면] 지난 19일 낮, 충북 보은군 보은읍 '당진영덕고속도로' 화재 현장을 그냥 지나치는 ‘암행순찰차’

'이태원 참사'로 불거진 경찰의 부실 대응 논란,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거세지는 경찰 책임론 속, 사기 저하 우려와 자성의 목소리까지 뒤섞이며 경찰 조직은 그야말로 뒤숭숭합니다.

하지만 경찰은 최근 또 다른 사고 현장에서 부실 대응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KBS는 당시 이 모든 상황이 생생하게 담긴 한 버스 블랙박스 화면을 단독 입수했습니다.

■ '일촉즉발' 화재 현장 목격했지만....외면한 채 가버린 '간부급 경찰관들'

지난 19일 낮, 충북 보은군 보은읍 '당진영덕고속도로' 갓길에서 승용차 한 대가 시커먼 연기와 함께 불에 타고 있습니다. 운전자로 보이는 남성도 차에서 떨어져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 확인됩니다.

뒤따르던 차들은 화재 현장을 피해가기 위해 2차로로 차선을 변경하며 서행한 채 현장을 지나칩니다. 그런데 이들 차량 행렬 속에 비상등을 켠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포착됩니다.

알고 보니, 고속도로 과속이나 얌체 운전을 단속하는 경찰의 '암행순찰차'입니다. 단속 효율을 높이기 위해 일반 승용차로 위장된 순찰차로 경광등도 외부가 아닌 내부 뒷좌석 유리창 쪽에 달려있습니다.

당시, 이 암행순찰차에는 간부급 경찰관 두 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불길에 휩싸여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차량 화재 현장과 운전자 상태, 사고 여파로 생긴 차량 정체를 경찰은 두 눈으로 목격했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 암행순찰차는 현장을 외면하고 그대로 가버린 겁니다.

[버스 블랙박스 화면] 소화기를 꺼내 직접 불을 끄고 있는 한 전세버스 기사[버스 블랙박스 화면] 소화기를 꺼내 직접 불을 끄고 있는 한 전세버스 기사

"불난 것 좀 도와주고 갈게요"…소화기 든 버스 기사

경찰과 달리 현장을 못 본 채 않고 멈춰 선 건 승객을 가득 태우고 달리던 전세버스 기사였습니다. KBS가 확인한 이 버스의 블랙박스 화면을 보면, 오히려 암행순찰차는 버스보다 앞서 달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버스 기사는 화재 상황의 위급함을 직감한 뒤 승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버스 속도를 올려, 2차로에 있던 암행순찰차 앞을 가로질러 갓길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버스가 화재 현장 앞에 멈춰 섰을 때는 이미 연기가 더욱 거세지고 있었지만, 버스 기사는 망설임 없이 평소 갖고 다니던 소화기를 꺼낸 뒤 차량에 접근해 소화액을 뿌렸습니다.

그런 뒤, 운전자와 안전한 곳으로 대피합니다. 같은 시각, 고속도로 반대편 차로에서는 소방차들이 달려오기 시작했습니다.

[KBS 촬영] 당시 암행순찰차에 실려있던 소화기를 직접 확인하는 KBS 취재진[KBS 촬영] 당시 암행순찰차에 실려있던 소화기를 직접 확인하는 KBS 취재진

■ 암행순찰차도 '소화기 비치'…"당시 긴급 출동 상황 없어"

버스 블랙박스에 찍힌 '암행순찰차'. 버스 기사는 검은색 승용차 뒷좌석 쪽에 경광등을 우연히 발견하곤 암행순찰차라는 걸 직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냥 가버린 암행순찰차 경찰관들이 근처 터널에 비치된 소화기를 가져와 자신을 도와줄 것으로 예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경찰에 대한 기대는 결국 실망으로 돌아왔습니다.

KBS는 그 암행순찰차 트렁크에 소화기가 있었던 사실도 직접 확인했습니다. 고속도로 순찰 과정에서 만약의 화재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던 겁니다.

KBS는 당시 암행순찰차가 차량 화재 현장을 외면할 당시 112신고 접수 내용도 확인했습니다.

인근에 다른 사고나 교통법규 단속 등 긴급히 출동해야 할 상황은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들 경찰관이 도와줬어야 할 이 차량 화재에 대한 신고는 순찰차가 현장을 지나고 있을 때 이미 5~6분 전, 112상황실에 접수된 사실까지 드러났습니다.

[버스 블랙박스 화면] 전세버스보다 앞서 달리고 있었던 암행 순찰차[버스 블랙박스 화면] 전세버스보다 앞서 달리고 있었던 암행 순찰차

■ 경찰 "순찰차 뒤따라 올 것으로 예상…미흡하게 대응, 할 말 없다"

당시 암행순찰차를 몰았던 간부급 경찰관들과 고속도로순찰대 측은 " 이미 112신고가 접수돼 일반 순찰차들이 뒤따라와 현장을 도와줄 것으로 생각했다"고 해명했습니다.

실제 차량 화재 현장에서 20여km 떨어진 곳에 있던 일반 순찰차에 112 지령이 떨어졌었고, 이 순찰차가 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암행순찰차가 지나간 20분 뒤쯤으로 추정됩니다.

KBS 취재가 시작되자 경찰은 " 미흡하게 대응한 사실이 맞다, 직원 교육도 철저히 하겠다, 정확한 경위를 파악해 보겠다"고 밝히면서도 "초동 대응이 부실했다"며 거듭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경찰관 직무집행법은 경찰 직무 가운데 하나로 고속도로 화재 등 교통 위해 방지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경찰법에서도 경찰은 국민의 생명과 신체, 재산을 보호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직결된 차량 화재 현장을, 그것도 간부급 경찰관이 그대로 지나친 것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질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김교태 충북경찰청장은 오늘(23일) 긴급 회의를 주재하고 "암행 순찰차가 차량 화재 현장을 확인하고도 현장에서 대처하지 않은 경위를 파악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또 미흡한 대처 등이 확인될 경우, 향후 보완 조치에 나설 것을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경찰은 특히, 암행순찰차에 탑승했던 경찰관의 직무 유기 사실이 드러날 경우 징계에 착수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연관 기사]
[단독] ‘고속도로 화재’ 외면한 경찰…차량 불 끈 시민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607397
‘화재 외면’ 순찰차에 경찰 간부 2명 탑승…‘직무유기’ 등 감찰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607933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일촉즉발’ 화재 외면한 간부급 경찰들…소화기 든 버스 기사
    • 입력 2022-11-23 16:24:38
    • 수정2022-11-23 16:30:08
    취재K
[버스 블랙박스 화면] 지난 19일 낮,  충북 보은군 보은읍 '당진영덕고속도로' 화재 현장을 그냥 지나치는 ‘암행순찰차’
'이태원 참사'로 불거진 경찰의 부실 대응 논란,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거세지는 경찰 책임론 속, 사기 저하 우려와 자성의 목소리까지 뒤섞이며 경찰 조직은 그야말로 뒤숭숭합니다.

하지만 경찰은 최근 또 다른 사고 현장에서 부실 대응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KBS는 당시 이 모든 상황이 생생하게 담긴 한 버스 블랙박스 화면을 단독 입수했습니다.

■ '일촉즉발' 화재 현장 목격했지만....외면한 채 가버린 '간부급 경찰관들'

지난 19일 낮, 충북 보은군 보은읍 '당진영덕고속도로' 갓길에서 승용차 한 대가 시커먼 연기와 함께 불에 타고 있습니다. 운전자로 보이는 남성도 차에서 떨어져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 확인됩니다.

뒤따르던 차들은 화재 현장을 피해가기 위해 2차로로 차선을 변경하며 서행한 채 현장을 지나칩니다. 그런데 이들 차량 행렬 속에 비상등을 켠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포착됩니다.

알고 보니, 고속도로 과속이나 얌체 운전을 단속하는 경찰의 '암행순찰차'입니다. 단속 효율을 높이기 위해 일반 승용차로 위장된 순찰차로 경광등도 외부가 아닌 내부 뒷좌석 유리창 쪽에 달려있습니다.

당시, 이 암행순찰차에는 간부급 경찰관 두 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불길에 휩싸여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차량 화재 현장과 운전자 상태, 사고 여파로 생긴 차량 정체를 경찰은 두 눈으로 목격했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 암행순찰차는 현장을 외면하고 그대로 가버린 겁니다.

[버스 블랙박스 화면] 소화기를 꺼내 직접 불을 끄고 있는 한 전세버스 기사
"불난 것 좀 도와주고 갈게요"…소화기 든 버스 기사

경찰과 달리 현장을 못 본 채 않고 멈춰 선 건 승객을 가득 태우고 달리던 전세버스 기사였습니다. KBS가 확인한 이 버스의 블랙박스 화면을 보면, 오히려 암행순찰차는 버스보다 앞서 달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버스 기사는 화재 상황의 위급함을 직감한 뒤 승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버스 속도를 올려, 2차로에 있던 암행순찰차 앞을 가로질러 갓길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버스가 화재 현장 앞에 멈춰 섰을 때는 이미 연기가 더욱 거세지고 있었지만, 버스 기사는 망설임 없이 평소 갖고 다니던 소화기를 꺼낸 뒤 차량에 접근해 소화액을 뿌렸습니다.

그런 뒤, 운전자와 안전한 곳으로 대피합니다. 같은 시각, 고속도로 반대편 차로에서는 소방차들이 달려오기 시작했습니다.

[KBS 촬영] 당시 암행순찰차에 실려있던 소화기를 직접 확인하는 KBS 취재진
■ 암행순찰차도 '소화기 비치'…"당시 긴급 출동 상황 없어"

버스 블랙박스에 찍힌 '암행순찰차'. 버스 기사는 검은색 승용차 뒷좌석 쪽에 경광등을 우연히 발견하곤 암행순찰차라는 걸 직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냥 가버린 암행순찰차 경찰관들이 근처 터널에 비치된 소화기를 가져와 자신을 도와줄 것으로 예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경찰에 대한 기대는 결국 실망으로 돌아왔습니다.

KBS는 그 암행순찰차 트렁크에 소화기가 있었던 사실도 직접 확인했습니다. 고속도로 순찰 과정에서 만약의 화재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던 겁니다.

KBS는 당시 암행순찰차가 차량 화재 현장을 외면할 당시 112신고 접수 내용도 확인했습니다.

인근에 다른 사고나 교통법규 단속 등 긴급히 출동해야 할 상황은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들 경찰관이 도와줬어야 할 이 차량 화재에 대한 신고는 순찰차가 현장을 지나고 있을 때 이미 5~6분 전, 112상황실에 접수된 사실까지 드러났습니다.

[버스 블랙박스 화면] 전세버스보다 앞서 달리고 있었던 암행 순찰차
■ 경찰 "순찰차 뒤따라 올 것으로 예상…미흡하게 대응, 할 말 없다"

당시 암행순찰차를 몰았던 간부급 경찰관들과 고속도로순찰대 측은 " 이미 112신고가 접수돼 일반 순찰차들이 뒤따라와 현장을 도와줄 것으로 생각했다"고 해명했습니다.

실제 차량 화재 현장에서 20여km 떨어진 곳에 있던 일반 순찰차에 112 지령이 떨어졌었고, 이 순찰차가 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암행순찰차가 지나간 20분 뒤쯤으로 추정됩니다.

KBS 취재가 시작되자 경찰은 " 미흡하게 대응한 사실이 맞다, 직원 교육도 철저히 하겠다, 정확한 경위를 파악해 보겠다"고 밝히면서도 "초동 대응이 부실했다"며 거듭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경찰관 직무집행법은 경찰 직무 가운데 하나로 고속도로 화재 등 교통 위해 방지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경찰법에서도 경찰은 국민의 생명과 신체, 재산을 보호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직결된 차량 화재 현장을, 그것도 간부급 경찰관이 그대로 지나친 것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질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김교태 충북경찰청장은 오늘(23일) 긴급 회의를 주재하고 "암행 순찰차가 차량 화재 현장을 확인하고도 현장에서 대처하지 않은 경위를 파악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또 미흡한 대처 등이 확인될 경우, 향후 보완 조치에 나설 것을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경찰은 특히, 암행순찰차에 탑승했던 경찰관의 직무 유기 사실이 드러날 경우 징계에 착수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연관 기사]
[단독] ‘고속도로 화재’ 외면한 경찰…차량 불 끈 시민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607397
‘화재 외면’ 순찰차에 경찰 간부 2명 탑승…‘직무유기’ 등 감찰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607933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