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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유족, 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 현장 인근 상인들까지 속속 일상으로 복귀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날의 기억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 이태원 참사로 부상당해 병원 찾았다 들은 말…"이태원을 왜 갔냐"
김달현 씨는 아내와 함께 지난달 29일 밤 참사가 있었던 이태원 골목에 있었습니다. 가까스로 현장을 벗어났던 김 씨와 아내는 팔에 피멍이 들었고 메스꺼움 증상을 느껴 이틀 뒤 인천의 한 병원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진료를 위해 찾은 김 씨는 의사로부터 황당한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다친 부위를 보여주며 부상 경위를 설명하자 다짜고짜 "이태원을 왜 갔냐" "그 사람들을 왜 애도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지원금에 내 세금이 들어가는 게 너무 화가 난다"는 말을 들었다는 겁니다.

당황한 김 씨와 아내가 애써 웃어넘기려 했지만, "희생자들을 왜 애도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애도할 마음도 없다" "내가 20~30대 때는 공부만 했는데, 요즘엔 다들 놀러 다니기만 바빠서 사고가 난 것"이라는 의사의 말이 이어졌습니다.
김 씨는 "처음엔 참사를 겪은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기였기에 멍하니 듣고 있었다"며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적어도 진료를 보러 온 환자에게 그런 말을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서 진료를 거부하고 나왔다"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기억은 김 씨와 아내에게 또 다른 상처로 남았습니다. 김 씨 부부는 통신기록 등을 근거로 이태원 참사 부상자로 분류돼 치료비 지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아직 관련 서류를 제출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김 씨는 "그 말을 듣고 나서부터 '이태원 참사 부상자라서 내가 이렇게 아파요' 라고 얘기하기가 눈치 보인다"며 "이태원 갔다는 얘기를 못 하겠다. 병원에서 '얘도 우리 세금 떼먹는 사람이네' 생각할까 봐 서류를 함부로 못 내밀겠다"고 말했습니다.
■ 제사상 차려온 상인의 호소 "죽은 사람들 무슨 죄가 있나"
참사 이후 "아이들에게 밥이라도 한 끼 먹여야 하지 않겠느냐"며 제사상을 차리고 현장 주변을 지키고 있는 이태원 상인 남인석 씨. 영업 중인 상점 출입문 밖 추모 공간을 볼 때면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80대인 남 씨는 "마음이 답답하고 터지려 한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환상이 떠오른다. 그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49재까지 노력할 것"이라며 "제 앞에서 젊은 애들이 죽었는데 그게 죄스럽다. 그것이 가장 양심에 가책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남 씨는 희생자나 유족 등을 향한 비방 댓글 등에 대해선 "부모나 조문객들이 마음 아파하고 있는데 그래서야 되겠나"라며 "이 사람들이 무슨 죄가 있나. 코로나 때문에 콱 얽매여 있다가 그래도 한 번 나와서 즐기려고 왔는데 이 사람들이 무슨 죄가 있어 죽음을 당해야 하나"라고 반문했습니다.
정치권을 향해선 "158명의 소중한 목숨을 잃었는데, 이 사람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노력해야 하지 않겠나"라며 "지금 정치하는 사람들은 서로 니 편, 내 편하며 싸우는데 그건 도리가 아니라 생각한다. 앞으로 이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도록 화합하면 좋겠다"고 당부했습니다.
■ 전문가 "재경험, 과각성 반응 유의해야..이해과 공감부터"
전문가들은 피해자를 탓하는 등의 자극이 계속될 경우 트라우마는 더 악화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강지인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트라우마가 1차적으로 끝난 게 아니고 그 후에도 계속 트라우마를 자극하면서 재경험 같은 과각성 증상들이 더욱더 자극되거나 악화될 수 있는 계기들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강 교수는 "국민 모두 안타깝고 애도하는 마음은 모두 다 같을 것"이라며 " 작은 말 한마디에 따뜻한 위로는 큰 힘이 되는 반면 비난이나 섣부른 충고, 지적은 큰 상처를 남길 수 있는 만큼 서로를 이해, 공감하고 보듬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지금까지 유족과 부상자, 목격자, 일반 국민에 대한 정부의 심리 상담은 4천여 건 이뤄졌습니다.
도움을 원하는 사람은 보건복지부 정신건강 위기상담전화 1577-0199로 전화하면 됩니다.
이 밖에 행정안전부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 1670-9512, 청소년상담 전화 1388을 통해서도 심리상담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통역이 필요한 외국인을 위한 한국건강가정진흥원 다누리콜센터 1577-1366도 마련돼 있습니다.
- 참사 뒤 부상자가 들은 말…“이태원 갔었다 얘기 못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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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2-11-29 13:39:47
- 수정2022-11-29 13:40:19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유족, 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 현장 인근 상인들까지 속속 일상으로 복귀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날의 기억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 이태원 참사로 부상당해 병원 찾았다 들은 말…"이태원을 왜 갔냐"
김달현 씨는 아내와 함께 지난달 29일 밤 참사가 있었던 이태원 골목에 있었습니다. 가까스로 현장을 벗어났던 김 씨와 아내는 팔에 피멍이 들었고 메스꺼움 증상을 느껴 이틀 뒤 인천의 한 병원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진료를 위해 찾은 김 씨는 의사로부터 황당한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다친 부위를 보여주며 부상 경위를 설명하자 다짜고짜 "이태원을 왜 갔냐" "그 사람들을 왜 애도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지원금에 내 세금이 들어가는 게 너무 화가 난다"는 말을 들었다는 겁니다.

당황한 김 씨와 아내가 애써 웃어넘기려 했지만, "희생자들을 왜 애도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애도할 마음도 없다" "내가 20~30대 때는 공부만 했는데, 요즘엔 다들 놀러 다니기만 바빠서 사고가 난 것"이라는 의사의 말이 이어졌습니다.
김 씨는 "처음엔 참사를 겪은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기였기에 멍하니 듣고 있었다"며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적어도 진료를 보러 온 환자에게 그런 말을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서 진료를 거부하고 나왔다"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기억은 김 씨와 아내에게 또 다른 상처로 남았습니다. 김 씨 부부는 통신기록 등을 근거로 이태원 참사 부상자로 분류돼 치료비 지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아직 관련 서류를 제출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김 씨는 "그 말을 듣고 나서부터 '이태원 참사 부상자라서 내가 이렇게 아파요' 라고 얘기하기가 눈치 보인다"며 "이태원 갔다는 얘기를 못 하겠다. 병원에서 '얘도 우리 세금 떼먹는 사람이네' 생각할까 봐 서류를 함부로 못 내밀겠다"고 말했습니다.
■ 제사상 차려온 상인의 호소 "죽은 사람들 무슨 죄가 있나"
참사 이후 "아이들에게 밥이라도 한 끼 먹여야 하지 않겠느냐"며 제사상을 차리고 현장 주변을 지키고 있는 이태원 상인 남인석 씨. 영업 중인 상점 출입문 밖 추모 공간을 볼 때면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80대인 남 씨는 "마음이 답답하고 터지려 한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환상이 떠오른다. 그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49재까지 노력할 것"이라며 "제 앞에서 젊은 애들이 죽었는데 그게 죄스럽다. 그것이 가장 양심에 가책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남 씨는 희생자나 유족 등을 향한 비방 댓글 등에 대해선 "부모나 조문객들이 마음 아파하고 있는데 그래서야 되겠나"라며 "이 사람들이 무슨 죄가 있나. 코로나 때문에 콱 얽매여 있다가 그래도 한 번 나와서 즐기려고 왔는데 이 사람들이 무슨 죄가 있어 죽음을 당해야 하나"라고 반문했습니다.
정치권을 향해선 "158명의 소중한 목숨을 잃었는데, 이 사람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노력해야 하지 않겠나"라며 "지금 정치하는 사람들은 서로 니 편, 내 편하며 싸우는데 그건 도리가 아니라 생각한다. 앞으로 이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도록 화합하면 좋겠다"고 당부했습니다.
■ 전문가 "재경험, 과각성 반응 유의해야..이해과 공감부터"
전문가들은 피해자를 탓하는 등의 자극이 계속될 경우 트라우마는 더 악화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강지인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트라우마가 1차적으로 끝난 게 아니고 그 후에도 계속 트라우마를 자극하면서 재경험 같은 과각성 증상들이 더욱더 자극되거나 악화될 수 있는 계기들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강 교수는 "국민 모두 안타깝고 애도하는 마음은 모두 다 같을 것"이라며 " 작은 말 한마디에 따뜻한 위로는 큰 힘이 되는 반면 비난이나 섣부른 충고, 지적은 큰 상처를 남길 수 있는 만큼 서로를 이해, 공감하고 보듬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지금까지 유족과 부상자, 목격자, 일반 국민에 대한 정부의 심리 상담은 4천여 건 이뤄졌습니다.
도움을 원하는 사람은 보건복지부 정신건강 위기상담전화 1577-0199로 전화하면 됩니다.
이 밖에 행정안전부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 1670-9512, 청소년상담 전화 1388을 통해서도 심리상담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통역이 필요한 외국인을 위한 한국건강가정진흥원 다누리콜센터 1577-1366도 마련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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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락규 기자 rockyou@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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