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더미 된 문화재 ‘낙산사’

입력 2005.04.05 (22:16) 수정 2018.08.2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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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앞서도 전해 드렸습니다마는 뜻하지 않은 산불로 낙산사가 전소하면서 안타깝게도 국가지정 문화재도 잿더미가 됐습니다.
보도에 채 일 기자입니다.
⊙기자: 낙산사는 관음보살이 현실에 따른 전설로 우리나라 3대 관음기도도량 중 하나며 또한 관동8경의 하나로 유명합니다.
낙산사는 신라 문무왕 11년인 서기 671년 의상대사가 처음 세워 몇 차례 중건을 거쳤으나 6.25한국 전쟁으로 소실됐다가 1953년에 다시 세워졌습니다.
이곳에는 보물 제479호인 낙산사 동종을 비롯해 보물 제499호인 낙산사 7층석탑, 보물 제1362호인 낙산사 건칠관음보살좌상 등 세 점의 국가지정 문화재가 있습니다.
낙산사 동종은 조선 8대왕 예종이 그의 아버지인 세조를 위해 낙산사에 보시한 높이 158cm, 입지름 98cm에 이르는 범종입니다.
큰 종으로는 조각수법이 뚜렷하고 모양이 아름다워 한국종을 대표하는 걸작품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또 7층석탑은 고려시대 여운이 남아 있는 귀중한 석탑 중 하나입니다.
이번 불로 관음보살이 지정한 곳에 세웠다는 원통보전과 그것을 에워싸고 있는 원장, 절의 주 출입문인 홍예문 등이 모두 잿더미가 됐습니다.
그러나 건칠, 관음보살좌상과 탱화 등은 지하수장으로 무사히 대피시켰습니다.
또 해수관음상과 관음보살 현신처인 홍련암만은 화마에서 살아남았습니다.
1300년이 넘는 고찰 낙산사는 뜻하지 않은 산불로 몽골 침입과 6.25전쟁 이후 최대의 피해를 당했습니다.
KBS뉴스 채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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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잿더미 된 문화재 ‘낙산사’
    • 입력 2005-04-05 21:26:28
    • 수정2018-08-29 1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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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앞서도 전해 드렸습니다마는 뜻하지 않은 산불로 낙산사가 전소하면서 안타깝게도 국가지정 문화재도 잿더미가 됐습니다. 보도에 채 일 기자입니다. ⊙기자: 낙산사는 관음보살이 현실에 따른 전설로 우리나라 3대 관음기도도량 중 하나며 또한 관동8경의 하나로 유명합니다. 낙산사는 신라 문무왕 11년인 서기 671년 의상대사가 처음 세워 몇 차례 중건을 거쳤으나 6.25한국 전쟁으로 소실됐다가 1953년에 다시 세워졌습니다. 이곳에는 보물 제479호인 낙산사 동종을 비롯해 보물 제499호인 낙산사 7층석탑, 보물 제1362호인 낙산사 건칠관음보살좌상 등 세 점의 국가지정 문화재가 있습니다. 낙산사 동종은 조선 8대왕 예종이 그의 아버지인 세조를 위해 낙산사에 보시한 높이 158cm, 입지름 98cm에 이르는 범종입니다. 큰 종으로는 조각수법이 뚜렷하고 모양이 아름다워 한국종을 대표하는 걸작품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또 7층석탑은 고려시대 여운이 남아 있는 귀중한 석탑 중 하나입니다. 이번 불로 관음보살이 지정한 곳에 세웠다는 원통보전과 그것을 에워싸고 있는 원장, 절의 주 출입문인 홍예문 등이 모두 잿더미가 됐습니다. 그러나 건칠, 관음보살좌상과 탱화 등은 지하수장으로 무사히 대피시켰습니다. 또 해수관음상과 관음보살 현신처인 홍련암만은 화마에서 살아남았습니다. 1300년이 넘는 고찰 낙산사는 뜻하지 않은 산불로 몽골 침입과 6.25전쟁 이후 최대의 피해를 당했습니다. KBS뉴스 채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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