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시장 ‘꽁꽁’, 노인 생계 ‘흔들’…수거 대란 재연되나?

입력 2023.01.24 (07:17) 수정 2023.01.24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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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주택가 등에 빼곡히 쌓여있는 폐지를 수거해 생계를 이어가는 노인들….

요즘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요.

가뜩이나 헐값인 폐지 가격이 최근 더 크게 떨어지는 바람에 노인들이 생계를 위협받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격이 너무 떨어지면 수거 자체가 안 되는, 2018년 같은 '폐지 대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옵니다.

김민혁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10년 넘게 폐지를 주워온 이의근 할아버지는, 이번 겨울이 유독 춥습니다.

두 시간을 돌아 얻은 이날의 첫 수확, '1,800원'이 전부였습니다.

[이의근/서울시 동대문구 : "많이 떨어졌죠. kg당 100원까지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40원밖에 안 해요."]

쉴 틈도 없이 다시 움직이는 수레.

차가 다니는 좁은 골목을 가까스로 피해갑니다.

한나절 꼬박 일해도 5천 원 벌기가 쉽지 않습니다.

["(점심에) 국수를 사 먹거든요. 그게 4천 원이야."]

길 가다 우연히 큰 박스 더미를 만났습니다.

그나마, 운 좋은 날에 속합니다.

["(기름값이다 생각하고 (내가) 했는데, 이제 그냥 드리는 거예요.) 100kg을 실어야 4천 원인데 100kg을 못 싣죠."]

간혹,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합니다.

["아저씨! 내가 내놓은 건데 여기다가…."]

천 원, 이천 원에 허리가 휘는, 고단한 날들의 연속입니다.

["하루 일당은 한거야. 가야지 이제."]

고물상엔 오늘도 노인들 발길이 이어집니다.

이들이 주워오는 건 가장 낮은 가격대의 폐지, 즉 박스를 만드는 골판지입니다.

[폐지 수거 노인/음성변조 : "(가격이) 올라갈 때는 못 벌어도 한 5천 원씩. (지금은) 세 번은 가져다줘야 한번 가져다주는 값 밖에 안 나와요."]

속이 타는 건 고물상도 마찬가집니다.

[A 고물상 관계자 : "폐지 가져왔을 때 줄 수 있는 금액 자체가 10원밖에 안 올랐는데 100원 더 드릴 순 없잖아요..."]

고물상은 이 폐지들을 모아 압축장으로 보내는데, 요즘은 물량 초과라 쌓아둘 공간조차 부족합니다.

[B 고물상 관계자/음성변조 : "(압축상이) 새로 가면 받지도 않아요. 쌓아놓을 데가 없다고 하더라고. (제지업체에서) 예전에 10덩어리 가져가면 지금은 한 4덩어리 정도밖에 안 가져간대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폐지를 따로 보관해주는 비축 창고까지 생겨났습니다.

지난해 문을 연 이곳엔, 제지업체 4곳에서 맡긴 폐지 9천 톤가량이 쌓여있습니다.

그러나 맡긴 걸 되찾아간 업체는 아직 없습니다.

[허영진/한국환경공단 재활용시장관리부 과장 : "눌려서 무너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안전상의 이유로 4단 이상 쌓지 않고 있습니다. 전부 꽉 찼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수거 노인부터 → 고물상 → 압축상 → 제지업체로 이어지는 업계 전반이 요즘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경기 침체와 함께 해외 수출길마저 좁아지면서 줄줄이 가격이 내려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환경공단이 집계한 지난달 골판지 폐지값은 킬로그램 당 85원.

1년 새 '반 토막' 수준이 됐습니다.

[이위경/한국환경공단 재활용시장관리부 부장 : "(값이 떨어지면) 가정에서 나오는 폐지가 갈 곳이 없게 됩니다. 그러면 전체적으로 폐지 재활용이 다 막혀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으로 따지면 동맥경화가 되는…."]

폐지값 하락이 노인들의 생계뿐 아니라 환경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이유입니다.

국내에서는 이미 2018년 한 차례 폐지수거 대란이 벌어진 바 있습니다.

KBS 뉴스 김민혁입니다.

촬영기자:김현민/그래픽: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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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폐지 시장 ‘꽁꽁’, 노인 생계 ‘흔들’…수거 대란 재연되나?
    • 입력 2023-01-24 07:17:33
    • 수정2023-01-24 07:5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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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주택가 등에 빼곡히 쌓여있는 폐지를 수거해 생계를 이어가는 노인들….

요즘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요.

가뜩이나 헐값인 폐지 가격이 최근 더 크게 떨어지는 바람에 노인들이 생계를 위협받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격이 너무 떨어지면 수거 자체가 안 되는, 2018년 같은 '폐지 대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옵니다.

김민혁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10년 넘게 폐지를 주워온 이의근 할아버지는, 이번 겨울이 유독 춥습니다.

두 시간을 돌아 얻은 이날의 첫 수확, '1,800원'이 전부였습니다.

[이의근/서울시 동대문구 : "많이 떨어졌죠. kg당 100원까지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40원밖에 안 해요."]

쉴 틈도 없이 다시 움직이는 수레.

차가 다니는 좁은 골목을 가까스로 피해갑니다.

한나절 꼬박 일해도 5천 원 벌기가 쉽지 않습니다.

["(점심에) 국수를 사 먹거든요. 그게 4천 원이야."]

길 가다 우연히 큰 박스 더미를 만났습니다.

그나마, 운 좋은 날에 속합니다.

["(기름값이다 생각하고 (내가) 했는데, 이제 그냥 드리는 거예요.) 100kg을 실어야 4천 원인데 100kg을 못 싣죠."]

간혹,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합니다.

["아저씨! 내가 내놓은 건데 여기다가…."]

천 원, 이천 원에 허리가 휘는, 고단한 날들의 연속입니다.

["하루 일당은 한거야. 가야지 이제."]

고물상엔 오늘도 노인들 발길이 이어집니다.

이들이 주워오는 건 가장 낮은 가격대의 폐지, 즉 박스를 만드는 골판지입니다.

[폐지 수거 노인/음성변조 : "(가격이) 올라갈 때는 못 벌어도 한 5천 원씩. (지금은) 세 번은 가져다줘야 한번 가져다주는 값 밖에 안 나와요."]

속이 타는 건 고물상도 마찬가집니다.

[A 고물상 관계자 : "폐지 가져왔을 때 줄 수 있는 금액 자체가 10원밖에 안 올랐는데 100원 더 드릴 순 없잖아요..."]

고물상은 이 폐지들을 모아 압축장으로 보내는데, 요즘은 물량 초과라 쌓아둘 공간조차 부족합니다.

[B 고물상 관계자/음성변조 : "(압축상이) 새로 가면 받지도 않아요. 쌓아놓을 데가 없다고 하더라고. (제지업체에서) 예전에 10덩어리 가져가면 지금은 한 4덩어리 정도밖에 안 가져간대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폐지를 따로 보관해주는 비축 창고까지 생겨났습니다.

지난해 문을 연 이곳엔, 제지업체 4곳에서 맡긴 폐지 9천 톤가량이 쌓여있습니다.

그러나 맡긴 걸 되찾아간 업체는 아직 없습니다.

[허영진/한국환경공단 재활용시장관리부 과장 : "눌려서 무너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안전상의 이유로 4단 이상 쌓지 않고 있습니다. 전부 꽉 찼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수거 노인부터 → 고물상 → 압축상 → 제지업체로 이어지는 업계 전반이 요즘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경기 침체와 함께 해외 수출길마저 좁아지면서 줄줄이 가격이 내려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환경공단이 집계한 지난달 골판지 폐지값은 킬로그램 당 85원.

1년 새 '반 토막' 수준이 됐습니다.

[이위경/한국환경공단 재활용시장관리부 부장 : "(값이 떨어지면) 가정에서 나오는 폐지가 갈 곳이 없게 됩니다. 그러면 전체적으로 폐지 재활용이 다 막혀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으로 따지면 동맥경화가 되는…."]

폐지값 하락이 노인들의 생계뿐 아니라 환경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이유입니다.

국내에서는 이미 2018년 한 차례 폐지수거 대란이 벌어진 바 있습니다.

KBS 뉴스 김민혁입니다.

촬영기자:김현민/그래픽: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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