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은 햄버거를 주문했다, 다보스에 가지 않았다 [연초경제]④

입력 2023.01.25 (07:00) 수정 2023.01.25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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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은 다보스에 갔다!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자처했다. 세계에 아시아 제조 강국인 한국에 투자하라고 홍보했다. 실제로 세계 1위 풍력 터빈 회사는 거액의 투자를 약속했다. 기획재정부도 발맞췄다. 채권과 주식시장의 외국인 투자환경을 개선하고 있다고 했다. 외국 금융 자본의 한국 자본시장 참여를 독려했다.

우리 정부는 여전히 세계화를 원한다. 한국은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물건을 만들고, 그걸 나라 밖에 팔아서 부를 일군 나라다. 시장이 더 커질수록, 더 많은 물건을 만들 수 있게 하는 투자를 받을수록 유리한 나라다. 그 성공 공식을 연장해 추세적으로 하락하는 GDP 성장률을 반전시킨다는 것이 정부 전략이다. 시장 개방과 세계화가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고 믿는 사람들의 모임, 다보스 포럼에 간 이유는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는 다보스에서 글로벌 풍력터빈 1위 업체 베스타스로부터 3억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우리나라는 다보스에서 글로벌 풍력터빈 1위 업체 베스타스로부터 3억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

■ 그러나 바이든은 다보스에 가지 않았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다보스에 가지 않았다. 대신 햄버거를 주문했다. 그리고 트위터에 올렸다. "1,000만 명이 창업신청을 했습니다. 단일 기간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숫자!"라며 자화자찬했다. 그 트윗이 다보스 참석보다 중요했을까? 눈여겨볼 것이 있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도 가지 않았다. 영국의 리시 수낙 총리도 가지 않았다. 그들은 왜 다보스에 가지 않았을까.


FT의 칼럼니스트 기디온 래커만은 바이든이 "평범한 미국의 노동자를 위한 정치"를 표방하기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했다. 불참이 정치적 결정이라는 얘기다. 햄버거와도 관련이 있다. 햄버거 가게 직원, 그리고 농장이나 공장이나 항구에서 햄버거용 곡물과 고기와 채소를 재배하거나 기르거나 운반하는 모든 노동자와 관련이 있다. 바이든의 속마음이 이렇다고 생각하면 쉽다.

‘나는 바로 당신들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미국의 평범하고 자랑스런 노동자들입니다. 다보스는 당신들에게 도움이 되는 곳이 아니에요. 그래서 나는 안 갑니다.’

■ 중요한 건 파이의 크기가 아니다

그동안의 세계화는 분명 미국에 이익이 되는 장사였다. 세계는 달러를 중심으로 더 평평해졌다. 달러 경제의 심장-뉴욕의 금융이 세계를 지배했다. 그 자본의 힘은 실리콘밸리와 만나 혁신을 확산시켰다. 전 세계 검색과 쇼핑, 소셜미디어를 장악했다.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차세대 산업 대부분을 미국이 장악한 비결은 바로 세계화와 자유시장의 확대다.

파이는 커졌다. 그래서 국가 전체에는 좋은 일이었다. 다만 문제는 그 커진 파이를 어떻게 분배하느냐에서 발생했다.

트럼프가 2017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쇠락한 공업지역, 러스트 벨트가 트럼프를 선택했다. 일자리를 잃고 생활 수준이 저하된 백인 블루칼라 노동자가 화났기 때문이다. 그들이 일자리를 잃은 이유가 세계화다. 값싼 중국산(또 한국산) 제품과 경쟁할 수 없었다. 자본가들은 임금이 비싸고 비효율적인 미국에선 설계만 하기로 하고, 공장은 해외로 옮겨버렸다. 미국에선 이게 세계화다. 그 결과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졌다.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은 고통받는데, 당신들은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고 하네? 내가 힘들다고 하면 당신들은 '안타깝지만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겁니다. 노오력을 하세요. 노력만 하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네? 대학에 가라고? 기술을 배우라고? 최저시급 일자리라도 만족하고 다니라고? 정직하게 산 댓가가 그런 조롱이라면 나는 그런 세상을 받아들일 수 없소!"

정리하자면 불평등이 분노를 낳았다. 금융산업에 종사하거나, 설계하거나, 혁신하는 소수의 사람은 좋았다. 자동차를 만들고, 의류와 전자제품을 만들던 다수의 사람은 실직자가 되었다. 플러스 마이너스 계산으로는 플러스가 훨씬 많았다. 혁신에 성공해 파이 자체는 커졌다. 그러나 한때는 중산층이었던 사람들이 안정적 일자리를 잃고 최저 시급 일자리를 전전하는데, 반대쪽에선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돈을 벌었다. 그 돈을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한 소수는 월급보다 더 많은 돈을 일하지 않고 벌었다. 그 불평등이 수십 년간 지속됐다.

■ 불평등이 낳은 포퓰리즘 위에 선 바이든

이민 혐오, 반세계화, 반지성주의가 정치 세계의 중심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포퓰리스트들이 '생활 수준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다수'를 유혹하는 데 성공했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 됐다. 영국에선 브렉시트가 되었다. 이탈리아에선 극우정당이 정권을 가졌다.

바이든도 이 분노의 물결 속에 재선을 치러야 한다. 트럼프를 찍었던 화난 사람들에게 호소해야 한다. 러스트 벨트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민주당도 당신의 일자리를 중시한다. 미국을 바닥으로부터 새롭게 재건한다는 내 계획은 바로 당신들을 위한 것이다.' Build Back Better, From the Bottom! 쇠락한 공업 지대의 교량 신축 현장에 대통령이 직접 가는 이유다.

캔터키와 오하이오 주를 잇는 브렌트 스펜스 다리. 60년 전 건설된 다리로 설계용량을 두 배 초과한 교통량으로 몸살을 앓는다. 미국운송연구소( American Transportation Research Institute, ATRI)가 ‘미국에서 두 번째로 화물차 병목현상이 심한 도로’로 꼽았다.  바이든의 인프라 법안 통과로 자금이 확보되어, 이 오래된 다리 옆에 새 다리가 지어지게 됐다. 러스트 벨트에 건설되는 바이든 경제공약의 상징이 됐다.캔터키와 오하이오 주를 잇는 브렌트 스펜스 다리. 60년 전 건설된 다리로 설계용량을 두 배 초과한 교통량으로 몸살을 앓는다. 미국운송연구소( American Transportation Research Institute, ATRI)가 ‘미국에서 두 번째로 화물차 병목현상이 심한 도로’로 꼽았다. 바이든의 인프라 법안 통과로 자금이 확보되어, 이 오래된 다리 옆에 새 다리가 지어지게 됐다. 러스트 벨트에 건설되는 바이든 경제공약의 상징이 됐다.

세계화를 뒤로 미루고, 중국 없는 세계를 꿈꾸면서, 아시아의 팔목을 비틀어 핵심 제조산업을 국내로 들여오는 시대. 바로 이 소외된 다수가 가진 세계화에 대한 불만이 낳은 풍경이다.

마크롱은 연금개혁 이슈에 부딪혀 있다. 개혁의 당위성과는 별개로, 또 서민들의 지갑을 터느냐며 프랑스인들이 분노하고 있다. 부자들 만날 때가 아니다. 금융계 출신인 리시 수낙은 당연히 다보스에 가고 싶었을 테지만, 그 역시 많은 노동자 시위에 부딪혀 있다. 그들의 화를 돋울 때가 아니다. 보수당의 입지가 그렇게 튼튼하지 못하다. FT의 래커만이 지적하는 다보스 포럼 주변 세계 정세는 이렇다.

■ '특권 중산층' 시대

이런 불평등은 지금 전 세계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구해근 하와이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특권 중산층>에서 이 불평등과 그에 따른 불만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했다. 1대 99의 사회라는 표현(스티글리츠)이 있고, 상위 9.9%가 신귀족이라는 주장(스튜어트)도 있다. '상위 20% 신 상류 중간계층'(리브스)이란 표현도 있다.

Don't blame the Fed for widening inequality. Blame Congress (CNN Money 2015.06.02)Don't blame the Fed for widening inequality. Blame Congress (CNN Money 2015.06.02)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일단 스스로 중산층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확 줄었다. 80년대 말 국민 70%가 '나는 중산층'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비율은 2010년대 조사에선 20%대까지 떨어졌다. 이유는 '중산층에 대한 기준'이 비현실적으로 높아져서다. 중산층이 소수 상위 중산층과 그 외 기타 계층으로 쪼개졌고, 사람들은 소수 상위 중산층만이 진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짜 중산층, 이게 <특권 중산층>이다.

구 교수는 계층 구조 변화에서 중요한 점은 '일반 중간계층 위에, 다른 집단과 구별되는 새로운 부유 엘리트층이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이라면서, 한국의 경우에 '소득과 자산순위 상위 10% 정도를 신상류 중산층 또는 특권 중산층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특권 중산층, p232)

■ 한국의 승자는 "대기업 + 정규직"

"대기업들이라고 다 같은 건 아니다. 2014년에 대기업 피고용인들의 연간 평균소득은 약 5만 2천 달러인 반면 삼성전자의 경우 9만 2천 달러, 현대자동차의 경우 8만 8천 달러에 달했다. 이는 대다수 대기업의 평균소득이 최상위 재벌기업들의 소득의 60%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노동계급과 중간계급 내부는 분열되었다. 재벌기업 정규직 생산직 노동자들은 중소기업 화이트칼라 노동자들보다 더 안정된 직업 위치에서 더 높은 임금을 받고 있다. 따라서 현재 한국사회에서 계급 위치를 결정하는 데는 직업이 예전같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 대신 어떤 규모의 기업체에서 어떤 고용위치로 취업하고 있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

-구해근 <특권 중산층 사회>-

미국에서 월가와 실리콘밸리가 특권 중산층의 상징이라면, 한국에선 '대기업+정규직'이 그 상징이다. 대한민국의 국부는 '수출'에서 창출되는데, 그 대부분을 대기업이 독식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일부 온라인 기업'에서도 나온다.) 즉, 수출 대기업의 정규직이라면 상위 10%의 길이 열린다. 아니라면 상위 10%와의 간극은 점점 멀어질 것이다.

낙수효과는 없거나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그 상징이 대기업의 하청 기업, 중소기업의 처지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소득 격차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많은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의 하청업체가 되어 지극히 불공정하고 착취적인 사업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대기업의 신규고용은 지난 10여년간 거의 늘지 않았다. 이것이 한국 노동시장의 가장 심각한 문제일 것이다." (71쪽)

■ 청년이 일하지 않는 사회

그 후폭풍 가운데 하나는 '청년이 일하지 않는 사회'다. 이들이 더 많이 일해야 혁신과 성장의 엔진이 되는데, 젊은이들은 좋은 직장이 아니면 가지 않으려 한다. 중소기업 가서라도 열심히 하면 쫓아갈 수 있다는 어른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시작은 반이 아니다. 시작은 전부다. 취업을 유예하고 취업 준비에 모든 것을 건다. 그 결과가 15~29살 그룹 고용률이다. OECD 하위권이다.


부디 ' 고생을 해보지 않아서, 지나치게 고학력인데다 눈높이가 높아서'라고 지적질 하지 않길. 손쉬운 비판에 빠지면 구조를 볼 수 없게 된다. 기억하라, '수출 대기업 정규직'만 특권 중산층이라는 구 교수의 분석을. 구 교수만의 분석도 아니다.

지난해 '한국 보고서'를 발표하러 한국에 온 OECD 경제통계국 빈센트 코엔 부국장은 기자 간담회에서 이상하다고 했다. 한국은 전반적으로 실업률은 2%대 일 정도로 안정되어 있고, 고용률도 사상 최대를 연일 갱신하고 있는데 "놀랍게도 15~29살 그룹의 고용률은 OECD 평균을 하회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중구조를 말했다. 수출 대기업만 돈을 잘 벌고 생산성이 높고 임금도 높다. 나머지 기업들은 생산성이 낮고 임금도 낮다. 두 그룹 사이의 격차는 계속 커지기만 한다. 그러니 청년들이 일하지 않고 일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낮은 청년 고용률은 경제의 이중구조 때문이다. OECD 한국 담당자의 분석이다.

OECD  경제통계국 빈센트 코엔 부국장OECD 경제통계국 빈센트 코엔 부국장

■ 전체만 볼 수 없는 시대, 다보스 만으론 충분치 않다

성장률 숫자 높이는 데 수출만 한 효자는 없다. 그러니 수출 역량을 확충하는 '투자유치'는 분명 도움이 된다. '국가 경제 전체'의 시각에서 보면 그렇다.

그러나 '전체'의 이익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점점 커지고 있다. 불만을 키워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젊은이들이 그렇고, 또 자영업자들이 그렇고, 빈곤선 아래 추락한 노령층도 그렇다. 집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도 분노한다. 지금의 경제 구조는 10~20% 소수만 이익이고, 나머지는 점점 추락하는 시스템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들이 무시 못 할 정도의 세력이 되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변곡점을 맞을 것이다.

서구에서는 이미 민주주의 정치 지형을 침식할 정도로 커졌다. 공동체가 '전체적으로 더 이익인 것이 분명한 길-공동선'을 선택할 수 없는 정치 지형을 가지게 되었다.

증거가 미국이다. 중국도 싫다, 세계화도 싫다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미국의 정치는 나만 살겠다는 정책, '근린 궁핍화 정책 (beggar-thy-neighbor policy)'으로 나아가고 있다. IRA에서 동맹(한국과 유럽)을 홀대한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이 세계를 보호무역주의로 몰아넣고 있다'며 '결국은 승자 없는 게임이며, 비효율로 인해 납세자의 세금만 허비하고 말 것'이라고 단언하지만, 멈출 수 없어 보인다.

우리도 임계점을 향해 가고 있다. 아직은 '공정하지 않다'고만 말한다. 그러나 그들의 소외가 지속하고 증폭되면 거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다보스에만 가서는 이 분노의 증식을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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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이든은 햄버거를 주문했다, 다보스에 가지 않았다 [연초경제]④
    • 입력 2023-01-25 07:00:33
    • 수정2023-01-25 07:02:51
    취재K

■ 윤석열 대통령은 다보스에 갔다!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자처했다. 세계에 아시아 제조 강국인 한국에 투자하라고 홍보했다. 실제로 세계 1위 풍력 터빈 회사는 거액의 투자를 약속했다. 기획재정부도 발맞췄다. 채권과 주식시장의 외국인 투자환경을 개선하고 있다고 했다. 외국 금융 자본의 한국 자본시장 참여를 독려했다.

우리 정부는 여전히 세계화를 원한다. 한국은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물건을 만들고, 그걸 나라 밖에 팔아서 부를 일군 나라다. 시장이 더 커질수록, 더 많은 물건을 만들 수 있게 하는 투자를 받을수록 유리한 나라다. 그 성공 공식을 연장해 추세적으로 하락하는 GDP 성장률을 반전시킨다는 것이 정부 전략이다. 시장 개방과 세계화가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고 믿는 사람들의 모임, 다보스 포럼에 간 이유는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는 다보스에서 글로벌 풍력터빈 1위 업체 베스타스로부터 3억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
■ 그러나 바이든은 다보스에 가지 않았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다보스에 가지 않았다. 대신 햄버거를 주문했다. 그리고 트위터에 올렸다. "1,000만 명이 창업신청을 했습니다. 단일 기간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숫자!"라며 자화자찬했다. 그 트윗이 다보스 참석보다 중요했을까? 눈여겨볼 것이 있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도 가지 않았다. 영국의 리시 수낙 총리도 가지 않았다. 그들은 왜 다보스에 가지 않았을까.


FT의 칼럼니스트 기디온 래커만은 바이든이 "평범한 미국의 노동자를 위한 정치"를 표방하기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했다. 불참이 정치적 결정이라는 얘기다. 햄버거와도 관련이 있다. 햄버거 가게 직원, 그리고 농장이나 공장이나 항구에서 햄버거용 곡물과 고기와 채소를 재배하거나 기르거나 운반하는 모든 노동자와 관련이 있다. 바이든의 속마음이 이렇다고 생각하면 쉽다.

‘나는 바로 당신들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미국의 평범하고 자랑스런 노동자들입니다. 다보스는 당신들에게 도움이 되는 곳이 아니에요. 그래서 나는 안 갑니다.’

■ 중요한 건 파이의 크기가 아니다

그동안의 세계화는 분명 미국에 이익이 되는 장사였다. 세계는 달러를 중심으로 더 평평해졌다. 달러 경제의 심장-뉴욕의 금융이 세계를 지배했다. 그 자본의 힘은 실리콘밸리와 만나 혁신을 확산시켰다. 전 세계 검색과 쇼핑, 소셜미디어를 장악했다.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차세대 산업 대부분을 미국이 장악한 비결은 바로 세계화와 자유시장의 확대다.

파이는 커졌다. 그래서 국가 전체에는 좋은 일이었다. 다만 문제는 그 커진 파이를 어떻게 분배하느냐에서 발생했다.

트럼프가 2017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쇠락한 공업지역, 러스트 벨트가 트럼프를 선택했다. 일자리를 잃고 생활 수준이 저하된 백인 블루칼라 노동자가 화났기 때문이다. 그들이 일자리를 잃은 이유가 세계화다. 값싼 중국산(또 한국산) 제품과 경쟁할 수 없었다. 자본가들은 임금이 비싸고 비효율적인 미국에선 설계만 하기로 하고, 공장은 해외로 옮겨버렸다. 미국에선 이게 세계화다. 그 결과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졌다.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은 고통받는데, 당신들은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고 하네? 내가 힘들다고 하면 당신들은 '안타깝지만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겁니다. 노오력을 하세요. 노력만 하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네? 대학에 가라고? 기술을 배우라고? 최저시급 일자리라도 만족하고 다니라고? 정직하게 산 댓가가 그런 조롱이라면 나는 그런 세상을 받아들일 수 없소!"

정리하자면 불평등이 분노를 낳았다. 금융산업에 종사하거나, 설계하거나, 혁신하는 소수의 사람은 좋았다. 자동차를 만들고, 의류와 전자제품을 만들던 다수의 사람은 실직자가 되었다. 플러스 마이너스 계산으로는 플러스가 훨씬 많았다. 혁신에 성공해 파이 자체는 커졌다. 그러나 한때는 중산층이었던 사람들이 안정적 일자리를 잃고 최저 시급 일자리를 전전하는데, 반대쪽에선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돈을 벌었다. 그 돈을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한 소수는 월급보다 더 많은 돈을 일하지 않고 벌었다. 그 불평등이 수십 년간 지속됐다.

■ 불평등이 낳은 포퓰리즘 위에 선 바이든

이민 혐오, 반세계화, 반지성주의가 정치 세계의 중심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포퓰리스트들이 '생활 수준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다수'를 유혹하는 데 성공했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 됐다. 영국에선 브렉시트가 되었다. 이탈리아에선 극우정당이 정권을 가졌다.

바이든도 이 분노의 물결 속에 재선을 치러야 한다. 트럼프를 찍었던 화난 사람들에게 호소해야 한다. 러스트 벨트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민주당도 당신의 일자리를 중시한다. 미국을 바닥으로부터 새롭게 재건한다는 내 계획은 바로 당신들을 위한 것이다.' Build Back Better, From the Bottom! 쇠락한 공업 지대의 교량 신축 현장에 대통령이 직접 가는 이유다.

캔터키와 오하이오 주를 잇는 브렌트 스펜스 다리. 60년 전 건설된 다리로 설계용량을 두 배 초과한 교통량으로 몸살을 앓는다. 미국운송연구소( American Transportation Research Institute, ATRI)가 ‘미국에서 두 번째로 화물차 병목현상이 심한 도로’로 꼽았다.  바이든의 인프라 법안 통과로 자금이 확보되어, 이 오래된 다리 옆에 새 다리가 지어지게 됐다. 러스트 벨트에 건설되는 바이든 경제공약의 상징이 됐다.
세계화를 뒤로 미루고, 중국 없는 세계를 꿈꾸면서, 아시아의 팔목을 비틀어 핵심 제조산업을 국내로 들여오는 시대. 바로 이 소외된 다수가 가진 세계화에 대한 불만이 낳은 풍경이다.

마크롱은 연금개혁 이슈에 부딪혀 있다. 개혁의 당위성과는 별개로, 또 서민들의 지갑을 터느냐며 프랑스인들이 분노하고 있다. 부자들 만날 때가 아니다. 금융계 출신인 리시 수낙은 당연히 다보스에 가고 싶었을 테지만, 그 역시 많은 노동자 시위에 부딪혀 있다. 그들의 화를 돋울 때가 아니다. 보수당의 입지가 그렇게 튼튼하지 못하다. FT의 래커만이 지적하는 다보스 포럼 주변 세계 정세는 이렇다.

■ '특권 중산층' 시대

이런 불평등은 지금 전 세계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구해근 하와이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특권 중산층>에서 이 불평등과 그에 따른 불만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했다. 1대 99의 사회라는 표현(스티글리츠)이 있고, 상위 9.9%가 신귀족이라는 주장(스튜어트)도 있다. '상위 20% 신 상류 중간계층'(리브스)이란 표현도 있다.

Don't blame the Fed for widening inequality. Blame Congress (CNN Money 2015.06.02)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일단 스스로 중산층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확 줄었다. 80년대 말 국민 70%가 '나는 중산층'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비율은 2010년대 조사에선 20%대까지 떨어졌다. 이유는 '중산층에 대한 기준'이 비현실적으로 높아져서다. 중산층이 소수 상위 중산층과 그 외 기타 계층으로 쪼개졌고, 사람들은 소수 상위 중산층만이 진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짜 중산층, 이게 <특권 중산층>이다.

구 교수는 계층 구조 변화에서 중요한 점은 '일반 중간계층 위에, 다른 집단과 구별되는 새로운 부유 엘리트층이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이라면서, 한국의 경우에 '소득과 자산순위 상위 10% 정도를 신상류 중산층 또는 특권 중산층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특권 중산층, p232)

■ 한국의 승자는 "대기업 + 정규직"

"대기업들이라고 다 같은 건 아니다. 2014년에 대기업 피고용인들의 연간 평균소득은 약 5만 2천 달러인 반면 삼성전자의 경우 9만 2천 달러, 현대자동차의 경우 8만 8천 달러에 달했다. 이는 대다수 대기업의 평균소득이 최상위 재벌기업들의 소득의 60%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노동계급과 중간계급 내부는 분열되었다. 재벌기업 정규직 생산직 노동자들은 중소기업 화이트칼라 노동자들보다 더 안정된 직업 위치에서 더 높은 임금을 받고 있다. 따라서 현재 한국사회에서 계급 위치를 결정하는 데는 직업이 예전같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 대신 어떤 규모의 기업체에서 어떤 고용위치로 취업하고 있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

-구해근 <특권 중산층 사회>-

미국에서 월가와 실리콘밸리가 특권 중산층의 상징이라면, 한국에선 '대기업+정규직'이 그 상징이다. 대한민국의 국부는 '수출'에서 창출되는데, 그 대부분을 대기업이 독식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일부 온라인 기업'에서도 나온다.) 즉, 수출 대기업의 정규직이라면 상위 10%의 길이 열린다. 아니라면 상위 10%와의 간극은 점점 멀어질 것이다.

낙수효과는 없거나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그 상징이 대기업의 하청 기업, 중소기업의 처지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소득 격차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많은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의 하청업체가 되어 지극히 불공정하고 착취적인 사업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대기업의 신규고용은 지난 10여년간 거의 늘지 않았다. 이것이 한국 노동시장의 가장 심각한 문제일 것이다." (71쪽)

■ 청년이 일하지 않는 사회

그 후폭풍 가운데 하나는 '청년이 일하지 않는 사회'다. 이들이 더 많이 일해야 혁신과 성장의 엔진이 되는데, 젊은이들은 좋은 직장이 아니면 가지 않으려 한다. 중소기업 가서라도 열심히 하면 쫓아갈 수 있다는 어른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시작은 반이 아니다. 시작은 전부다. 취업을 유예하고 취업 준비에 모든 것을 건다. 그 결과가 15~29살 그룹 고용률이다. OECD 하위권이다.


부디 ' 고생을 해보지 않아서, 지나치게 고학력인데다 눈높이가 높아서'라고 지적질 하지 않길. 손쉬운 비판에 빠지면 구조를 볼 수 없게 된다. 기억하라, '수출 대기업 정규직'만 특권 중산층이라는 구 교수의 분석을. 구 교수만의 분석도 아니다.

지난해 '한국 보고서'를 발표하러 한국에 온 OECD 경제통계국 빈센트 코엔 부국장은 기자 간담회에서 이상하다고 했다. 한국은 전반적으로 실업률은 2%대 일 정도로 안정되어 있고, 고용률도 사상 최대를 연일 갱신하고 있는데 "놀랍게도 15~29살 그룹의 고용률은 OECD 평균을 하회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중구조를 말했다. 수출 대기업만 돈을 잘 벌고 생산성이 높고 임금도 높다. 나머지 기업들은 생산성이 낮고 임금도 낮다. 두 그룹 사이의 격차는 계속 커지기만 한다. 그러니 청년들이 일하지 않고 일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낮은 청년 고용률은 경제의 이중구조 때문이다. OECD 한국 담당자의 분석이다.

OECD  경제통계국 빈센트 코엔 부국장
■ 전체만 볼 수 없는 시대, 다보스 만으론 충분치 않다

성장률 숫자 높이는 데 수출만 한 효자는 없다. 그러니 수출 역량을 확충하는 '투자유치'는 분명 도움이 된다. '국가 경제 전체'의 시각에서 보면 그렇다.

그러나 '전체'의 이익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점점 커지고 있다. 불만을 키워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젊은이들이 그렇고, 또 자영업자들이 그렇고, 빈곤선 아래 추락한 노령층도 그렇다. 집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도 분노한다. 지금의 경제 구조는 10~20% 소수만 이익이고, 나머지는 점점 추락하는 시스템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들이 무시 못 할 정도의 세력이 되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변곡점을 맞을 것이다.

서구에서는 이미 민주주의 정치 지형을 침식할 정도로 커졌다. 공동체가 '전체적으로 더 이익인 것이 분명한 길-공동선'을 선택할 수 없는 정치 지형을 가지게 되었다.

증거가 미국이다. 중국도 싫다, 세계화도 싫다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미국의 정치는 나만 살겠다는 정책, '근린 궁핍화 정책 (beggar-thy-neighbor policy)'으로 나아가고 있다. IRA에서 동맹(한국과 유럽)을 홀대한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이 세계를 보호무역주의로 몰아넣고 있다'며 '결국은 승자 없는 게임이며, 비효율로 인해 납세자의 세금만 허비하고 말 것'이라고 단언하지만, 멈출 수 없어 보인다.

우리도 임계점을 향해 가고 있다. 아직은 '공정하지 않다'고만 말한다. 그러나 그들의 소외가 지속하고 증폭되면 거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다보스에만 가서는 이 분노의 증식을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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