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왜곡’ 거침없는 일본, 한국만 ‘조심조심’

입력 2023.01.25 (17:04) 수정 2023.01.25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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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역사왜곡' 거침없는 일본

"'다케시마'는 역사적 사실에 비춰 봐도, 국제법상으로도 일본 고유의 영토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이 23일 일본 정기국회 외교연설에서 한 주장입니다. 우리 영토인 독도에 대해 10년째 되풀이한 망언인데, 새로울 것 없는 이 주장에 새삼 더 분노하게 되는 건 발언이 나온 시점 때문입니다. 한일 양국이 강제동원 문제 해법 마련을 위한 협상을 하고 있는 지금, 상대국인 한국은 안중에도 없이 이런 망언을 공개석상에서 되풀이한 겁니다.

같은 날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일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고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긴밀히 의사소통해 나가겠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일본 총리와 외무상 발언을 종합하면 '한국과 관계 개선을 바란다, 그러나 '독도는 일본땅'이란 우리 입장은 변화가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라는 뜻이 읽힙니다.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은 한결같습니다. 일본은 지난 19일엔 일제 강점기 강제노동의 역사적 사실을 부인한 채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다시 신청했습니다. 2015년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 탄광 등 근대산업시설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때 조선인 강제 노역을 알리겠다고 했던 약속을 버젓이 어겨놓고 말이죠.

우리 정부 대응은 어땠을까요?

■ 수위 조절한 한국…강제동원 협상 '조심조심' 행보

정부는 23일 일본 외무상의 독도 영유권 망언에 대해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내고 "강력히 항의하며, 이를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구마가이 나오키 주한일본대사관 총괄공사를 불러 항의했습니다.

사도광산 세계유산 재신청에 대해선 20일 외교부 대변인 논평을 통해 "유감을 표명"하고 주한 일본 대사대리인 나미오카 다이스케 경제공사를 불러들여 항의했습니다. 그러나 항의의 '수위'는 조절했습니다. 같은 사안을 두고 지난해엔 '성명'을 내고 '강한 유감'을 표명했지만 올해는 '성명'보다 수위가 낮은 '논평'을 내고 '유감을 표명'하는 데 그쳤습니다.

강제동원 배상 협상 등 양국의 관계 개선 분위기를 고려한 조치로 풀이되는데, 우리 정부의 이런 '조심조심' 행보는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지난해엔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가 국민훈장 후보자로 추천됐다가 외교부 제동으로 수상이 무산됐고, 강제동원 문제를 논의하려던 민관토론회도 갑자기 취소시켰습니다. "일본 눈치보기가 절대 아니"라는 외교부 당국자의 거듭된 해명에도 협상을 앞두고 혹시나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까 '조심조심'했던 분위기가 뚜렷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3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3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한일관계가 너무 많이 퇴조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한일관계 정상화는 강력하게 추진하겠다"

지난해 9월 윤 대통령이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강조한 내용입니다. 경색된 한일 관계를 풀어보자는 이런 의지는 윤 대통령뿐만 아니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도 갖고 있습니다. 양국 정상의 교감 아래 일제 강제 동원 문제를 매듭짓고 일본은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풀어 관계를 정상화하자는 구상입니다.

■ '우리 기업 돈으로 배상'에 반발…찬물 끼얹은 일본

우리 정부는 전범 기업이 아닌 우리 기업의 돈으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배상하자는 안을 공개했습니다. 현재로선 이런 우리 정부의 안에 일본이 어느 정도 '성의있는 호응 조치'를 할 지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전범 기업에 면죄부를 주는 안을 철회하라"는 피해자, 시민단체의 반발이 거세게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은 '조심조심' 행보를 보이는 우리 정부와 달리 거침없이 역사 왜곡 입장을 내보이며 관계 정상화에 찬물을 끼얹은 셈입니다.

KBS가 실시한 새해 여론조사에서도 정부가 공개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안에 대해
피해자 의견 반영이 미흡해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60% 가까이 나올 정도로 우리 국민의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인데 말입니다. 일본은 '역사 왜곡'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한국과의 관계를 정말 '정상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연관 기사] [여론조사]④ “이상민 사퇴 48% vs 45%…강제동원 해법 미흡 59.6%”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584928

정부의 대일 외교 '속도전'을 비판해온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는 "대일 외교 전략이 잘 보이지 않는다"며 이렇게 비판했습니다. 이달 말 서울에서 한일 국장급 협의를 이어갈 우리 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지적으로 보입니다.

"(강제동원 문제를 풀어야 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다고) 그렇게 세팅해놓은 것도 일본이거든요. 그렇게 세팅한 것에 우리가 올라타는 것 자체가 일본이 만들어놓은 판 위에 올라가는 건데, 그것이 갖고 있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냐죠.

대일 외교의 전략이라고 하는 점이 잘 보이지 않는다. 간혹 나오는 걸 보게 되면 '어떻게 일본이 만족할 수 있는 답안지를 가져갈 것인가'라는 것에만 국한된, 그런 대일 외교인 것 같아서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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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왜곡’ 거침없는 일본, 한국만 ‘조심조심’
    • 입력 2023-01-25 17:04:10
    • 수정2023-01-25 17:12:34
    취재K

■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역사왜곡' 거침없는 일본

"'다케시마'는 역사적 사실에 비춰 봐도, 국제법상으로도 일본 고유의 영토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이 23일 일본 정기국회 외교연설에서 한 주장입니다. 우리 영토인 독도에 대해 10년째 되풀이한 망언인데, 새로울 것 없는 이 주장에 새삼 더 분노하게 되는 건 발언이 나온 시점 때문입니다. 한일 양국이 강제동원 문제 해법 마련을 위한 협상을 하고 있는 지금, 상대국인 한국은 안중에도 없이 이런 망언을 공개석상에서 되풀이한 겁니다.

같은 날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일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고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긴밀히 의사소통해 나가겠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일본 총리와 외무상 발언을 종합하면 '한국과 관계 개선을 바란다, 그러나 '독도는 일본땅'이란 우리 입장은 변화가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라는 뜻이 읽힙니다.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은 한결같습니다. 일본은 지난 19일엔 일제 강점기 강제노동의 역사적 사실을 부인한 채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다시 신청했습니다. 2015년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 탄광 등 근대산업시설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때 조선인 강제 노역을 알리겠다고 했던 약속을 버젓이 어겨놓고 말이죠.

우리 정부 대응은 어땠을까요?

■ 수위 조절한 한국…강제동원 협상 '조심조심' 행보

정부는 23일 일본 외무상의 독도 영유권 망언에 대해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내고 "강력히 항의하며, 이를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구마가이 나오키 주한일본대사관 총괄공사를 불러 항의했습니다.

사도광산 세계유산 재신청에 대해선 20일 외교부 대변인 논평을 통해 "유감을 표명"하고 주한 일본 대사대리인 나미오카 다이스케 경제공사를 불러들여 항의했습니다. 그러나 항의의 '수위'는 조절했습니다. 같은 사안을 두고 지난해엔 '성명'을 내고 '강한 유감'을 표명했지만 올해는 '성명'보다 수위가 낮은 '논평'을 내고 '유감을 표명'하는 데 그쳤습니다.

강제동원 배상 협상 등 양국의 관계 개선 분위기를 고려한 조치로 풀이되는데, 우리 정부의 이런 '조심조심' 행보는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지난해엔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가 국민훈장 후보자로 추천됐다가 외교부 제동으로 수상이 무산됐고, 강제동원 문제를 논의하려던 민관토론회도 갑자기 취소시켰습니다. "일본 눈치보기가 절대 아니"라는 외교부 당국자의 거듭된 해명에도 협상을 앞두고 혹시나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까 '조심조심'했던 분위기가 뚜렷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3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한일관계가 너무 많이 퇴조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한일관계 정상화는 강력하게 추진하겠다"

지난해 9월 윤 대통령이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강조한 내용입니다. 경색된 한일 관계를 풀어보자는 이런 의지는 윤 대통령뿐만 아니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도 갖고 있습니다. 양국 정상의 교감 아래 일제 강제 동원 문제를 매듭짓고 일본은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풀어 관계를 정상화하자는 구상입니다.

■ '우리 기업 돈으로 배상'에 반발…찬물 끼얹은 일본

우리 정부는 전범 기업이 아닌 우리 기업의 돈으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배상하자는 안을 공개했습니다. 현재로선 이런 우리 정부의 안에 일본이 어느 정도 '성의있는 호응 조치'를 할 지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전범 기업에 면죄부를 주는 안을 철회하라"는 피해자, 시민단체의 반발이 거세게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은 '조심조심' 행보를 보이는 우리 정부와 달리 거침없이 역사 왜곡 입장을 내보이며 관계 정상화에 찬물을 끼얹은 셈입니다.

KBS가 실시한 새해 여론조사에서도 정부가 공개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안에 대해
피해자 의견 반영이 미흡해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60% 가까이 나올 정도로 우리 국민의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인데 말입니다. 일본은 '역사 왜곡'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한국과의 관계를 정말 '정상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연관 기사] [여론조사]④ “이상민 사퇴 48% vs 45%…강제동원 해법 미흡 59.6%”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584928

정부의 대일 외교 '속도전'을 비판해온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는 "대일 외교 전략이 잘 보이지 않는다"며 이렇게 비판했습니다. 이달 말 서울에서 한일 국장급 협의를 이어갈 우리 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지적으로 보입니다.

"(강제동원 문제를 풀어야 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다고) 그렇게 세팅해놓은 것도 일본이거든요. 그렇게 세팅한 것에 우리가 올라타는 것 자체가 일본이 만들어놓은 판 위에 올라가는 건데, 그것이 갖고 있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냐죠.

대일 외교의 전략이라고 하는 점이 잘 보이지 않는다. 간혹 나오는 걸 보게 되면 '어떻게 일본이 만족할 수 있는 답안지를 가져갈 것인가'라는 것에만 국한된, 그런 대일 외교인 것 같아서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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