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된 시인’ 오탁번의 소설 〈아버지와 치악산〉

입력 2023.02.15 (17:23) 수정 2023.02.15 (17:35)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가을이 깊어가던 2021년 11월의 어느 날.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애련리 198번지에서 시인, 아니 소설가 오탁번 선생을 만났습니다. 직접 차를 몰고 그곳에 미리 와 취재진을 반갑게 맞아주시더군요. 그때도 몸이 조금 불편해 보였습니다.

제천은 선생의 고향입니다. 시골 마을 분교에 다니다 일찌감치 대도시로 유학을 떠났고, 이후에는 줄곧 서울에서 공부하고 시와 소설을 썼죠. 그러다 2000년대 초, 폐교로 변한 모교를 사들여 문학이 숨 쉬는 공간으로 꾸몄습니다. 지금의 원서문학관입니다. 마당 한쪽에 작은 텃밭을 가꾸며 선생은 그곳에서 글 농사를 지었습니다. 마당에는 그리운 어머니의 흉상을 세웠죠. 선생에게 고향만큼 푸근한 공간은 없었을 겁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없었습니다. 세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어른이 되고 작가가 된 아들은 기억에 없는 아버지의 모습을 소설로 그려보기로 합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1979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아버지와 치악산>입니다. 아버지의 부재가 소설을 쓰게 했습니다.

"세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까 아버지가 존재하지 않는 거죠. 없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 아버지와의 대결같은 거, 또한 진정한 아버지와 아들인 내가 부자관계를 이뤄나가는 그런 과정을 한번 허구로 만들어 보는 게 좋겠다…"

"누구나 자기 아버지에 대한, 아버지가 없어도 아버지가 있었으면, 또 아버지가 없이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가난이랄까, 또 사회를 살아가면서 어려운 점, 그런 게 이제 한이 맺히는 게 있잖아요. 그렇게 상상 속에서 어떤 아버지상이 있어야 하겠다, 이런 거를 대입을 시켜나가지 않았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남들 다 부러워하는 군청 공무원. 하지만 어릴 때부터 줄곧 아버지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고향에서 존경받는 교육 공무원이었죠. 아들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아버지와의 화해를 마음속으로 기대합니다. 그런데 그 바람을 이루기도 전에 정년퇴임을 불과 한 달 앞둔 아버지가 불의의 화재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군청 산림계장으로 자연보호운동에 앞장설 때마다 치악산을 찾는 주인공. 하지만 날이 갈수록 등산객과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치악산은 어릴 때 보던 큰 산이 더는 아니었습니다. 어느새 훌쩍 늙어버린 모습이었죠. 치악산에서 주인공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던 거죠. 소설은 그렇게 끝내 아버지와 화해하지 못한 아들의 회한으로 끝을 맺습니다. 소설의 마지막 대목입니다.

나는 혼자 치악산으로 가서 아버지의 유해를 뿌렸다. 이제 치악산에는 다시 오지 않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아버지의 유해 대신에 이러한 예감을 안고 큰 산을 내려오면서 나는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오래된 분교에서 마주 앉아 소설에 관해, 아버지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이 문득 떠오릅니다. 남들처럼 결혼해서 자식 낳고 아버지가 됐지만, 자신에겐 평생 없었던 아버지의 존재. 어머니의 극진한 사랑과 보살핌 속에서 자라 좋은 대학을 나오고 작가의 꿈을 이룬 선생은 어느 날 아버지에 관해 뭔가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습니다.

오탁번 하면 대부분은 시인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선생의 문학적 이력은 출발부터 비범했습니다. 대학생 시절이던 196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철이와 아버지」가 당선됐고, 이듬해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순은이 빛나는 이 아침에」가 당선되며 시인으로 등단했습니다. 1969년에는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처형의 땅」이 당선되며 '신춘문예 3관왕'을 차지해 당시 큰 주목을 받았죠.


소설가 오탁번이 쓴 소설만 60편이 넘습니다. 물론 시 쓰기에 집중하면서 소설 창작은 오래 쉬었고, 대학에서도 주로 학생들에게 시를 가르쳤습니다. 선생이 강단에서 시를 가르치던 시절의 특별한 일화들은 당시에 캠퍼스에서 상당한 화제였습니다. 한 번은 매미를 그려보라는 시험 문제를 냈다죠. 가장 높은 성적을 받은 답안은 뭐였을까. 나무에 찍은 점 하나였다고 합니다.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걸 보여준, 가장 오탁번다운 일화가 아닌가 합니다.

오탁번의 소설 <아버지와 치악산>은 KBS와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으로 선정한 <우리 시대의 소설> 50편의 하나로 2021년 11월 14일 KBS 9시 뉴스에 방송됐습니다. 그것이 생전에 오탁번 선생이 작가로서 한 마지막 인터뷰였습니다. 이제는 고인이 된 선생의 모습을 다시 마주합니다. 그때 그 목소리가 다시 들리는 듯합니다. 부디 영면하시길….

▶뉴스 다시보기
아버지! 당신을 불러봅니다…오탁번 ‘아버지와 치악산’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324637

▶인터뷰 영상 다시보기
[인터뷰] ‘아버지와 치악산’ 오탁번 작가 “세 살 때 여읜 아버지, 상상 속에서 그려”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324668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별★이 된 시인’ 오탁번의 소설 〈아버지와 치악산〉
    • 입력 2023-02-15 17:23:39
    • 수정2023-02-15 17:35:45
    취재K

가을이 깊어가던 2021년 11월의 어느 날.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애련리 198번지에서 시인, 아니 소설가 오탁번 선생을 만났습니다. 직접 차를 몰고 그곳에 미리 와 취재진을 반갑게 맞아주시더군요. 그때도 몸이 조금 불편해 보였습니다.

제천은 선생의 고향입니다. 시골 마을 분교에 다니다 일찌감치 대도시로 유학을 떠났고, 이후에는 줄곧 서울에서 공부하고 시와 소설을 썼죠. 그러다 2000년대 초, 폐교로 변한 모교를 사들여 문학이 숨 쉬는 공간으로 꾸몄습니다. 지금의 원서문학관입니다. 마당 한쪽에 작은 텃밭을 가꾸며 선생은 그곳에서 글 농사를 지었습니다. 마당에는 그리운 어머니의 흉상을 세웠죠. 선생에게 고향만큼 푸근한 공간은 없었을 겁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없었습니다. 세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어른이 되고 작가가 된 아들은 기억에 없는 아버지의 모습을 소설로 그려보기로 합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1979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아버지와 치악산>입니다. 아버지의 부재가 소설을 쓰게 했습니다.

"세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까 아버지가 존재하지 않는 거죠. 없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 아버지와의 대결같은 거, 또한 진정한 아버지와 아들인 내가 부자관계를 이뤄나가는 그런 과정을 한번 허구로 만들어 보는 게 좋겠다…"

"누구나 자기 아버지에 대한, 아버지가 없어도 아버지가 있었으면, 또 아버지가 없이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가난이랄까, 또 사회를 살아가면서 어려운 점, 그런 게 이제 한이 맺히는 게 있잖아요. 그렇게 상상 속에서 어떤 아버지상이 있어야 하겠다, 이런 거를 대입을 시켜나가지 않았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남들 다 부러워하는 군청 공무원. 하지만 어릴 때부터 줄곧 아버지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고향에서 존경받는 교육 공무원이었죠. 아들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아버지와의 화해를 마음속으로 기대합니다. 그런데 그 바람을 이루기도 전에 정년퇴임을 불과 한 달 앞둔 아버지가 불의의 화재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군청 산림계장으로 자연보호운동에 앞장설 때마다 치악산을 찾는 주인공. 하지만 날이 갈수록 등산객과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치악산은 어릴 때 보던 큰 산이 더는 아니었습니다. 어느새 훌쩍 늙어버린 모습이었죠. 치악산에서 주인공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던 거죠. 소설은 그렇게 끝내 아버지와 화해하지 못한 아들의 회한으로 끝을 맺습니다. 소설의 마지막 대목입니다.

나는 혼자 치악산으로 가서 아버지의 유해를 뿌렸다. 이제 치악산에는 다시 오지 않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아버지의 유해 대신에 이러한 예감을 안고 큰 산을 내려오면서 나는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오래된 분교에서 마주 앉아 소설에 관해, 아버지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이 문득 떠오릅니다. 남들처럼 결혼해서 자식 낳고 아버지가 됐지만, 자신에겐 평생 없었던 아버지의 존재. 어머니의 극진한 사랑과 보살핌 속에서 자라 좋은 대학을 나오고 작가의 꿈을 이룬 선생은 어느 날 아버지에 관해 뭔가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습니다.

오탁번 하면 대부분은 시인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선생의 문학적 이력은 출발부터 비범했습니다. 대학생 시절이던 196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철이와 아버지」가 당선됐고, 이듬해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순은이 빛나는 이 아침에」가 당선되며 시인으로 등단했습니다. 1969년에는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처형의 땅」이 당선되며 '신춘문예 3관왕'을 차지해 당시 큰 주목을 받았죠.


소설가 오탁번이 쓴 소설만 60편이 넘습니다. 물론 시 쓰기에 집중하면서 소설 창작은 오래 쉬었고, 대학에서도 주로 학생들에게 시를 가르쳤습니다. 선생이 강단에서 시를 가르치던 시절의 특별한 일화들은 당시에 캠퍼스에서 상당한 화제였습니다. 한 번은 매미를 그려보라는 시험 문제를 냈다죠. 가장 높은 성적을 받은 답안은 뭐였을까. 나무에 찍은 점 하나였다고 합니다.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걸 보여준, 가장 오탁번다운 일화가 아닌가 합니다.

오탁번의 소설 <아버지와 치악산>은 KBS와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으로 선정한 <우리 시대의 소설> 50편의 하나로 2021년 11월 14일 KBS 9시 뉴스에 방송됐습니다. 그것이 생전에 오탁번 선생이 작가로서 한 마지막 인터뷰였습니다. 이제는 고인이 된 선생의 모습을 다시 마주합니다. 그때 그 목소리가 다시 들리는 듯합니다. 부디 영면하시길….

▶뉴스 다시보기
아버지! 당신을 불러봅니다…오탁번 ‘아버지와 치악산’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324637

▶인터뷰 영상 다시보기
[인터뷰] ‘아버지와 치악산’ 오탁번 작가 “세 살 때 여읜 아버지, 상상 속에서 그려”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324668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