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아버지와 치악산’ 오탁번 작가 “세 살 때 여읜 아버지, 상상 속에서 그려”

입력 2021.11.14 (21:36) 수정 2021.11.14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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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탁번/소설가·시인

Q. 어떻게 이 소설을 쓰게 됐나?

<아버지와 치악산>이라는 소설은 그러니까 제 상상 속에서 완전히 그야말로 창조한 겁니다. 있는 데 근거한 것이 아니고. 다만 저는 여기가 이제 백운면이 고향인데 여기엔 천등산이 있어요. '울고 넘는 박달재'에 나오는 천등산이 바로 저기에 있고, 여기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중고등학교를 강원도 원주에서 다녔습니다, 6년을. 그때의 원주 치악산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제 삶에는 산이 두 개가 있는데 천등산과 치악산입니다. 그러니까 그때 그 치악산은 어릴 때 원주중학교 다니고 그럴때 보면 산이 엄청 크고 무섭고 너무 크니까 가끔 소풍을 이제 그리 갈 때가 있었는데, 산이 내가 백운면 고향에서 오르락내리던 산보다 크고 그야말로 국립공원이 나중에 됐으니까요. 산의, 큰 산의 장엄함 같은 거를 기가 죽었다 그랬나 뭐 이런 게 있을까. 그러니까 제 소설적인 상상력 속에는 치악산이, 치악산이 큰 산의 얼굴처럼 늘 마음속에 있었을 겁니다.

Q.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셨는데?

누구나 자기 아버지에 대한, 아버지가 없어도 아버지가 있었으면 또 아버지가 없이 이 청소년기를 보내, 소년기를 보내면서 그 어떤 가난이랄까 또 사회를 살아가면서 그 어려운 점 그런 거 이제 한이 맺히는 게 있잖아요. 그렇게 상상 속에서 어떤 아버지상이 있어야 되겠다 이런 거를 아마 대입을 시켜나가지 않았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Q. 주인공이 아버지에게 바란 것은?

내 아버지가 되길 바란 겁니다. 그러니까 아들은 또 어느 세대나 아버지는 내 아들로 사랑했는데, 말은 안 해도 사랑을 하는데, 그러면 사랑을 안 하는 걸로 오해를 해요. 오해가 아니고 사랑을 안 하는 걸로 이해를 합니다. 그러니까 이제 세대가 바뀌었으니까 아들이니까 아버지가 내 아들 자랑스럽다, 니가 최고다 이런 말을 해주기를 바라는 거죠. 그거는 어느 아들이고 그 아버지한테 다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겁니다, 아마도. 그런데 저는 없는 아버지, 아버지가 부재니까 정신 사적으로만 어머니를 통해서 들은 얘기, 집안에 또 전해오는 얘기만 들었지 실제로 아버지를 본 적이 없고 봤지만 기억을 못하니까. 그러니까 아마 없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갈구하는 이게 저였다면, 작중 인물인 산림계장인가 누구도 아버지가 있는데도 없는 아버지 같으니까 존재하는 아버지를 계속 원하지 않았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Q. 42년 전 소설을 다시 읽는 기분은?

그때 그 상황이 아주 자세히 다 생각나는 건 아니지만, 내가 그때 그 나이에 이런 소설을 쓰느라고 굉장히 아주 밤샘을 하고 코피 흘러가면서 고생을 했구나. 근데 어떻게 이런 소설을 써 냈을까. 그러니까 그런 소설, 이런 이야기 재료는 어느 분들 어느 작가도 다 그렇겠지만, 우리 문학사는 물론이고 세계문학사에 딱 하나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런 소설, 그런 얘기, 그런 공간을 만든 게. 그런데 그때 한창 70년대는 그때 이제 학생들은 데모도 많이 하고 또 강의하고, 이런 어떤 아주 복잡할 때입니다. 그런데도 그 어떤 자기가 느끼는 이 세상을 바라보는 또 내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는 것은 글로 쓸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이게 스스로 가치 있는 체험이다, 간접적이든 아니든 간에 그걸 기록으로 남긴다는 게 스스로 이제 상당히 목숨을 바칠 만한 그런 가치가 있는 겁니다.

Q. 시도 쓰시고, 소설도 쓰셨는데?

어떤 사물을 이렇게 보면 어떤 여행을 한다든가 또 아무튼 모든 사람들 얘기를 듣든가 하면 이거는 시적인 거다, 시로 써야 될 어떤 게 있다 이런 생각이 들고, 어떤 거는 아, 이거는 소설로 써야 된다는 게 전환이 돼요. 그러니까 그것도 그러나 제 시에는 서사적인 이야기가 중간중간 있는 게 꽤 있어요. 이렇게 그냥 뭐 괴롭다 아름답다 그냥 이런 게 아니고, 뭐 윗동네에 사는 주근깨가 많은 순이가 보고 싶다, 시에서도 그렇게 구체성을 주고 그런 게 있고. 또 소설에서는 이렇게 시적인 게 여기 <아버지와 치악산>도 보면 분교 앞에서 여교사하고 이야기 나누고 그럴 때 밤 풍경이나 이런 것 중에 보면 시적인 표현 같은 게 이렇게 눈에 띌 겁니다.

그날 오후 나는 혼자 치악산으로 가서 아버지의 유해를 뿌렸다. 나는 울지 않았다. 이제 치악산에는 다시 오지 않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아버지의 유해 대신에 이러한 예감을 안고 큰 산을 내려오면서 나는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Q. 작가님께 '글쓰기'란?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고, 내가 존재하는 이유고 그겁니다. 그러니까 글 쓰는 일이 없으면 나라는 인간의 존재 가치가 없다, 그러니까 지금도 좀 힘에 부치더라도, 또 하기 싫고 글을 쓰는 게 재미있다든가 이런 게 아니고 소설에 비해서 시는 좀 쉬울지 몰라도 소설이나 또, 저는 또 학술적인 논문도 쓰고 평론도 쓰고 뭐 이런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게 약간은 그냥 노동이다 이랬는데. 간단히 그냥 노동의 차원이 아니고 하늘이 내린 형벌, 그럼 이제 모든 비극적인 것과 희극적인 것 뭐 희비 쌍곡선 이런 말도 있지만, 기쁨과 슬픔, 절망과 희망, 또 형벌과 저주와 축복 그게 같이 가는 그런 걸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운명을 타고났고, 그걸 받아들이고 받아들이는 행위가 문학하는 글 쓰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편집: 이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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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1-14 21:36:50
    • 수정2021-11-14 21:5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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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탁번/소설가·시인

Q. 어떻게 이 소설을 쓰게 됐나?

<아버지와 치악산>이라는 소설은 그러니까 제 상상 속에서 완전히 그야말로 창조한 겁니다. 있는 데 근거한 것이 아니고. 다만 저는 여기가 이제 백운면이 고향인데 여기엔 천등산이 있어요. '울고 넘는 박달재'에 나오는 천등산이 바로 저기에 있고, 여기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중고등학교를 강원도 원주에서 다녔습니다, 6년을. 그때의 원주 치악산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제 삶에는 산이 두 개가 있는데 천등산과 치악산입니다. 그러니까 그때 그 치악산은 어릴 때 원주중학교 다니고 그럴때 보면 산이 엄청 크고 무섭고 너무 크니까 가끔 소풍을 이제 그리 갈 때가 있었는데, 산이 내가 백운면 고향에서 오르락내리던 산보다 크고 그야말로 국립공원이 나중에 됐으니까요. 산의, 큰 산의 장엄함 같은 거를 기가 죽었다 그랬나 뭐 이런 게 있을까. 그러니까 제 소설적인 상상력 속에는 치악산이, 치악산이 큰 산의 얼굴처럼 늘 마음속에 있었을 겁니다.

Q.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셨는데?

누구나 자기 아버지에 대한, 아버지가 없어도 아버지가 있었으면 또 아버지가 없이 이 청소년기를 보내, 소년기를 보내면서 그 어떤 가난이랄까 또 사회를 살아가면서 그 어려운 점 그런 거 이제 한이 맺히는 게 있잖아요. 그렇게 상상 속에서 어떤 아버지상이 있어야 되겠다 이런 거를 아마 대입을 시켜나가지 않았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Q. 주인공이 아버지에게 바란 것은?

내 아버지가 되길 바란 겁니다. 그러니까 아들은 또 어느 세대나 아버지는 내 아들로 사랑했는데, 말은 안 해도 사랑을 하는데, 그러면 사랑을 안 하는 걸로 오해를 해요. 오해가 아니고 사랑을 안 하는 걸로 이해를 합니다. 그러니까 이제 세대가 바뀌었으니까 아들이니까 아버지가 내 아들 자랑스럽다, 니가 최고다 이런 말을 해주기를 바라는 거죠. 그거는 어느 아들이고 그 아버지한테 다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겁니다, 아마도. 그런데 저는 없는 아버지, 아버지가 부재니까 정신 사적으로만 어머니를 통해서 들은 얘기, 집안에 또 전해오는 얘기만 들었지 실제로 아버지를 본 적이 없고 봤지만 기억을 못하니까. 그러니까 아마 없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갈구하는 이게 저였다면, 작중 인물인 산림계장인가 누구도 아버지가 있는데도 없는 아버지 같으니까 존재하는 아버지를 계속 원하지 않았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Q. 42년 전 소설을 다시 읽는 기분은?

그때 그 상황이 아주 자세히 다 생각나는 건 아니지만, 내가 그때 그 나이에 이런 소설을 쓰느라고 굉장히 아주 밤샘을 하고 코피 흘러가면서 고생을 했구나. 근데 어떻게 이런 소설을 써 냈을까. 그러니까 그런 소설, 이런 이야기 재료는 어느 분들 어느 작가도 다 그렇겠지만, 우리 문학사는 물론이고 세계문학사에 딱 하나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런 소설, 그런 얘기, 그런 공간을 만든 게. 그런데 그때 한창 70년대는 그때 이제 학생들은 데모도 많이 하고 또 강의하고, 이런 어떤 아주 복잡할 때입니다. 그런데도 그 어떤 자기가 느끼는 이 세상을 바라보는 또 내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는 것은 글로 쓸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이게 스스로 가치 있는 체험이다, 간접적이든 아니든 간에 그걸 기록으로 남긴다는 게 스스로 이제 상당히 목숨을 바칠 만한 그런 가치가 있는 겁니다.

Q. 시도 쓰시고, 소설도 쓰셨는데?

어떤 사물을 이렇게 보면 어떤 여행을 한다든가 또 아무튼 모든 사람들 얘기를 듣든가 하면 이거는 시적인 거다, 시로 써야 될 어떤 게 있다 이런 생각이 들고, 어떤 거는 아, 이거는 소설로 써야 된다는 게 전환이 돼요. 그러니까 그것도 그러나 제 시에는 서사적인 이야기가 중간중간 있는 게 꽤 있어요. 이렇게 그냥 뭐 괴롭다 아름답다 그냥 이런 게 아니고, 뭐 윗동네에 사는 주근깨가 많은 순이가 보고 싶다, 시에서도 그렇게 구체성을 주고 그런 게 있고. 또 소설에서는 이렇게 시적인 게 여기 <아버지와 치악산>도 보면 분교 앞에서 여교사하고 이야기 나누고 그럴 때 밤 풍경이나 이런 것 중에 보면 시적인 표현 같은 게 이렇게 눈에 띌 겁니다.

그날 오후 나는 혼자 치악산으로 가서 아버지의 유해를 뿌렸다. 나는 울지 않았다. 이제 치악산에는 다시 오지 않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아버지의 유해 대신에 이러한 예감을 안고 큰 산을 내려오면서 나는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Q. 작가님께 '글쓰기'란?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고, 내가 존재하는 이유고 그겁니다. 그러니까 글 쓰는 일이 없으면 나라는 인간의 존재 가치가 없다, 그러니까 지금도 좀 힘에 부치더라도, 또 하기 싫고 글을 쓰는 게 재미있다든가 이런 게 아니고 소설에 비해서 시는 좀 쉬울지 몰라도 소설이나 또, 저는 또 학술적인 논문도 쓰고 평론도 쓰고 뭐 이런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게 약간은 그냥 노동이다 이랬는데. 간단히 그냥 노동의 차원이 아니고 하늘이 내린 형벌, 그럼 이제 모든 비극적인 것과 희극적인 것 뭐 희비 쌍곡선 이런 말도 있지만, 기쁨과 슬픔, 절망과 희망, 또 형벌과 저주와 축복 그게 같이 가는 그런 걸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운명을 타고났고, 그걸 받아들이고 받아들이는 행위가 문학하는 글 쓰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편집: 이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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