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역·욕설’ 못 믿을 난민심사…인정돼도 난관

입력 2023.02.20 (21:37) 수정 2023.02.20 (22:06)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징집을 피해 한국에 온 러시아 청년들 과연 난민이 될 수 있는지 심사 받는 자격을 얻기 위해 낯선 나라에서 복잡한 소송을 거쳐야 했습니다.

국내에서 '난민법'이 제정된 지 11년이 지났지만 난민 지위를 얻는 건 아직도 이렇게 어렵습니다.

그 심사 과정에서도 엉터리 통역 등으로 신청자들이 억울하게 대거 탈락하기도 합니다.

2014년에서 2018년 사이, 아랍권에서 온 난민 면접자들이 겪은 일입니다.

정부가 뒤늦게 잘못을 시인하고 55명을 '조작 피해자'로 규정하긴 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난민으로 인정 받은 것도 아닙니다.

바늘 구멍 같은 난민의 길 그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김성수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2014년 말 우리나라에 와서 난민 신청을 한 이집트인 A 씨.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가 종교를 이유로 아버지를 살해하자, 불가피하게 고향을 떠났습니다.

[A 씨/이집트인 난민 신청자/음성변조 : "(이집트에) 무슬림 사람 너무 많아요. 기독교 사람은 얼마 없어요. 아빠 죽었고 집이 헐렸어요. 엄마하고 동생하고 도망갔어요."]

그런데 '난민 면접' 당시 배정된 아랍어 통역사는 이런 중요한 신청 사유를 누락했고, '아버지'의 사망을 다른 가족의 사망으로 바꾸는 등 오역까지 범했습니다.

결국 "고국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을 근거가 부족하다"며, 난민 인정은 거부됐습니다.

5년이 지나서야, 한국 정부는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 심사 기회를 줬는데, 엉터리였던 1차 조서 내용이 꼬리표처럼 또 따라 붙었습니다.

[A 씨/이집트인 난민 신청자/음성변조 : "'아빠 죽었어요. 엄마가 (사망한 게) 아니에요.' 그럼 통역 말이랑 안 맞아요. (그러니까) 무조건 법원 들어가서 말해도 (내 말을) 안 믿어요."]

이 혼란 속에서 A 씨는 끝내 난민 인정을 못 받았습니다.

역시 종교적인 이유로 11년 전 입국한 예멘인 B 씨.

5년을 기다린 끝에야 첫 난민 심사를 받을 수 있었는데, 면접은 단 30분 만에 끝났고, 그 과정은 폭압적이었다고 회고합니다.

[B 씨/예멘인 난민 신청자/음성변조 : "면접관은 나에게 저주를 하면서 안 좋은 말을 너무 많이 했어요. 그는 제가 '예' '아니오'라고만 답하기를 원했습니다."]

그 날의 이 면접은 관련 규정이 없단 이유로, 녹화조차 되지 않았고 '의무 녹화' 규정이 생긴 뒤에 진행된 면접 영상도 당사자에게 확인할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B 씨/예멘인 난민 신청자/음성변조 : "인터뷰 영상은 제게 굉장히 중요해요. (그런데) 인터뷰 영상을 잃어버렸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류로 인해 없어졌다고 하는데 비상식적입니다."]

[김연주/난민인권센터 변호사 : "한국의 난민 신청 시스템 자체를 믿고 내 심사가 진행된다라고 신뢰하기 어려운 구조이고. (난민 신청자들은) 어떤 이유로 내가 거절됐는지도 서류만 보고 알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유례없는 '난민 면접 조작' 문제가 불거지면서, 법무부가 난민 불인정 결정을 취소한 55명 가운데, 현재까지 난민 자격을 얻은 건 단 7명뿐입니다.

나머지 대다수는 뚜렷한 이유도 모른 채, 수 년째 '신청자'로만 남아 있습니다.

KBS 뉴스 김성숩니다.

[앵커]

그나마 이런 난민 심사 기회조차도 앞으로 더 줄어들지 모릅니다.

법무부가 심사 절차를 더 까다롭게 하는 내용의 난민법 개정안을 추진중인데요,

어려운 심사를 통과해 난민으로 인정된다해도 또 다른 장애물들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최혜림 기자가 이어서 보도합니다.

[리포트]

이집트에서 인권 운동을 하다, 2016년 우리나라로 넘어온 무삽 씨.

난민 면접 당시 "돈을 벌려고 난민 신청을 했다" "고국에 못 돌아갈 이유가 없다" 등 하지도 않은 말들이 조서에 기록돼, 심사에서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부당 심사였단 사실이 드러나 재심사 끝에 '난민'으로 인정됐지만, 일상은, 여전히 불안정하기만 합니다.

난민 비자의 유효 기간은 최대 3년.

처음 비자를 발급받을 때만 해도, 이 기간을 꽉 채웠지만, 그 다음부턴, 1~2년짜리로 들쭉날쭉했습니다.

같은 조건인 부인과도 유효 기간이 달랐는데, 기준과 원칙이 뭔지조차 알 길이 없었습니다.

[다위시 무삽/난민 인정자 : "왜 나는 2년이고 부인은 1년이냐고 물었어요. 그러자 공무원은 부인이 1년이라고 적힌 부분을 삭제하고 2년으로 고쳤습니다. 기준이 없었습니다."]

그나마 무삽 씨가 가졌던 '난민 심사' 기회도 앞으로는 더 줄어들 태세입니다.

지금까지는, 탈락해도 다시 신청하면 재심사를 받을 수 있었지만, 법무부가 추진 중인 난민법 개정안에 따르면, 탈락자들은 별도의 적격심사를 또 거쳐야, 난민 재심사가 가능합니다.

가뜩이나 '난민 인정 비율' 1%대로 세계 최저 수준인 우리나라에서, 심사마저도, 사실상 '두 번' 받아야 하는 셈입니다.

[권영실/재단법인 동천 변호사 : "(난민) 심사 결과에 수긍을 할 수 없는 신청자들이 존재하고 있고 재심사를 받지 못하게 막아버리겠다라는 것은 좀 우려가 되는 부분입니다."]

이 관문을 통과해도 장애물은 또 있습니다.

자녀들의 국적 문제입니다.

무삽 씨 부부는 난민으로 인정된 '이후'에 한국에서 두 딸을 낳았지만 아직도 국적을 부여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외국인 자녀는 부모의 '국적국' 재외공관에서 출생신고를 하도록 돼 있는데, 이집트 당국의 위협을 피해 온 무삽 씨 가족에게, 이집트 대사관을 찾아가라는 건, 도저히 실행이 불가능한 일입니다.

두 딸은 그렇게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는, '무국적자'로 방치돼 있습니다.

[다위시 무삽/난민 인정자 : "딸은 스스로 한국인이라 생각해요. 하지만 딸은 한국에 속하지 못하고, 한국 여권이 없어 다른 나라로 못 갑니다. 우리는 한국에 계속 있을 거예요."]

KBS 뉴스 최혜림입니다.

촬영기자:허수곤 송혜성/영상편집:이현모 최찬총/그래픽:노경일 서수민 김지혜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오역·욕설’ 못 믿을 난민심사…인정돼도 난관
    • 입력 2023-02-20 21:37:54
    • 수정2023-02-20 22:06:47
    뉴스 9
[앵커]

징집을 피해 한국에 온 러시아 청년들 과연 난민이 될 수 있는지 심사 받는 자격을 얻기 위해 낯선 나라에서 복잡한 소송을 거쳐야 했습니다.

국내에서 '난민법'이 제정된 지 11년이 지났지만 난민 지위를 얻는 건 아직도 이렇게 어렵습니다.

그 심사 과정에서도 엉터리 통역 등으로 신청자들이 억울하게 대거 탈락하기도 합니다.

2014년에서 2018년 사이, 아랍권에서 온 난민 면접자들이 겪은 일입니다.

정부가 뒤늦게 잘못을 시인하고 55명을 '조작 피해자'로 규정하긴 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난민으로 인정 받은 것도 아닙니다.

바늘 구멍 같은 난민의 길 그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김성수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2014년 말 우리나라에 와서 난민 신청을 한 이집트인 A 씨.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가 종교를 이유로 아버지를 살해하자, 불가피하게 고향을 떠났습니다.

[A 씨/이집트인 난민 신청자/음성변조 : "(이집트에) 무슬림 사람 너무 많아요. 기독교 사람은 얼마 없어요. 아빠 죽었고 집이 헐렸어요. 엄마하고 동생하고 도망갔어요."]

그런데 '난민 면접' 당시 배정된 아랍어 통역사는 이런 중요한 신청 사유를 누락했고, '아버지'의 사망을 다른 가족의 사망으로 바꾸는 등 오역까지 범했습니다.

결국 "고국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을 근거가 부족하다"며, 난민 인정은 거부됐습니다.

5년이 지나서야, 한국 정부는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 심사 기회를 줬는데, 엉터리였던 1차 조서 내용이 꼬리표처럼 또 따라 붙었습니다.

[A 씨/이집트인 난민 신청자/음성변조 : "'아빠 죽었어요. 엄마가 (사망한 게) 아니에요.' 그럼 통역 말이랑 안 맞아요. (그러니까) 무조건 법원 들어가서 말해도 (내 말을) 안 믿어요."]

이 혼란 속에서 A 씨는 끝내 난민 인정을 못 받았습니다.

역시 종교적인 이유로 11년 전 입국한 예멘인 B 씨.

5년을 기다린 끝에야 첫 난민 심사를 받을 수 있었는데, 면접은 단 30분 만에 끝났고, 그 과정은 폭압적이었다고 회고합니다.

[B 씨/예멘인 난민 신청자/음성변조 : "면접관은 나에게 저주를 하면서 안 좋은 말을 너무 많이 했어요. 그는 제가 '예' '아니오'라고만 답하기를 원했습니다."]

그 날의 이 면접은 관련 규정이 없단 이유로, 녹화조차 되지 않았고 '의무 녹화' 규정이 생긴 뒤에 진행된 면접 영상도 당사자에게 확인할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B 씨/예멘인 난민 신청자/음성변조 : "인터뷰 영상은 제게 굉장히 중요해요. (그런데) 인터뷰 영상을 잃어버렸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류로 인해 없어졌다고 하는데 비상식적입니다."]

[김연주/난민인권센터 변호사 : "한국의 난민 신청 시스템 자체를 믿고 내 심사가 진행된다라고 신뢰하기 어려운 구조이고. (난민 신청자들은) 어떤 이유로 내가 거절됐는지도 서류만 보고 알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유례없는 '난민 면접 조작' 문제가 불거지면서, 법무부가 난민 불인정 결정을 취소한 55명 가운데, 현재까지 난민 자격을 얻은 건 단 7명뿐입니다.

나머지 대다수는 뚜렷한 이유도 모른 채, 수 년째 '신청자'로만 남아 있습니다.

KBS 뉴스 김성숩니다.

[앵커]

그나마 이런 난민 심사 기회조차도 앞으로 더 줄어들지 모릅니다.

법무부가 심사 절차를 더 까다롭게 하는 내용의 난민법 개정안을 추진중인데요,

어려운 심사를 통과해 난민으로 인정된다해도 또 다른 장애물들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최혜림 기자가 이어서 보도합니다.

[리포트]

이집트에서 인권 운동을 하다, 2016년 우리나라로 넘어온 무삽 씨.

난민 면접 당시 "돈을 벌려고 난민 신청을 했다" "고국에 못 돌아갈 이유가 없다" 등 하지도 않은 말들이 조서에 기록돼, 심사에서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부당 심사였단 사실이 드러나 재심사 끝에 '난민'으로 인정됐지만, 일상은, 여전히 불안정하기만 합니다.

난민 비자의 유효 기간은 최대 3년.

처음 비자를 발급받을 때만 해도, 이 기간을 꽉 채웠지만, 그 다음부턴, 1~2년짜리로 들쭉날쭉했습니다.

같은 조건인 부인과도 유효 기간이 달랐는데, 기준과 원칙이 뭔지조차 알 길이 없었습니다.

[다위시 무삽/난민 인정자 : "왜 나는 2년이고 부인은 1년이냐고 물었어요. 그러자 공무원은 부인이 1년이라고 적힌 부분을 삭제하고 2년으로 고쳤습니다. 기준이 없었습니다."]

그나마 무삽 씨가 가졌던 '난민 심사' 기회도 앞으로는 더 줄어들 태세입니다.

지금까지는, 탈락해도 다시 신청하면 재심사를 받을 수 있었지만, 법무부가 추진 중인 난민법 개정안에 따르면, 탈락자들은 별도의 적격심사를 또 거쳐야, 난민 재심사가 가능합니다.

가뜩이나 '난민 인정 비율' 1%대로 세계 최저 수준인 우리나라에서, 심사마저도, 사실상 '두 번' 받아야 하는 셈입니다.

[권영실/재단법인 동천 변호사 : "(난민) 심사 결과에 수긍을 할 수 없는 신청자들이 존재하고 있고 재심사를 받지 못하게 막아버리겠다라는 것은 좀 우려가 되는 부분입니다."]

이 관문을 통과해도 장애물은 또 있습니다.

자녀들의 국적 문제입니다.

무삽 씨 부부는 난민으로 인정된 '이후'에 한국에서 두 딸을 낳았지만 아직도 국적을 부여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외국인 자녀는 부모의 '국적국' 재외공관에서 출생신고를 하도록 돼 있는데, 이집트 당국의 위협을 피해 온 무삽 씨 가족에게, 이집트 대사관을 찾아가라는 건, 도저히 실행이 불가능한 일입니다.

두 딸은 그렇게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는, '무국적자'로 방치돼 있습니다.

[다위시 무삽/난민 인정자 : "딸은 스스로 한국인이라 생각해요. 하지만 딸은 한국에 속하지 못하고, 한국 여권이 없어 다른 나라로 못 갑니다. 우리는 한국에 계속 있을 거예요."]

KBS 뉴스 최혜림입니다.

촬영기자:허수곤 송혜성/영상편집:이현모 최찬총/그래픽:노경일 서수민 김지혜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