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은 변해도 ‘알박기’는 그대로?…‘세계 톱3’ 기업의 민낯

입력 2023.03.03 (12:46) 수정 2023.03.03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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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다른 집회를 '막기 위한' 목적의 집회, 이른바 '알박기 집회'라고 합니다.

과거엔 흔한 일이었지만, 집회시위법이 개정되고 법원 판례도 쌓이면서 최근엔 거의 사라졌는데요.

'아직도' 여전한 현장이 있습니다.

10년 넘게 같은 문제가 되풀이되고 있는 곳, 국내 굴지의, 아니 이제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자리잡은, 현대차 얘기입니다.

황현규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젊은 남성들이 든 팻말.

'새로운 노사 문화, 글로벌 최고 기업' 등, 시위라기보다는 캠페인 문구에 가깝습니다.

집회 명칭은 '기업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건전한 집회문화 정착 촉구대회'.

이 '평화로운' 제목만큼이나 집회는 아무 구호도 없이 조용하기만 했습니다.

["(노사관계 관련해서 원래 관심이 있으셔서 이 집회 참여하시는 거에요?) ..."]

'근무' 교대를 하듯 사람이 바뀌었고, 인근 집회를 촬영해 어딘가로 보고하는 일까지도, 일종의 '근무'에 가까웠습니다.

["(사진도 찍고 이렇게 하시던데, 따로 찍는 이유가 있으실까요?) ..."]

이 독특한 집회의 주최자는 '현대자동차'.

본사 반경 500미터를 집회 장소로 신고했습니다.

다른 집회들은 멀리 떨어져서 진행될 수밖에 없습니다.

[박미희/현대차 본사 앞 1인 시위자 : "모여서 잠시 머물 수 있는 장소라든지, 저희들이 원하는 어떤 피켓을 세운다든지 이런 걸 할 수가 없어서..."]

인권위는 이것이 '집회 방해'에 해당한다며 다른 집회를 보장하라고 최근 경찰에 권고했습니다.

한 노조의 집회 신고에 동행해 봤습니다.

[경찰 관계자/음성변조 : "집회할 때 이렇게 1자로 서서 이렇게 하거든요."]

집회시위법 개정으로 '중복 집회'는 가능해졌지만, 먼저 신고한 현대차 측과 장소를 조정해야 한다고 안내합니다.

[경찰 관계자/음성변조 : "집회단체가 여러 군데잖아요. 장소 분할을 담당 정보관이 해주겠죠."]

그러나 '장소 분할'은 없었고, 결국은 현대차 차지였습니다.

직원을 동원했던 2018년, 용역까지 고용한 2019년.

현대차의 '알박기 식' 집회는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본사 인근의 10년 치 집회신고를 분석해 봤더니, 총 5,892건 중 현대차가 신고한 게 5,130건, 87%나 됐습니다.

매일 1.4건꼴이고, 평균 30일 전에 미리 신고했습니다.

'미개최율'은 80~90%대에 이르러, '열지도 않을' 집회를 신고만 했던 게 대부분이었습니다.

현대차는 매일 실제로 집회를 여는데 경찰이 파악을 못 한 거라고 해명했습니다.

또 본사 인근 집회시위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성숙한 집회 문화 정착을 요구하는 합법적인 집회'라고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그 일에는 '사람'만 동원된 게 아니었습니다.

현대자동차 본사 정문 옆에 있는 대형 화분들입니다.

보시는 것처럼 제 몸보다 큰 대형 화분들이 이렇게 인도 절반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상당수가 현대차에서 갖다 놓은 것들.

[경찰 관계자/음성변조 : "인도가 좁고 또 저기 화단이라든지 그런 게 다 설치가 되어있잖아요. 그래서 (집회 가능) 인원이 많이 와봤자, 50명?"]

현대차는 2013년 '보도입양제'라는 제도를 통해, 본사 주변 '인도' 관리권을 지자체로부터 넘겨받았습니다.

인권위는 이 화분들의 '집회 방해' 가능성을 지난해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그 밖에도 최근 5년 동안에만 두 차례 인권위의 문제 제기가 있었고, 대법원에서도 현대차 '유령 집회'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판결이 나온 바 있습니다.

KBS 뉴스 황현규입니다.

촬영기자:유용규 안민식/영상편집:김종선/그래픽:이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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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23-03-03 12:5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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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다른 집회를 '막기 위한' 목적의 집회, 이른바 '알박기 집회'라고 합니다.

과거엔 흔한 일이었지만, 집회시위법이 개정되고 법원 판례도 쌓이면서 최근엔 거의 사라졌는데요.

'아직도' 여전한 현장이 있습니다.

10년 넘게 같은 문제가 되풀이되고 있는 곳, 국내 굴지의, 아니 이제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자리잡은, 현대차 얘기입니다.

황현규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젊은 남성들이 든 팻말.

'새로운 노사 문화, 글로벌 최고 기업' 등, 시위라기보다는 캠페인 문구에 가깝습니다.

집회 명칭은 '기업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건전한 집회문화 정착 촉구대회'.

이 '평화로운' 제목만큼이나 집회는 아무 구호도 없이 조용하기만 했습니다.

["(노사관계 관련해서 원래 관심이 있으셔서 이 집회 참여하시는 거에요?) ..."]

'근무' 교대를 하듯 사람이 바뀌었고, 인근 집회를 촬영해 어딘가로 보고하는 일까지도, 일종의 '근무'에 가까웠습니다.

["(사진도 찍고 이렇게 하시던데, 따로 찍는 이유가 있으실까요?) ..."]

이 독특한 집회의 주최자는 '현대자동차'.

본사 반경 500미터를 집회 장소로 신고했습니다.

다른 집회들은 멀리 떨어져서 진행될 수밖에 없습니다.

[박미희/현대차 본사 앞 1인 시위자 : "모여서 잠시 머물 수 있는 장소라든지, 저희들이 원하는 어떤 피켓을 세운다든지 이런 걸 할 수가 없어서..."]

인권위는 이것이 '집회 방해'에 해당한다며 다른 집회를 보장하라고 최근 경찰에 권고했습니다.

한 노조의 집회 신고에 동행해 봤습니다.

[경찰 관계자/음성변조 : "집회할 때 이렇게 1자로 서서 이렇게 하거든요."]

집회시위법 개정으로 '중복 집회'는 가능해졌지만, 먼저 신고한 현대차 측과 장소를 조정해야 한다고 안내합니다.

[경찰 관계자/음성변조 : "집회단체가 여러 군데잖아요. 장소 분할을 담당 정보관이 해주겠죠."]

그러나 '장소 분할'은 없었고, 결국은 현대차 차지였습니다.

직원을 동원했던 2018년, 용역까지 고용한 2019년.

현대차의 '알박기 식' 집회는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본사 인근의 10년 치 집회신고를 분석해 봤더니, 총 5,892건 중 현대차가 신고한 게 5,130건, 87%나 됐습니다.

매일 1.4건꼴이고, 평균 30일 전에 미리 신고했습니다.

'미개최율'은 80~90%대에 이르러, '열지도 않을' 집회를 신고만 했던 게 대부분이었습니다.

현대차는 매일 실제로 집회를 여는데 경찰이 파악을 못 한 거라고 해명했습니다.

또 본사 인근 집회시위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성숙한 집회 문화 정착을 요구하는 합법적인 집회'라고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그 일에는 '사람'만 동원된 게 아니었습니다.

현대자동차 본사 정문 옆에 있는 대형 화분들입니다.

보시는 것처럼 제 몸보다 큰 대형 화분들이 이렇게 인도 절반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상당수가 현대차에서 갖다 놓은 것들.

[경찰 관계자/음성변조 : "인도가 좁고 또 저기 화단이라든지 그런 게 다 설치가 되어있잖아요. 그래서 (집회 가능) 인원이 많이 와봤자, 50명?"]

현대차는 2013년 '보도입양제'라는 제도를 통해, 본사 주변 '인도' 관리권을 지자체로부터 넘겨받았습니다.

인권위는 이 화분들의 '집회 방해' 가능성을 지난해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그 밖에도 최근 5년 동안에만 두 차례 인권위의 문제 제기가 있었고, 대법원에서도 현대차 '유령 집회'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판결이 나온 바 있습니다.

KBS 뉴스 황현규입니다.

촬영기자:유용규 안민식/영상편집:김종선/그래픽:이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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