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안전판’ 전입신고·확정일자, 모두 뚫렸다

입력 2023.03.08 (21:44) 수정 2023.03.08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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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한국의 '전세'는 다른 나라에선 마땅히 번역할 단어가 없어서 발음 그대로 그냥 '전세'라고 씁니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주거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3백만 가구 넘게, 우리 국민 15% 정도가 전셋집에 살고 있습니다.

'임대차'라고는 하지만 워낙 큰 돈이 한꺼번에 들어가기 때문에 세입자 입장에서는 '보증금' 안 떼이는 게 절박한 과제입니다.

'전입신고'나 '확정일자' 같은 제도가 있지만 세입자들이 믿었던 이 안전판조차 사기꾼들에게 뚫린 것으로 KBS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문서를 조작해서 사는 사람도 모르게 주소지를 옮겨 근저당을 설정한다거나, 확정일자 서류까지 위조하는 수법으로 세입자들 재산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예린, 양민철 기자가 차례로 보도합니다.

[리포트]

30대 김모 씨는 서울 '구로구' 전셋집에 9달째 거주 중입니다.

그런데 최근 '성북구청'으로부터 갑작스런 연락을 받았습니다.

[김OO/서울 구로구 : "(성북구로) 전입신고 하셨는데 여기 사시는 거 맞냐, 그래서 무슨 소리시냐고 저는 아예 움직일 생각 자체도 안 한다고."]

지난달 8일 자로 주소지가 이전돼 있었습니다.

누군가 김 씨를 자기 집 세대원으로 꾸며 몰래 전입신고를 한 걸로 보입니다.

[김OO/서울 구로구 : "(전입신고는 누가 했다고 한 건가요?) 저도 아예 모르는 사람이에요. 제 이름으로 도장까지 파서..."]

[OO동 주민센터 관계자/음성변조 : "(실물 신분증 확인할 때 이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선거할 때처럼 그렇게(위조 여부를 확인) 하면 좋은데 그런 시스템이 아니에요."]

세 들어 있는 집은 법적으로 '빈집'이 되어버렸고, 그걸 담보로 집주인이 대출을 받은 것도 확인했습니다.

뒤늦게 지자체가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지만, 보증금 2억 6천만 원을 돌려받을 보장이 없어졌습니다.

[김OO/서울 구로구 : "(전출) 다음날 바로 대출을 받아 갔더라고요. 진짜 3일간은 거의 밥도 못 먹었어요. (전세 사기) 대비라는 걸 다 했는데도 이렇게 돼 버리니..."]

또 다른 이 세입자는 정반대의 피해를 당했습니다.

자신이 사는 전셋집에 생면부지의 사람이 몰래 전입신고를 했고, 졸지에 '1주택 2가구'가 되면서 전세대출 갱신을 못 받을 수도 있게 됐습니다.

[A 씨/서울 OO구/음성변조 : "(전세자금 대출 연장을 할 때) 전입 세대 열람원이라는 서류가 필요해서 (확인했는데), 임대차계약을 또 맺어서 다른 사람이 또 세대주로 올라가 있는 걸 봤습니다. 주민센터에서는 그분도 임대차 계약서가 있었기 때문에 이제 어쩔 수 없었다..."]

주민등록법 위반으로 고발되는 사례들의 상당수가 이같은 '몰래 전입·전출'로 추정됩니다.

특히 지난해부터 '전입 신고' 사기가 속출하자 행정안전부는 '신원 확인'을 잘하란 권고를 지자체에 내려보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중앙정부 차원의 대책이라곤 전입 당사자에게 '문자 통보'를 해주는 게 유일합니다.

그나마도 본인이 신청을 해야 해서, 서비스를 '알고 이용하는' 사람이 전국에 2만 명 남짓입니다.

KBS 뉴스 이예린입니다.

[리포트]

2020년 지어진 오피스텔입니다.

20대 A 씨는 재작년, 보증금 2억 8천2백만 원에 전세를 들었습니다.

계약 당시, 근저당 등 선순위 권리는 없었습니다.

[A 씨/오피스텔 세입자/음성변조 : "대출을 받고 부모님 돈 빌려서 들어온 건데, (근저당도) 전혀 없었고 깨끗해서 안심하고..."]

그런데 이듬해 봄 등기부등본을 떼봤더니, 총 37억 원 규모의 근저당이 설정돼 있었습니다.

A 씨 집을 포함해, 같은 오피스텔 17채가 담보로 잡혀 있었습니다.

[A 씨/오피스텔 세입자/음성변조 : "(전세가) 위험하다고 해서 등기부등본은 좀 자주 떼보는 편이었어요. 3월에 (집주인이) 근저당을 많이 잡았더라고요."]

매매가와 전세가가 거의 동일한 오피스텔이라,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내줄 리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거액의 담보 대출이 실행된 배경, '문서 위조'에 있었습니다.

임대인 등은 먼저, 임대차 계약서들을 전세에서 월세로 위조해, 보증금 총액을 58억 원에서 5억 원으로 낮췄습니다.

나아가 공문서까지 손을 댔는데, 지자체가 발행하는 '확정일자 부여현황' 서류를 원본과 거의 똑같이 위조했습니다.

이렇게 전세를 월세로 둔갑시킨 뒤, 대부업체 등에서 25억 원을 빌린 겁니다.

[B 씨/피해 대부업자/음성변조 : "위조하기도 어렵고 공문서 같은 경우는. 그것도 17건이나 되는 서류를 위조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이번에 처음 저도 들어본 일이라."]

세입자들은, 채무가 불어난 임대인이 전세보증금 반환을 거부할까봐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있습니다.

[A 씨/오피스텔 세입자/음성변조 : "사기를 당했다는 걸 입증하면 HUG(주택도시보증공사)에서 돈을 받기가 쉽다고 하더라고요. (집주인 일당이) 빨리 잡혀가지고 저희의 피해를 좀 최소화했으면 하는 바람이죠."]

경찰은 임대인 등을 사기 혐의로 수사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양민철입니다.

촬영기자:유용규 황종원 김현민 하정현/영상편집:신남규 박주연/그래픽:이호영 채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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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세 안전판’ 전입신고·확정일자, 모두 뚫렸다
    • 입력 2023-03-08 21:44:34
    • 수정2023-03-08 22: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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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한국의 '전세'는 다른 나라에선 마땅히 번역할 단어가 없어서 발음 그대로 그냥 '전세'라고 씁니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주거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3백만 가구 넘게, 우리 국민 15% 정도가 전셋집에 살고 있습니다.

'임대차'라고는 하지만 워낙 큰 돈이 한꺼번에 들어가기 때문에 세입자 입장에서는 '보증금' 안 떼이는 게 절박한 과제입니다.

'전입신고'나 '확정일자' 같은 제도가 있지만 세입자들이 믿었던 이 안전판조차 사기꾼들에게 뚫린 것으로 KBS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문서를 조작해서 사는 사람도 모르게 주소지를 옮겨 근저당을 설정한다거나, 확정일자 서류까지 위조하는 수법으로 세입자들 재산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예린, 양민철 기자가 차례로 보도합니다.

[리포트]

30대 김모 씨는 서울 '구로구' 전셋집에 9달째 거주 중입니다.

그런데 최근 '성북구청'으로부터 갑작스런 연락을 받았습니다.

[김OO/서울 구로구 : "(성북구로) 전입신고 하셨는데 여기 사시는 거 맞냐, 그래서 무슨 소리시냐고 저는 아예 움직일 생각 자체도 안 한다고."]

지난달 8일 자로 주소지가 이전돼 있었습니다.

누군가 김 씨를 자기 집 세대원으로 꾸며 몰래 전입신고를 한 걸로 보입니다.

[김OO/서울 구로구 : "(전입신고는 누가 했다고 한 건가요?) 저도 아예 모르는 사람이에요. 제 이름으로 도장까지 파서..."]

[OO동 주민센터 관계자/음성변조 : "(실물 신분증 확인할 때 이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선거할 때처럼 그렇게(위조 여부를 확인) 하면 좋은데 그런 시스템이 아니에요."]

세 들어 있는 집은 법적으로 '빈집'이 되어버렸고, 그걸 담보로 집주인이 대출을 받은 것도 확인했습니다.

뒤늦게 지자체가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지만, 보증금 2억 6천만 원을 돌려받을 보장이 없어졌습니다.

[김OO/서울 구로구 : "(전출) 다음날 바로 대출을 받아 갔더라고요. 진짜 3일간은 거의 밥도 못 먹었어요. (전세 사기) 대비라는 걸 다 했는데도 이렇게 돼 버리니..."]

또 다른 이 세입자는 정반대의 피해를 당했습니다.

자신이 사는 전셋집에 생면부지의 사람이 몰래 전입신고를 했고, 졸지에 '1주택 2가구'가 되면서 전세대출 갱신을 못 받을 수도 있게 됐습니다.

[A 씨/서울 OO구/음성변조 : "(전세자금 대출 연장을 할 때) 전입 세대 열람원이라는 서류가 필요해서 (확인했는데), 임대차계약을 또 맺어서 다른 사람이 또 세대주로 올라가 있는 걸 봤습니다. 주민센터에서는 그분도 임대차 계약서가 있었기 때문에 이제 어쩔 수 없었다..."]

주민등록법 위반으로 고발되는 사례들의 상당수가 이같은 '몰래 전입·전출'로 추정됩니다.

특히 지난해부터 '전입 신고' 사기가 속출하자 행정안전부는 '신원 확인'을 잘하란 권고를 지자체에 내려보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중앙정부 차원의 대책이라곤 전입 당사자에게 '문자 통보'를 해주는 게 유일합니다.

그나마도 본인이 신청을 해야 해서, 서비스를 '알고 이용하는' 사람이 전국에 2만 명 남짓입니다.

KBS 뉴스 이예린입니다.

[리포트]

2020년 지어진 오피스텔입니다.

20대 A 씨는 재작년, 보증금 2억 8천2백만 원에 전세를 들었습니다.

계약 당시, 근저당 등 선순위 권리는 없었습니다.

[A 씨/오피스텔 세입자/음성변조 : "대출을 받고 부모님 돈 빌려서 들어온 건데, (근저당도) 전혀 없었고 깨끗해서 안심하고..."]

그런데 이듬해 봄 등기부등본을 떼봤더니, 총 37억 원 규모의 근저당이 설정돼 있었습니다.

A 씨 집을 포함해, 같은 오피스텔 17채가 담보로 잡혀 있었습니다.

[A 씨/오피스텔 세입자/음성변조 : "(전세가) 위험하다고 해서 등기부등본은 좀 자주 떼보는 편이었어요. 3월에 (집주인이) 근저당을 많이 잡았더라고요."]

매매가와 전세가가 거의 동일한 오피스텔이라,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내줄 리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거액의 담보 대출이 실행된 배경, '문서 위조'에 있었습니다.

임대인 등은 먼저, 임대차 계약서들을 전세에서 월세로 위조해, 보증금 총액을 58억 원에서 5억 원으로 낮췄습니다.

나아가 공문서까지 손을 댔는데, 지자체가 발행하는 '확정일자 부여현황' 서류를 원본과 거의 똑같이 위조했습니다.

이렇게 전세를 월세로 둔갑시킨 뒤, 대부업체 등에서 25억 원을 빌린 겁니다.

[B 씨/피해 대부업자/음성변조 : "위조하기도 어렵고 공문서 같은 경우는. 그것도 17건이나 되는 서류를 위조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이번에 처음 저도 들어본 일이라."]

세입자들은, 채무가 불어난 임대인이 전세보증금 반환을 거부할까봐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있습니다.

[A 씨/오피스텔 세입자/음성변조 : "사기를 당했다는 걸 입증하면 HUG(주택도시보증공사)에서 돈을 받기가 쉽다고 하더라고요. (집주인 일당이) 빨리 잡혀가지고 저희의 피해를 좀 최소화했으면 하는 바람이죠."]

경찰은 임대인 등을 사기 혐의로 수사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양민철입니다.

촬영기자:유용규 황종원 김현민 하정현/영상편집:신남규 박주연/그래픽:이호영 채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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