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묘하고 다채로운 검은 빛의 매력 ‘흑자’를 아시나요?
입력 2023.03.15 (12:48)
수정 2023.03.15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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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우리 역사를 대표하는 자기는 청자와 백자입니다.
하지만, 검은색 자기인 '흑자'도 고려 시대부터 근대까지 생활 속에서 꾸준히 사용됐습니다.
오묘하고 다채로운 검은 빛이 흑자의 매력이라고 하는데, 흑자 전시회를 박은주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조선 시대 사용됐던 술병, '흑유 편병'입니다.
검은색 유약 '흑유'가 흘러내리며 만든 무늬가 오묘한 매력을 뿜어냅니다.
까마귀 오자를 써서 '오자'라고도 불린 흑자는 산화철이 많이 섞인 흑유로 색을 낸 자기입니다.
흑유 속 철 성분이 불과 산소를 만나면서 다채로운 검은 빛깔을 만들어냅니다.
[오선영/경기 광주시 : "저는 검은색 하면 정말 딱 흑백의 그런 흑색깔만 생각을 했었는데 전시를 보다 보니까 흑색깔에도 여러 가지 다양한 빛깔이 있는 걸 알게 됐어요."]
흑자는 고려 시대부터 제작됐는데 차 문화가 발달한 중국의 영향을 받아 귀족들의 찻잔이나 차주전자로 쓰였습니다.
조선 시대엔 서민들의 술병이나 양념단지 등 다양한 생활 용기로 확대됐습니다.
[한정운/경기도자박물관 학예사 : "조선 후기에는 장 담그는 문화가 발달했는데요. 흑자는 물 샘이 없었고 또 색물(색깔)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저장용기로 찬방에서 많이 사용됐었습니다."]
산업화 시기였던 일제강점기부터 근대까지는 일본인을 위한 관광기념품으로 제작되며 시대의 아픔을 담아내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의 흑자는 옻칠한 목기처럼 광택이 특징이어서 칠기라고도 불렸습니다.
한국전쟁 여파로 전국의 가마들이 다 무너지고 이천의 칠기 가마만 살아남으면서 이천 도자 산업의 기틀을 마련해주었던 흑자.
현재는 수요가 줄고 도자 산업의 방향도 전승 도예로 바뀌면서 자취를 감췄지만, 알고 보면 우리 곁엔 늘 흑자가 있었음을 이번 전시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KBS 뉴스 박은주입니다.
우리 역사를 대표하는 자기는 청자와 백자입니다.
하지만, 검은색 자기인 '흑자'도 고려 시대부터 근대까지 생활 속에서 꾸준히 사용됐습니다.
오묘하고 다채로운 검은 빛이 흑자의 매력이라고 하는데, 흑자 전시회를 박은주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조선 시대 사용됐던 술병, '흑유 편병'입니다.
검은색 유약 '흑유'가 흘러내리며 만든 무늬가 오묘한 매력을 뿜어냅니다.
까마귀 오자를 써서 '오자'라고도 불린 흑자는 산화철이 많이 섞인 흑유로 색을 낸 자기입니다.
흑유 속 철 성분이 불과 산소를 만나면서 다채로운 검은 빛깔을 만들어냅니다.
[오선영/경기 광주시 : "저는 검은색 하면 정말 딱 흑백의 그런 흑색깔만 생각을 했었는데 전시를 보다 보니까 흑색깔에도 여러 가지 다양한 빛깔이 있는 걸 알게 됐어요."]
흑자는 고려 시대부터 제작됐는데 차 문화가 발달한 중국의 영향을 받아 귀족들의 찻잔이나 차주전자로 쓰였습니다.
조선 시대엔 서민들의 술병이나 양념단지 등 다양한 생활 용기로 확대됐습니다.
[한정운/경기도자박물관 학예사 : "조선 후기에는 장 담그는 문화가 발달했는데요. 흑자는 물 샘이 없었고 또 색물(색깔)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저장용기로 찬방에서 많이 사용됐었습니다."]
산업화 시기였던 일제강점기부터 근대까지는 일본인을 위한 관광기념품으로 제작되며 시대의 아픔을 담아내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의 흑자는 옻칠한 목기처럼 광택이 특징이어서 칠기라고도 불렸습니다.
한국전쟁 여파로 전국의 가마들이 다 무너지고 이천의 칠기 가마만 살아남으면서 이천 도자 산업의 기틀을 마련해주었던 흑자.
현재는 수요가 줄고 도자 산업의 방향도 전승 도예로 바뀌면서 자취를 감췄지만, 알고 보면 우리 곁엔 늘 흑자가 있었음을 이번 전시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KBS 뉴스 박은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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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2023-03-15 12:59:37
[앵커]
우리 역사를 대표하는 자기는 청자와 백자입니다.
하지만, 검은색 자기인 '흑자'도 고려 시대부터 근대까지 생활 속에서 꾸준히 사용됐습니다.
오묘하고 다채로운 검은 빛이 흑자의 매력이라고 하는데, 흑자 전시회를 박은주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조선 시대 사용됐던 술병, '흑유 편병'입니다.
검은색 유약 '흑유'가 흘러내리며 만든 무늬가 오묘한 매력을 뿜어냅니다.
까마귀 오자를 써서 '오자'라고도 불린 흑자는 산화철이 많이 섞인 흑유로 색을 낸 자기입니다.
흑유 속 철 성분이 불과 산소를 만나면서 다채로운 검은 빛깔을 만들어냅니다.
[오선영/경기 광주시 : "저는 검은색 하면 정말 딱 흑백의 그런 흑색깔만 생각을 했었는데 전시를 보다 보니까 흑색깔에도 여러 가지 다양한 빛깔이 있는 걸 알게 됐어요."]
흑자는 고려 시대부터 제작됐는데 차 문화가 발달한 중국의 영향을 받아 귀족들의 찻잔이나 차주전자로 쓰였습니다.
조선 시대엔 서민들의 술병이나 양념단지 등 다양한 생활 용기로 확대됐습니다.
[한정운/경기도자박물관 학예사 : "조선 후기에는 장 담그는 문화가 발달했는데요. 흑자는 물 샘이 없었고 또 색물(색깔)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저장용기로 찬방에서 많이 사용됐었습니다."]
산업화 시기였던 일제강점기부터 근대까지는 일본인을 위한 관광기념품으로 제작되며 시대의 아픔을 담아내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의 흑자는 옻칠한 목기처럼 광택이 특징이어서 칠기라고도 불렸습니다.
한국전쟁 여파로 전국의 가마들이 다 무너지고 이천의 칠기 가마만 살아남으면서 이천 도자 산업의 기틀을 마련해주었던 흑자.
현재는 수요가 줄고 도자 산업의 방향도 전승 도예로 바뀌면서 자취를 감췄지만, 알고 보면 우리 곁엔 늘 흑자가 있었음을 이번 전시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KBS 뉴스 박은주입니다.
우리 역사를 대표하는 자기는 청자와 백자입니다.
하지만, 검은색 자기인 '흑자'도 고려 시대부터 근대까지 생활 속에서 꾸준히 사용됐습니다.
오묘하고 다채로운 검은 빛이 흑자의 매력이라고 하는데, 흑자 전시회를 박은주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조선 시대 사용됐던 술병, '흑유 편병'입니다.
검은색 유약 '흑유'가 흘러내리며 만든 무늬가 오묘한 매력을 뿜어냅니다.
까마귀 오자를 써서 '오자'라고도 불린 흑자는 산화철이 많이 섞인 흑유로 색을 낸 자기입니다.
흑유 속 철 성분이 불과 산소를 만나면서 다채로운 검은 빛깔을 만들어냅니다.
[오선영/경기 광주시 : "저는 검은색 하면 정말 딱 흑백의 그런 흑색깔만 생각을 했었는데 전시를 보다 보니까 흑색깔에도 여러 가지 다양한 빛깔이 있는 걸 알게 됐어요."]
흑자는 고려 시대부터 제작됐는데 차 문화가 발달한 중국의 영향을 받아 귀족들의 찻잔이나 차주전자로 쓰였습니다.
조선 시대엔 서민들의 술병이나 양념단지 등 다양한 생활 용기로 확대됐습니다.
[한정운/경기도자박물관 학예사 : "조선 후기에는 장 담그는 문화가 발달했는데요. 흑자는 물 샘이 없었고 또 색물(색깔)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저장용기로 찬방에서 많이 사용됐었습니다."]
산업화 시기였던 일제강점기부터 근대까지는 일본인을 위한 관광기념품으로 제작되며 시대의 아픔을 담아내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의 흑자는 옻칠한 목기처럼 광택이 특징이어서 칠기라고도 불렸습니다.
한국전쟁 여파로 전국의 가마들이 다 무너지고 이천의 칠기 가마만 살아남으면서 이천 도자 산업의 기틀을 마련해주었던 흑자.
현재는 수요가 줄고 도자 산업의 방향도 전승 도예로 바뀌면서 자취를 감췄지만, 알고 보면 우리 곁엔 늘 흑자가 있었음을 이번 전시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KBS 뉴스 박은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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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 기자 winepark@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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