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슬그머니 사라진 ‘다자녀 무상 우유’

입력 2023.03.27 (21:31) 수정 2023.05.04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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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여러 지자체에서 다자녀 가구에게 무상으로 우유를 지원하던 게 이달부터 갑자기 중단됐습니다.

저출생 문제에 적극 대응하겠다던 정부가 약속을 뒤짚었다는 비판이 일고 있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장혁진 기자가 따져봤습니다.

[리포트]

중학생 두 명과 초등학생 한 명을 자녀로 둔 학부모입니다.

새학기가 되자, 우유 무상지원 대상에서 빠진다는 통보가 왔습니다.

세 아이의 한 달 식비만 150만 원인데, 우윳값으로 6만 원을 학교에 내야 할 처지입니다.

[유 모 씨/다자녀 학부모 : "무상 우유까지 줄여버리면, 저는 우유를 줄이면 그만큼 애들을 사다 줘야 되니까 거기에 대한 가계 부담이 더 올라가죠."]

인터넷 카페엔 다자녀 가구 우유 무상지원이 사라졌다는 글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습니다.

날벼락이다, 살기 더 팍팍해졌다는 하소연도 이어집니다.

[박지애/다자녀 가정 학부모 : "인구 절벽 시대라고 하는데, 이 시대에 우리한테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아이 많으면 애국자라고 하는데 그런 건(혜택은) 하나도 없는 것 같고."]

문제는 불분명한 정부 지침 탓에 불거졌습니다.

5년 전 농식품부의 학교 우유 급식 지침, 무상 우유 지원 대상에 다자녀 가구를 고려하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이듬해 지침을 보면, 이 조항이 없습니다.

다자녀 가정의 지원신청이 몰리면서 기존 예산으론 감당이 안 됐기 때문입니다.

[농식품부 관계자 : "취약 계층 우선 지원이라 다자녀 일부만 지원했습니다. 선정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고, 형평성 문제도 제기되었고요."]

다만, 학교와 지자체가 재량으로 다자녀 가구를 지원하도록 했는데, 이번에는 학교가 반발했습니다.

[지방 교육청 관계자/음성변조 : "다자녀를 거르려면 영양사 선생님들께서 가족관계증명서라든지 증빙 서류를 하나하나 다 받아야 됐던 거예요. 업무 과중이 될 수 있는..."]

기준을 명확히 해달라는 교육 당국의 요청에 올해부터 농식품부는 다자녀 가구 지원 근거 조항을 삭제했습니다.

이런 사이 34곳 기초자치단체에서 6만여 다자녀 가구, 18만 명이 넘게 우유 무상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됐습니다.

KBS 뉴스 장혁진입니다.

촬영기자:김상민 최진영/영상편집:김대범/CG:이경민

[앵커]

이 문제 취재한 장혁진 기자와 좀 더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장 기자! 다자녀 가구 우유 무상 지원 정책이 사실상 설계부터 문제가 있었다는 거군요.

[기자]

학부모들이 더 화가 난 이유이기도 합니다.

복지의 기본 원칙이라면 대상을 정할 때 신중해야 한다는 거겠죠.

지원하던 걸 없앨 때 반발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농식품부가 5년 전. 정확한 예산을 따져보지 않고 다자녀 지원을 넣었고, 이후에도 학부모 반발을 우려한 정부와 지자체는 모호한 기준을 적용해 계속 지원하면서 문제를 키운 셈입니다.

[앵커]

따져보면 교육 당국에서 문제를 제기하자 지원을 중단한 건데 다른 대안은 없었던 겁니까?

[기자]

교육 당국 입장은 다자녀 가정을 가려내는 과정이 복잡하다는 거죠.

무상 지원 대상자 선정은 학교 업무인데, 'NEIS'라고 하는 학교 행정 시스템을 통해 다자녀 여부를 확인해야 있는데, 이 시스템으론 알 수가 없습니다.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행정 정보를 볼 수 있는 정부 24시스템에선 다자녀 가구 여부가 등록돼 있거든요.

연계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었을 텐데, 개선 노력이 부족했다는 비판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앵커]

결국 정부 저출생 정책과는 반대로 가고 있는 건데 우유 무상 지원이 그렇게 어려운 겁니까?

[기자]

올해 기준으로 무상 우유를 지원받는 취약계층 학생은 70만 명 정도입니다.

여기에 국비 470억 원이 들어가는데, 전국에 있는 다자녀 가정 학생이 160만 명가량 됩니다.

단순 계산해보면 지금보다 천억 원 이상의 예산이 더 들어갑니다.

그런데, 현재 우유의 원료, 원유가 남아돕니다.

흰 우유 소비가 크게 줄면서 유업계는 손해를 감수하고 분유로 만들어 보관할 정도입니다.

이런 남아도는 흰 우유를 효율적으로 쓸 방안은 없는 건지, 고민해 보는 것도 필요해 보입니다.

[앵커]

대안 마련이 필요해 보이네요.

장혁진 기자, 잘 들었습니다.

영상편집:권형욱/CG:김석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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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27 21:31:45
    • 수정2023-05-04 11:4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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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여러 지자체에서 다자녀 가구에게 무상으로 우유를 지원하던 게 이달부터 갑자기 중단됐습니다.

저출생 문제에 적극 대응하겠다던 정부가 약속을 뒤짚었다는 비판이 일고 있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장혁진 기자가 따져봤습니다.

[리포트]

중학생 두 명과 초등학생 한 명을 자녀로 둔 학부모입니다.

새학기가 되자, 우유 무상지원 대상에서 빠진다는 통보가 왔습니다.

세 아이의 한 달 식비만 150만 원인데, 우윳값으로 6만 원을 학교에 내야 할 처지입니다.

[유 모 씨/다자녀 학부모 : "무상 우유까지 줄여버리면, 저는 우유를 줄이면 그만큼 애들을 사다 줘야 되니까 거기에 대한 가계 부담이 더 올라가죠."]

인터넷 카페엔 다자녀 가구 우유 무상지원이 사라졌다는 글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습니다.

날벼락이다, 살기 더 팍팍해졌다는 하소연도 이어집니다.

[박지애/다자녀 가정 학부모 : "인구 절벽 시대라고 하는데, 이 시대에 우리한테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아이 많으면 애국자라고 하는데 그런 건(혜택은) 하나도 없는 것 같고."]

문제는 불분명한 정부 지침 탓에 불거졌습니다.

5년 전 농식품부의 학교 우유 급식 지침, 무상 우유 지원 대상에 다자녀 가구를 고려하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이듬해 지침을 보면, 이 조항이 없습니다.

다자녀 가정의 지원신청이 몰리면서 기존 예산으론 감당이 안 됐기 때문입니다.

[농식품부 관계자 : "취약 계층 우선 지원이라 다자녀 일부만 지원했습니다. 선정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고, 형평성 문제도 제기되었고요."]

다만, 학교와 지자체가 재량으로 다자녀 가구를 지원하도록 했는데, 이번에는 학교가 반발했습니다.

[지방 교육청 관계자/음성변조 : "다자녀를 거르려면 영양사 선생님들께서 가족관계증명서라든지 증빙 서류를 하나하나 다 받아야 됐던 거예요. 업무 과중이 될 수 있는..."]

기준을 명확히 해달라는 교육 당국의 요청에 올해부터 농식품부는 다자녀 가구 지원 근거 조항을 삭제했습니다.

이런 사이 34곳 기초자치단체에서 6만여 다자녀 가구, 18만 명이 넘게 우유 무상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됐습니다.

KBS 뉴스 장혁진입니다.

촬영기자:김상민 최진영/영상편집:김대범/CG:이경민

[앵커]

이 문제 취재한 장혁진 기자와 좀 더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장 기자! 다자녀 가구 우유 무상 지원 정책이 사실상 설계부터 문제가 있었다는 거군요.

[기자]

학부모들이 더 화가 난 이유이기도 합니다.

복지의 기본 원칙이라면 대상을 정할 때 신중해야 한다는 거겠죠.

지원하던 걸 없앨 때 반발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농식품부가 5년 전. 정확한 예산을 따져보지 않고 다자녀 지원을 넣었고, 이후에도 학부모 반발을 우려한 정부와 지자체는 모호한 기준을 적용해 계속 지원하면서 문제를 키운 셈입니다.

[앵커]

따져보면 교육 당국에서 문제를 제기하자 지원을 중단한 건데 다른 대안은 없었던 겁니까?

[기자]

교육 당국 입장은 다자녀 가정을 가려내는 과정이 복잡하다는 거죠.

무상 지원 대상자 선정은 학교 업무인데, 'NEIS'라고 하는 학교 행정 시스템을 통해 다자녀 여부를 확인해야 있는데, 이 시스템으론 알 수가 없습니다.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행정 정보를 볼 수 있는 정부 24시스템에선 다자녀 가구 여부가 등록돼 있거든요.

연계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었을 텐데, 개선 노력이 부족했다는 비판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앵커]

결국 정부 저출생 정책과는 반대로 가고 있는 건데 우유 무상 지원이 그렇게 어려운 겁니까?

[기자]

올해 기준으로 무상 우유를 지원받는 취약계층 학생은 70만 명 정도입니다.

여기에 국비 470억 원이 들어가는데, 전국에 있는 다자녀 가정 학생이 160만 명가량 됩니다.

단순 계산해보면 지금보다 천억 원 이상의 예산이 더 들어갑니다.

그런데, 현재 우유의 원료, 원유가 남아돕니다.

흰 우유 소비가 크게 줄면서 유업계는 손해를 감수하고 분유로 만들어 보관할 정도입니다.

이런 남아도는 흰 우유를 효율적으로 쓸 방안은 없는 건지, 고민해 보는 것도 필요해 보입니다.

[앵커]

대안 마련이 필요해 보이네요.

장혁진 기자, 잘 들었습니다.

영상편집:권형욱/CG:김석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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