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째 소송 중…“자괴감·우롱당한 느낌” [취재후]
입력 2023.05.07 (09:59)
수정 2023.05.07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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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홍서준 씨(왼쪽)와 김훈 씨(오른쪽). 온라인 쇼핑 업체 상대 집단 소송에 참여하고 있다.
"우리도 쇼핑하고 싶어요."
온라인 쇼핑몰, 대부분 '사진' 보고 구매 여부를 결정하시지요?
물품 모양이나 색상 같은 '이미지'는 물론, 주요 정보도 사진으로 등록돼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진'으로 된 정보, 시각장애인에게 큰 벽입니다.
유통기한이나 성분 등 제품의 주요 정보가 '글자'로 등록돼 있어야, 시각보조기구 등을 이용해 '소리'로 듣고 쇼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온라인 쇼핑몰은 '사진' 정보만 표출돼 있습니다.
시각장애인은 이동이 불편해 오프라인에서 장을 보는 게 어려운데, 온라인 쇼핑몰마저 이런 실정인 겁니다.
이에 시각장애인들은 2017년, 대표적인 온라인 쇼핑 업체인 롯데쇼핑과 이마트(현재 SSG닷컴, 신세계), 이베이코리아(현재 지마켓, 신세계가 2021년 인수) 3곳을 상대로 집단 소송을 시작했습니다.
[연관 기사] “우리도 쇼핑하고 싶어요”…시각장애인의 7년 소송 (KBS 뉴스9, 2023. 5. 5)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68835
■온라인 쇼핑 업체 "현재 기술에서 쇼핑 편의 제공"
2021년 서울중앙지법의 1심 판결 주요 내용 (그래픽:박미주)
1심 소송 결과는 5년 후인 2021년에야 나왔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이 승소했습니다.
재판부는 "시각장애인에게 대체텍스트를 제공하지 않은 것은 장애인 차별행위다"라면서 "6개월 이내 서비스 개선을 하고, 소송을 제기한 시각장애인 원고 963명에게 10만 원씩 지급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온라인 유통 업체들은 개선했을까요?
아닙니다. 1심 재판부 선고 결과를 이행하는 대신, 항소를 택했습니다.
KBS는 해당 기업들에 항소한 이유와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접근성 개선 현황 등에 관해 물었습니다.
3개 회사는 공통적으로 '시각장애인의 접근성 개선과 관련한 그간의 노력에 대해 소명을 하기 위해 항소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현재 기술 하에서 쇼핑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전체 제품 가운데 대체텍스트 제공 비율 등 구체적인 개선 상황에 관한 질문에는 답변을 거부했습니다.
롯데쇼핑 "현재 기술 수준 하에서 대체 텍스트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웹 접근성 관련 컨설팅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온라인 쇼핑이 용이하도록 전화 주문이 가능하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신세계(SSG닷컴) "고객센터 등 별도의 핫라인을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기술하에서 가능한 쇼핑 편의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지마켓 "웹 접근성 전문인력의 직간접으로 고용하고, OCR(이미지 속 문서인식) 도입 등 제도적·기술적 범위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을 최대한 기울이고 있습니다." |
■시각장애인 "자괴감 들어" "우롱당한 느낌"
시각장애인들은 생각은 어떨까요?
7년째 소송에 참여하고 있는 시각장애인들은 유통 업체들이 말하는 개선을 체감하지 못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시각장애인 김훈 씨는 "소송을 시작한 2017년과 비교해도 개선이 거의 안 된 것 같다"면서 "큰 걸 바라는 게 아니라, 이동이 불편한 시각장애인들이 생필품을 온라인에서 구매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김 씨는 "(소송이) 벌써 7년 차인데, 3년 있으면 10년이 된다"면서 "이 시간이었으면 홈페이지나 앱 등이 개선됐을 거다. '대체텍스트 제공이 그리 어렵나?' 싶은 생각에 자괴감까지 든다"고 강조했습니다.
같이 소송에 참여한 홍서준 씨도 "기업들이 OCR(이미지 속 문서인식) 기능을 제공한다고 하지만, 막상 해보면 실질 정보는 '상세참조' 설명만 나온다. 우롱당한 느낌이다"면서 "형식적이고 안일한 대처에 물건 구매에 어려움을 겪는 당사자로서 마음이 아프다"고 밝혔습니다.
안동한 한국디지털접근성진흥원 팀장은 "기업들이 피해접수와 상담 전화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막상 전화하면 어디가 접수처인지 모르는 기업도 있다"면서 "'대체텍스트를 만드는데 2주가 걸린다'고 한 기업도 있었는데, 2주 후에 생필품을 구매하는 게 의미가 있나? 그리고 해당 기업은 약속한 2주 뒤에도 대체텍스트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외국, 제품 정보 글자로 제공…"기업의 인식 차이"
외국의 주요 온라인 업체들은 어떨까요?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아마존과 이베이 등 외국 유명 온라인 쇼핑몰을 들어가 봤습니다.
미국 이베이 홈페이지 화면. 제품에 대한 설명을 글자로 표시
차이는 제품의 상세한 정보를 글자로 적어놨다는 점이었습니다. 성분과 효능 등 구체적인 상품 정보를 사진 이미지뿐 아니라 하단에 별도로 적어놨습니다.
비장애인들에게는 작은 차이일 수 있지만, 글자를 소리로 바꿔 들어야만 알 수 있는 시각장애인에게는 큰 차이인 겁니다.
이런 서비스, 왜 우리나라는 불가능한 걸까요. 롯데와 신세계, 지마켓 등 기업들은 "모든 상품에 대체텍스트 제공은 물리적으로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에 안동한 팀장은 "온라인 유통 업체들은 입점 업체를 대상으로 판매자 교육을 하는데, 아동·청소년 법과 저작권법 등을 교육하듯, 시각장애인용 대체텍스트 제공에 대해 교육을 하면 된다" 면서 "한 번에 모든 상품의 텍스트 제공은 어렵겠지만, 지금부터 시작하면 1년 후쯤에는 선순환되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습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과정에 참여한 박종운 변호사는 "상품 정보 텍스트는 상품을 올리기 전에도 작성할 수 있고, 올린 이후라도 만들기가 상당히 쉽다"면서 "화면 해설 서비스와 비교해 대체텍스트 제공은 기술 측면이나 비용 측면에서 어렵지 않다"고 말합니다.
박 변호사는 "선진국 기업은 기본적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차별해선 안 된다는 인식이 보편화 되어 있다"면서 "시스템 설계 단계부터 시각장애인을 위한 고민을 해야 하는데, 국내 업체들은 아직 인식 전환이 덜 된 것 같다"고 지적했습니다.
2021년 2월에 있었던 1심 판결 이후 2년이 지났습니다. 서울고등법원 제16민사부는 이달 25일에 항소심 선고를 내릴 예정입니다.
시각장애인에게 온라인 쇼핑의 문턱이 조금 낮아질 수 있는 판결이 나올지, 이번엔 우리 기업들이 장애인의 목소리를 들어줄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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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3-05-07 09:59:09
- 수정2023-05-07 12:22:46
"우리도 쇼핑하고 싶어요."
온라인 쇼핑몰, 대부분 '사진' 보고 구매 여부를 결정하시지요?
물품 모양이나 색상 같은 '이미지'는 물론, 주요 정보도 사진으로 등록돼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진'으로 된 정보, 시각장애인에게 큰 벽입니다.
유통기한이나 성분 등 제품의 주요 정보가 '글자'로 등록돼 있어야, 시각보조기구 등을 이용해 '소리'로 듣고 쇼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온라인 쇼핑몰은 '사진' 정보만 표출돼 있습니다.
시각장애인은 이동이 불편해 오프라인에서 장을 보는 게 어려운데, 온라인 쇼핑몰마저 이런 실정인 겁니다.
이에 시각장애인들은 2017년, 대표적인 온라인 쇼핑 업체인 롯데쇼핑과 이마트(현재 SSG닷컴, 신세계), 이베이코리아(현재 지마켓, 신세계가 2021년 인수) 3곳을 상대로 집단 소송을 시작했습니다.
[연관 기사] “우리도 쇼핑하고 싶어요”…시각장애인의 7년 소송 (KBS 뉴스9, 2023. 5. 5)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68835
■온라인 쇼핑 업체 "현재 기술에서 쇼핑 편의 제공"
1심 소송 결과는 5년 후인 2021년에야 나왔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이 승소했습니다.
재판부는 "시각장애인에게 대체텍스트를 제공하지 않은 것은 장애인 차별행위다"라면서 "6개월 이내 서비스 개선을 하고, 소송을 제기한 시각장애인 원고 963명에게 10만 원씩 지급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온라인 유통 업체들은 개선했을까요?
아닙니다. 1심 재판부 선고 결과를 이행하는 대신, 항소를 택했습니다.
KBS는 해당 기업들에 항소한 이유와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접근성 개선 현황 등에 관해 물었습니다.
3개 회사는 공통적으로 '시각장애인의 접근성 개선과 관련한 그간의 노력에 대해 소명을 하기 위해 항소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현재 기술 하에서 쇼핑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전체 제품 가운데 대체텍스트 제공 비율 등 구체적인 개선 상황에 관한 질문에는 답변을 거부했습니다.
롯데쇼핑 "현재 기술 수준 하에서 대체 텍스트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웹 접근성 관련 컨설팅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온라인 쇼핑이 용이하도록 전화 주문이 가능하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신세계(SSG닷컴) "고객센터 등 별도의 핫라인을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기술하에서 가능한 쇼핑 편의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지마켓 "웹 접근성 전문인력의 직간접으로 고용하고, OCR(이미지 속 문서인식) 도입 등 제도적·기술적 범위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을 최대한 기울이고 있습니다." |
■시각장애인 "자괴감 들어" "우롱당한 느낌"
시각장애인들은 생각은 어떨까요?
7년째 소송에 참여하고 있는 시각장애인들은 유통 업체들이 말하는 개선을 체감하지 못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시각장애인 김훈 씨는 "소송을 시작한 2017년과 비교해도 개선이 거의 안 된 것 같다"면서 "큰 걸 바라는 게 아니라, 이동이 불편한 시각장애인들이 생필품을 온라인에서 구매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김 씨는 "(소송이) 벌써 7년 차인데, 3년 있으면 10년이 된다"면서 "이 시간이었으면 홈페이지나 앱 등이 개선됐을 거다. '대체텍스트 제공이 그리 어렵나?' 싶은 생각에 자괴감까지 든다"고 강조했습니다.
같이 소송에 참여한 홍서준 씨도 "기업들이 OCR(이미지 속 문서인식) 기능을 제공한다고 하지만, 막상 해보면 실질 정보는 '상세참조' 설명만 나온다. 우롱당한 느낌이다"면서 "형식적이고 안일한 대처에 물건 구매에 어려움을 겪는 당사자로서 마음이 아프다"고 밝혔습니다.
안동한 한국디지털접근성진흥원 팀장은 "기업들이 피해접수와 상담 전화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막상 전화하면 어디가 접수처인지 모르는 기업도 있다"면서 "'대체텍스트를 만드는데 2주가 걸린다'고 한 기업도 있었는데, 2주 후에 생필품을 구매하는 게 의미가 있나? 그리고 해당 기업은 약속한 2주 뒤에도 대체텍스트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외국, 제품 정보 글자로 제공…"기업의 인식 차이"
외국의 주요 온라인 업체들은 어떨까요?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아마존과 이베이 등 외국 유명 온라인 쇼핑몰을 들어가 봤습니다.
차이는 제품의 상세한 정보를 글자로 적어놨다는 점이었습니다. 성분과 효능 등 구체적인 상품 정보를 사진 이미지뿐 아니라 하단에 별도로 적어놨습니다.
비장애인들에게는 작은 차이일 수 있지만, 글자를 소리로 바꿔 들어야만 알 수 있는 시각장애인에게는 큰 차이인 겁니다.
이런 서비스, 왜 우리나라는 불가능한 걸까요. 롯데와 신세계, 지마켓 등 기업들은 "모든 상품에 대체텍스트 제공은 물리적으로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에 안동한 팀장은 "온라인 유통 업체들은 입점 업체를 대상으로 판매자 교육을 하는데, 아동·청소년 법과 저작권법 등을 교육하듯, 시각장애인용 대체텍스트 제공에 대해 교육을 하면 된다" 면서 "한 번에 모든 상품의 텍스트 제공은 어렵겠지만, 지금부터 시작하면 1년 후쯤에는 선순환되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습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과정에 참여한 박종운 변호사는 "상품 정보 텍스트는 상품을 올리기 전에도 작성할 수 있고, 올린 이후라도 만들기가 상당히 쉽다"면서 "화면 해설 서비스와 비교해 대체텍스트 제공은 기술 측면이나 비용 측면에서 어렵지 않다"고 말합니다.
박 변호사는 "선진국 기업은 기본적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차별해선 안 된다는 인식이 보편화 되어 있다"면서 "시스템 설계 단계부터 시각장애인을 위한 고민을 해야 하는데, 국내 업체들은 아직 인식 전환이 덜 된 것 같다"고 지적했습니다.
2021년 2월에 있었던 1심 판결 이후 2년이 지났습니다. 서울고등법원 제16민사부는 이달 25일에 항소심 선고를 내릴 예정입니다.
시각장애인에게 온라인 쇼핑의 문턱이 조금 낮아질 수 있는 판결이 나올지, 이번엔 우리 기업들이 장애인의 목소리를 들어줄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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