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스타·아나운서 잘 안다”…‘유망 스타트업’ 대표의 사기극

입력 2023.07.08 (09:01) 수정 2023.07.08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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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11일 KBS 뉴스 72023년 1월 11일 KBS 뉴스 7

제주의 한 스타트업 대표 20대 여성 A 씨, 평소에도 정부 지원 사업에 다수 선정돼 많은 지원금을 받았다. 제주의 스타트업 지원·보육 기관에 입주한 기업체 대표로, 주변 기업인들 사이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

A 씨는 지난해 초, 제주에서 화장품과 건강기능식품을 제조하는 한 기업체 대표 B 씨에게 접근했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한 스타트업 지원 사업 행사장에서였다.

A 씨는 "운영하고 있는 스타트업 2곳 중 하나가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하는 업체"라고 본인을 소개했다. 이어 "제주의 농산물, 친환경 등 우리와 B 대표 업체의 키워드가 어울린다"며 B 씨에게 협업을 제안했다.

A 씨는 B 씨 앞에서 본인이 서울의 모 사립대 출신으로, '파일럿(조종사)' 경력을 나열하기도 했다. 겨우 20대 초반인 A 씨의 나이를 고려하면 고개를 갸웃할 만한 커리어였지만, 당시 A 씨의 나이를 몰랐던 B 대표는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었다.

■ "유명인과 친분 있다"…'인플루언서 마케팅'으로 수천만 원 편취

A 씨의 이른바 '인플루언서 마케팅' 제안 내용은 이랬다. "실제 매출을 낼 수 있도록 유명 인플루언서를 동원해 제품을 홍보하겠다"는 거였다. A 대표는 "이미 대기업과도 협업한 사례가 있다. 이를 통해 3~5억 원의 매출을 냈다"며 실적을 과시하기도 했다.

A 대표의 제안에 B 대표는 귀가 솔깃했다. 당시 투자 유치를 준비하고 있던 상황에서 이 같은 성과 지표가 중요했던 터에 B 씨는 결국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자본 유치' 등 스타트업들의 약점을 파고든 달콤한 계획이었다.

게티이미지게티이미지

B 씨는 지난해 4월 초, 이 같은 내용의 '인플루언서 마케팅 대행 계약서'를 작성하고 현금 6천만 원을 A 씨에게 선금으로 지급했다. A 씨는 "3억 원 이상 매출을 내기 위해, 제품 제조를 서둘러달라"며 A 씨에게 제품 생산을 재촉하기도 했다. B 대표는 화장품을 만드는 데에만 1억 원이 넘는 돈을 더 들였다.

A 씨는 자신이 아나운서 출신 인플루언서를 잘 안다고도 말했다. B 씨에게는 "모 아나운서가 B 대표 회사 제품을 사보고 마음에 들어해서, 이를 마케팅하기로 했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문제는 A 씨가 돈을 받고도 연락이 두절되기 일쑤였다는 점이었다. B 씨가 A 씨에게 "왜 연락을 안 받느냐. 마케팅 일 진행이 어떻게 되고 있냐?"고 물으면 "방금 아나운서랑 회의하고 왔다. 회의 결과가 이렇고, 이렇다"고 상세히 읊으며 안심시켰다.

의심이 드는 순간이 이어졌지만, B 씨는 계속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 "마케팅비에 제품 생산비까지 1억 원 넘게 피해"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거짓말이었다. A 씨가 "잘 안다"고 말했던 인플루언서는, 실제로는 A 씨와 업무협약을 맺거나 홍보를 추진한 적도 없는 사람이었다. B 씨가 뒤늦게 사기 사실을 인지했을 때는 이미 1억 6천여만 원에 달하는 거액을 쏟아부은 뒤였다.

사기 피해를 본 B 씨가 주변 다른 스타트업 사례를 수소문해보니, A 씨는 이전에도 다른 업체를 상대로 똑같은 수법으로 사기를 친 전력이 있었다.

A 씨는 전남의 한 화장품 제조사 대표를 상대로도 "유명 스포츠 스타와 친분이 있다. 5억 원 매출을 냈다"고 과시하며, 마케팅을 제안했다. 이 업체 역시 1억 원이 넘는 돈을 A 씨에게 입금했다가, 허위 사실임을 알고 돈을 겨우 돌려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입금증을 포토샵으로 조작해, 이를 "스포츠 스타의 소속사에 전달했다"는 식으로 업체 측을 속였다. 이 같은 피해를 인지한 해당 스포츠 스타 역시 A 씨를 사기죄와 사문서위조 등의 혐의로 수사 의뢰했고, 지난해 검찰은 A 씨를 약식 기소했다. 해당 인사의 소속사 측은 KBS에 "A씨와 대면한 적도 없고, 그런 사람을 알지도 못한다"고 밝혔다.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B 씨는 "마케팅 비용이라고 건넨 돈도 고스란히 날렸지만, 화장품은 유통기한도 있어서 온전히 피해를 떠안게된 상황"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B 씨는 지난해 말, A 씨를 사기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 "유명 건설사 대표와 친분 있다. 분양권 사 주겠다"며 수천만 원 뜯어

A 씨 회사에는 다른 지역 출신으로 제주로 이사 온 직원 C 씨가 있었다. 마침 전세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해 고민 중이던 이 직원에게 A 씨는 "회사 소속 변호사가 있다. 수임료를 내게 주면, 내가 변호사를 통해 해결해주겠다"고 제안했다.

그길로 C 씨에게 '변호사'라는 사람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주고, A 씨는 C 씨에게서 1천여만 원을 받아 챙겼다. 수임료 명목이었다.

하지만, A 대표의 회사에는 소속 변호사가 없었다. 게다가 직원에게 넘긴 번호는 A 씨 본인이 쓰던 '대포폰' 번호였다. 이 전화번호로 자신이 변호사 행세를 할 생각이었다.

A 대표의 거짓말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는 직원 C 씨에게 자신이 "유명 건설사 대표와 잘 아는 사이"라며 "분양권을 구매하면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으니, 돈을 주면 분양권을 구매해주겠다"고 제안했다. 이에 또 속은 피해자는 4천5백만 원을 A 씨의 계좌로 보냈다.

그러나, A 씨는 해당 건설사 대표와 일면식도 없었다. 변호사 수임료 명목으로 받은 돈, 분양권을 대신 사주겠다며 받은 돈은 모두 피해자에게 한 약속과는 달리, 카드 대금 결제 등 개인적으로 사용했을 뿐이었다.

■ 경찰 수사관에게 허위 서류 제출하기도…"수사 방해"

2021년 6월, 또 다른 사기 범죄로 경찰 조사를 받던 A 씨는 경찰서에 '허위 서류'를 제출하는 대범함도 보였다.

경찰은 당시 피의자 A 씨에게 재산 상황을 알 수 있는 거래내역 제출을 요구했다.

A 씨 업체의 당시 계좌 잔고는 겨우 9만 7천 원. 이를 그대로 제출했다간 혐의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A 씨는, 은행 입출금거래내역조회 파일의 숫자에 손을 대기에 이르렀다.

겨우 9만 7천 원이었던 잔액은 1억 7천여만 원으로 변조됐고, 이를 인쇄한 뒤 변호사를 통해 경찰서에 제출했다. 경찰은 "피의자에게 자력이 충분하다"고 판단, 그해 8월 A 씨의 사기 혐의에 대해 '불송치 결정'을 하고 말았다.

변조된 문서 한 장으로 수사 결과가 뒤집히는 순간이었다.

A 씨는 이 밖에도 유령회사를 설립해 허위 증빙자료를 만들거나, 가짜 직원을 등재하는 방법으로 각종 보조금 등 공적 자금 2억 4천3백만 원을 부정하게 타내 쓰기도 했다.

또, 부당 해고 직원에게 천2백만 원 규모 금전배상을 하라는 구제 명령에 따르지 않고, 임금 천8백만 원을 미지급하기도 했다.

2020년 말부터 지난해까지 A 씨가 지인과 투자자·국가기관 등을 속여 뺏은 돈만 4억 8천여만 원 상당에 달했고, 사기 미수에 그친 물품 금액은 7천7백만 원이 넘었다.

한때 제주 '유망 스타트업'으로도 소개됐던 20대 젊은 대표의 사기극은 검찰에 구속되어서야 막을 내렸다.


■ "보조금 등 제도 악용…다양한 거짓말, 별다른 죄의식도 없어 보여"

제주지방법원 형사2단독(강민수 판사)은 보조금관리법 위반과 사기·사문서 변조·변조사문서행사·근로기준법위반·사기미수·위계공무집행방해·도로교통법위반(음주운전)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제주지역 모 스타트업 전 대표 20대 여성 A 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최근 열린 선고공판에서 재판부는 보조금관리법 위반 혐의에 대해 "기업 지원과 산업 육성을 위한 보조금과 기술보증제도를 악용한 범죄는, 제도 건전성을 해치고 국가 재정 부실을 초래해 공적인 손해로 우려가 크다는 점에서 죄질이 나쁘다"고 지적했다.

이어 "여기에 성장 잠재력이 있는 기업들이 지원받을 기회를 빼앗아, 선량한 기업가들에게 박탈감을 주고, 더 나아가 기업과 산업발전에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큰 범죄라는 점에서도 엄히 다스릴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피고인의 사기 혐의 등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엄하게 벌할 필요가 있다고 일갈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사업상 알게 된 사람들에게는 사업과 관련된 거짓말을, 직원 등 그 밖의 지인들에게는 개인적 층위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내용의 거짓말을 함으로써 여러 사람에게서 많은 돈을 편취했다"며 "피해자의 수나, 각각의 피해자들에게 한 다양한 거짓말을 보면, 별다른 죄의식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인은 조사받는 과정에서 단순히 잘못을 부인하는 것을 넘어, 계좌 거래내역을 변조해 제출해 수사 방해까지 했다. 범행 후 정황도 대단히 불량하다"고 꾸짖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뒤늦게나마 잘못을 인정하면서 피해액 일부를 변제했지만, 이는 대체로 다른 사람들에게서 편취한 돈으로 이른바 '돌려막기'한 것이거나, 부모의 도움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 범죄의 책임을 통감하고, 피해 회복에 힘쓴 경우와 동일하게 취급할 수는 없다"면서 "아직도 여러 피해자가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 게다가 피고인은 상당한 술에 취한 채로 음주운전을 하기도 했다"고 판시했다.

A 씨는 1심 결과에 불복해 최근 항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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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스타·아나운서 잘 안다”…‘유망 스타트업’ 대표의 사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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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11일 KBS 뉴스 7
제주의 한 스타트업 대표 20대 여성 A 씨, 평소에도 정부 지원 사업에 다수 선정돼 많은 지원금을 받았다. 제주의 스타트업 지원·보육 기관에 입주한 기업체 대표로, 주변 기업인들 사이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

A 씨는 지난해 초, 제주에서 화장품과 건강기능식품을 제조하는 한 기업체 대표 B 씨에게 접근했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한 스타트업 지원 사업 행사장에서였다.

A 씨는 "운영하고 있는 스타트업 2곳 중 하나가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하는 업체"라고 본인을 소개했다. 이어 "제주의 농산물, 친환경 등 우리와 B 대표 업체의 키워드가 어울린다"며 B 씨에게 협업을 제안했다.

A 씨는 B 씨 앞에서 본인이 서울의 모 사립대 출신으로, '파일럿(조종사)' 경력을 나열하기도 했다. 겨우 20대 초반인 A 씨의 나이를 고려하면 고개를 갸웃할 만한 커리어였지만, 당시 A 씨의 나이를 몰랐던 B 대표는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었다.

■ "유명인과 친분 있다"…'인플루언서 마케팅'으로 수천만 원 편취

A 씨의 이른바 '인플루언서 마케팅' 제안 내용은 이랬다. "실제 매출을 낼 수 있도록 유명 인플루언서를 동원해 제품을 홍보하겠다"는 거였다. A 대표는 "이미 대기업과도 협업한 사례가 있다. 이를 통해 3~5억 원의 매출을 냈다"며 실적을 과시하기도 했다.

A 대표의 제안에 B 대표는 귀가 솔깃했다. 당시 투자 유치를 준비하고 있던 상황에서 이 같은 성과 지표가 중요했던 터에 B 씨는 결국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자본 유치' 등 스타트업들의 약점을 파고든 달콤한 계획이었다.

게티이미지
B 씨는 지난해 4월 초, 이 같은 내용의 '인플루언서 마케팅 대행 계약서'를 작성하고 현금 6천만 원을 A 씨에게 선금으로 지급했다. A 씨는 "3억 원 이상 매출을 내기 위해, 제품 제조를 서둘러달라"며 A 씨에게 제품 생산을 재촉하기도 했다. B 대표는 화장품을 만드는 데에만 1억 원이 넘는 돈을 더 들였다.

A 씨는 자신이 아나운서 출신 인플루언서를 잘 안다고도 말했다. B 씨에게는 "모 아나운서가 B 대표 회사 제품을 사보고 마음에 들어해서, 이를 마케팅하기로 했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문제는 A 씨가 돈을 받고도 연락이 두절되기 일쑤였다는 점이었다. B 씨가 A 씨에게 "왜 연락을 안 받느냐. 마케팅 일 진행이 어떻게 되고 있냐?"고 물으면 "방금 아나운서랑 회의하고 왔다. 회의 결과가 이렇고, 이렇다"고 상세히 읊으며 안심시켰다.

의심이 드는 순간이 이어졌지만, B 씨는 계속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 "마케팅비에 제품 생산비까지 1억 원 넘게 피해"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거짓말이었다. A 씨가 "잘 안다"고 말했던 인플루언서는, 실제로는 A 씨와 업무협약을 맺거나 홍보를 추진한 적도 없는 사람이었다. B 씨가 뒤늦게 사기 사실을 인지했을 때는 이미 1억 6천여만 원에 달하는 거액을 쏟아부은 뒤였다.

사기 피해를 본 B 씨가 주변 다른 스타트업 사례를 수소문해보니, A 씨는 이전에도 다른 업체를 상대로 똑같은 수법으로 사기를 친 전력이 있었다.

A 씨는 전남의 한 화장품 제조사 대표를 상대로도 "유명 스포츠 스타와 친분이 있다. 5억 원 매출을 냈다"고 과시하며, 마케팅을 제안했다. 이 업체 역시 1억 원이 넘는 돈을 A 씨에게 입금했다가, 허위 사실임을 알고 돈을 겨우 돌려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입금증을 포토샵으로 조작해, 이를 "스포츠 스타의 소속사에 전달했다"는 식으로 업체 측을 속였다. 이 같은 피해를 인지한 해당 스포츠 스타 역시 A 씨를 사기죄와 사문서위조 등의 혐의로 수사 의뢰했고, 지난해 검찰은 A 씨를 약식 기소했다. 해당 인사의 소속사 측은 KBS에 "A씨와 대면한 적도 없고, 그런 사람을 알지도 못한다"고 밝혔다.

 게티이미지
B 씨는 "마케팅 비용이라고 건넨 돈도 고스란히 날렸지만, 화장품은 유통기한도 있어서 온전히 피해를 떠안게된 상황"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B 씨는 지난해 말, A 씨를 사기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 "유명 건설사 대표와 친분 있다. 분양권 사 주겠다"며 수천만 원 뜯어

A 씨 회사에는 다른 지역 출신으로 제주로 이사 온 직원 C 씨가 있었다. 마침 전세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해 고민 중이던 이 직원에게 A 씨는 "회사 소속 변호사가 있다. 수임료를 내게 주면, 내가 변호사를 통해 해결해주겠다"고 제안했다.

그길로 C 씨에게 '변호사'라는 사람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주고, A 씨는 C 씨에게서 1천여만 원을 받아 챙겼다. 수임료 명목이었다.

하지만, A 대표의 회사에는 소속 변호사가 없었다. 게다가 직원에게 넘긴 번호는 A 씨 본인이 쓰던 '대포폰' 번호였다. 이 전화번호로 자신이 변호사 행세를 할 생각이었다.

A 대표의 거짓말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는 직원 C 씨에게 자신이 "유명 건설사 대표와 잘 아는 사이"라며 "분양권을 구매하면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으니, 돈을 주면 분양권을 구매해주겠다"고 제안했다. 이에 또 속은 피해자는 4천5백만 원을 A 씨의 계좌로 보냈다.

그러나, A 씨는 해당 건설사 대표와 일면식도 없었다. 변호사 수임료 명목으로 받은 돈, 분양권을 대신 사주겠다며 받은 돈은 모두 피해자에게 한 약속과는 달리, 카드 대금 결제 등 개인적으로 사용했을 뿐이었다.

■ 경찰 수사관에게 허위 서류 제출하기도…"수사 방해"

2021년 6월, 또 다른 사기 범죄로 경찰 조사를 받던 A 씨는 경찰서에 '허위 서류'를 제출하는 대범함도 보였다.

경찰은 당시 피의자 A 씨에게 재산 상황을 알 수 있는 거래내역 제출을 요구했다.

A 씨 업체의 당시 계좌 잔고는 겨우 9만 7천 원. 이를 그대로 제출했다간 혐의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A 씨는, 은행 입출금거래내역조회 파일의 숫자에 손을 대기에 이르렀다.

겨우 9만 7천 원이었던 잔액은 1억 7천여만 원으로 변조됐고, 이를 인쇄한 뒤 변호사를 통해 경찰서에 제출했다. 경찰은 "피의자에게 자력이 충분하다"고 판단, 그해 8월 A 씨의 사기 혐의에 대해 '불송치 결정'을 하고 말았다.

변조된 문서 한 장으로 수사 결과가 뒤집히는 순간이었다.

A 씨는 이 밖에도 유령회사를 설립해 허위 증빙자료를 만들거나, 가짜 직원을 등재하는 방법으로 각종 보조금 등 공적 자금 2억 4천3백만 원을 부정하게 타내 쓰기도 했다.

또, 부당 해고 직원에게 천2백만 원 규모 금전배상을 하라는 구제 명령에 따르지 않고, 임금 천8백만 원을 미지급하기도 했다.

2020년 말부터 지난해까지 A 씨가 지인과 투자자·국가기관 등을 속여 뺏은 돈만 4억 8천여만 원 상당에 달했고, 사기 미수에 그친 물품 금액은 7천7백만 원이 넘었다.

한때 제주 '유망 스타트업'으로도 소개됐던 20대 젊은 대표의 사기극은 검찰에 구속되어서야 막을 내렸다.


■ "보조금 등 제도 악용…다양한 거짓말, 별다른 죄의식도 없어 보여"

제주지방법원 형사2단독(강민수 판사)은 보조금관리법 위반과 사기·사문서 변조·변조사문서행사·근로기준법위반·사기미수·위계공무집행방해·도로교통법위반(음주운전)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제주지역 모 스타트업 전 대표 20대 여성 A 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최근 열린 선고공판에서 재판부는 보조금관리법 위반 혐의에 대해 "기업 지원과 산업 육성을 위한 보조금과 기술보증제도를 악용한 범죄는, 제도 건전성을 해치고 국가 재정 부실을 초래해 공적인 손해로 우려가 크다는 점에서 죄질이 나쁘다"고 지적했다.

이어 "여기에 성장 잠재력이 있는 기업들이 지원받을 기회를 빼앗아, 선량한 기업가들에게 박탈감을 주고, 더 나아가 기업과 산업발전에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큰 범죄라는 점에서도 엄히 다스릴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피고인의 사기 혐의 등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엄하게 벌할 필요가 있다고 일갈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사업상 알게 된 사람들에게는 사업과 관련된 거짓말을, 직원 등 그 밖의 지인들에게는 개인적 층위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내용의 거짓말을 함으로써 여러 사람에게서 많은 돈을 편취했다"며 "피해자의 수나, 각각의 피해자들에게 한 다양한 거짓말을 보면, 별다른 죄의식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인은 조사받는 과정에서 단순히 잘못을 부인하는 것을 넘어, 계좌 거래내역을 변조해 제출해 수사 방해까지 했다. 범행 후 정황도 대단히 불량하다"고 꾸짖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뒤늦게나마 잘못을 인정하면서 피해액 일부를 변제했지만, 이는 대체로 다른 사람들에게서 편취한 돈으로 이른바 '돌려막기'한 것이거나, 부모의 도움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 범죄의 책임을 통감하고, 피해 회복에 힘쓴 경우와 동일하게 취급할 수는 없다"면서 "아직도 여러 피해자가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 게다가 피고인은 상당한 술에 취한 채로 음주운전을 하기도 했다"고 판시했다.

A 씨는 1심 결과에 불복해 최근 항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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