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 200m 빌딩에 막힌다”…‘역사경관 훼손’ 유네스코 제동?

입력 2023.07.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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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서울시·중구청, 세계문화유산 종묘 앞 212m 고밀 개발 추진
경관 시뮬레이션 결과, 종묘 시야에 현대식 건물 120m 노출
"역사경관 훼손 우려" 시민단체, 유네스코에 실사단 파견 요청


서울시의 계획대로 세운지구를 고밀 복합 개발하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의 역사경관이 심각하게 훼손될 거라는 경관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왔다.

지역 시민단체인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는 종묘 일대 경관 시뮬레이션 결과, 세운지구에 최고 200m의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서면 '종묘 정전에서 상월대를 바라볼 때 건축물 최상부' 120m가 종묘 시야에서 노출된다고 밝혔다.

2010년 문화재위원회가 종묘의 역사성과 역사문화환경 보존을 위해 정한 높이 기준은 '종묘 정전에서 상월대를 바라볼 때 건축물 최상부 3개 층 이하'였다. 종묘를 둘러싼 숲으로 현대식 건물을 가릴 수 있을 정도의 개발만 허용해, 의례 공간의 원형을 지켜야 한다는 취지였다.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는 경관 시뮬레이션 결과를 토대로 "서울시의 재개발 계획이 종묘의 세계유산적 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크다"며, 실사 모니터링단 파견과 유산영향평가 실시를 요청하는 민원을 10일 유네스코 본부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 종묘 앞 건물 높이, 최고 52.6m → 90m → 212m 계속 완화

조선 왕조의 유교 사당인 종묘는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종묘는 정면이 매우 긴 장엄한 건축물로, 정제된 건축 양식뿐만 아니라 공간 계획, 제례 봉행 등 무형적 가치가 높은 평가를 받아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숲으로 둘러싸인 공간이 문화재보호법과 서울시의 경관 계획으로 보호받아, 조용하고 경건한 분위기가 보존된다는 점도 등재 이유에 포함됐다. 종묘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종묘 앞 세운지구 일대의 높이 계획은 역사경관 보존을 위해 규제되어 왔다.

종묘 경관 보존을 위한 세운 4구역 건축물 높이 계획 변화 과정. SH공사 자료를 토대로 재구성.종묘 경관 보존을 위한 세운 4구역 건축물 높이 계획 변화 과정. SH공사 자료를 토대로 재구성.

실제로, 오세훈 시장이 2006년 처음 발표한 종묘 앞 최고 높이 122.3m의 세운지구 개발 계획은 문화재위의 심의가 거듭되면서 높이가 꾸준히 낮아졌다. 2010년에 문화재위원회의 기준이 정리됐고, 10여 차례의 심의를 받은 끝에 2018년에야 최고 높이 52.6m(종로 변 기준)로 통과됐다. 경관 시뮬레이션이 당시 심의의 주요 기준이었다.

박원순 시장은 이를 완화해, 세운3, 5구역을 문화재 심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최고 높이 90m까지 개발할 수 있도록 했다. 시사기획 창은 2019년 5월 방송한 '세운상가, 도시재생을 묻다' 편에서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입수한 관련 기관 문서를 통해, 종묘 앞 역사경관 보존 대책이 후퇴한 과정을 분석했다.

[연관 기사] 종묘 앞인데…세운4구역은 9년간 문화재 심의, 3구역은 면제? (2019.5.22)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4206326

돌아온 오세훈 시장은 종묘 앞 세운지구 일대를 고밀 복합 개발하는 방안을 다시 추진하고 있다. 중구청은 5월 31일 용적률 1500%, 최고 높이 212m로 개발을 허용하는 내용의 세운 재정비촉진지구 재정비촉진계획 변경 결정안을 공람 공고했다.

■ 200m 주상복합 시뮬레이션해보니 "종묘 역사경관·남산 자연경관 훼손"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는 서울시의 이 같은 계획이 실현될 경우 발생할 종묘 일대 경관을 시뮬레이션 했다.


2019년 시사기획 창 방송 당시, 문화재청 종묘관리소 직원이 입회해 촬영한 종묘 정전 앞 상월대 기준 지점 사진에 200m 건물이 들어섰을 때 경관 시뮬레이션 결과를 합성했다. 당시 문제가 됐던 높이 90m 써밋타워가 나무가 그리는 스카이라인을 다소 넘어선 데 비해, 200m 주상복합은 종묘 정전의 시야를 전면에서 가로막는 압도적인 크기다.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는 "종묘의 정전에서도 충분히 보이고도 남을 높이"라며 "숲으로 둘러싸인 종묘 내부에서 느끼는 조용함과 정숙함에 심각한 침해가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종묘 정전에서 남산 서울타워 방향은 나무의 높이가 높아, 비교적 현대식 건물들이 나무에 가려진다. 90m 건물은 종묘 숲의 나무가 성장하면 상월대에서 어느 정도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200m 높이의 건물이 들어서면 현대식 건물이 종묘의 역사적이고 전통적인 경관을 침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묘 주변에 키가 큰 나무를 심고 조경을 가꿔서 종묘 안에서 건물이 안 보이게 가릴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


나무 위로 보이는 건물 높이는 120m로 추정됐다. 2010년 문화재위원회가 제시한 '건물 최대 노출 층이 3개 층 이하'라는 기준과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

이 건물은 남산의 자연 경관도 훼손할 것으로 예상됐다. 서울시는 1994년에는 남산의 제 모습을 시민에게 돌려주겠다며 남산 자락에 있던 외인아파트를 1,500억 원을 들여 폭파해 해체한 바 있다. 한 세대 만에 서울시는 남산 경관을 가로막는 건물을 허용하는 계획을 내놓은 셈이다.


경관 시뮬레이션은 익명을 요구한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자문 건축가가 실시했다. 서울시의 S맵과 캐드를 활용해 각 지표면의 고도, 기존 건물의 높이를 토대로 데이터를 입력하고 새로운 구조물을 앉히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설계 프로그램을 활용한 종묘 일대 경관 시뮬레이션 작업.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제공.설계 프로그램을 활용한 종묘 일대 경관 시뮬레이션 작업.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제공.

■ "유네스코 실사단 파견" 요청…영국 리버풀, 재개발로 세계유산 박탈되기도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가 종묘 경관 훼손과 관련해 유네스코 본부에 보낸 민원.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가 종묘 경관 훼손과 관련해 유네스코 본부에 보낸 민원.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는 유네스코 본부에 보낸 민원에서 " 유네스코 세계 유산의 권위와 서울의 역사성을 위해서 한국정부와 서울시에 경고 조치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아울러, 세계 유산의 경관이 고밀 개발로 훼손했다는 논란이 거듭되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조선왕릉 중 김포 장릉은 인근의 아파트 개발로 이미 권위를 잃었고, 경건한 분위기를 유지해야 할 왕릉에서 병풍처럼 둘러싸인 아파트가 훤히 조망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유네스코 본부에서 대응 실사 모니터링단 파견과 엄격한 유산영향평가를 실시해달라고 요청했다. 단체는 시민들의 연대 서명을 받아 국내 관계기관과 유네스코에도 제출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유네스코는 세계유산의 경관을 저해하는 개발을 제지하는 활동을 해왔다. 영국 런던 시가 세계유산인 런던 타워 인근에 216m, 303m 높이의 건물을 신축하는 계획을 발표하자, 2006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현지 실사단을 파견해 경관적 요소의 보호와 고층건물 신축에 대한 지침 마련을 요구했다. 런던 시는 결국 건물 신축 계획을 철회했다. 오스트리아에서도 비엔나 중앙역의 복합 고층 건물 신축 계획이 현지 실사단이 파견된 뒤 전면 수정됐다.

세계유산위원회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으면 세계문화유산 자격이 박탈될 수도 있다. 해양 무역 도시의 역사성을 평가받아 2004년 세계유산에 역사도시로 등재됐던 영국 리버풀은 항구 주변의 대규모 재개발 사업으로 가치가 손상되자 2021년 지정이 취소됐다. 당시 유네스코는 "도심 재개발로 경관이 심하게 바뀌고 지역의 보편적 가치가 돌이킬 수 없이 손상됐다"고 지정 취소 사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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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7-11 07: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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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중구청, 세계문화유산 종묘 앞 212m 고밀 개발 추진<br />경관 시뮬레이션 결과, 종묘 시야에 현대식 건물 120m 노출<br />"역사경관 훼손 우려" 시민단체, 유네스코에 실사단 파견 요청

서울시의 계획대로 세운지구를 고밀 복합 개발하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의 역사경관이 심각하게 훼손될 거라는 경관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왔다.

지역 시민단체인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는 종묘 일대 경관 시뮬레이션 결과, 세운지구에 최고 200m의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서면 '종묘 정전에서 상월대를 바라볼 때 건축물 최상부' 120m가 종묘 시야에서 노출된다고 밝혔다.

2010년 문화재위원회가 종묘의 역사성과 역사문화환경 보존을 위해 정한 높이 기준은 '종묘 정전에서 상월대를 바라볼 때 건축물 최상부 3개 층 이하'였다. 종묘를 둘러싼 숲으로 현대식 건물을 가릴 수 있을 정도의 개발만 허용해, 의례 공간의 원형을 지켜야 한다는 취지였다.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는 경관 시뮬레이션 결과를 토대로 "서울시의 재개발 계획이 종묘의 세계유산적 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크다"며, 실사 모니터링단 파견과 유산영향평가 실시를 요청하는 민원을 10일 유네스코 본부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 종묘 앞 건물 높이, 최고 52.6m → 90m → 212m 계속 완화

조선 왕조의 유교 사당인 종묘는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종묘는 정면이 매우 긴 장엄한 건축물로, 정제된 건축 양식뿐만 아니라 공간 계획, 제례 봉행 등 무형적 가치가 높은 평가를 받아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숲으로 둘러싸인 공간이 문화재보호법과 서울시의 경관 계획으로 보호받아, 조용하고 경건한 분위기가 보존된다는 점도 등재 이유에 포함됐다. 종묘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종묘 앞 세운지구 일대의 높이 계획은 역사경관 보존을 위해 규제되어 왔다.

종묘 경관 보존을 위한 세운 4구역 건축물 높이 계획 변화 과정. SH공사 자료를 토대로 재구성.
실제로, 오세훈 시장이 2006년 처음 발표한 종묘 앞 최고 높이 122.3m의 세운지구 개발 계획은 문화재위의 심의가 거듭되면서 높이가 꾸준히 낮아졌다. 2010년에 문화재위원회의 기준이 정리됐고, 10여 차례의 심의를 받은 끝에 2018년에야 최고 높이 52.6m(종로 변 기준)로 통과됐다. 경관 시뮬레이션이 당시 심의의 주요 기준이었다.

박원순 시장은 이를 완화해, 세운3, 5구역을 문화재 심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최고 높이 90m까지 개발할 수 있도록 했다. 시사기획 창은 2019년 5월 방송한 '세운상가, 도시재생을 묻다' 편에서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입수한 관련 기관 문서를 통해, 종묘 앞 역사경관 보존 대책이 후퇴한 과정을 분석했다.

[연관 기사] 종묘 앞인데…세운4구역은 9년간 문화재 심의, 3구역은 면제? (2019.5.22)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4206326

돌아온 오세훈 시장은 종묘 앞 세운지구 일대를 고밀 복합 개발하는 방안을 다시 추진하고 있다. 중구청은 5월 31일 용적률 1500%, 최고 높이 212m로 개발을 허용하는 내용의 세운 재정비촉진지구 재정비촉진계획 변경 결정안을 공람 공고했다.

■ 200m 주상복합 시뮬레이션해보니 "종묘 역사경관·남산 자연경관 훼손"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는 서울시의 이 같은 계획이 실현될 경우 발생할 종묘 일대 경관을 시뮬레이션 했다.


2019년 시사기획 창 방송 당시, 문화재청 종묘관리소 직원이 입회해 촬영한 종묘 정전 앞 상월대 기준 지점 사진에 200m 건물이 들어섰을 때 경관 시뮬레이션 결과를 합성했다. 당시 문제가 됐던 높이 90m 써밋타워가 나무가 그리는 스카이라인을 다소 넘어선 데 비해, 200m 주상복합은 종묘 정전의 시야를 전면에서 가로막는 압도적인 크기다.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는 "종묘의 정전에서도 충분히 보이고도 남을 높이"라며 "숲으로 둘러싸인 종묘 내부에서 느끼는 조용함과 정숙함에 심각한 침해가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종묘 정전에서 남산 서울타워 방향은 나무의 높이가 높아, 비교적 현대식 건물들이 나무에 가려진다. 90m 건물은 종묘 숲의 나무가 성장하면 상월대에서 어느 정도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200m 높이의 건물이 들어서면 현대식 건물이 종묘의 역사적이고 전통적인 경관을 침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묘 주변에 키가 큰 나무를 심고 조경을 가꿔서 종묘 안에서 건물이 안 보이게 가릴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


나무 위로 보이는 건물 높이는 120m로 추정됐다. 2010년 문화재위원회가 제시한 '건물 최대 노출 층이 3개 층 이하'라는 기준과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

이 건물은 남산의 자연 경관도 훼손할 것으로 예상됐다. 서울시는 1994년에는 남산의 제 모습을 시민에게 돌려주겠다며 남산 자락에 있던 외인아파트를 1,500억 원을 들여 폭파해 해체한 바 있다. 한 세대 만에 서울시는 남산 경관을 가로막는 건물을 허용하는 계획을 내놓은 셈이다.


경관 시뮬레이션은 익명을 요구한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자문 건축가가 실시했다. 서울시의 S맵과 캐드를 활용해 각 지표면의 고도, 기존 건물의 높이를 토대로 데이터를 입력하고 새로운 구조물을 앉히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설계 프로그램을 활용한 종묘 일대 경관 시뮬레이션 작업.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제공.
■ "유네스코 실사단 파견" 요청…영국 리버풀, 재개발로 세계유산 박탈되기도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가 종묘 경관 훼손과 관련해 유네스코 본부에 보낸 민원.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는 유네스코 본부에 보낸 민원에서 " 유네스코 세계 유산의 권위와 서울의 역사성을 위해서 한국정부와 서울시에 경고 조치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아울러, 세계 유산의 경관이 고밀 개발로 훼손했다는 논란이 거듭되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조선왕릉 중 김포 장릉은 인근의 아파트 개발로 이미 권위를 잃었고, 경건한 분위기를 유지해야 할 왕릉에서 병풍처럼 둘러싸인 아파트가 훤히 조망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유네스코 본부에서 대응 실사 모니터링단 파견과 엄격한 유산영향평가를 실시해달라고 요청했다. 단체는 시민들의 연대 서명을 받아 국내 관계기관과 유네스코에도 제출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유네스코는 세계유산의 경관을 저해하는 개발을 제지하는 활동을 해왔다. 영국 런던 시가 세계유산인 런던 타워 인근에 216m, 303m 높이의 건물을 신축하는 계획을 발표하자, 2006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현지 실사단을 파견해 경관적 요소의 보호와 고층건물 신축에 대한 지침 마련을 요구했다. 런던 시는 결국 건물 신축 계획을 철회했다. 오스트리아에서도 비엔나 중앙역의 복합 고층 건물 신축 계획이 현지 실사단이 파견된 뒤 전면 수정됐다.

세계유산위원회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으면 세계문화유산 자격이 박탈될 수도 있다. 해양 무역 도시의 역사성을 평가받아 2004년 세계유산에 역사도시로 등재됐던 영국 리버풀은 항구 주변의 대규모 재개발 사업으로 가치가 손상되자 2021년 지정이 취소됐다. 당시 유네스코는 "도심 재개발로 경관이 심하게 바뀌고 지역의 보편적 가치가 돌이킬 수 없이 손상됐다"고 지정 취소 사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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