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보자마자 직감”…‘공항 테러’ 붙잡은 사이버 경찰

입력 2023.09.26 (11:41) 수정 2023.09.26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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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서울에 있는 피의자 자택에서 박정민 수사관이 압수한 노트북을 분석하고 있다. 제주경찰청 제공지난달 23일, 서울에 있는 피의자 자택에서 박정민 수사관이 압수한 노트북을 분석하고 있다. 제주경찰청 제공

■ '공항 테러 예고' 게시자 검거한 제주청 사이버범죄수사대 인터뷰

지난달 6일 밤, 한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 게시판에 전국 5개 국제공항을 대상으로 "폭탄 테러와 흉기 살인을 하겠다"는 내용의 협박성 글이 잇따라 올라왔습니다.

다음 날 자정을 조금 넘어서까지 제주와 김해, 대구와 인천, 김포공항을 겨냥해 게시된 테러 예고 글은 모두 6건. 각각 다른 해외 IP로 우회 접속해 글을 쓴 뒤, 즉각 노트북과 휴대전화를 초기화하는 나름의 '치밀함'까지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폭탄테러'를 예고한 서울에 사는 30대 초반 남성은 범행 17일 만에, 제주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의 압수수색을 받습니다. "설마 날 잡을 수 있겠어?" 하며 경찰의 두 번째 소환 조사를 받기 전까지도 극구 혐의를 부인했던 그였습니다.

그러나 이 남성을 붙잡은 제주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박정민 경사는 "압수수색 당시 컴퓨터를 보자마자, 단번에 이 사람이 범인이라고 확신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19일, 제주경찰청 김성훈 사이버범죄수사대장(맨 오른쪽)과 박정민 수사관(맨 왼쪽)이 KBS제주 1라디오 프로그램 ‘제주포커스’에 출연해 사건 수사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지난 19일, 제주경찰청 김성훈 사이버범죄수사대장(맨 오른쪽)과 박정민 수사관(맨 왼쪽)이 KBS제주 1라디오 프로그램 ‘제주포커스’에 출연해 사건 수사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전국 주요 국제공항에 테러 예고 글을 올린 남성을 붙잡은 제주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장 김성훈 경정, 그리고 이번 사건 피의자를 직접 수사한 박정민 경사는 최근 KBS제주 1라디오 프로그램 '제주포커스'에 출연해, 당시 수사 과정과 피의자 검거 뒷이야기를 풀어놓았습니다.

■ "경찰이 진짜 날 잡을 수 있을까 시험"…17일 만에 덜미

제주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가 문제의 '테러 예고 글'을 발견한 것은 지난달 6일 밤. 앞서 피의자가 첫 글을 올린지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때로, 온라인 실시간 모니터링 중이던 제주경찰도 이 같은 글이 게시된 사실을 파악하고 바로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이름도 얼굴도 알지 못하는 익명의 인물이 온라인 공간에 쓴 글을 도대체 누가 어디서 썼는지 파악하고 어떻게 추적할 수 있었던 걸까.

지난달 6일 밤, 피의자가 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린 제주공항 폭탄·흉기 테러 글지난달 6일 밤, 피의자가 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린 제주공항 폭탄·흉기 테러 글

김성훈 제주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장은 "게시글 6개 모두 각기 다른 해외 IP를 사용했다. IP는 컴퓨터를 식별할 수 있는 주소라고 보면 된다"면서 "피의자는 컴퓨터에 접속할 때마다 IP를 바꿨고, 글을 올리고 나서는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아예 초기화했다"고 수사 당시 어려움을 밝혔습니다.

제주경찰청뿐만 아니라 '테러 예고'의 대상지였던 다른 지역 4개 국제공항의 관할 경찰청도 문제의 글 게시자 찾기에 나선 상황. 내로라하는 전국 사이버범죄수사관들이 달라붙었지만 며칠이 지나도 수사는 별 진척이 없었습니다.

제주경찰청은 방대한 자료 분석 끝에 이 남성이 최초로 테러 예고글을 올린 지 보름여 만인 지난달 말 서울에 있는 피의자 거주지를 특정했고, 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 곧바로 이 남성의 노트북과 휴대전화, 외장 하드 등 증거물을 확보했습니다.

이 남성의 집에서 실제 테러를 벌일 수 있는 무기나 흉기 등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 "글 6개 모두 같은 사람이 썼을 것" 가설 세워…"컴퓨터 보자마자 범인 확신"

제주경찰청이 빠르게 피의자를 특정할 수 있었던 데는 '6개 글을 한 사람이 썼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던 것이 주효했습니다. 경찰은 이 같은 가설을 토대로 수사 범위를 넓혔고, 보름여 만에 피의자를 찾아냈습니다.

제주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가 피의자 남성의 집에서 압수한 노트북과 휴대전화, 외장하드 등. 제주경찰청 제공제주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가 피의자 남성의 집에서 압수한 노트북과 휴대전화, 외장하드 등. 제주경찰청 제공

제주경찰이 제공한 압수수색 당시 영상을 보면 박정민 수사관이 컴퓨터를 이리저리 조작하며 피의자에게 "이거, 컴퓨터 한 번 미셨나 봐요. 포맷하셨어요?"라고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박정민 경사는 "네, 그게 바로 저였다. 이렇게 음성으로나마 전국 방송을 타게 돼서 영광이었다"며 웃어 보였습니다.

당시 수사 과정을 묻는 진행자의 질문에 박 경사는 "가장 중요했던 건, 피의자가 썼던 컴퓨터였다"고 운을 뗐습니다.

박 경사는 "(압수수색 중 컴퓨터를 살펴본 것은) 피의자가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했던 프로그램이 설치되어 있는지를 탐색하는 과정이었다"면서 "컴퓨터를 열자마자 (확인해 보니) IP 주소를 바꿀 수 있는 프로그램이 동작하고 있었고, 모든 컴퓨터의 설정이 범행일 이후인 8월 9일로 되어 있었다"고 압수수색일 당시를 떠올렸습니다.

2023년 9월 12일 KBS 뉴스 7 제주2023년 9월 12일 KBS 뉴스 7 제주

이어 "그동안 많은 압수수색 현장을 가봤지만, 이번 피의자처럼 모든 컴퓨터와 휴대전화가 초기화되어 있고, 인터넷 접속 기록이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깨끗한 컴퓨터는 처음이었다"면서 "그래서 오히려 '이 사람이 범인이 맞다'라고 확신했고, '우리를 시험해보려고 범행했나?'라는 생각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공항 테러 예고글을 올린 남성이 뒤늦게 범행을 시인하며 "해외 IP로 추적 회피를 사용하면, 경찰이 과연 자신을 잡을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었다"고 범행 동기를 자백한 것을 보면, 박 경사는 이미 압수수색 당시부터 이 남성의 의중을 꿰뚫고 있던 겁니다.

박 경사는 "처음 피의자 집에 갔을 때 여러 가지 흔적들을 봤다. 또 경찰관으로서의 '직감'이라고 해야 하나, 이런 점을 토대로 이 남성이 '범인'임이 분명해 보였다. 같은 팀원들에게도 '(피의자가) 우리를 테스트하는 것 같다'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 경찰이 증거 들이밀자 뒤늦게 범행 실토…피의자는 '은둔형 외톨이'

경찰에 잡힌 이 남성은 수사 초기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습니다. 경찰의 압수수색 이후 제주경찰청에서의 1차 소환조사에서도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며 완강한 자세를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이달 초, 제주경찰청의 2차 소환조사에서 경찰이 압수한 증거물 분석 자료를 내밀자 그제야 "자신이 한 짓이 맞다"라고 뒤늦게 범행 사실을 실토했습니다.


수사팀을 지휘한 김성훈 사이버범죄수사대장도 신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 대장은 "압수수색을 했는데도 혐의를 부인하는 상황인지라, 상부에 보고해야 하는 입장에선 해당 피의자가 실제 범인이 맞는지 섣불리 확신하기가 쉽진 않았다"며 "만약에라도 범인이 아니었을 경우의 상황 역시 고려했어야 했기에 더욱 조심스러웠다"고 말했습니다.

상사는 부하 직원의 '직감'과 '능력'을 믿었습니다. "압수수색을 하고 온 박 경사가 '무조건 200%다, 이 남성이 맞다'라며 초지일관 확신에 찬 목소리로 피의자를 지목했다. 그래서 저도 '믿고, 고(Go)!' 한 것도 있다"며 미소지었습니다.

제주경찰이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을 통해 이 남성의 심리 등을 검사한 결과, 대인 관계가 매우 적은 이른바 '은둔형 외톨이' 척도에 해당하는 점수가 나온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는 앞서 '테러 예고글'을 올린 유사한 사건의 피의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난 특성이기도 합니다.

다만 이번 피의자의 경우 공격적인 성향이나 반사회적인 성향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경찰은 이 같은 검사 결과를 토대로 "이 남성이 실제로 테러 행위를 직접 실행에 옮겼을 가능성은 적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 사이버 전문 수사관 특채로 경찰 입문…7년간 사이버 수사 전담

이번 공항 테러 예고 게시글 피의자를 붙잡은 30대 초반의 박정민 경사는 7년째 사이버 범죄 수사 업무만을 맡아온 자타공인 전문가입니다.

박 경사는 현재 제주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내 '테러 수사팀' 소속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주로 해킹 등 컴퓨터 정보통신망에 침입해 변작(變作)을 일으키는 것과 같이, 기술적인 분석을 요구하는 유형의 사이버 범죄 수사를 전담하는 팀입니다.

그는 "대학에서 정보보호학과를 전공했고 졸업한 뒤 한국인터넷진흥원에서 바이러스 분석 업무를 2년간 했다"면서 "이후 경찰의 사이버 전문 수사관 특채 제도를 통해 2016년 입직해 현재까지 사이버 수사관으로 근무 중"이라고 이력을 소개했습니다.

지난달 경찰청에서 주최하는 '2023 폴-사이버 챌린지 대회'에서 금상을 차지한 박정민 경사(맨 오른쪽). 경찰은 사이버 수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매년 사이버범죄 추적 기법 경진대회를 열고 있다.지난달 경찰청에서 주최하는 '2023 폴-사이버 챌린지 대회'에서 금상을 차지한 박정민 경사(맨 오른쪽). 경찰은 사이버 수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매년 사이버범죄 추적 기법 경진대회를 열고 있다.

박정민 경사는 학생 시절 해킹 대회에서 1등을 수상한 경력이 있습니다. 여기에 지난달 경찰청에서 주최하는 '2023 폴-사이버 챌린지 대회'에서 팀으로 함께 출전한 동료들과 함께 대상 다음으로 높은 상인 금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 대회는 매년 경찰청 본부에서 주최하는 사이버범죄 추적 기법 경진대회로, 사이버범죄수사대 소속 수사관뿐만 아니라 경찰청 소속 경찰관과 일반직 공무원 등 13만 명 가운데 누구나 참가할 수 있습니다.

올해 대회도 바이러스가 담긴 파일을 받은 참가자들이 이를 분석해, 어디에서부터 바이러스 공격자가 왔는지 추적해 찾아내는 방식으로 열렸습니다. 컴퓨터에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하는 전국 각지 경찰청 소속 수사관들이 치열한 예선을 거쳐 본선에서 사이버범죄 추적 실력을 겨뤘습니다.

박 경사는 "(컴퓨터 외에도) 활동적인 것을 좋아한다"면서 "8년간 발레를 배우고 있고, 클라이밍(암벽 등반)이나 승마도 즐겨 한다.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제주로 와서 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며 빙긋 웃었습니다.

■ "국가 중요 시설 대상으로 테러 협박…응당한 처벌 받게 될 것"

한편 이번에 제주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가 잡은 공항 테러 예고글 게시자는 현재 구속돼 검찰에 넘겨진 상태입니다.


김성훈 대장은 "'잡을 테면 잡아보라'고 했고, 경찰이 잡았기 때문에 응당한 처분을 받게 될 것"이라며 "협박,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 즉 거짓말로 경찰관들을 속여서 경찰관의 정당한 공무집행을 방해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여기에 협박 대상이 국가 중요 시설인 공항이었으므로, 여죄로 항공보안법 위반 혐의를 추가로 적용했다"고 설명했습니다.

30대 초반 남성의 철없는 범행으로 전국적으로 300명이 넘는 경찰력과 각종 대테러 장비가 동원되는 막대한 공권력 낭비도 벌어졌습니다. 경찰은 법무부 등과 협의해 민사상 손해배상도 청구하기로 하고 적정 손해배상액을 산정하고 있습니다.

■ "장난으로라도 허위 글 게시·신고는 엄벌 대상"

실제로 폭탄 테러를 하려고 한 의도가 아닐지라도, 이번 사건처럼 '경찰이 어떻게 나오나 보자'하고 허위로 테러 예고 글을 올렸다면 이는 "당연한 처벌 대상"이라고 경찰은 강조했습니다.

김성훈 대장은 "수사 과정에서 만약 흉기 같은 위험한 도구까지 발견된다면, 살인예비죄까지도 적용될 수 있는 엄중한 범죄"라면서 "해외 IP로 우회하든, 컴퓨터를 포맷(초기화)해 흔적을 없애면서까지 흉악 범죄 예고글을 온라인에 게시할지라도, 전국에 있는 사이버범죄 전문 수사관들이 끝까지 찾아내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김 대장은 이어 "어린 자녀들이나 주변 분들에게도 다시 한번 이런 행위의 심각성에 대해서 잘 교육하고, 타일러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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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트북 보자마자 직감”…‘공항 테러’ 붙잡은 사이버 경찰
    • 입력 2023-09-26 11:41:26
    • 수정2023-09-26 16:2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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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서울에 있는 피의자 자택에서 박정민 수사관이 압수한 노트북을 분석하고 있다. 제주경찰청 제공
■ '공항 테러 예고' 게시자 검거한 제주청 사이버범죄수사대 인터뷰

지난달 6일 밤, 한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 게시판에 전국 5개 국제공항을 대상으로 "폭탄 테러와 흉기 살인을 하겠다"는 내용의 협박성 글이 잇따라 올라왔습니다.

다음 날 자정을 조금 넘어서까지 제주와 김해, 대구와 인천, 김포공항을 겨냥해 게시된 테러 예고 글은 모두 6건. 각각 다른 해외 IP로 우회 접속해 글을 쓴 뒤, 즉각 노트북과 휴대전화를 초기화하는 나름의 '치밀함'까지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폭탄테러'를 예고한 서울에 사는 30대 초반 남성은 범행 17일 만에, 제주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의 압수수색을 받습니다. "설마 날 잡을 수 있겠어?" 하며 경찰의 두 번째 소환 조사를 받기 전까지도 극구 혐의를 부인했던 그였습니다.

그러나 이 남성을 붙잡은 제주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박정민 경사는 "압수수색 당시 컴퓨터를 보자마자, 단번에 이 사람이 범인이라고 확신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19일, 제주경찰청 김성훈 사이버범죄수사대장(맨 오른쪽)과 박정민 수사관(맨 왼쪽)이 KBS제주 1라디오 프로그램 ‘제주포커스’에 출연해 사건 수사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전국 주요 국제공항에 테러 예고 글을 올린 남성을 붙잡은 제주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장 김성훈 경정, 그리고 이번 사건 피의자를 직접 수사한 박정민 경사는 최근 KBS제주 1라디오 프로그램 '제주포커스'에 출연해, 당시 수사 과정과 피의자 검거 뒷이야기를 풀어놓았습니다.

■ "경찰이 진짜 날 잡을 수 있을까 시험"…17일 만에 덜미

제주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가 문제의 '테러 예고 글'을 발견한 것은 지난달 6일 밤. 앞서 피의자가 첫 글을 올린지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때로, 온라인 실시간 모니터링 중이던 제주경찰도 이 같은 글이 게시된 사실을 파악하고 바로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이름도 얼굴도 알지 못하는 익명의 인물이 온라인 공간에 쓴 글을 도대체 누가 어디서 썼는지 파악하고 어떻게 추적할 수 있었던 걸까.

지난달 6일 밤, 피의자가 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린 제주공항 폭탄·흉기 테러 글
김성훈 제주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장은 "게시글 6개 모두 각기 다른 해외 IP를 사용했다. IP는 컴퓨터를 식별할 수 있는 주소라고 보면 된다"면서 "피의자는 컴퓨터에 접속할 때마다 IP를 바꿨고, 글을 올리고 나서는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아예 초기화했다"고 수사 당시 어려움을 밝혔습니다.

제주경찰청뿐만 아니라 '테러 예고'의 대상지였던 다른 지역 4개 국제공항의 관할 경찰청도 문제의 글 게시자 찾기에 나선 상황. 내로라하는 전국 사이버범죄수사관들이 달라붙었지만 며칠이 지나도 수사는 별 진척이 없었습니다.

제주경찰청은 방대한 자료 분석 끝에 이 남성이 최초로 테러 예고글을 올린 지 보름여 만인 지난달 말 서울에 있는 피의자 거주지를 특정했고, 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 곧바로 이 남성의 노트북과 휴대전화, 외장 하드 등 증거물을 확보했습니다.

이 남성의 집에서 실제 테러를 벌일 수 있는 무기나 흉기 등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 "글 6개 모두 같은 사람이 썼을 것" 가설 세워…"컴퓨터 보자마자 범인 확신"

제주경찰청이 빠르게 피의자를 특정할 수 있었던 데는 '6개 글을 한 사람이 썼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던 것이 주효했습니다. 경찰은 이 같은 가설을 토대로 수사 범위를 넓혔고, 보름여 만에 피의자를 찾아냈습니다.

제주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가 피의자 남성의 집에서 압수한 노트북과 휴대전화, 외장하드 등. 제주경찰청 제공
제주경찰이 제공한 압수수색 당시 영상을 보면 박정민 수사관이 컴퓨터를 이리저리 조작하며 피의자에게 "이거, 컴퓨터 한 번 미셨나 봐요. 포맷하셨어요?"라고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박정민 경사는 "네, 그게 바로 저였다. 이렇게 음성으로나마 전국 방송을 타게 돼서 영광이었다"며 웃어 보였습니다.

당시 수사 과정을 묻는 진행자의 질문에 박 경사는 "가장 중요했던 건, 피의자가 썼던 컴퓨터였다"고 운을 뗐습니다.

박 경사는 "(압수수색 중 컴퓨터를 살펴본 것은) 피의자가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했던 프로그램이 설치되어 있는지를 탐색하는 과정이었다"면서 "컴퓨터를 열자마자 (확인해 보니) IP 주소를 바꿀 수 있는 프로그램이 동작하고 있었고, 모든 컴퓨터의 설정이 범행일 이후인 8월 9일로 되어 있었다"고 압수수색일 당시를 떠올렸습니다.

2023년 9월 12일 KBS 뉴스 7 제주
이어 "그동안 많은 압수수색 현장을 가봤지만, 이번 피의자처럼 모든 컴퓨터와 휴대전화가 초기화되어 있고, 인터넷 접속 기록이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깨끗한 컴퓨터는 처음이었다"면서 "그래서 오히려 '이 사람이 범인이 맞다'라고 확신했고, '우리를 시험해보려고 범행했나?'라는 생각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공항 테러 예고글을 올린 남성이 뒤늦게 범행을 시인하며 "해외 IP로 추적 회피를 사용하면, 경찰이 과연 자신을 잡을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었다"고 범행 동기를 자백한 것을 보면, 박 경사는 이미 압수수색 당시부터 이 남성의 의중을 꿰뚫고 있던 겁니다.

박 경사는 "처음 피의자 집에 갔을 때 여러 가지 흔적들을 봤다. 또 경찰관으로서의 '직감'이라고 해야 하나, 이런 점을 토대로 이 남성이 '범인'임이 분명해 보였다. 같은 팀원들에게도 '(피의자가) 우리를 테스트하는 것 같다'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 경찰이 증거 들이밀자 뒤늦게 범행 실토…피의자는 '은둔형 외톨이'

경찰에 잡힌 이 남성은 수사 초기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습니다. 경찰의 압수수색 이후 제주경찰청에서의 1차 소환조사에서도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며 완강한 자세를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이달 초, 제주경찰청의 2차 소환조사에서 경찰이 압수한 증거물 분석 자료를 내밀자 그제야 "자신이 한 짓이 맞다"라고 뒤늦게 범행 사실을 실토했습니다.


수사팀을 지휘한 김성훈 사이버범죄수사대장도 신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 대장은 "압수수색을 했는데도 혐의를 부인하는 상황인지라, 상부에 보고해야 하는 입장에선 해당 피의자가 실제 범인이 맞는지 섣불리 확신하기가 쉽진 않았다"며 "만약에라도 범인이 아니었을 경우의 상황 역시 고려했어야 했기에 더욱 조심스러웠다"고 말했습니다.

상사는 부하 직원의 '직감'과 '능력'을 믿었습니다. "압수수색을 하고 온 박 경사가 '무조건 200%다, 이 남성이 맞다'라며 초지일관 확신에 찬 목소리로 피의자를 지목했다. 그래서 저도 '믿고, 고(Go)!' 한 것도 있다"며 미소지었습니다.

제주경찰이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을 통해 이 남성의 심리 등을 검사한 결과, 대인 관계가 매우 적은 이른바 '은둔형 외톨이' 척도에 해당하는 점수가 나온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는 앞서 '테러 예고글'을 올린 유사한 사건의 피의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난 특성이기도 합니다.

다만 이번 피의자의 경우 공격적인 성향이나 반사회적인 성향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경찰은 이 같은 검사 결과를 토대로 "이 남성이 실제로 테러 행위를 직접 실행에 옮겼을 가능성은 적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 사이버 전문 수사관 특채로 경찰 입문…7년간 사이버 수사 전담

이번 공항 테러 예고 게시글 피의자를 붙잡은 30대 초반의 박정민 경사는 7년째 사이버 범죄 수사 업무만을 맡아온 자타공인 전문가입니다.

박 경사는 현재 제주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내 '테러 수사팀' 소속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주로 해킹 등 컴퓨터 정보통신망에 침입해 변작(變作)을 일으키는 것과 같이, 기술적인 분석을 요구하는 유형의 사이버 범죄 수사를 전담하는 팀입니다.

그는 "대학에서 정보보호학과를 전공했고 졸업한 뒤 한국인터넷진흥원에서 바이러스 분석 업무를 2년간 했다"면서 "이후 경찰의 사이버 전문 수사관 특채 제도를 통해 2016년 입직해 현재까지 사이버 수사관으로 근무 중"이라고 이력을 소개했습니다.

지난달 경찰청에서 주최하는 '2023 폴-사이버 챌린지 대회'에서 금상을 차지한 박정민 경사(맨 오른쪽). 경찰은 사이버 수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매년 사이버범죄 추적 기법 경진대회를 열고 있다.
박정민 경사는 학생 시절 해킹 대회에서 1등을 수상한 경력이 있습니다. 여기에 지난달 경찰청에서 주최하는 '2023 폴-사이버 챌린지 대회'에서 팀으로 함께 출전한 동료들과 함께 대상 다음으로 높은 상인 금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 대회는 매년 경찰청 본부에서 주최하는 사이버범죄 추적 기법 경진대회로, 사이버범죄수사대 소속 수사관뿐만 아니라 경찰청 소속 경찰관과 일반직 공무원 등 13만 명 가운데 누구나 참가할 수 있습니다.

올해 대회도 바이러스가 담긴 파일을 받은 참가자들이 이를 분석해, 어디에서부터 바이러스 공격자가 왔는지 추적해 찾아내는 방식으로 열렸습니다. 컴퓨터에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하는 전국 각지 경찰청 소속 수사관들이 치열한 예선을 거쳐 본선에서 사이버범죄 추적 실력을 겨뤘습니다.

박 경사는 "(컴퓨터 외에도) 활동적인 것을 좋아한다"면서 "8년간 발레를 배우고 있고, 클라이밍(암벽 등반)이나 승마도 즐겨 한다.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제주로 와서 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며 빙긋 웃었습니다.

■ "국가 중요 시설 대상으로 테러 협박…응당한 처벌 받게 될 것"

한편 이번에 제주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가 잡은 공항 테러 예고글 게시자는 현재 구속돼 검찰에 넘겨진 상태입니다.


김성훈 대장은 "'잡을 테면 잡아보라'고 했고, 경찰이 잡았기 때문에 응당한 처분을 받게 될 것"이라며 "협박,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 즉 거짓말로 경찰관들을 속여서 경찰관의 정당한 공무집행을 방해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여기에 협박 대상이 국가 중요 시설인 공항이었으므로, 여죄로 항공보안법 위반 혐의를 추가로 적용했다"고 설명했습니다.

30대 초반 남성의 철없는 범행으로 전국적으로 300명이 넘는 경찰력과 각종 대테러 장비가 동원되는 막대한 공권력 낭비도 벌어졌습니다. 경찰은 법무부 등과 협의해 민사상 손해배상도 청구하기로 하고 적정 손해배상액을 산정하고 있습니다.

■ "장난으로라도 허위 글 게시·신고는 엄벌 대상"

실제로 폭탄 테러를 하려고 한 의도가 아닐지라도, 이번 사건처럼 '경찰이 어떻게 나오나 보자'하고 허위로 테러 예고 글을 올렸다면 이는 "당연한 처벌 대상"이라고 경찰은 강조했습니다.

김성훈 대장은 "수사 과정에서 만약 흉기 같은 위험한 도구까지 발견된다면, 살인예비죄까지도 적용될 수 있는 엄중한 범죄"라면서 "해외 IP로 우회하든, 컴퓨터를 포맷(초기화)해 흔적을 없애면서까지 흉악 범죄 예고글을 온라인에 게시할지라도, 전국에 있는 사이버범죄 전문 수사관들이 끝까지 찾아내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김 대장은 이어 "어린 자녀들이나 주변 분들에게도 다시 한번 이런 행위의 심각성에 대해서 잘 교육하고, 타일러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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