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거장을 만나다] 깎되, 깎지 않는다…‘불각’ 조각가 김종영

입력 2023.10.04 (19:44) 수정 2023.10.04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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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경남의 거장을 만나다,

이달의 거장은 창원 소답리에서 태어난 한국 추상 조각의 선구자 '우성' 김종영 선생입니다.

깎되, 깎지 않는다는 '불각의 아름다움'을 완성한 김종영의 작품 세계와 삶을 진정은 기자가 조명합니다.

[리포트]

서울 북한산 자락 비탈면에 깃든 김종영 미술관.

작가의 작품을 만나려면 소담한 개울과 정원을 지나야 합니다.

개울 디딤돌과 정원 '모대'는 작가의 고향 집에서 옮겨온 것들입니다.

작가가 남긴 작품 5천여 점.

그 가운데 첫 번째로 꼽히는 '자각상'입니다.

[박춘호/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 : "60년대에 숭례문 복원하면서 그때 거기서 나온 나무를 가지고, 이목구비가 나무의 결에 의해서 표현이 된 아주 특이한 형태입니다."]

'작품 74 다시 6', 1974년에 여섯 번째로 만든 작품이라는 뜻입니다.

2백여 점 조각 대부분 제작 연도와 번호만 있을 뿐, 특별한 제목은 없습니다.

["특별한 단어를 사용하면 관객들에게 사전에 어떠한 이미지를 만들어줄 수 있기 때문에…."]

작가는 6·25 전쟁 중이던 1953년 국내 최초로 국제 공모전에 입상하고, 30년 넘게 제자들을 길러내고, 조각은 물론 서예와 드로잉 등 수많은 걸작을 남겼습니다.

[최종태/92/김종영미술관 명예관장 : "(김종영 선생님은) 최초로 추상 조각을 만드신 분이에요. 그 후 우리 세대까지 내려와서 지금 한국 조각계가 이렇게 번성하게 됐어요."]

그러나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작업을 인적 드문 달동네 마당이나 학교에서 홀로 했고, 생전 전시회는 단 두 차례에 그쳤습니다.

["작품을 발표하는 걸 안 했어요. 그게 자기 내면에 더 충실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 같아요."]

'깎되 깎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형상을 깎기보다 내면의 소박함과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불각의 아름다움'.

그 토대는 고향에서 시작됐습니다.

동요의 배경이 된 창원 소답리 사대부가.

작가는 1915년 이 집의 장손으로 태어났습니다.

[김정하/김종영 조각가 제종 조카 : "제 큰아버지(김종영)의 생가이면서 소싯적에 생활했던 터전으로 공동 우물이 있으면서 이 마을의 구심점이 되었던 집입니다."]

선비인 아버지로부터 배운 한학과 서예는 동양 철학을 바탕으로 서양 추상 세계를 해석하는 뿌리가 됐습니다.

[박춘호/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 : "평생 서예를 하셨기 때문에 선이 하나로 이어지고 끊기고 그러한 원리를 일찍부터 터득을 하셨단 말입니다. 그것이 작품에 적용됐는데…."]

1982년 작가가 67살로 타계하고 20년 뒤 유족들이 서울에 세운 미술관은 20년 넘도록 무료로 운영하며 작품의 90% 이상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아름다운 창원 생가는 1994년 본채와 별채 사이 도로가 나는 수모를 겪었고, 지금은 별채 '사미루' 누각도 점점 낡아가고 있지만, 작가는 그의 작품 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이 고향 창원의 산과 하늘, 그리고 달이었다 말했습니다.

KBS 뉴스 진정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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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의 거장을 만나다] 깎되, 깎지 않는다…‘불각’ 조각가 김종영
    • 입력 2023-10-04 19:44:58
    • 수정2023-10-04 20:09:49
    뉴스7(창원)
[앵커]

경남의 거장을 만나다,

이달의 거장은 창원 소답리에서 태어난 한국 추상 조각의 선구자 '우성' 김종영 선생입니다.

깎되, 깎지 않는다는 '불각의 아름다움'을 완성한 김종영의 작품 세계와 삶을 진정은 기자가 조명합니다.

[리포트]

서울 북한산 자락 비탈면에 깃든 김종영 미술관.

작가의 작품을 만나려면 소담한 개울과 정원을 지나야 합니다.

개울 디딤돌과 정원 '모대'는 작가의 고향 집에서 옮겨온 것들입니다.

작가가 남긴 작품 5천여 점.

그 가운데 첫 번째로 꼽히는 '자각상'입니다.

[박춘호/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 : "60년대에 숭례문 복원하면서 그때 거기서 나온 나무를 가지고, 이목구비가 나무의 결에 의해서 표현이 된 아주 특이한 형태입니다."]

'작품 74 다시 6', 1974년에 여섯 번째로 만든 작품이라는 뜻입니다.

2백여 점 조각 대부분 제작 연도와 번호만 있을 뿐, 특별한 제목은 없습니다.

["특별한 단어를 사용하면 관객들에게 사전에 어떠한 이미지를 만들어줄 수 있기 때문에…."]

작가는 6·25 전쟁 중이던 1953년 국내 최초로 국제 공모전에 입상하고, 30년 넘게 제자들을 길러내고, 조각은 물론 서예와 드로잉 등 수많은 걸작을 남겼습니다.

[최종태/92/김종영미술관 명예관장 : "(김종영 선생님은) 최초로 추상 조각을 만드신 분이에요. 그 후 우리 세대까지 내려와서 지금 한국 조각계가 이렇게 번성하게 됐어요."]

그러나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작업을 인적 드문 달동네 마당이나 학교에서 홀로 했고, 생전 전시회는 단 두 차례에 그쳤습니다.

["작품을 발표하는 걸 안 했어요. 그게 자기 내면에 더 충실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 같아요."]

'깎되 깎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형상을 깎기보다 내면의 소박함과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불각의 아름다움'.

그 토대는 고향에서 시작됐습니다.

동요의 배경이 된 창원 소답리 사대부가.

작가는 1915년 이 집의 장손으로 태어났습니다.

[김정하/김종영 조각가 제종 조카 : "제 큰아버지(김종영)의 생가이면서 소싯적에 생활했던 터전으로 공동 우물이 있으면서 이 마을의 구심점이 되었던 집입니다."]

선비인 아버지로부터 배운 한학과 서예는 동양 철학을 바탕으로 서양 추상 세계를 해석하는 뿌리가 됐습니다.

[박춘호/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 : "평생 서예를 하셨기 때문에 선이 하나로 이어지고 끊기고 그러한 원리를 일찍부터 터득을 하셨단 말입니다. 그것이 작품에 적용됐는데…."]

1982년 작가가 67살로 타계하고 20년 뒤 유족들이 서울에 세운 미술관은 20년 넘도록 무료로 운영하며 작품의 90% 이상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아름다운 창원 생가는 1994년 본채와 별채 사이 도로가 나는 수모를 겪었고, 지금은 별채 '사미루' 누각도 점점 낡아가고 있지만, 작가는 그의 작품 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이 고향 창원의 산과 하늘, 그리고 달이었다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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