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선물 사야하는데”…북 노동자, ‘2만원의 벽’ [특파원 리포트][북중접경]①
입력 2024.04.22 (08:00)
수정 2024.04.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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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아! 빨리 오라!"
"커피색. 짙은 걸로 사거라. 그래, 그 색깔."
"커서 너는 못 입는다고 몇 번을 말해주니?"
지난 15일, 북한 신의주와 마주보고 있는 접경지역인 중국 랴오닝성 단둥시 시내의 한 쇼핑센터에서 익숙한 듯 낯선 북한 말이 들려왔습니다.
저가 물건을 파는 센터지만, 하나 같이 들뜬 표정으로 니트나 셔츠 위에 정장 재킷을 걸쳤습니다. 편한 일상복이라기보다는 꽤 신경 써서 차려입은 느낌이었습니다.
이날, 구매한 물건을 한보따리씩 들고 잰 걸음으로 4층짜리 쇼핑센터 곳곳을 돌아다니던 북한 여성들의 정체는 바로 단둥 소재 공장에서 근무하는 북한 외화벌이 노동자들입니다.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이들은 원래 공장 안 기숙사에서만 생활하고 1년에 최대 3번 외출을 허락받습니다.
바로 4월 15일 김일성 생일, 5월 1일 노동절, 10월 10일 조선 노동당 창건기념일입니다.
그중 하루인 김일성 생일을 맞아 오랜만에 단체 쇼핑을 온 노동자들을 기자가 목격할 수 있었던 겁니다.
일 년에 최대 세 번뿐인 쇼핑 기회. 무엇을 사고 싶을까요?
[연관 기사] 북 노동자, 압록강변 나들이·쇼핑…접경지역 김일성 생일맞이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940115
쇼핑에 한창인 북한 노동자들. 이들에게는 1년에 최대 세 번 외출이 허용된다.
■"엄마 선물 사야 하는데..." … 2만 원 짝퉁 가방도 '머뭇'
"엄마 선물 사야 하는데..."
사람 마음은 남과 북이 다르지 않습니다. 멀리 고향에 있는 부모님 선물이 1순위입니다.
특히 옷과 가방, 화장품이 인기가 많았습니다. 나름 해외에서 근무하면서 가족들에게 고향에서는 사기 힘든 외제 선물을 줄 수 있는 귀한 기회입니다.
그러다 보니 옷은 대부분 외출복 용도의 단정한 니트류를 보는 듯 했고, 해외 명품 브랜드의 짝퉁 가방도 이것저것 들어보며 신중하게 고르는 모습이었습니다.
문제는 가격입니다. 물건 하나 당 중국 돈 100위안, 우리 돈 약 2만 원을 넘기지 않으려고 흥정에 애쓰는 모습이었습니다. 아무리 귀해도 100위안을 넘기면 안 된다는 일종의 심리적 장벽이 있는 듯했습니다.
200위안(약 4만 원) 좀 넘는 옷을 90위안으로 깎으려다 얼토당토않다는 사장의 반응에 발길을 돌리는 사람도 있었고, 제법 넉넉한 크기의 짝퉁 가방을 이것 저것 보다가 150위안이라는 가격을 듣고는 작은 핸드백을 사고 싶다고 말을 바꾸기도 했습니다.
그나마 좀 편하게 구매하는건 30위안 ~ 70위안(6천 원~1만 3천 원) 안팎의 저렴한 묶음 속옷이나 내복 정도였습니다.
짝퉁 가방을 고르는 북한 노동자들의 모습. 우리돈 2만원짜리 가방도 이들에겐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날 이들이 들고 온 현금은 평소에는 만질 수 없는 귀한 돈입니다.
대북 소식통들의 말을 종합하면, 단둥에서 일하는 북한 외화벌이 공장 노동자들의 한 달 월급은 1800 ~ 2000 위안(우리 돈 약 34만 원 ~ 38만 원)사이로 책정됩니다.
그런데 이 중 반 이상을 당국에서 떼어가고 실제로는 한 달에 800 ~ 1,000위안(우리돈 15만 원~19만 원)만 가져갑니다.
그나마도 현금으로 받지 못합니다. 서류에 돈을 받았다는 서명만 하고 월급은 당국에서 관리하다가 파견기간이 끝나고 북한으로 돌아갈 때나 받을 수 있습니다.
평소에 노동자들이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공장 경리나 관리자들이 대량으로 대신 구매해갑니다. 내가 일해 번 내 돈으로 양말 하나 마음대로 살 수 없는 처지입니다.
그러다 김일성 생일처럼 이례적으로 외부 쇼핑을 허가해주는 날이면 경리가 평소에 만질 수 없었던 월급을 일부 현금으로 나눠준다는 것이 대북 소식통들의 설명입니다.
일종의 '가불 아닌 가불'을 받아 쇼핑을 나오는 셈입니다.
쇼핑센터에서 짝퉁 가방을 팔던 한 상인은 북한 노동자들에 대해 넌지시 묻는 기자를 향해 "여기서 일하면서 한 달에 2000위안 정도를 받는데 쇼핑을 올 때는 인솔하는 사람이 함께 온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였습니다. "참 안됐어"
단둥 압록강변에 나들이를 나온 북한 여성들. 옷에는 김일성 부자의 모습이 그려진 배지를 달았다.
■일요일도 외출 금지…특별 휴일에도 '통제 생활'
특별 휴일이라고 자유까지 허락되는 건 아닙니다.
이날, 강 너머 북한 신의주를 볼 수 있는 단둥의 유명 관광지 압록강변에서도 10여 명의 북한 여성들이 나들이 나온 모습을 포착할 수 있었습니다.
옷에는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모습이 그려진 배지를 달고 있었고, 전체적 외양으로 볼 때 쇼핑센터의 공장 노동자들보다는 조금 더 사회적 지위가 높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런데도 오후 두 시 반쯤, 유람선 선착장 앞 집합 장소에 모이더니 곧바로 단체 버스를 타고 압록강을 떠났습니다. 자유행동은 불가능해보였습니다.
쇼핑센터에 있던 공장 노동자들도 세시 반쯤 쇼핑을 끝내고 단체 버스 3대에 나눠 올라탔습니다. 혹여 늦을까 양 손에 짐을 들고 뛰어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100여 명 정도가 쇼핑을 나왔던 걸로 보이는데, 적지 않은 인원이 모두 시간을 맞춰 돌아가는 모습에서 일요일에도 자유로운 외출이 불가능하다는 북 노동자들의 통제된 생활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버스 탑승 시각에 늦지 않기 위해 뛰어가는 북한 노동자들의 모습
■기약 없는 귀환에 불만 고조…폭동까지?
자유 행동이 불가능하고 단체 외출마저 일년에 최대 세 번. 그렇게 번 월급도 내 손으로 만져보지 못하는 생활... 얼마나 오래 견딜 수 있을까요?
북한 노동자들의 해외 파견 기간은 일반적으로 3년입니다. 그런데 코로나19라는 변수가 생기면서 북중 사이 국경이 닫히자 이전처럼 쉽게 노동자들을 교대시킬 수 없게 됐습니다.
외화는 벌어야 하니 이미 파견된 사람들이 계속 일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고, 그렇게 노동자들이 돌아가는 날짜는 기약 없이 뒤로 미뤄졌습니다.
길게는 5년~7년 가까이 계속 근무를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한겁니다.
지난해 말부터 차츰 북중 노선 여객기가 다시 운항을 시작하는 등 조금씩 교류가 되살아나며 건강이 좋지 않은 환자 등 노동자 일부가 먼저 북한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체 인력이 바로 도착하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졌는데, 일각에서는 중국이 비자 발급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옵니다.
기자가 방문한 단둥의 한 북한 식당 종업원은 동료들이 거의 집으로 돌아가 7명 정도 남아있다고 말했습니다. 대체 인력이 오지 않았기 때문인지 북한 직영 식당인데도 주방장이 중국인으로 바뀐 상황이었습니다.
김일성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축포를 터뜨리는 모습. 반면 해외파견 노동자들은 짧은 특별 외출을 끝내고 열악한 일터로 돌아갔다.
인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열악한 노동조건에 기약 없이 길어지는 파견기간이 겹치며 북한 노동자들의 불만이 임계점을 넘어서는 기류도 감지됩니다.
북한 외교관을 지내다 귀순한 고영환 통일부 장관 특별보좌역에 따르면, 중국 지린성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 수천 명이 올해 1월 공장 여러 곳에서 연쇄 폭동과 파업을 일으켰습니다.
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북한 소식통을 인용해 노동자들이 감시 요원을 인질로 잡고 관리직 대표를 폭행해 숨지게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또,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역시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지난 2월 단둥에서도 북한 노동자 수십 명이 ‘고향으로 보내달라’며 출근을 거부하는 소요사태가 발생했다고 전했습니다.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데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북한 체제 아래에서 폭동과 소요사태는 극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외화벌이로 체제 유지를 뒷받침해 온 노동자들의 불만은 정권에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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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선물 사야하는데”…북 노동자, ‘2만원의 벽’ [특파원 리포트][북중접경]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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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4-04-22 08:00:28
- 수정2024-04-22 08:00:45
"수경아! 빨리 오라!"
"커피색. 짙은 걸로 사거라. 그래, 그 색깔."
"커서 너는 못 입는다고 몇 번을 말해주니?"
지난 15일, 북한 신의주와 마주보고 있는 접경지역인 중국 랴오닝성 단둥시 시내의 한 쇼핑센터에서 익숙한 듯 낯선 북한 말이 들려왔습니다.
저가 물건을 파는 센터지만, 하나 같이 들뜬 표정으로 니트나 셔츠 위에 정장 재킷을 걸쳤습니다. 편한 일상복이라기보다는 꽤 신경 써서 차려입은 느낌이었습니다.
이날, 구매한 물건을 한보따리씩 들고 잰 걸음으로 4층짜리 쇼핑센터 곳곳을 돌아다니던 북한 여성들의 정체는 바로 단둥 소재 공장에서 근무하는 북한 외화벌이 노동자들입니다.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이들은 원래 공장 안 기숙사에서만 생활하고 1년에 최대 3번 외출을 허락받습니다.
바로 4월 15일 김일성 생일, 5월 1일 노동절, 10월 10일 조선 노동당 창건기념일입니다.
그중 하루인 김일성 생일을 맞아 오랜만에 단체 쇼핑을 온 노동자들을 기자가 목격할 수 있었던 겁니다.
일 년에 최대 세 번뿐인 쇼핑 기회. 무엇을 사고 싶을까요?
[연관 기사] 북 노동자, 압록강변 나들이·쇼핑…접경지역 김일성 생일맞이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940115
■"엄마 선물 사야 하는데..." … 2만 원 짝퉁 가방도 '머뭇'
"엄마 선물 사야 하는데..."
사람 마음은 남과 북이 다르지 않습니다. 멀리 고향에 있는 부모님 선물이 1순위입니다.
특히 옷과 가방, 화장품이 인기가 많았습니다. 나름 해외에서 근무하면서 가족들에게 고향에서는 사기 힘든 외제 선물을 줄 수 있는 귀한 기회입니다.
그러다 보니 옷은 대부분 외출복 용도의 단정한 니트류를 보는 듯 했고, 해외 명품 브랜드의 짝퉁 가방도 이것저것 들어보며 신중하게 고르는 모습이었습니다.
문제는 가격입니다. 물건 하나 당 중국 돈 100위안, 우리 돈 약 2만 원을 넘기지 않으려고 흥정에 애쓰는 모습이었습니다. 아무리 귀해도 100위안을 넘기면 안 된다는 일종의 심리적 장벽이 있는 듯했습니다.
200위안(약 4만 원) 좀 넘는 옷을 90위안으로 깎으려다 얼토당토않다는 사장의 반응에 발길을 돌리는 사람도 있었고, 제법 넉넉한 크기의 짝퉁 가방을 이것 저것 보다가 150위안이라는 가격을 듣고는 작은 핸드백을 사고 싶다고 말을 바꾸기도 했습니다.
그나마 좀 편하게 구매하는건 30위안 ~ 70위안(6천 원~1만 3천 원) 안팎의 저렴한 묶음 속옷이나 내복 정도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날 이들이 들고 온 현금은 평소에는 만질 수 없는 귀한 돈입니다.
대북 소식통들의 말을 종합하면, 단둥에서 일하는 북한 외화벌이 공장 노동자들의 한 달 월급은 1800 ~ 2000 위안(우리 돈 약 34만 원 ~ 38만 원)사이로 책정됩니다.
그런데 이 중 반 이상을 당국에서 떼어가고 실제로는 한 달에 800 ~ 1,000위안(우리돈 15만 원~19만 원)만 가져갑니다.
그나마도 현금으로 받지 못합니다. 서류에 돈을 받았다는 서명만 하고 월급은 당국에서 관리하다가 파견기간이 끝나고 북한으로 돌아갈 때나 받을 수 있습니다.
평소에 노동자들이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공장 경리나 관리자들이 대량으로 대신 구매해갑니다. 내가 일해 번 내 돈으로 양말 하나 마음대로 살 수 없는 처지입니다.
그러다 김일성 생일처럼 이례적으로 외부 쇼핑을 허가해주는 날이면 경리가 평소에 만질 수 없었던 월급을 일부 현금으로 나눠준다는 것이 대북 소식통들의 설명입니다.
일종의 '가불 아닌 가불'을 받아 쇼핑을 나오는 셈입니다.
쇼핑센터에서 짝퉁 가방을 팔던 한 상인은 북한 노동자들에 대해 넌지시 묻는 기자를 향해 "여기서 일하면서 한 달에 2000위안 정도를 받는데 쇼핑을 올 때는 인솔하는 사람이 함께 온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였습니다. "참 안됐어"
■일요일도 외출 금지…특별 휴일에도 '통제 생활'
특별 휴일이라고 자유까지 허락되는 건 아닙니다.
이날, 강 너머 북한 신의주를 볼 수 있는 단둥의 유명 관광지 압록강변에서도 10여 명의 북한 여성들이 나들이 나온 모습을 포착할 수 있었습니다.
옷에는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모습이 그려진 배지를 달고 있었고, 전체적 외양으로 볼 때 쇼핑센터의 공장 노동자들보다는 조금 더 사회적 지위가 높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런데도 오후 두 시 반쯤, 유람선 선착장 앞 집합 장소에 모이더니 곧바로 단체 버스를 타고 압록강을 떠났습니다. 자유행동은 불가능해보였습니다.
쇼핑센터에 있던 공장 노동자들도 세시 반쯤 쇼핑을 끝내고 단체 버스 3대에 나눠 올라탔습니다. 혹여 늦을까 양 손에 짐을 들고 뛰어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100여 명 정도가 쇼핑을 나왔던 걸로 보이는데, 적지 않은 인원이 모두 시간을 맞춰 돌아가는 모습에서 일요일에도 자유로운 외출이 불가능하다는 북 노동자들의 통제된 생활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기약 없는 귀환에 불만 고조…폭동까지?
자유 행동이 불가능하고 단체 외출마저 일년에 최대 세 번. 그렇게 번 월급도 내 손으로 만져보지 못하는 생활... 얼마나 오래 견딜 수 있을까요?
북한 노동자들의 해외 파견 기간은 일반적으로 3년입니다. 그런데 코로나19라는 변수가 생기면서 북중 사이 국경이 닫히자 이전처럼 쉽게 노동자들을 교대시킬 수 없게 됐습니다.
외화는 벌어야 하니 이미 파견된 사람들이 계속 일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고, 그렇게 노동자들이 돌아가는 날짜는 기약 없이 뒤로 미뤄졌습니다.
길게는 5년~7년 가까이 계속 근무를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한겁니다.
지난해 말부터 차츰 북중 노선 여객기가 다시 운항을 시작하는 등 조금씩 교류가 되살아나며 건강이 좋지 않은 환자 등 노동자 일부가 먼저 북한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체 인력이 바로 도착하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졌는데, 일각에서는 중국이 비자 발급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옵니다.
기자가 방문한 단둥의 한 북한 식당 종업원은 동료들이 거의 집으로 돌아가 7명 정도 남아있다고 말했습니다. 대체 인력이 오지 않았기 때문인지 북한 직영 식당인데도 주방장이 중국인으로 바뀐 상황이었습니다.
인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열악한 노동조건에 기약 없이 길어지는 파견기간이 겹치며 북한 노동자들의 불만이 임계점을 넘어서는 기류도 감지됩니다.
북한 외교관을 지내다 귀순한 고영환 통일부 장관 특별보좌역에 따르면, 중국 지린성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 수천 명이 올해 1월 공장 여러 곳에서 연쇄 폭동과 파업을 일으켰습니다.
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북한 소식통을 인용해 노동자들이 감시 요원을 인질로 잡고 관리직 대표를 폭행해 숨지게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또,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역시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지난 2월 단둥에서도 북한 노동자 수십 명이 ‘고향으로 보내달라’며 출근을 거부하는 소요사태가 발생했다고 전했습니다.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데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북한 체제 아래에서 폭동과 소요사태는 극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외화벌이로 체제 유지를 뒷받침해 온 노동자들의 불만은 정권에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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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기자 mjnew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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