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배터리에 가려진 그림자…‘이차전지 폐수’ 오늘도 바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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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이차전지 1등 국가 대한민국!"
2021년, 정부는 이른바 'K-배터리 전략'을 내놨습니다. 2030년까지 이차전지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해 세계시장을 선점한다는 계획입니다. 정부는 지난해 포항, 군산, 울산, 청주 등 4개 지자체를 '이차전지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로 지정했습니다.
하지만 이차전지라는 빛에는 '폐수'라는 그림자가 따라다닙니다. 현행법상 이차전지 폐수는 업체의 1차 처리를 거쳐 바다로 방류할 수 있는데, 이로 인해 우리 바다가 오염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포항시가 진행한 연구용역에서 이차전지 폐수로 인해 "해양생태계에 다소 위해성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 1km vs. 11km
'이차전지 선도도시'를 표방하는 경북 포항시. 포항엔 이차전지 특화단지인 블루밸리국가산업단지가 있습니다. 내년에 완공되면 이차전지 업체 20여 개가 입주합니다. 문제는 이들 업체에서 매일 이차전지 폐수 2만 4천 톤 가량이 발생한다는 겁니다.
현행법상 이차전지 폐수는 업체가 배출허용기준에 맞춰 1차 처리한 뒤 바다로 방류할 수 있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방류구를 어느 쪽으로 낼 것인가, 포항시의 결정이 주민 반발의 출발점이 됐습니다.
블루밸리산단은 뾰족하게 생긴 지형에서 오른쪽(구룡포)으로 치우쳐 있습니다. 가까운 바다인 구룡포까지는 약 1km 거리. 그런데 포항시는 폐수 방류지점으로 11km가량 떨어진 영일만항을 택합니다. 거리가 멀어진만큼 방류관 공사에만 240억 원이 추가로 들게 됐습니다.
포항시는 10배가 넘는 길이를 택한 이유에 대해 내년 예정된 산단 완공일을 맞추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합니다. 가까운 구룡포에는 어민이 많아 폐수 방류에 대한 어민 동의를 받는 데만 최소 3년이 걸린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업권 보상이 끝난 영일만항으로 택했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영일만항은 말 그대로 '만'입니다. 'U'자형의 반폐쇄적인 구조이고 유속이 느려 오염된 물이 쉽게 희석되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환경영향평가 결과, 영일만 연안해역에는 거머리말, 게바다말 등 보전 가치가 높은 해양보호생물이 서식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런 곳에 폐수를 방류하겠다며 포항시는 허가권자인 포항지방해양수산청에 해역 이용 협의를 신청했습니다. 포항해수청은 포항시의 신청을 반려했습니다.
방류지점 인근 주민들도 포항시의 결정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시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습니다. 주민들의 안전이 달린 문제인데 포항시가 사전에 상의조차 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 포항시 연구용역 보고서 "해양생태계에 다소 위해성 있다"
주민들의 걱정은 이차전지 폐수의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데서 출발합니다. 업체의 1차 처리를 거친 이차전지 폐수, 믿고 바다로 내보내도 되는 걸까요?
KBS는 취재 중, 포항시가 앞서 진행한 <이차전지 폐수 해양생태계 위해성 연구 보고서>를 단독 입수했습니다. 포항시가 또 다른 이차전지 특화단지인 영일만산업단지에서 2022년과 2023년 2년간 진행한 연구의 결과물입니다.
당시 연구팀의 결론은 "해양생태계에 다소 위해성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연구팀이 당시 산단 방류구에서 물을 떠 분석한 결과, 리튬과 코발트, 아연, 니켈 등의 중금속이 검출됐습니다. 폐수의 독성을 분석하는 기준인 '생태독성' 수치는 지점에 따라 1.4와 0.9로 나타나 기준치인 1을 넘거나 근접했습니다. 연구팀은 또, 산단 폐수 농도가 짙어질수록 물벼룩과 발광박테리아 등 미생물의 움직임이 둔화됐다고 밝혔습니다.
■ 안전성 장담 못 하는 이차전지 폐수, 오늘도 바다로
이차전치 폐수의 위해성이 우려되는 상황이지만 바다 방류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현행법상 업체가 배출허용기준으로 정해진 53개 항목 기준을 충족하면 폐수를 바다로 방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53개 항목 외 다른 화학물질에 대해서는 기준이 없고, 그로 인한 독성 여부는 '생태독성' 수치로 판단합니다. 폐수에 물벼룩 등 생물체를 넣어 사멸 또는 활동성 저하를 근거로 독성 여부를 판단하는 겁니다.
그런데 사실상 생태독성 기준도 이차전지 폐수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이차전지 폐수에는 바닷물 염도의 두세 배에 달하는 고농도의 염, 즉 나트륨이 들어있어서 생태독성 기준치를 넘더라도 고농도의 염으로 인한 결과라는 걸 인정받아 방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바닷물 속 염과 폐수 속 염은 성분 자체가 다르다며 신중하게 이차전지 폐수 해양 방류 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조강우/포스텍 환경공학부 교수 : "(이차전지 폐수 염) 농도가 바닷물보다 높아서 밀도도 높거든요. 폐수들이 가라앉을 가능성이 굉장히 크고요. 그러면 바다에서도 특히 저서생물들에 생태독성을 유발할 가능성이 큽니다." |
이차전지 폐수 방류가 논란이 되자 환경부는 올해 초 토론회를 여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내년엔 포항에서 이차전지 폐수와 관련한 해양생태계 영향 조사를 할 예정입니다.
급변하는 산업을 제대로 따라잡지 못하는 환경 대책들. 그 사이 누구도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이차전지 폐수는 오늘도 바다로 흘러들고 있습니다.
[연관 기사] [이차전지 선도도시의 그늘]① 이차전지 기업 폐수 방류 놓고 주민과 갈등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013379 [이차전지 선도도시의 그늘]② “해양생태계 위해” 결과에도…포항시 “문제없다”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014308 [이차전지 선도도시의 그늘]③ ‘뛰는’ 산업에 ‘기는’ 환경 정책…안전성 문제없나?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0154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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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배터리에 가려진 그림자…‘이차전지 폐수’ 오늘도 바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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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4-07-19 16:25:07
- 수정2024-07-19 16:27:20
■ 1km vs. 11km
'이차전지 선도도시'를 표방하는 경북 포항시. 포항엔 이차전지 특화단지인 블루밸리국가산업단지가 있습니다. 내년에 완공되면 이차전지 업체 20여 개가 입주합니다. 문제는 이들 업체에서 매일 이차전지 폐수 2만 4천 톤 가량이 발생한다는 겁니다.
현행법상 이차전지 폐수는 업체가 배출허용기준에 맞춰 1차 처리한 뒤 바다로 방류할 수 있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방류구를 어느 쪽으로 낼 것인가, 포항시의 결정이 주민 반발의 출발점이 됐습니다.
블루밸리산단은 뾰족하게 생긴 지형에서 오른쪽(구룡포)으로 치우쳐 있습니다. 가까운 바다인 구룡포까지는 약 1km 거리. 그런데 포항시는 폐수 방류지점으로 11km가량 떨어진 영일만항을 택합니다. 거리가 멀어진만큼 방류관 공사에만 240억 원이 추가로 들게 됐습니다.
포항시는 10배가 넘는 길이를 택한 이유에 대해 내년 예정된 산단 완공일을 맞추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합니다. 가까운 구룡포에는 어민이 많아 폐수 방류에 대한 어민 동의를 받는 데만 최소 3년이 걸린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업권 보상이 끝난 영일만항으로 택했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영일만항은 말 그대로 '만'입니다. 'U'자형의 반폐쇄적인 구조이고 유속이 느려 오염된 물이 쉽게 희석되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환경영향평가 결과, 영일만 연안해역에는 거머리말, 게바다말 등 보전 가치가 높은 해양보호생물이 서식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런 곳에 폐수를 방류하겠다며 포항시는 허가권자인 포항지방해양수산청에 해역 이용 협의를 신청했습니다. 포항해수청은 포항시의 신청을 반려했습니다.
방류지점 인근 주민들도 포항시의 결정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시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습니다. 주민들의 안전이 달린 문제인데 포항시가 사전에 상의조차 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 포항시 연구용역 보고서 "해양생태계에 다소 위해성 있다"
주민들의 걱정은 이차전지 폐수의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데서 출발합니다. 업체의 1차 처리를 거친 이차전지 폐수, 믿고 바다로 내보내도 되는 걸까요?
KBS는 취재 중, 포항시가 앞서 진행한 <이차전지 폐수 해양생태계 위해성 연구 보고서>를 단독 입수했습니다. 포항시가 또 다른 이차전지 특화단지인 영일만산업단지에서 2022년과 2023년 2년간 진행한 연구의 결과물입니다.
당시 연구팀의 결론은 "해양생태계에 다소 위해성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연구팀이 당시 산단 방류구에서 물을 떠 분석한 결과, 리튬과 코발트, 아연, 니켈 등의 중금속이 검출됐습니다. 폐수의 독성을 분석하는 기준인 '생태독성' 수치는 지점에 따라 1.4와 0.9로 나타나 기준치인 1을 넘거나 근접했습니다. 연구팀은 또, 산단 폐수 농도가 짙어질수록 물벼룩과 발광박테리아 등 미생물의 움직임이 둔화됐다고 밝혔습니다.
■ 안전성 장담 못 하는 이차전지 폐수, 오늘도 바다로
이차전치 폐수의 위해성이 우려되는 상황이지만 바다 방류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현행법상 업체가 배출허용기준으로 정해진 53개 항목 기준을 충족하면 폐수를 바다로 방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53개 항목 외 다른 화학물질에 대해서는 기준이 없고, 그로 인한 독성 여부는 '생태독성' 수치로 판단합니다. 폐수에 물벼룩 등 생물체를 넣어 사멸 또는 활동성 저하를 근거로 독성 여부를 판단하는 겁니다.
그런데 사실상 생태독성 기준도 이차전지 폐수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이차전지 폐수에는 바닷물 염도의 두세 배에 달하는 고농도의 염, 즉 나트륨이 들어있어서 생태독성 기준치를 넘더라도 고농도의 염으로 인한 결과라는 걸 인정받아 방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바닷물 속 염과 폐수 속 염은 성분 자체가 다르다며 신중하게 이차전지 폐수 해양 방류 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조강우/포스텍 환경공학부 교수 : "(이차전지 폐수 염) 농도가 바닷물보다 높아서 밀도도 높거든요. 폐수들이 가라앉을 가능성이 굉장히 크고요. 그러면 바다에서도 특히 저서생물들에 생태독성을 유발할 가능성이 큽니다." |
이차전지 폐수 방류가 논란이 되자 환경부는 올해 초 토론회를 여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내년엔 포항에서 이차전지 폐수와 관련한 해양생태계 영향 조사를 할 예정입니다.
급변하는 산업을 제대로 따라잡지 못하는 환경 대책들. 그 사이 누구도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이차전지 폐수는 오늘도 바다로 흘러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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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규 기자 bokgil@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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