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뉴스]“우린 간첩 가족이 아니에요”

입력 2005.12.12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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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지난주였죠. 국가정보원 과거사 진실규명위원회는 지난 1974년에 있었던 인혁당 재건위, 민청학련 사건이 조작됐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이 발표가 있은 후 유가족들의 심정은 어땠겠습니까? 대법원 확정 판결 뒤 하루가 지나지 않아 사형이 집형 됐었으니까, 정말 보고도 믿기 어려운 상황이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KBS 취재팀이 국정원 발표 이후 유가족들을 만나 봤습니다.고민정 아나운서.

<리포트>

네. 당시 인혁당 재건위 관련자가 7명, 민청학련 관련자 8명에게 사형이 집행됐습니다. 날조, 조작된 사실로 남편, 아버지, 아들을 잃고 간첩 가족이라는 멍에를 쓴 채 살아온 유가족들. 지나간 30년 세월 한맺힌 사연들을 들어봤습니다. 당시 인혁당 재건위 관련자가 7명, 민청학련 관련자 8명에게 사형이 집행됐습니다.

날조, 조작된 사실로 남편, 아버지, 아들을 잃고 간첩 가족이라는 멍에를 쓴 채 살아온 유가족들. 지나간 30년 세월 한맺힌 사연들을 들어봤습니다.

대구시내 한 주택가. 허름해 보이는 이 집은 인혁당 재건위, 민청학련 사건으로 떠들썩했던 30년전 모습 그대로입니다.

올해 일흔 일곱의 김진생 할머니. 김 할머니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 희생자고 송상진 선생의 부인입니다. 양봉업을 하며 한 집안의 가장으로 살던 송상진 선생. 70년대 유신정권에 대한 우려를 하던 평범한 시민이었습니다.

<인터뷰>김진생(故 송상진씨 부인) : "박정희가 너무 독재를 하니까 걱정을 하더라고요. 너무 독 재를 해가지고 큰 일 났다 한번 하더라고."

그러던 어느날, 친구들이 경찰에 잡혀가자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 오겠다며 집을 나선게 마지막.

이후 송씨는 주검으로 돌아왔습니다.

<인터뷰>김진생(故 송상진씨 부인) : "11시에 대 법원에서 기각했지 싶은데 새벽에 4시엔가 5시 엔가 그렇게 하니까.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어디..."

2남 1녀중 막내 송철환씨. 당시 열일곱살이던 송 씨는 뉴스 보도가 잘못됐을거라는 작은 아버지의 말을 듣고 아버지를 기다렸습니다.

<인터뷰>송철환(故 송상진씨 삼남) : "비밀리에 풀려가지고 저녁에 내려오시니까 아버지 마중 나 가자라고 해서 서대구 고속터미널에 가서 기다렸 습니다. 한참 있다보니까 어머니께서 아버지 유 골함을 들고 들어오시더라고요."

청천벽력같은 아버지의 사망 소식, 그로인한 가 족들의 생계 문제, 하지만 무엇보다 가족들을 아 프게 한 것은 주변 이웃들의 외면과 질타, 그리고 감시였습니다.

<인터뷰>김진생(故 송상진씨 부인) : "그 집 빨갱 이 집이라고 거기 가지 말라고 거기 가면 붙잡혀 간다고 하는거예요.? 돌아가신 뒤에도요. 우리 집 에 누구 오는지 감시하고 그러느라고 여기 아주 자리를 깔아놓고 바라보고 있었어요."

남편도 아버지도, 그리고 명예도... 잃고 산게 너 무 많은 유가족들. 되돌릴 수만 있다면 30여년 전 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인터뷰>김진생(故 송상진씨 부인) : "너무너무 웃음이 매일 웃음꽃이 집에 어른만 있으면 그렇 게 웃고 재미난 가정이었는데. 애들 보는 앞에선 슬픔을 안보일려고 내가 밤에 자면서 울었으면 울었지. 애들 붙잡고는 슬퍼 안했어요. 그렇게 살았지. 에휴..."

평범한 사업가였던 도예종 선생도 국가보안법 위 반 혐의로 사형이 집행됐습니다. 이후, 자녀들은 다니던 직장에서 쫓겨나고 수차례 이사를 해야하 는 등 고통의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인터뷰>신동숙(故 도예종씨 부인) : "친구고 친 척간에도 도선생님 장사때 친척간에도 안왔어요. 회사에서도 아무도 오지도 않았어요. 그만큼 살 벌한 거였으니까. 전부 우리를 죄인으로 보고 그 렇게 우리는 움츠리고 숨이 붙어있어서 산거 지..."

부인 신동숙씨는 대법원 상고 기각 18시간만에 처해진 사형 집행은 그야말로 사법 살인이라며 사법부를 강하게 비판합니다.

<인터뷰>신동숙(故 도예종씨 부인) : "대법원 검 사 판사 이런 분들은 지식인이고 또 이성이 있는 분들 아니에요. 시녀가 돼서 했다고 하는건 우리 나라 국민으로써 너무 한심하고 부끄러운 일이에요."

서른 나이에 사형을 당한 고 여정남씨. 당시 자신 에게 은신처를 제공한 게 사형선고를 받는 빌미 가 됐다며, 30년 세월 마음의 짐을 안고 살아온 유인태 의원. 아직도 장정이던 서른살 여정남의 마지막 모습을 잊지 못합니다.

<인터뷰>유인태(열린우리당 의원) : "(감옥에 있 을 때) 여정남 선배가 마지막으로 사형장 끌려가 는 뒷모습만 거의 (사형장) 문 앞에 다 간 것만 잠 깐 봤지. 중앙정보부 직원 8명인가 면담을 한 사 람들이 다 고문을 부인하고 그렇게 태도를 보였 다고. 참 그게 보면서 답답하더라고요."

억울함을 달래기 위해 세웠던 추모비도 강제로 철거당해야만 했던 유가족들.30여년만에 중앙정 보부 조작이라는 결론이 났지만 이게 끝이 아니 라고 입을 모읍니다.

<인터뷰>송철환(故 송상진씨 아들) : "사법부에 서 재심을 받아들여 가지고 이 판결이 잘못되었 다는 것을 지금이라도 고백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여상화(故 여정남씨 조카) : "저는 역사 는 진실의 붓끝으로 언젠가는 쓰여질거라고 믿습니다."

사필귀정이라고,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게 돼 있죠~유가족들의 아픔이 지금이라도 치유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금까지 고민정 아나운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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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뉴스]“우린 간첩 가족이 아니에요”
    • 입력 2005-12-12 08:3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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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지난주였죠. 국가정보원 과거사 진실규명위원회는 지난 1974년에 있었던 인혁당 재건위, 민청학련 사건이 조작됐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이 발표가 있은 후 유가족들의 심정은 어땠겠습니까? 대법원 확정 판결 뒤 하루가 지나지 않아 사형이 집형 됐었으니까, 정말 보고도 믿기 어려운 상황이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KBS 취재팀이 국정원 발표 이후 유가족들을 만나 봤습니다.고민정 아나운서. <리포트> 네. 당시 인혁당 재건위 관련자가 7명, 민청학련 관련자 8명에게 사형이 집행됐습니다. 날조, 조작된 사실로 남편, 아버지, 아들을 잃고 간첩 가족이라는 멍에를 쓴 채 살아온 유가족들. 지나간 30년 세월 한맺힌 사연들을 들어봤습니다. 당시 인혁당 재건위 관련자가 7명, 민청학련 관련자 8명에게 사형이 집행됐습니다. 날조, 조작된 사실로 남편, 아버지, 아들을 잃고 간첩 가족이라는 멍에를 쓴 채 살아온 유가족들. 지나간 30년 세월 한맺힌 사연들을 들어봤습니다. 대구시내 한 주택가. 허름해 보이는 이 집은 인혁당 재건위, 민청학련 사건으로 떠들썩했던 30년전 모습 그대로입니다. 올해 일흔 일곱의 김진생 할머니. 김 할머니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 희생자고 송상진 선생의 부인입니다. 양봉업을 하며 한 집안의 가장으로 살던 송상진 선생. 70년대 유신정권에 대한 우려를 하던 평범한 시민이었습니다. <인터뷰>김진생(故 송상진씨 부인) : "박정희가 너무 독재를 하니까 걱정을 하더라고요. 너무 독 재를 해가지고 큰 일 났다 한번 하더라고." 그러던 어느날, 친구들이 경찰에 잡혀가자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 오겠다며 집을 나선게 마지막. 이후 송씨는 주검으로 돌아왔습니다. <인터뷰>김진생(故 송상진씨 부인) : "11시에 대 법원에서 기각했지 싶은데 새벽에 4시엔가 5시 엔가 그렇게 하니까.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어디..." 2남 1녀중 막내 송철환씨. 당시 열일곱살이던 송 씨는 뉴스 보도가 잘못됐을거라는 작은 아버지의 말을 듣고 아버지를 기다렸습니다. <인터뷰>송철환(故 송상진씨 삼남) : "비밀리에 풀려가지고 저녁에 내려오시니까 아버지 마중 나 가자라고 해서 서대구 고속터미널에 가서 기다렸 습니다. 한참 있다보니까 어머니께서 아버지 유 골함을 들고 들어오시더라고요." 청천벽력같은 아버지의 사망 소식, 그로인한 가 족들의 생계 문제, 하지만 무엇보다 가족들을 아 프게 한 것은 주변 이웃들의 외면과 질타, 그리고 감시였습니다. <인터뷰>김진생(故 송상진씨 부인) : "그 집 빨갱 이 집이라고 거기 가지 말라고 거기 가면 붙잡혀 간다고 하는거예요.? 돌아가신 뒤에도요. 우리 집 에 누구 오는지 감시하고 그러느라고 여기 아주 자리를 깔아놓고 바라보고 있었어요." 남편도 아버지도, 그리고 명예도... 잃고 산게 너 무 많은 유가족들. 되돌릴 수만 있다면 30여년 전 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인터뷰>김진생(故 송상진씨 부인) : "너무너무 웃음이 매일 웃음꽃이 집에 어른만 있으면 그렇 게 웃고 재미난 가정이었는데. 애들 보는 앞에선 슬픔을 안보일려고 내가 밤에 자면서 울었으면 울었지. 애들 붙잡고는 슬퍼 안했어요. 그렇게 살았지. 에휴..." 평범한 사업가였던 도예종 선생도 국가보안법 위 반 혐의로 사형이 집행됐습니다. 이후, 자녀들은 다니던 직장에서 쫓겨나고 수차례 이사를 해야하 는 등 고통의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인터뷰>신동숙(故 도예종씨 부인) : "친구고 친 척간에도 도선생님 장사때 친척간에도 안왔어요. 회사에서도 아무도 오지도 않았어요. 그만큼 살 벌한 거였으니까. 전부 우리를 죄인으로 보고 그 렇게 우리는 움츠리고 숨이 붙어있어서 산거 지..." 부인 신동숙씨는 대법원 상고 기각 18시간만에 처해진 사형 집행은 그야말로 사법 살인이라며 사법부를 강하게 비판합니다. <인터뷰>신동숙(故 도예종씨 부인) : "대법원 검 사 판사 이런 분들은 지식인이고 또 이성이 있는 분들 아니에요. 시녀가 돼서 했다고 하는건 우리 나라 국민으로써 너무 한심하고 부끄러운 일이에요." 서른 나이에 사형을 당한 고 여정남씨. 당시 자신 에게 은신처를 제공한 게 사형선고를 받는 빌미 가 됐다며, 30년 세월 마음의 짐을 안고 살아온 유인태 의원. 아직도 장정이던 서른살 여정남의 마지막 모습을 잊지 못합니다. <인터뷰>유인태(열린우리당 의원) : "(감옥에 있 을 때) 여정남 선배가 마지막으로 사형장 끌려가 는 뒷모습만 거의 (사형장) 문 앞에 다 간 것만 잠 깐 봤지. 중앙정보부 직원 8명인가 면담을 한 사 람들이 다 고문을 부인하고 그렇게 태도를 보였 다고. 참 그게 보면서 답답하더라고요." 억울함을 달래기 위해 세웠던 추모비도 강제로 철거당해야만 했던 유가족들.30여년만에 중앙정 보부 조작이라는 결론이 났지만 이게 끝이 아니 라고 입을 모읍니다. <인터뷰>송철환(故 송상진씨 아들) : "사법부에 서 재심을 받아들여 가지고 이 판결이 잘못되었 다는 것을 지금이라도 고백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여상화(故 여정남씨 조카) : "저는 역사 는 진실의 붓끝으로 언젠가는 쓰여질거라고 믿습니다." 사필귀정이라고,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게 돼 있죠~유가족들의 아픔이 지금이라도 치유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금까지 고민정 아나운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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