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픽] “모자 때문에?”…베트남 입국 금지 당한 한국인
입력 2025.02.24 (18:23)
수정 2025.02.24 (18:31)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한 여행사의 공지글입니다.
최근 베트남을 찾은 한국인 여행객이 입국을 거부당했다는 내용입니다.
3천 달러, 우리 돈 약 430만 원의 벌금까지 냈습니다.
사연인 즉슨 여행객이 쓴 모자가 문제였다는데 뭐가 문제였는지 화면 함께 보시죠.
모자에 영어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 란 뜻인데요.
본인에겐 훈장 같을 수 있지만, 베트남인들에겐 잔혹한 전쟁의 참상이 떠오르는 순간입니다.
20세기 최악의 전쟁, 베트남 전쟁입니다.
남과 북으로 갈라져 20년 가까이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눈 이 전쟁은 수많은 비극을 낳았습니다.
사상자 200만 명, 고엽제 피해, 보트피플의 생이별까지.
당시 참전으로 미군 5만 8천 명을 희생한 미국은 영화 '디어 헌터', '플래툰' 등으로 전쟁의 공포를 되새기기도 했죠.
[영화 '플래툰' : "여기선 한순간도 긴장을 풀어선 안 돼. 매복할 땐 절대 자지 마라."]
우리도 베트남에 남긴 상흔이 결코 적지 않습니다.
당시 참전한 한국군이 32만 명. 5천여 명이 죽었고, 만여 명이 부상당했습니다.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무기의 그늘'을 쓴 소설가 황석영은 참전 군인으로서 직접 겪은 참상을 이렇게 회고합니다.
[KBS '대화의 희열 3' : "부비트랩 이런 거 묻어놓고 터지고. 숲속에서 다다다 총알이 날아와서 죽고."]
참전에 대한 미국의 경제적 보상은 경부고속도로를 짓는 토대가 됐습니다.
한국군이 베트남에서 철수한 건 1973년.
이후, 가수 김추자의 노래처럼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의 무사귀환에 안도하며 베트남 전쟁은 기억 속에서 멀어져갔습니다.
[김추자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 이제서 돌아왔네."]
1992년, 한국과 베트남은 국교를 맺으며 양국 외교에 다시 시동을 걸었지만 과거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습니다.
2009년, 베트남전 참전 유공자 처우 관련법을 개정할 땐 크게 사달이 나 단교 직전까지 가기도 했죠.
베트남이 '월남전쟁 유공자'라는 말을 문제삼은 겁니다.
이번 관광객 입국 거부도 한국에 대한 뿌리깊은 반감을 드러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일 년에 초코파이를 천억 원 어치나 소비하는 나라.
한국인 축구 감독에 열광하는 베트남이지만, 반세기 전, 전쟁의 아픔은 여전히 진행중입니다.
영상편집:강정희
최근 베트남을 찾은 한국인 여행객이 입국을 거부당했다는 내용입니다.
3천 달러, 우리 돈 약 430만 원의 벌금까지 냈습니다.
사연인 즉슨 여행객이 쓴 모자가 문제였다는데 뭐가 문제였는지 화면 함께 보시죠.
모자에 영어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 란 뜻인데요.
본인에겐 훈장 같을 수 있지만, 베트남인들에겐 잔혹한 전쟁의 참상이 떠오르는 순간입니다.
20세기 최악의 전쟁, 베트남 전쟁입니다.
남과 북으로 갈라져 20년 가까이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눈 이 전쟁은 수많은 비극을 낳았습니다.
사상자 200만 명, 고엽제 피해, 보트피플의 생이별까지.
당시 참전으로 미군 5만 8천 명을 희생한 미국은 영화 '디어 헌터', '플래툰' 등으로 전쟁의 공포를 되새기기도 했죠.
[영화 '플래툰' : "여기선 한순간도 긴장을 풀어선 안 돼. 매복할 땐 절대 자지 마라."]
우리도 베트남에 남긴 상흔이 결코 적지 않습니다.
당시 참전한 한국군이 32만 명. 5천여 명이 죽었고, 만여 명이 부상당했습니다.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무기의 그늘'을 쓴 소설가 황석영은 참전 군인으로서 직접 겪은 참상을 이렇게 회고합니다.
[KBS '대화의 희열 3' : "부비트랩 이런 거 묻어놓고 터지고. 숲속에서 다다다 총알이 날아와서 죽고."]
참전에 대한 미국의 경제적 보상은 경부고속도로를 짓는 토대가 됐습니다.
한국군이 베트남에서 철수한 건 1973년.
이후, 가수 김추자의 노래처럼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의 무사귀환에 안도하며 베트남 전쟁은 기억 속에서 멀어져갔습니다.
[김추자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 이제서 돌아왔네."]
1992년, 한국과 베트남은 국교를 맺으며 양국 외교에 다시 시동을 걸었지만 과거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습니다.
2009년, 베트남전 참전 유공자 처우 관련법을 개정할 땐 크게 사달이 나 단교 직전까지 가기도 했죠.
베트남이 '월남전쟁 유공자'라는 말을 문제삼은 겁니다.
이번 관광객 입국 거부도 한국에 대한 뿌리깊은 반감을 드러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일 년에 초코파이를 천억 원 어치나 소비하는 나라.
한국인 축구 감독에 열광하는 베트남이지만, 반세기 전, 전쟁의 아픔은 여전히 진행중입니다.
영상편집:강정희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이슈픽] “모자 때문에?”…베트남 입국 금지 당한 한국인
-
- 입력 2025-02-24 18:23:21
- 수정2025-02-24 18:31:44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한 여행사의 공지글입니다.
최근 베트남을 찾은 한국인 여행객이 입국을 거부당했다는 내용입니다.
3천 달러, 우리 돈 약 430만 원의 벌금까지 냈습니다.
사연인 즉슨 여행객이 쓴 모자가 문제였다는데 뭐가 문제였는지 화면 함께 보시죠.
모자에 영어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 란 뜻인데요.
본인에겐 훈장 같을 수 있지만, 베트남인들에겐 잔혹한 전쟁의 참상이 떠오르는 순간입니다.
20세기 최악의 전쟁, 베트남 전쟁입니다.
남과 북으로 갈라져 20년 가까이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눈 이 전쟁은 수많은 비극을 낳았습니다.
사상자 200만 명, 고엽제 피해, 보트피플의 생이별까지.
당시 참전으로 미군 5만 8천 명을 희생한 미국은 영화 '디어 헌터', '플래툰' 등으로 전쟁의 공포를 되새기기도 했죠.
[영화 '플래툰' : "여기선 한순간도 긴장을 풀어선 안 돼. 매복할 땐 절대 자지 마라."]
우리도 베트남에 남긴 상흔이 결코 적지 않습니다.
당시 참전한 한국군이 32만 명. 5천여 명이 죽었고, 만여 명이 부상당했습니다.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무기의 그늘'을 쓴 소설가 황석영은 참전 군인으로서 직접 겪은 참상을 이렇게 회고합니다.
[KBS '대화의 희열 3' : "부비트랩 이런 거 묻어놓고 터지고. 숲속에서 다다다 총알이 날아와서 죽고."]
참전에 대한 미국의 경제적 보상은 경부고속도로를 짓는 토대가 됐습니다.
한국군이 베트남에서 철수한 건 1973년.
이후, 가수 김추자의 노래처럼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의 무사귀환에 안도하며 베트남 전쟁은 기억 속에서 멀어져갔습니다.
[김추자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 이제서 돌아왔네."]
1992년, 한국과 베트남은 국교를 맺으며 양국 외교에 다시 시동을 걸었지만 과거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습니다.
2009년, 베트남전 참전 유공자 처우 관련법을 개정할 땐 크게 사달이 나 단교 직전까지 가기도 했죠.
베트남이 '월남전쟁 유공자'라는 말을 문제삼은 겁니다.
이번 관광객 입국 거부도 한국에 대한 뿌리깊은 반감을 드러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일 년에 초코파이를 천억 원 어치나 소비하는 나라.
한국인 축구 감독에 열광하는 베트남이지만, 반세기 전, 전쟁의 아픔은 여전히 진행중입니다.
영상편집:강정희
최근 베트남을 찾은 한국인 여행객이 입국을 거부당했다는 내용입니다.
3천 달러, 우리 돈 약 430만 원의 벌금까지 냈습니다.
사연인 즉슨 여행객이 쓴 모자가 문제였다는데 뭐가 문제였는지 화면 함께 보시죠.
모자에 영어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 란 뜻인데요.
본인에겐 훈장 같을 수 있지만, 베트남인들에겐 잔혹한 전쟁의 참상이 떠오르는 순간입니다.
20세기 최악의 전쟁, 베트남 전쟁입니다.
남과 북으로 갈라져 20년 가까이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눈 이 전쟁은 수많은 비극을 낳았습니다.
사상자 200만 명, 고엽제 피해, 보트피플의 생이별까지.
당시 참전으로 미군 5만 8천 명을 희생한 미국은 영화 '디어 헌터', '플래툰' 등으로 전쟁의 공포를 되새기기도 했죠.
[영화 '플래툰' : "여기선 한순간도 긴장을 풀어선 안 돼. 매복할 땐 절대 자지 마라."]
우리도 베트남에 남긴 상흔이 결코 적지 않습니다.
당시 참전한 한국군이 32만 명. 5천여 명이 죽었고, 만여 명이 부상당했습니다.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무기의 그늘'을 쓴 소설가 황석영은 참전 군인으로서 직접 겪은 참상을 이렇게 회고합니다.
[KBS '대화의 희열 3' : "부비트랩 이런 거 묻어놓고 터지고. 숲속에서 다다다 총알이 날아와서 죽고."]
참전에 대한 미국의 경제적 보상은 경부고속도로를 짓는 토대가 됐습니다.
한국군이 베트남에서 철수한 건 1973년.
이후, 가수 김추자의 노래처럼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의 무사귀환에 안도하며 베트남 전쟁은 기억 속에서 멀어져갔습니다.
[김추자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 이제서 돌아왔네."]
1992년, 한국과 베트남은 국교를 맺으며 양국 외교에 다시 시동을 걸었지만 과거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습니다.
2009년, 베트남전 참전 유공자 처우 관련법을 개정할 땐 크게 사달이 나 단교 직전까지 가기도 했죠.
베트남이 '월남전쟁 유공자'라는 말을 문제삼은 겁니다.
이번 관광객 입국 거부도 한국에 대한 뿌리깊은 반감을 드러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일 년에 초코파이를 천억 원 어치나 소비하는 나라.
한국인 축구 감독에 열광하는 베트남이지만, 반세기 전, 전쟁의 아픔은 여전히 진행중입니다.
영상편집:강정희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
좋아요
0
-
응원해요
0
-
후속 원해요
0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