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해결은 언제쯤…여전한 유족들의 슬픔
입력 2025.04.03 (21:44)
수정 2025.04.03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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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제주 4·3이 77주년을 맞았지만 유족들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죠,
유족들은 더 이상 아픔과 슬픔이 없는 완전한 해결을 올해도 바라고 있습니다.
고민주 기자입니다.
[리포트]
태어난 지 석 달 만에 아버지를 잃은 아들은 여든을 앞둔 노인이 됐습니다.
아버지가 4·3 희생자였다는 사실은 연좌제 피해를 당해서야 알게 됐습니다.
[송대성/4·3 희생자 유족 : "신원조회에 걸려서 취직을 못 했습니다. 그때야 4·3 (연좌제) 이라는 것을 절절하게 느껴서, '아 나는 이제 어딜 가도 취직할 수 없구나.'"]
아흔을 바라보는 할머니는 행방불명인 묘역 앞에 앉았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간 오빠는 마포형무소를 끝으로 소식이 끊겼습니다.
[이화선/4·3 희생자 유족 : "총으로 쏴버렸는지 몰라. 행방불명, 이 오빠가 18살에 갔어요. 18살이 무슨 죄가 있겠어요."]
억울하게 숨진 아버지 이름이 새겨진 위패를 찾아, 하염없이 만져보기도 합니다.
[양문석/4·3 희생자 유족 : "(팽나무에) 몇 사람이 앉아서 놀고 있으니까 '이리 오시오' 해서, 산으로 데리고 갔어요. 데려가서 그냥 빵빵 (총살) 했대요. (아버지)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요."]
올해 추념식엔 대학살 피해를 경험한 중국 난징 학생들도 참여해, 4·3 의 아픔을 함께 되새겼습니다.
[쉬지아치/중국 난징외국어학교 3학년 : "청소년이 평화의 씨앗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평화와 아름다움을 퍼뜨리고 동시에 역사의 슬픔을 기억해야 합니다."]
긴 세월이 흘러도 아물지 않는 상처.
77년이 지나도 여전한 슬픔에, 유족들은 4·3의 완전한 해결을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KBS 뉴스 고민주입니다.
촬영기자:고아람
제주 4·3이 77주년을 맞았지만 유족들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죠,
유족들은 더 이상 아픔과 슬픔이 없는 완전한 해결을 올해도 바라고 있습니다.
고민주 기자입니다.
[리포트]
태어난 지 석 달 만에 아버지를 잃은 아들은 여든을 앞둔 노인이 됐습니다.
아버지가 4·3 희생자였다는 사실은 연좌제 피해를 당해서야 알게 됐습니다.
[송대성/4·3 희생자 유족 : "신원조회에 걸려서 취직을 못 했습니다. 그때야 4·3 (연좌제) 이라는 것을 절절하게 느껴서, '아 나는 이제 어딜 가도 취직할 수 없구나.'"]
아흔을 바라보는 할머니는 행방불명인 묘역 앞에 앉았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간 오빠는 마포형무소를 끝으로 소식이 끊겼습니다.
[이화선/4·3 희생자 유족 : "총으로 쏴버렸는지 몰라. 행방불명, 이 오빠가 18살에 갔어요. 18살이 무슨 죄가 있겠어요."]
억울하게 숨진 아버지 이름이 새겨진 위패를 찾아, 하염없이 만져보기도 합니다.
[양문석/4·3 희생자 유족 : "(팽나무에) 몇 사람이 앉아서 놀고 있으니까 '이리 오시오' 해서, 산으로 데리고 갔어요. 데려가서 그냥 빵빵 (총살) 했대요. (아버지)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요."]
올해 추념식엔 대학살 피해를 경험한 중국 난징 학생들도 참여해, 4·3 의 아픔을 함께 되새겼습니다.
[쉬지아치/중국 난징외국어학교 3학년 : "청소년이 평화의 씨앗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평화와 아름다움을 퍼뜨리고 동시에 역사의 슬픔을 기억해야 합니다."]
긴 세월이 흘러도 아물지 않는 상처.
77년이 지나도 여전한 슬픔에, 유족들은 4·3의 완전한 해결을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KBS 뉴스 고민주입니다.
촬영기자:고아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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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전한 해결은 언제쯤…여전한 유족들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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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5-04-03 21:44:46
- 수정2025-04-03 22:02:31

[앵커]
제주 4·3이 77주년을 맞았지만 유족들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죠,
유족들은 더 이상 아픔과 슬픔이 없는 완전한 해결을 올해도 바라고 있습니다.
고민주 기자입니다.
[리포트]
태어난 지 석 달 만에 아버지를 잃은 아들은 여든을 앞둔 노인이 됐습니다.
아버지가 4·3 희생자였다는 사실은 연좌제 피해를 당해서야 알게 됐습니다.
[송대성/4·3 희생자 유족 : "신원조회에 걸려서 취직을 못 했습니다. 그때야 4·3 (연좌제) 이라는 것을 절절하게 느껴서, '아 나는 이제 어딜 가도 취직할 수 없구나.'"]
아흔을 바라보는 할머니는 행방불명인 묘역 앞에 앉았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간 오빠는 마포형무소를 끝으로 소식이 끊겼습니다.
[이화선/4·3 희생자 유족 : "총으로 쏴버렸는지 몰라. 행방불명, 이 오빠가 18살에 갔어요. 18살이 무슨 죄가 있겠어요."]
억울하게 숨진 아버지 이름이 새겨진 위패를 찾아, 하염없이 만져보기도 합니다.
[양문석/4·3 희생자 유족 : "(팽나무에) 몇 사람이 앉아서 놀고 있으니까 '이리 오시오' 해서, 산으로 데리고 갔어요. 데려가서 그냥 빵빵 (총살) 했대요. (아버지)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요."]
올해 추념식엔 대학살 피해를 경험한 중국 난징 학생들도 참여해, 4·3 의 아픔을 함께 되새겼습니다.
[쉬지아치/중국 난징외국어학교 3학년 : "청소년이 평화의 씨앗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평화와 아름다움을 퍼뜨리고 동시에 역사의 슬픔을 기억해야 합니다."]
긴 세월이 흘러도 아물지 않는 상처.
77년이 지나도 여전한 슬픔에, 유족들은 4·3의 완전한 해결을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KBS 뉴스 고민주입니다.
촬영기자:고아람
제주 4·3이 77주년을 맞았지만 유족들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죠,
유족들은 더 이상 아픔과 슬픔이 없는 완전한 해결을 올해도 바라고 있습니다.
고민주 기자입니다.
[리포트]
태어난 지 석 달 만에 아버지를 잃은 아들은 여든을 앞둔 노인이 됐습니다.
아버지가 4·3 희생자였다는 사실은 연좌제 피해를 당해서야 알게 됐습니다.
[송대성/4·3 희생자 유족 : "신원조회에 걸려서 취직을 못 했습니다. 그때야 4·3 (연좌제) 이라는 것을 절절하게 느껴서, '아 나는 이제 어딜 가도 취직할 수 없구나.'"]
아흔을 바라보는 할머니는 행방불명인 묘역 앞에 앉았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간 오빠는 마포형무소를 끝으로 소식이 끊겼습니다.
[이화선/4·3 희생자 유족 : "총으로 쏴버렸는지 몰라. 행방불명, 이 오빠가 18살에 갔어요. 18살이 무슨 죄가 있겠어요."]
억울하게 숨진 아버지 이름이 새겨진 위패를 찾아, 하염없이 만져보기도 합니다.
[양문석/4·3 희생자 유족 : "(팽나무에) 몇 사람이 앉아서 놀고 있으니까 '이리 오시오' 해서, 산으로 데리고 갔어요. 데려가서 그냥 빵빵 (총살) 했대요. (아버지)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요."]
올해 추념식엔 대학살 피해를 경험한 중국 난징 학생들도 참여해, 4·3 의 아픔을 함께 되새겼습니다.
[쉬지아치/중국 난징외국어학교 3학년 : "청소년이 평화의 씨앗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평화와 아름다움을 퍼뜨리고 동시에 역사의 슬픔을 기억해야 합니다."]
긴 세월이 흘러도 아물지 않는 상처.
77년이 지나도 여전한 슬픔에, 유족들은 4·3의 완전한 해결을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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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주 기자 thinkin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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