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개정돼도…마르지 않는 4월의 눈물”

입력 2025.04.03 (21:49) 수정 2025.04.03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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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4·3으로 뒤틀린 가족관계를 바로잡아주겠다는 4년 전 정부의 약속 기억하실 겁니다.

하지만 바로잡은 건 단 한 건도 없고, 유족들은 무죄 판결에도 국가 책임을 묻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 앞서 전해드렸는데요.

이름뿐일 부모일지라도 그 존재를 찾으려 애쓰는 고령의 유족을 안서연 기자가 만났습니다.

[리포트]

올해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 입학한 79살 이애순 할머니.

오전엔 요양보호사로, 밤엔 학생으로 눈코 뜰 새가 없습니다.

할머니가 공부를 시작한 건 못 배운 한 때문입니다.

[이애순/故 이완배 친딸 : "동생들은 가는데 나는 못 가니까 속상해서 막 울면서 할아버지한테 나도 학교 가고 싶다고 나 좀 보내달라고."]

4·3 당시 아버지가 목포형무소로 끌려갔다 행방불명되면서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고, 2살이던 이 할머니는 출생신고도 하지 않은 채 20년을 살았습니다.

[이애순/故 이완배 친딸 : "성인이 되면 그 증명서가 있어야 되잖아요. 비행기를 타든 배를 타든 그 증명서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없는 거야. 호적도 없으니. 그때까지 호적도 없이 살았으니."]

결국 이모부의 동거인 신분으로 홀로 호적을 만들었습니다.

힘겨운 삶을 이어오다 5년 전, 아버지의 존재를 찾고 싶어졌습니다.

하지만 희생자의 유족으로도 인정받지 못하고, 법적 절차를 밟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제주도에 가족관계 정정 신청을 하고 기다린 지도 벌써 2년.

지난해 직권재심으로 무죄 판결을 받은 아버지가 그립기만 합니다.

[이애순/故 이완배 친딸 : "그래도 아버지가 이 세상에 왔다 간 흔적이 남았으니까 고맙다고, 날 낳아줘서 고맙다고 하고 싶어요."]

3살 때 아버지를 잃은 김을생 할머니는 이맘때마다 울음이 쏟아집니다.

불법 군사재판에서 7년 형을 받고 목포형무소로 끌려갔다 돌아오지 않은 아버지,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어머니가 재가하면서 김 할머니는 5촌 친척 호적에 올랐습니다.

[김을생/故 김평수 친딸 : "난 이 말을 하려고 하면 목 막혀서 말을 못 해. 그나마 아방(남편) 있으니 내가 하는 말을 들어서 하지. 나는 할 줄 몰라요."]

부모를 그리워하는 아내를 위해 장인 장모의 묘를 만들어준 남편.

해마다 새해 첫날이면 아들 셋과 함께 평화공원을 찾고, 아내의 제자리를 찾아주기 위해 수년째 애쓰고 있습니다.

[한규숙/김을생 남편 : "(변호사 사무실) 서너 군데 가봐도 '이건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해서. 어쩔 수 없어요. 정말 안간힘으로 4·3특별법으로 해서 정부에서 신청받을 때 그때만 기다린 거라."]

2022년 11월 재심으로 누명을 벗은 아버지 대신 3년 안에 국가에 책임을 물어야 하지만,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가족관계에 딸의 마음은 타들어 갑니다.

[김을생/故 김평수 친딸 : "하늘나라에 가신 아버님, 이걸 바로잡을지 안될지 몰라도 지켜봐 주세요. 감사합니다. 우리 아버지!"]

KBS 뉴스 안서연입니다.

촬영기자: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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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 개정돼도…마르지 않는 4월의 눈물”
    • 입력 2025-04-03 21:49:18
    • 수정2025-04-03 22:02:31
    뉴스9(제주)
[앵커]

4·3으로 뒤틀린 가족관계를 바로잡아주겠다는 4년 전 정부의 약속 기억하실 겁니다.

하지만 바로잡은 건 단 한 건도 없고, 유족들은 무죄 판결에도 국가 책임을 묻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 앞서 전해드렸는데요.

이름뿐일 부모일지라도 그 존재를 찾으려 애쓰는 고령의 유족을 안서연 기자가 만났습니다.

[리포트]

올해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 입학한 79살 이애순 할머니.

오전엔 요양보호사로, 밤엔 학생으로 눈코 뜰 새가 없습니다.

할머니가 공부를 시작한 건 못 배운 한 때문입니다.

[이애순/故 이완배 친딸 : "동생들은 가는데 나는 못 가니까 속상해서 막 울면서 할아버지한테 나도 학교 가고 싶다고 나 좀 보내달라고."]

4·3 당시 아버지가 목포형무소로 끌려갔다 행방불명되면서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고, 2살이던 이 할머니는 출생신고도 하지 않은 채 20년을 살았습니다.

[이애순/故 이완배 친딸 : "성인이 되면 그 증명서가 있어야 되잖아요. 비행기를 타든 배를 타든 그 증명서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없는 거야. 호적도 없으니. 그때까지 호적도 없이 살았으니."]

결국 이모부의 동거인 신분으로 홀로 호적을 만들었습니다.

힘겨운 삶을 이어오다 5년 전, 아버지의 존재를 찾고 싶어졌습니다.

하지만 희생자의 유족으로도 인정받지 못하고, 법적 절차를 밟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제주도에 가족관계 정정 신청을 하고 기다린 지도 벌써 2년.

지난해 직권재심으로 무죄 판결을 받은 아버지가 그립기만 합니다.

[이애순/故 이완배 친딸 : "그래도 아버지가 이 세상에 왔다 간 흔적이 남았으니까 고맙다고, 날 낳아줘서 고맙다고 하고 싶어요."]

3살 때 아버지를 잃은 김을생 할머니는 이맘때마다 울음이 쏟아집니다.

불법 군사재판에서 7년 형을 받고 목포형무소로 끌려갔다 돌아오지 않은 아버지,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어머니가 재가하면서 김 할머니는 5촌 친척 호적에 올랐습니다.

[김을생/故 김평수 친딸 : "난 이 말을 하려고 하면 목 막혀서 말을 못 해. 그나마 아방(남편) 있으니 내가 하는 말을 들어서 하지. 나는 할 줄 몰라요."]

부모를 그리워하는 아내를 위해 장인 장모의 묘를 만들어준 남편.

해마다 새해 첫날이면 아들 셋과 함께 평화공원을 찾고, 아내의 제자리를 찾아주기 위해 수년째 애쓰고 있습니다.

[한규숙/김을생 남편 : "(변호사 사무실) 서너 군데 가봐도 '이건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해서. 어쩔 수 없어요. 정말 안간힘으로 4·3특별법으로 해서 정부에서 신청받을 때 그때만 기다린 거라."]

2022년 11월 재심으로 누명을 벗은 아버지 대신 3년 안에 국가에 책임을 물어야 하지만,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가족관계에 딸의 마음은 타들어 갑니다.

[김을생/故 김평수 친딸 : "하늘나라에 가신 아버님, 이걸 바로잡을지 안될지 몰라도 지켜봐 주세요. 감사합니다. 우리 아버지!"]

KBS 뉴스 안서연입니다.

촬영기자: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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