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경찰서 망루’의 가치…“강제 징용 감시용”

입력 2025.06.30 (21:59) 수정 2025.06.30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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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태백시에는 '태백경찰서 망루' 라고 불리는 유산이 하나 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공비 침투에 대비한 시설로 알려져 있는데요.

지역에서는 망루에 숨은 역사적 의미가 훨씬 크다는 주장이 계속 나옵니다.

김문영 기자입니다.

[리포트]

태백경찰서 담장 뒤, 언덕 높은 자리.

성탑 같은 건물 하나가 있습니다.

2층 높이로 둥글게 지어진 회색 콘크리트 '망루'입니다.

높이 7m, 지름 4.3m, 각층 면적은 약 15㎡로 아담합니다.

안에는 밖을 내다볼 수 있는 가로세로 40cm 창이 사방으로 나 있습니다.

[고미숙/태백시 문화관광해설사 : "과거에 성곽을 볼 때 보면 누군가를 공격하고 누군가의 공격을 막아내는 역할처럼 그 구멍도 약간의 차이를 두고 경사도 내려다보는 경사도 가까이 멀리 볼 수 있는(구조를….)"]

공식적으로는 한국전쟁 전후인 1950년 대 지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침투하던 무장공비를 방어하던 시설로 인정돼, 2005년 국가등록문화유산이 됐습니다.

시대를 추정하는 근거는 사진 한 장.

1954년 이 일대를 찍은 사진에 이 망루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역에서는 이 망루가 훨씬 오래전부터 존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일제가 탄광을 개발하면서, 강제 징용한 사람들을 감시하기 위해 이 망루를 지었다는 겁니다.

[김강산/전 태백문화원장 : "장성광업소의 원 전신이 삼척탄광이었습니다. 1921년 1월 18일에 광구 등록이 돼 있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 책(조선 광구일람표)에. 일제 때 강제로 징용을 끌려와서 사람들이 도망을 많이 갔단 말이야. 한국 사람들이…. 도망가는 루트가 바로 금천골입니다."]

실제, 조선총독부 광무국 자료에는 삼척탄광이 1921년 개광된 걸로 기록돼 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있던 장성 이중교와 자재가 비슷하단 분석도 있습니다.

망루에 더 큰 역사적 가치가 있을 수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나창덕/태백시 동점동 : "주탄종유라고 했거든요. 주인이 탄이고 지금의 21세기 와서는 주유종탄이 되어 버렸어. 반대가 됐는데…. 지금 현재 (태백)인구가 37,000명 입니다. 장성에 인구가 만 명도 안 돼요."]

특히, 태백의 석탄산업은 지금 역사 뒤편으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국내 최대 태백 장성광업소는 지난해 문을 닫았고, 국내 1호 공기업 '석탄공사'도 존폐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태백이 가진 질곡의 역사와 고유한 가치를 기록할 수 있는 시간도 그리 길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KBS 뉴스 김문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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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백경찰서 망루’의 가치…“강제 징용 감시용”
    • 입력 2025-06-30 21:59:31
    • 수정2025-06-30 22:14:15
    뉴스9(강릉)
[앵커]

태백시에는 '태백경찰서 망루' 라고 불리는 유산이 하나 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공비 침투에 대비한 시설로 알려져 있는데요.

지역에서는 망루에 숨은 역사적 의미가 훨씬 크다는 주장이 계속 나옵니다.

김문영 기자입니다.

[리포트]

태백경찰서 담장 뒤, 언덕 높은 자리.

성탑 같은 건물 하나가 있습니다.

2층 높이로 둥글게 지어진 회색 콘크리트 '망루'입니다.

높이 7m, 지름 4.3m, 각층 면적은 약 15㎡로 아담합니다.

안에는 밖을 내다볼 수 있는 가로세로 40cm 창이 사방으로 나 있습니다.

[고미숙/태백시 문화관광해설사 : "과거에 성곽을 볼 때 보면 누군가를 공격하고 누군가의 공격을 막아내는 역할처럼 그 구멍도 약간의 차이를 두고 경사도 내려다보는 경사도 가까이 멀리 볼 수 있는(구조를….)"]

공식적으로는 한국전쟁 전후인 1950년 대 지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침투하던 무장공비를 방어하던 시설로 인정돼, 2005년 국가등록문화유산이 됐습니다.

시대를 추정하는 근거는 사진 한 장.

1954년 이 일대를 찍은 사진에 이 망루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역에서는 이 망루가 훨씬 오래전부터 존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일제가 탄광을 개발하면서, 강제 징용한 사람들을 감시하기 위해 이 망루를 지었다는 겁니다.

[김강산/전 태백문화원장 : "장성광업소의 원 전신이 삼척탄광이었습니다. 1921년 1월 18일에 광구 등록이 돼 있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 책(조선 광구일람표)에. 일제 때 강제로 징용을 끌려와서 사람들이 도망을 많이 갔단 말이야. 한국 사람들이…. 도망가는 루트가 바로 금천골입니다."]

실제, 조선총독부 광무국 자료에는 삼척탄광이 1921년 개광된 걸로 기록돼 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있던 장성 이중교와 자재가 비슷하단 분석도 있습니다.

망루에 더 큰 역사적 가치가 있을 수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나창덕/태백시 동점동 : "주탄종유라고 했거든요. 주인이 탄이고 지금의 21세기 와서는 주유종탄이 되어 버렸어. 반대가 됐는데…. 지금 현재 (태백)인구가 37,000명 입니다. 장성에 인구가 만 명도 안 돼요."]

특히, 태백의 석탄산업은 지금 역사 뒤편으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국내 최대 태백 장성광업소는 지난해 문을 닫았고, 국내 1호 공기업 '석탄공사'도 존폐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태백이 가진 질곡의 역사와 고유한 가치를 기록할 수 있는 시간도 그리 길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KBS 뉴스 김문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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