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번 손길로 만드는 붓의 연대기…춘천 필장

입력 2025.07.07 (21:43) 수정 2025.07.07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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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갈수록 손으로 쓰는 정성스러운 글씨, 보기가 힘듭니다.

이 때문에 고운 털로 만든 붓도 설 자리를 잃고 있는데요.

전통 방식 그대로 붓을 만드는 몇 안 되는 필장이 춘천에 남아 있습니다.

오늘 강원유산지도는 '춘천 필장'을 만나 쓴다는 것의 의미를 들어봅니다.

김문영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춘천 서면의 별칭은 '박사 마을'입니다.

이 고장에서만 박사가 200명 넘게 나왔기 때문입니다.

배움의 열정으로 이름난 이 마을 중심엔 '필방'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붓을 만드는 곳입니다.

이곳에선 모든 털이 붓의 재료가 됩니다.

화려한 공작새 깃털부터, 힘 좋은 말꼬리 털, 부드러운 닭털까지, 가리지 않습니다.

단, 정성은 필수입니다.

먼저, 채집한 털에서 굵고 곧은 것을 골라냅니다.

여러 차례 키를 맞춰 빗으로 빗겨냅니다.

털을 고르게 편 다음엔 왕겨 태운 재를 뿌려, 다리미로 눌러 기름기를 없앱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다시 털을 둥글게 잡고 삐져나온 털을 골라냅니다.

이런 '앞정모' 작업이 끝나야 원하는 '붓 길이'로 재단할 수 있습니다.

털의 배치도 중요합니다.

붓 안쪽 중심인 '심소'는 거칠고, 탄탄한 털로 만듭니다.

붓촉 바깥쪽 '의체'는 부드러운 고급 털로 뭉치를 만듭니다.

촉에 끼우기 전까지 이런 작업을 수백번 반복합니다.

[박경수/춘천 필장 : "요즘 분들이 중국에서 들어온 (인조)붓에 길들여서 대부분 탄력 없는 붓을 못 쓰는 거예요. 그게 문제입니다. 지금. 탄력은 어느 정도 먹통을 쳐야만 붓이 되는 거예요. 그런 마음으로 닦으면서 글씨 써야지 마음이 올바른 길로 가지 않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필장은 특히, 붓의 재료로 강원도 염소털과 강원도 대나무를 고집합니다.

혹독한 강원도 추위를 이겨내 재로로써 가치가 높기 때문입니다.

전통 방식을 그대로 잇는 뚝심을 인정받아 2013년 강원도 무형유산이 됐습니다.

고집과 정성으로 만든 붓은 글씨에도, 그림에도 더 특별한 힘을 불어넣습니다.

[이현순/한국서가협회 강원지회장 : "이 붓의 어떤 힘이 조금 끝까지 가는 획까지의 어떤 생동감이라든가 그 필력을 느낄 수가 있어요. 글씨의 획이 달라져요. 붓의 털에 따라서 그러다 보니까 이걸로 했을 때는 요 그림이 좋겠다 요 글씨가 좋겠다라는 걸…."]

필장의 아버지에 이어, 아들까지 3대가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손 글씨가 사라져 가는 시대.

더 좋은 글씨를 위해서 100번 손길로 붓을 만들는 과정의 의미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제 아기의 배냇머리털로도 붓을 만들며, 변치않는 우리 붓의 생명력을 알립니다.

[박상현/학예연구사 : "무형 유산들이 굉장히 많이 사라져 가더라고요. 우리의 전통기술들이나 이런 도구들을 제작하는 이런 기술들이…. 머리카락을 깎아서 돌아가실 때 염하기 전에나 그리고 머리로도 약간 추모하는 의미에서 추모필이라고 해서 저희가 또 제작을 하고 있거든요."]

한 획 한 획 역사를 써내려가는 붓.

필장의 손 끝에서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문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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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번 손길로 만드는 붓의 연대기…춘천 필장
    • 입력 2025-07-07 21:43:12
    • 수정2025-07-07 21:55:42
    뉴스9(춘천)
[앵커]

갈수록 손으로 쓰는 정성스러운 글씨, 보기가 힘듭니다.

이 때문에 고운 털로 만든 붓도 설 자리를 잃고 있는데요.

전통 방식 그대로 붓을 만드는 몇 안 되는 필장이 춘천에 남아 있습니다.

오늘 강원유산지도는 '춘천 필장'을 만나 쓴다는 것의 의미를 들어봅니다.

김문영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춘천 서면의 별칭은 '박사 마을'입니다.

이 고장에서만 박사가 200명 넘게 나왔기 때문입니다.

배움의 열정으로 이름난 이 마을 중심엔 '필방'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붓을 만드는 곳입니다.

이곳에선 모든 털이 붓의 재료가 됩니다.

화려한 공작새 깃털부터, 힘 좋은 말꼬리 털, 부드러운 닭털까지, 가리지 않습니다.

단, 정성은 필수입니다.

먼저, 채집한 털에서 굵고 곧은 것을 골라냅니다.

여러 차례 키를 맞춰 빗으로 빗겨냅니다.

털을 고르게 편 다음엔 왕겨 태운 재를 뿌려, 다리미로 눌러 기름기를 없앱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다시 털을 둥글게 잡고 삐져나온 털을 골라냅니다.

이런 '앞정모' 작업이 끝나야 원하는 '붓 길이'로 재단할 수 있습니다.

털의 배치도 중요합니다.

붓 안쪽 중심인 '심소'는 거칠고, 탄탄한 털로 만듭니다.

붓촉 바깥쪽 '의체'는 부드러운 고급 털로 뭉치를 만듭니다.

촉에 끼우기 전까지 이런 작업을 수백번 반복합니다.

[박경수/춘천 필장 : "요즘 분들이 중국에서 들어온 (인조)붓에 길들여서 대부분 탄력 없는 붓을 못 쓰는 거예요. 그게 문제입니다. 지금. 탄력은 어느 정도 먹통을 쳐야만 붓이 되는 거예요. 그런 마음으로 닦으면서 글씨 써야지 마음이 올바른 길로 가지 않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필장은 특히, 붓의 재료로 강원도 염소털과 강원도 대나무를 고집합니다.

혹독한 강원도 추위를 이겨내 재로로써 가치가 높기 때문입니다.

전통 방식을 그대로 잇는 뚝심을 인정받아 2013년 강원도 무형유산이 됐습니다.

고집과 정성으로 만든 붓은 글씨에도, 그림에도 더 특별한 힘을 불어넣습니다.

[이현순/한국서가협회 강원지회장 : "이 붓의 어떤 힘이 조금 끝까지 가는 획까지의 어떤 생동감이라든가 그 필력을 느낄 수가 있어요. 글씨의 획이 달라져요. 붓의 털에 따라서 그러다 보니까 이걸로 했을 때는 요 그림이 좋겠다 요 글씨가 좋겠다라는 걸…."]

필장의 아버지에 이어, 아들까지 3대가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손 글씨가 사라져 가는 시대.

더 좋은 글씨를 위해서 100번 손길로 붓을 만들는 과정의 의미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제 아기의 배냇머리털로도 붓을 만들며, 변치않는 우리 붓의 생명력을 알립니다.

[박상현/학예연구사 : "무형 유산들이 굉장히 많이 사라져 가더라고요. 우리의 전통기술들이나 이런 도구들을 제작하는 이런 기술들이…. 머리카락을 깎아서 돌아가실 때 염하기 전에나 그리고 머리로도 약간 추모하는 의미에서 추모필이라고 해서 저희가 또 제작을 하고 있거든요."]

한 획 한 획 역사를 써내려가는 붓.

필장의 손 끝에서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문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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